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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던전의 S급 시한부 영애 (175)화 (175/218)

175화

미야가 발칵 뒤집힌 후.

바깥 상황이 어떻든 에델바이스의 마력석 광산은 끊임없이 개발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중심에 있는 소예리 역시 연구를 거듭하고 있었다.

……약간의 사리사욕을 챙기면서.

“우리 쪽에도 마력석이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이걸 챙겨 갈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소예리는 반짝이며 제 앞에 늘어져 있는 마력석들을 보면서 안타까움에 입을 비죽였다.

강도가 좀 약하긴 하지만 영롱히 빛나는 게, 가공 스킬을 가진 세공사들에게 가져가서 잘만 다듬으면 좋은 액세서리가 될 것 같은데.

게다가 마력까지 담겨 있으니 가지고 있으면 소지한 헌터의 마력도 회복시켜줄 거고!

보조배터리의 시대는 갔다! 지금은 마력석배터리의 시대다!

……라는 사업으로 대박을 낼 자신이 있었지만 문제는.

[인벤토리에 넣을 수 없는 아이템입니다.]

“잉.”

마력석을 인벤토리에 넣을 수 없다는 점이었다.

다시 말해 한국으로 갖고 나갈 수 없다는 얘기다.

“진짜 예쁜데.”

소예리가 마력석을 이리저리 돌려 보았다.

영롱한 푸른 빛을 발산하는 에델바이스의 마력석은 소예리가 본 다른 지역의 마력석보다 압도적으로 예쁜 무늬를 자랑했다.

금세 따라 그릴 수 있을 정도로 기억에 남으면서도, 단조롭지 않은 무늬.

이런 걸 수집할 수 없다니 아쉬웠다.

―톡.

그녀가 손끝으로 마력석을 건드려보았다.

십 년 전만 해도 관심 없었는데, 이런 거에.

그녀가 눈을 가늘게 떴다.

지금이야 반짝이는 것이며 온갖 화려한 것들이 인벤토리며 드레스룸에 가득했지만, 한때는 아니었다.

언제 죽을지 모르는데 액세서리나 옷 같은 걸 사서 뭐에 쓴단 말인가?

사 봐야 얼마 못 쓸 것 같아서 비참함만 더해줄 뿐인데.

얘들은 그대로지만, 나는 죽겠구나 싶어서.

“이이잉.”

그녀가 마력석을 옆으로 치워 버리고는 기지개를 켰다.

반짝이는 걸 못 가지게 될 때마다 옛날 생각이 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그래도 이제는 아쉬워할 필요가 없지!

가라앉으려는 기분을 털어낸 그녀가 시계를 돌아보았다.

“올 때가 됐는데~”

에델바이스 백작은 근래 마탑주와 공식적인 만남을 자주 가지고 있었다.

명목상으로는 예상보다 큰 마력석 광산의 규모를 보고 개발 조건을 재협상한다는 이유였다.

하지만 진짜 이유는 당연히 신유리의 수련이었다.

―쩌저적! 쨍!

진지한 표정으로 수련에 임하는 신유리의 모습이 떠올라 소예리가 예쁘게 웃었다.

‘매번 고마워요. 이렇게 스킬 일일이 조절해서 쓰는 거 머리 아플 텐데.’

‘도와줄 수 있어서 내가 더 좋지!’

신유리는 그녀의 답이 의례적인 것이라고 생각하는 듯했다.

하지만 소예리는 아니었다.

정말, 내가 도울 수 있어서 기뻐요.

[헌터 랭크 측정 중……]

[S]

S급으로 각성했던 날.

[새로운 내 모습(L) 패시브 스킬이 활성화됩니다.]

아팠던 몸이 씻은 듯이 나았던 날.

창피할 필요가 없다는 걸 알면서도 창피해하던 제 모습을 감추고, 화려한 붉은 머리칼과 금안을 가지게 됐던 그날에.

가장 먼저 했던 생각은 살아나가야겠다는 생각, 그리고.

제게 호의를 베풀어준 그녀를 도와야겠다는 생각뿐이었으니까.

“그러니 언제든 필요하면 말해요.”

소예리가 예쁘게 웃을 때였다.

“마탑주님, 에델바이스 백작님이 도착했습니다.”

“어서 들어오시라고 해요.”

