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 던전의 S급 시한부 영애 (171)화 (171/218)

171화

사실 내 스타일은 그냥 포를랭에 쳐들어가서 포를랭 자작의 모가지를 따버리는 것이었다.

그게 좀 곤란하다 싶으면 어떻게든 핑계를 만들어서 영지전을 하는 것?

근데 영지전 하면 포를랭에 있던 귀여운 B급 퓨어딜러들이 날 막겠답시고 나왔다가 상처를 받을 테니 곤란했다.

그렇다고 목 따기는 RP던전 페널티라는 까다로운 친구가 있었기 때문에 곤란했다.

그럼 다른 방법은 하나였다.

정말 이 던전의 세계관에 맞게 처리하는 것.

마침 재료는 충분했다.

리카스의 맹활약으로 저놈들은 곧 역모죄로 잡힐 테니까.

“엿 먹이기 타임어택은 또 처음이네.”

하지만 그것 때문에 난 오히려 급해져 버렸다.

얘들아! 모가지 날아가기 전에 내 히든퀘에 점수 좀 주고 가!

이왕이면 개망신도 좀 당하고 죽지 않을 만큼만 다치면서 재산도 좀 탈탈 털리라고! 응?

사형행 KTX 특급열차에 승차한 포를랭 자작이 늦게 죽어야 하는 이유는 하나 더 있었다.

[가문의 명예 : 12995(121▼)]

저택의 손님 던전에 들어가기 전부터 있었던 이 퀘스트 때문이었다.

분명 저택의 손님 던전을 클리어한 직후에는, 수호기사단장이 최고난이도의 게이트에서 활약했다며 가문의 명예가 15000까지 치솟았다.

하지만 얼마 안 있어 조금씩 깎이더니, 요즘은 연일 하락세였다.

소예리 헌터의 주식차트 이후로 이렇게 다이내믹한 등락은 처음 보는 것 같았다.

“포를랭에서 뒷공작을 바쁘게 하고 있나 본데.”

난 혼자 남은 집무실에서 뇌까렸다.

[서브 퀘스트 : 가문의 명예]

[클리어 보상 : 신의 상점 Coin(클리어 시점 가문의 명예 수치의 3배)]

[클리어까지 남은 시간 : 71:44:17……]

클리어까진 대략 사흘 남았다. 그 사이 누군가의 개수작으로 연일 하락세인 내 코인(?)을 어떻게든 살려야 했다.

“흐음.”

어떻게 해야 사흘 내에 효과적으로 명예 수치를 올릴 수 있을까?

가문의 명예 퀘스트 역시 결국 ‘에델바이스 가’에 대한 소문이 어떻게 나느냐에 따라서 점수가 오르내리는 것이다.

그리고 헬렌을 시켜 알아본 결과.

[포를랭 관련 건 조사]

난 종이를 팔랑 넘겨보았다.

리카스가 이 서류를 봤으면 내용을 보고 싶어서 환장했겠지만 안타깝게도 그는 지금 기사관에 있었다.

검을 다루는 자들끼리는 어차피 이야기가 통하기 마련이니, 에델바이스의 기사들과 친목을 다지고 싶다나, 뭐라나.

그냥 기사관 보고 싶다고 말했으면 구경시켜 줬을 텐데, 모가지도 얼마 안 있으면 날아갈 놈이 참 인생 복잡하게 사네.

“흐음.”

포를랭이 퍼트리고 있는 건 ‘에델바이스 백작이 피도 눈물도 없이 본가를 외면하고 있다’는 소문이었다.

혈연 중심의 귀족 사회에 이런 말이 돌면 확실히 에델바이스 가가 눈총을 받을 만도 했다.

문제는?

그것도 본가가? 제대로 된 가문이어야? 통하는 이야기가 아닐까요?

본가가 나를 이렇게 전심전력으로 엿 먹이려고 들면 당연히 잘해주기가 싫겠죠?

