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 던전의 S급 시한부 영애 (174)화 (174/218)

174화

포를랭이 또를랭을 하든 말든 내게는 전혀 타격이 없었으므로, 난 신경을 끄고 업무에 집중했다.

내 업무에는 당연히 기사단 관리도 있었다.

“흐음.”

하지만 최근 에델바이스 기사단의 분위기는 묘했다.

“그럴 만하지.”

하긴, 당연했다.

에델바이스 백작가는 신흥귀족이다.

심지어 원래는 포를랭 자작가의 후계자로 지목되었던 인물이다.

검에 살고 검에 죽는 카르만에서 가문의 후계자로 지목되었다는 건, 그 가문의 기사들과는 각별한 사이라는 뜻이나 다름없었다.

‘포를랭에서 기사들이 온다고……?’

그 소식이 전해지자 에델바이스의 기사들은 불안해했다.

원래 가주와 친한 사이였던 기사들이 왔으니, 자신들이 찬밥신세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듯했다.

물론 포를랭의 기사들이 아무런 검증 없이 들어온 건 아니었다.

“입단 시험도 거쳤다는데?”

기사들이 쑥덕대는 대로 포를랭의 기사들은 빠짐없이 입단 시험을 치르고, 통과했다.

애초에 그들이 통과하지 못할 거란 생각은 하지 않았다.

[B] [B] [B] [C]

포를랭이 대체 왜 그렇게 게이트가 폭주해댔는지 모를 정도로 능력 있는 기사들이 대부분이었으니까.

특히 그들을 이끄는 기사 밀리샤나 이디스는 이미 A급에 거의 다다른 수준으로 보였다.

그런 그들이 입단시험을 통과하지 못할 리가 없었다.

“실력 있는 자들이라고 하는군.”

“그거야…… 가주님께서 당연히 그런 자들만 들이셨겠지만…….”

에델바이스의 기사들은 그래도 불안해했다.

그래서 난 기사단에 나간 김에, 직접 말했다.

“오늘은 경들에게 할 말이 있어.”

원래는 포를랭 기사들이 합류했든 말든 신입 기사가 온 것처럼 훈련만 했지만, 한 번쯤 제대로 언급할 필요가 있을 듯했다.

“옙!”

내 말에 기사들이 질서정연하게 열을 맞추어 내 앞에 정렬했다.

포를랭의 기사들은 낯선 정렬 방식에 당황했지만 그것도 잠깐, 금세 적응해 에델바이스의 기사단과 나란히 섰다.

위화감이 느껴지지 않을 정도였다.

에델바이스 기사들이 포를랭의 기사들을 흘끔흘끔 쳐다보는 것만 빼면.

“최근 신입 기사들이 대거 입단하면서 기사단 내부에 이야기가 많은 것으로 아는데.”

내 말에 에델바이스 기사들이 애써 시선을 앞으로 했다.

신경 쓰이는 거 다 안다, 알아.

너희들도 사람인데 당연한 거 아니겠냐?

난 손을 펴 보였다.

“이 점을 확실히 하지. 지금 들어온 신입 기사들이 과거에 어떤 이력을 가지고 있든 에델바이스에선 신입 기사일 뿐이야.”

그건 이미 포를랭의 기사들에게도 말해둔 사실이었다.

‘당연합니다.’

‘저희는 에델바이스에 대해 아는 것이 없으니 당연한 일이 아닙니까?’

개념이 제대로 박힌 기사인 이디스와 밀리샤는 당연히 수긍했고, 그들이 데려온 기사들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그 사실이 에델바이스의 기사들에게는 아직 알려지지 않은 듯했다.

저렇게 소 닭 보듯 하니까 당연하겠지.

“에델바이스의 기사들은 에델바이스를 지키기 위해 있어. 에델바이스에 대해 잘 아는 자들이 선임기사가 되고 기사들을 지휘할 수 있는 권한이 생기는 게 당연해.”

난 에델바이스의 기사들을 똑바로 보면서 말했다.

“그러니 이번에 들어온 신입 기사들에게 어떤 특권을 주지는 않을까 불안해하지 않아도 돼.”

난 돌려 말하지 않았다.

어차피 검생검사 딜러 인생들인데 빙빙 돌려 말해 봐야 오해만 생기지. 안 그래?