호랑이도 제 말 하면 온다더니. 소예리는 거울을 돌아보았다.

신유리 앞에서는 예쁜 모습이고만 싶었다.

이전의 그…… 짜증 내던 환자 모습이 아니라.

늘 좋은 인상으로만 남고 싶었다.

[새로운 내 모습(L)]

타인에게는 보이지 않는 패시브 스킬을 보다가 소예리는 고개를 흔들었다.

생각에 잠겨 있을 틈이 없었다.

“마탑주님, 근래 자주 뵙습니다.”

신유리 헌터가 들어왔으므로.

“그러게요. 덕분에 이 별장이 밝아지는 것 같아요.”

의례적인 인사를 나누는 사이 소예리는 금세 표정을 회복했다.

빙그레 미소 지은 그녀는 마탑 사람이 방에서 나가자마자 미리 준비한 방음벽 스킬을 사용했다.

그 후에는?

“오늘은 일찍 왔네~?”

‘클로나 에이센’의 미소를 지운 소예리가 신유리를 끌어안았다.

신유리의 얼굴에, 소예리가 보기엔 한없이 예쁘고 싱그러운 미소가 떠올랐다.

“노력해야죠.”

노력 안 해도 강해.

노력 안 해도, 예뻐. 소예리가 소리 없이 웃었다.

***

“에델바이스의 마력석이 예쁘다고요?”

소예리 헌터는 수련장소로 가는 길에 이것저것 잡다한 이야기를 자주 했다.

이렇게 자주 오는데 어디서 그렇게 이야기 주제가 퐁퐁 솟아나는지 궁금할 정도였다.

하긴, 우린 한국에서도 맨날 수다 떨었지.

“그렇다니까요! 포를랭 마력석 생각해 봐요. 으, 완전 구닥다리 감성 골뱅이 그려져 있었잖아.”

그게…… 골뱅이였나?

따지자면 옆으로 길게 늘어난 모양이긴 했다.

“그런데 이건 다르잖아요. 봐봐.”

그러면서 소예리 헌터는 품에서 주먹만 한 마력석을 꺼내 보였다.

“헐, 이렇게 큰 걸 들고 왔어요? 인벤토리에도 안 들어간다며?”

“신유리 헌터님이랑 보려고 들고 나왔지이.”

S급의 근력을 이상한 데 사용하는 사람이었다.

시끄럽게 수련을 해도 들을 사람이 없는 한적한 곳인 덕에 우린 방음벽 없이도 자유롭게 이야기할 수 있었다.

―탁탁.

소예리 헌터가 마침 앞에 있는 넓은 바위 위에 앉아 옆자리를 두드려 보였다.

“하늘 보면서 보면 더 예뻐요. 빨리빨리!”

들뜬 소예리 헌터의 옆에 앉자, 소예리 헌터가 두 손에 주먹만 한 마력석을 올려놓았다.

“봐요. 에델바이스의 마력석은 원래 서쪽을 가리키니까 여기서 딱 보면…….”

그녀의 손이 반짝였다.

소예리 헌터의 마력과 반응한 마력석이 은은한 푸른 빛을 냈다.

원래 눈에 보이지 않아야 할 마력의 흐름이 그녀의 마력에 반응해 보이는 것이었다.

“딱 햇빛 쏟아지는 곳으로 빛이 마주 나가서 예……쁜……데……?”

소예리 헌터는 말하다 말고 말끝을 흐렸다. 난 돌을 쳐다보았다.

소예리 헌터 말대로 예쁘게 빛이 나는 건 맞았다.

근데 햇빛이 오는 방향하고 같은 방향으로 빛나고 있는데?

설명하고 좀 다른데?

소예리 헌터를 보니 그녀도 당황한 얼굴이었다.

“마력석 광산에선 안 이랬는데?”

증폭마법을 광산에선 안 써봐서 그런가? 아니면 다른 마법의 작용이…….

뭐라고 빠르게 중얼거리던 소예리 헌터가 마력이 향하는 방향을 바라보았다.

“저쪽이 어디 같아요?”

“음…….”

일단 우리 위치를 알아야 하지 않을까요?

난 대충 지나온 길을 떠올렸다.

내가 하는 수련의 특성상 시끄럽고 흔적이 많이 남다 보니, 한 군데에서만 수련할 수는 없었다.