[기이한 흔적이 남은 마력석(B)]

난 소예리 헌터와 함께 얻은 마력석을 들어 보았다.

포를랭은 돈이 없지만 놀랍게도 마력석 광산은 있었다.

대체 왜 광산이 있는데도 돈이 없는가?

그 이유는 간단했다.

마력석 광산이 폐광 수준이거든. 그런 만큼 질도 좋지 않다.

무늬부터 마력석의 질까지 누가 봐도 포를랭 물건인데 그게 우리 영지에서 나왔네?

게다가 기이한 흔적이 남았다는 시스템창의 설명 그대로, 마력석 조각에는 검붉게 타들어 간 듯한 흔적이 남아 있었다.

‘이건 몬스터 몸에 박혔다 나왔다는 증거예요. 이 세계 마법사들이면 다 알걸?’

소예리 헌터는 이게 지나가는 마법사 지망생도 알아볼 수 있을 만큼 명확한 증거라고 했다.

“헬렌.”

난 설렁줄을 잡아당겨 집사를 불렀다.

“예, 가주님.”

헬렌은 곧바로 답하며 들어왔다. 난 그녀에게 마력석을 건네주었다.

“이걸 이용해서 공식 발표를 해.”

에델바이스에서 공식 발표를 한 일은 지금껏 거의 없었다.

왜냐면, 귀찮으니까!

하지만 엿 먹일 땐 귀찮음도 감수해야 하는 법!

“어떤 발표를……?”

헬렌은 마력석을 보고 놀라는 눈치였다.

이쪽도 마력석에 남은 흔적과 무늬를 보고 마력석에 대해 대번에 알아챈 게 분명했다.

“‘우리 영지에 비정상적으로 몬스터를 키우려고 하는 자들이 있다’ 정도?”

이 정도면 될걸?

난 고개를 기울였다.

굳이 포를랭이라고 할 필요는 없었다.

“그리고 그 마력석 모양도 같이 공개하고.”

헬렌은 내 말이 무슨 뜻인지 알아들은 듯했다.

눈을 잠시 크게 떴던 그녀가 고개를 숙였다.

“알겠습니다.”

***

[가문의 명예 : 13772(15▲)]

얼마 안 있어 내 가문의 명예는 다시 치솟기 시작했다.

그야 당연했다.

사람들은 에델바이스의 발표와 함께 나온 마력석의 모양에 집중했다.

게이트가 터지기 전, 마법지식이 대중 사이에 퍼지기 전이라면 모를까 지금은 검가의 귀족들도 마력석에 대한 지식이 있었다.

계승식과 검술대회 이후로 아웃사이더가 되어가는 포를랭 자작가를 제하면 말이다.

당연히 귀족 사회에는 소문이 빠르게 돌았다.

“저건 포를랭산 마력석이 아니오?”

“내 눈에도 그래 보여요. 그런데 포를랭은 마력석을 판매하지 않을 텐데……?”

“포를랭산 마력석은 포를랭 자작이 직접 관리하지 않소?”

“애초에 구매할 정도로 질이 좋지도 않으니, 구매할 방법도 딱히 없고…….”

귀족들의 시선은 당연히 포를랭에 쏠렸다.

[가문의 명예 : 13800(28▲)]

물론 난 소문을 퍼뜨림과 동시에 헌터채팅에도 계획을 공유하는 걸 잊지 않았다.

내 S급 각성 퀘스트의 조건과 함께.

[세니아 드 에델바이스(신유리)>>> 포를랭산 마력석 오픈했어요~]

[아이반 엘레티아 폰 카르만(신재헌놈)>>> ㅇㅋ 지원사격 갑니다]

[아리엔사 시안 데마르(주이안씨)>>> 신전에서도 언급하는 것이 좋겠네요.]

황제와 교황의 지원사격은 이렇게 돌아왔다.

먼저 신전의 신시안 교황은 이렇게 말했다고 했다.