“……알겠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직구에 잠시 멈칫했던 에델바이스 기사들이 외쳤다.

“그럼 훈련 시작할까?”

난 훈련용 검을 들며 말했다.

기사들 사이로 작은 목소리가 퍼져 나갔다.

“역시 영주님이셔.”

“이러실 것 같았다니까.”

“공평하신 분이시잖아.”

얘들아, 칭찬은 안 들리는 데서 하렴. 흠흠.

***

에델바이스의 일이 술술 풀리는 사이.

어딘가의 일은 꼬이고 있었다.

“뭐, 게이트라고? 당장 출정시켜!”

그건 미야 연합 소속의 열혈백작 바이야가 만든 사고였다.

사실 사고랄 것도 없었다.

“게이트인지는 확실하지 않고 그 방향에서 강한 몬스터가 많이 나왔다고 합니다.”

집사의 보고에 열혈백작 바이야가 상기된 얼굴로 외쳤다.

“그럼 영지민들이 위험하잖나! 당장 기사들을 파견시켜! 싹 밀어 버려!”

이 세계에 불도저가 있었다면 당당하게 불도저 백작이라 불렸을 것 같은 바이야 백작은, 최근 놀라운 행동력으로 게이트를 차단해 나가고 있었다.

[89%]

그래서 바이야 영지의 게이트 방어율은 텐치아 영지의 92%를 위협할 만큼 바짝 쫓아가고 있었다.

그런데 그런 그의 열정(?) 때문에 문제가 생겼다.

“가, 가주님. 그냥 지나가는 몬스터 무리였다고 합니다.”

기사들이 출정해 몬스터를 도륙내고 보니, 몬스터들은 그냥 터를 잃고 이리저리 돌아다니는 놈들이었을 뿐이었다.

다른 영주라면 무안해할 만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바이야는 달랐다.

그가 팔짱을 낀 채 호탕하게 웃음을 터뜨렸다.

“그렇다고 몬스터가 아니게 되는 것은 아니지! 근처 영지민들을 안심시키고 돌아오라고 해라!”

게이트를 없앨 정도 규모의 병력이 왔다 갔다 했으니 근처 영지민들이 불안해할 만도 했다.

“알겠습니다.”

집사는 다행히 가주가 무안해하지 않는 것을 확인하고는 기사들에게 명령을 전달했다.

하지만 이것이 문제가 될 줄은, 바이야에 비해 매우 신중한 성격인 집사도 알지 못했다.

얼마 후 소문이 퍼지자 덥석 물어뜯은 사람은 바로 포를랭 자작이었다.

“미야 연합에서 얼마 전에 대규모로 기사를 움직였다고 했소! 근처를 지나는 상단들마저 모두 알 정도였지!”

포를랭 자작은 입에 침을 튀기면서 말했다.

보고서 작성에 저택 방어로 골머리를 앓다가 모처럼 사교계 연회에 참석한 차였다.

“그 정도 규모의 병력 이동이라면 폐하께 마땅히 먼저 보고드렸어야 하는 법! 그런데 선출정 후보고라니! 만일 그 기사들이 폐하께 감히 불손한 생각을 품었으면 어찌할 뻔했소!?”

그는 사람들 앞에서 애절하게 황제를 향한 충성심을 부르짖었다.

미야의 병력 이동이 수상하다고 줄곧 외치던 그에게 딱 좋은 먹잇감이 떨어진 것이었다.

***

[아이반 엘레티아 폰 카르만(신재헌놈)>>> 이상 포를랭 자작 근황이었습니다]

그리고 신재헌의 정보원이 전해줬다는 포를랭 자작의 발악을 들은 난 혀를 찼다.

“불손한 생각을 했으면 뭐 어떻게 되긴…….”

화염검에 뼛가루도 못 남기고 날아갔겠지…….

반란도 아무나 하는 게 아니에요, 친구.

[아이반 엘레티아 폰 카르만(신재헌놈)>>> 충신 났네]

[세니아 드 에델바이스(신유리)>>> 이야 부럽습니다 폐하]

[클로나 에이센(예리언님)>>> 완전 광팬이네 광팬~]

[아리엔사 시안 데마르(주이안씨)>>> 일생에 한 명의 충신이라도 둔다면 좋은 군주라는 이야기가 있더군요.]