다행히 우리가 수련하던 산맥은 생각보다 넓어서, 장소를 즉흥적으로 옮겨도 상관없을 정도였다.

문제는 이럴 때 집 가는 방향 찾으려면 머리를 좀 써야 한다는 거지.

“저쪽 아닌가?”

오늘은 별로 방향을 안 꺾었으니까…….

내가 가리킨 쪽을 본 소예리 헌터가 눈썹을 치켜올렸다.

마력석의 빛은 내가 가리킨 방향과는 전혀 다른 곳으로 향하고 있었다.

“원래 마력석의 마력 흐름은 광산의 영향을 받거든요.”

소예리 헌터가 고개를 갸웃했다.

“그래서 광맥이 서쪽으로 깊이 난 에델바이스산은 당연히 서쪽으로 빛이 향하는 건데…….”

왜 방향이 다르지?

고개를 갸웃거리던 그녀가 품에서 다른 마력석을 꺼냈다.

무늬가 다른 걸 보니 에델바이스 마력석은 아니었다.

―우웅!

하지만 그 마력석도 에델바이스의 마력석과 같은 방향을 가리켰다.

“이건 원래 동쪽을 가리켜야 하는데.”

소예리 헌터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녀가 꺼낸 다섯 개의 다른 마력석이 모두 그랬다.

“이게 다 다른 지방에서 난 마력석이라는 거죠?”

“네.”

소예리 헌터의 말에 난 머리를 긁적였다.

마치 한쪽을 가리키는 거 같지 않은가?

“한 번 가보자!”

마침 소예리 헌터도 같은 생각을 했는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녀와는 달리 연구정신이 없는 난 떨떠름한 표정으로 소예리 헌터를 올려다보았다.

“오늘 수련할 게 있는―”

“이것도 다 수련이에요.”

내 말을 끊는 소예리 헌터의 눈은 이미 광기(?)로 빛나고 있었다.

저 호기심에 빛나는 눈……!

저건…… 저건 말릴 수 없는 눈이다!

“다 인생에 좋은 경험이 될 거라고요. 경험이 곧 수련 아니겠어요?”

아니나 다를까, 소예리 헌터가 눈을 반짝이며 괴논리를 늘어놓기 시작했다.

나도 멍청이는 아니었으므로 응수했다.

“저는 딜러라서 뭘 연구한다고 수련되진 않는답니다, 헌터님.”

하지만 내 말에 소예리 헌터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말했다.

“어허, 된다니까.”

그러더니 뒤에서 불쑥 날 끌어안았다.

[헌터 소예리(S)가 ‘비행(A)’ 스킬 효과를 부여합니다.]

어어? 이렇게 납치하기야?

“그럼 소예리 헌터도 나중에 검 좀 휘두릅시다. 수련될걸?”

이것도 다 경험 아니겠습니까?

―휘잉!

하지만 답 대신 소예리 헌터는 고도를 높였다.

이미 우리는 빠르게 하늘을 날고 있었다.

밑에서 사람들이 보면 어쩌나 싶은 걱정은 없었다.

고도가 너무 높아서 육안으론 사람인지 새인지 구분도 안 될 거다.

물론 A급쯤 되면 이 정도 고도에서 말하는 건 문제없었다.

그리고 S급쯤 되면 듣는 데 문제없는 건 물론이었다.

“난 그걸로 수련 안 돼요. 보조계라서.”

아니나 다를까, 충분히 고도를 높였다고 생각했는지, 소예리 헌터는 내 말에 당당하게 답했다.

이런 뻔뻔한 사람을 봤나!

“그럼 나도 안 되지 않을까요?”

가라, 일반론!

“그럼 여기서 놔줄까?”

소예리 헌터가 내 어깨 옆으로 빼꼼 고개를 내밀었다.

아무리 제가 A급이 됐다지만 이 높이에서 떨어지면 좀 위험하지 않을까요?

“일부러 높이 올라온 거지!”

사람들한테 보일까 봐 올라온 게 아니라 협박하려고 올라온 거였어!?

“안 보이려고 그런 거예요~”

거짓말! 거짓말쟁이!

내 외침은 상공을 빠르게 가로지르며 불어닥친 바람에 묻혀 버렸다.

우린 그렇게 마력석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빠르게 날아갔다.

그 끝에 뭐가 있는지는 상상도 못 한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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