흔치 않게 주이안 헌터에게까지 놀림을 당한 신재헌은 충격을 받았는지 답이 없었다.

그리고 그러는 사이 사교계로 소문은 알음알음 퍼져 나가기 시작했다.

민감한 이야기인 만큼 대놓고 떠드는 자들은 없었지만, 신재헌이 미리 심어놓은 사람들은 빠르게 소문을 전했다.

“정말 미야에서 그런 의도로 군사를 움직였단 말이오?”

“그렇다고 하오.”

“그 수장인 에델바이스 백작께선 그럴 분이 아니신데.”

“하지만 아니 땐 굴뚝에 연기가 나진 않는다고 하였소이다. 분명 무슨 근거가 있으니 이야기가 도는 것이 아닌지…….”

아니 땐 굴뚝에 연기 나겠냐는 말도 있지만, 반대로 세 사람만 거짓말하면 없던 호랑이도 만든다는 말이 있단다, 얘들아…….

대중은 늘 진실보단 가십을 원한다.

따라서 포를랭 자작의 이야기는 물밑으로 확 퍼져 나갔다.

하지만 우리는 걱정하지 않았다.

왜냐고?

“곧 신재헌의 방법이 통할 때가 됐는데.”

신재헌 말대로 언론에 시달린 세월이 얼마인가?

이런 언플에 당할 멘탈이면 S급 못하지.

아니나 다를까, 얼마 안 있어 반응이 왔다.

[포를랭의 보고는 잘 받아보았다.

근래 게이트 방어 수준이 미진하여 영지민들에게 불안을 준 바, 게이트 관리에 대한 수련이 시급한 것으로 판단된다.]

저렇게 전언에 팩트를 쏘아붙여도 페널티가 없는 걸 보면 폭군 설정이 편하긴 편한 모양이었다.

[따라서 포를랭 인근에 있는 게이트 대응 연합 ‘미야’에서 게이트 대응법에 대해 수련하길 바란다.

매달 좋은 결과가 있을 것을 기대하며 보고서를 기다리겠다.]

포를랭이 미야에 대한 악소문을 퍼뜨리는 걸 모르는 척, 미야에 포를랭을 넣어 버린 것이다.

제 얼굴에 침 못 뱉는다고, 미야에 소속되어 버렸으니 포를랭은 미야가 수상한 행동을 한다고 주장하기는 어려워져 버렸다.

물론 반대로 미야가 정말 수상하게 병력을 움직이고 있다면 잡아낼 좋은 기회이기도 했다.

“폐하께서 소문을 알고 직접 포를랭 자작을 미야에 소속시키신 것이 아닐까?”

“하긴, 그 안에 있으면 정확한 근거를 잡을 수 있겠지.”

멍청한 귀족들은 그렇게 말하기도 했다.

하지만 신재헌의 의도는 간단했다.

미야가 수상한 병력 움직임을 보였다고?

어디 증거를 찾으려면 찾아보시지!

아니면 제 얼굴에 침 뱉는 짓 그만하든가.

[세니아 드 에델바이스(신유리)>>> 대응에 만점 드립니다]

[클로나 에이센(예리언님)>>> 저는 보너스 점수도 드립니다]

[아리엔사 시안 데마르(주이안씨)>>> 역시 신재헌 헌터님이십니다.]

엿 먹이는 데에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놈을 건드리다니, 포를랭 자작도 참 지 팔자 지가 꼬는 데에는 일가견이 있는 놈이었다.

***

당황한 포를랭 자작이 입 터는 것도 까먹고 저택에 처박힌 사이.

이 계획에는 아주 작은 문제가 있었다.

“폐하께서 우리 미야 연합을 높이 사고 계신 것은 정말 영광스러운 일이오. 하나…….”

“포를랭 자작 그자는 게이트 관리법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도 없는 것 같던데.”

모처럼 모집된 미야의 회의.

미야의 귀족들이 쑥덕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요컨대 그들은 포를랭 자작이 미야에 낙하산(?)으로 들어온 것에 불만을 가지고 있었다.

그야 당연하다.

미야는 원래 엄선된 실력 있는 귀족들끼리만 구성된 연합체였으니까.

병력을 서로 빌려주기도 하는 연합인 만큼 수준이 떨어지는 인원이 들어오는 데에 민감할 수밖에 없었다.

물론 왕정제 세계관인 만큼 격하게 반대하거나 황명에 거부감을 보이는 자는 없었다.

하지만 불편한 기색을 보이는 자들은 분명히 있었다.

[아이반 엘레티아 폰 카르만(신재헌놈)>>> 원래 폭군은 욕먹고 오래 사는 거예요]

신재헌은 미야에서 불만이 있을 거라는 내 말에 그렇게 말했지만, 친구놈 욕먹는 게 유쾌할 리가 없다.

신재헌 넌 친구 잘 둔 줄 알아라.

“흐음.”

난 넓은 원탁에 둘러앉은 사람들을 보면서 헛기침을 했다.

그러자 사람들의 이목이 내게로 집중되었다.

바이야 백작이 물었다.

“에델바이스 백작께서는 어찌 생각하십니까? 물론 포를랭 자작이 백작의 부친인 줄은 알고 있지만, 그 누구보다도 객관적인 시각으로 상황을 보시는 분이 아니십니까?”

그러자 사람들이 웅성거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요즘 왜 어딜 가나 날 비행기를 못 태워서 안달이지? 이러다 비행 스킬 생기겠다니까?

“포를랭 자작이 확실히 미야에 소속된 여러분에 비하면 수준이 떨어지는 것이 사실이에요.”

포를랭 자작이 에델바이스 백작의 아버지란 사실은 귀족가에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크흠.”

그래서인지 ‘수준이 떨어진다’는 내 강한 워딩에 놀라는 귀족들도 있었다.

[…….]

하지만 오히려 시스템창은 조용했다. 페널티 위기의 ㅍ자도 안 떴다.

요컨대 세니아도 필요할 땐 할 말 하는 인물이라는 거지.

믿고 있었다니까!

“하지만 포를랭 자작의 수준이 떨어지는 만큼, 포를랭 영지에는 고통받는 영지민들이, 이 카르만의 제국민들이 있습니다.”

“……!”

내 말에 귀족들이 서로를 마주 보았다.

“비록 포를랭 자작가를 돕기 위해서는 다른 귀족가의 병력이나 물자가 들어가겠지만, 이 역시 카르만을 위한 길이 아니겠습니까?”

가끔 내가 헌터인지 연설가인지 의문이 들 때가 있어…….

내가 현실자각타임을 갖는 것도 잠깐.

“오오……!”

내 말에 바이야 백작이 주식 상한가 친 소예리 헌터처럼 무릎을 치고 이마를 치기 시작했다.

저, 저 사람 불붙는다!

“역시!!!”

아니나 다를까, 그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모두의 이목이 그에게 집중되었다.

“제 생각이 짧았소이다! 과연 백작의 말씀대로요! 포를랭의 영지민들 역시 카르만 제국민! 카르만의 미래! 그곳에서 고통받고 죽어가고 있는 자들이 장차 어떻게 성장하여 카르만의 미래를 이끌어갈지 모르는 일이 아닙니까!”

아니, 미래 어쩌고는 말 안 했는데?

하지만 아무리 봐도 왕정제에서 썩기 아까운 인재인 바이야 백작은 짧고 굵은 연설로 주변을 휘어잡았다.

“이 모든 것은 카르만의 미래를 위한 것!”

“와아아아아!”

그리고 검생검사 딜러진답게 단순한 머리를 가진 귀족들이 일제히 기립박수를 했다.

쪽팔리게도 기립박수를 하면서 쳐다보는 건 연설을 한 바이야 백작이 아니라 나였다.

광팬을 가지게 된 건 신재헌이 아니라 내가 아닐까요?

[…….]

하지만 난 차마 채팅창에 이 근황을 쓸 수가 없었다.

말했다간 안줏거리로 십 년은 씹힐 거야!

딜러의 감이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당장 포를랭 자작가에 연락하세!”

“미야에 온 걸 환영한다고 하세!”

“선물도 보냅시다!”

선물은 왜 보내는데???

그러거나 말거나 미야 사람들은 분위기에 고무되어 벌떡벌떡 자리에서 일어나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바이야 백작의 열혈 바이러스가 미야를 잠식한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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