“신분 고하를 막론하고 인간이 아닌 몬스터를 강화시키는 자가 있다니, 신시안께서 분노하실 일입니다.”

전해 듣기만 했는데도 주이안 헌터의 진심이 느껴졌다.

저…… 저건 진심으로 빡친 거다!

하긴, 힐하기도 바쁜데 몬스터에 마력석 박아서 강화하는 빌런까지 나타나면 힐러 입장에서 빡칠 만도 했다.

그러자 황제는 한술 더 뜨기 시작했다.

“게이트 때문에 어지러운 시국에 대체 어떤 자가 이런 짓을 벌인 거지?”

분노한 황제는 범인을 색출하라며 진노했다고 했다.

[아이반 엘레티아 폰 카르만(신재헌놈)>>> 어떻게 털어야 S급 각성퀘 점수를 더 주지?]

물론 극대노했다는 황제 폐하는 헌터채팅에서 아주 평온하게 잘 계셨다.

그렇게 여론이 들끓기 시작하자, 당연히 지목된 건 포를랭이었다.

“저 마력석은 포를랭에서밖에 구할 수 없습니다!”

그렇게 말하는 귀족이 하나둘씩 늘어나고, 결국 그 이야기는 황가의 귀에도 들어갔다.

그러면서 사람들 사이로 이야기가 퍼졌다.

“에델바이스 백작이 본가에 소홀한 이유가 있었군.”

“이 경우는 소홀하다고 볼 수도 없지 않소?”

“에델바이스 백작이 분가할 만도 하오. 가족이란 자들이 이러니…….”

“생각해 보시게. 지금까지 포를랭이 에델바이스에…….”

점점 여론이 포를랭에 안 좋게 돌아서기 시작하고,

“저런 자 밑에서 용케도 에델바이스 백작 같은 걸출한 인물이 나왔군.”

[가문의 명예 : 16934(199▲)]

명예 수치가 연일 상한가를 치면서 시스템창 밀어내기도 바쁜 내게 포를랭 자작의 근황이 들려온 건 얼마 후였다.

난 그 근황을 딱 한 마디로 줄일 수 있었다.

“개판 났네.”

물론 난 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

포를랭 자작가는 살얼음판 같은 분위기였다.

그 살얼음판을 만드는 건 당연히 포를랭 자작 부부였다.

그들이 제 인생이 왜 이리 힘들고 괴로운지 쓸데없는 고민을 하는 동안, 키칼 드 포를랭은 미칠 지경이었다.

포를랭에 대한 소문이 점점 안 좋아지고 있다는 게 그에게까지 들려온 탓이었다.

에델바이스를 망신 주는 건 좋다. 하지만 그게 여러 번 실패하면 다른 방법을 좀 강구하라고!

이대로면 소문이고 자시고 저택부터 박살 나겠다고!

이미 포를랭 자작가의 게이트 관리 체계는 거의 박살이 나 있었다.

영지민들은 알아서 자경단을 만들어 스스로를 지키기 시작했다.

영주가 저희들을 살려줄 거라는 희망을 버리기 시작한 것이다.

그런 그들에게는 사방팔방에서 터진 온갖 등급의 게이트 몬스터들이 몰려들었다.

하루에도 박살 나는 마을만 수 개가 넘었다.

하지만 포를랭 자작은 그럴수록 저택 주변의 경계만 강화했다.

그러자 영지민들 사이에선 슬슬 살벌한 분위기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몬스터에게 개죽음 당하나, 자작가 저택을 박살 내고 죽나 죽는 건 마찬가지 아닌가?

이왕 죽을 거면 한이라도 풀자!

그리고 그 분위기를 가장 먼저 알아챈 건 당연히 밤마다 출정을 나가는 키칼이었다.

물론 키칼도 밤마다 출정하고 싶어서 출정하는 건 아니었다.

포를랭 자작이 시켜서 나가는 거지.

“아버지, 일단 사교계는 신경 쓰지 마시고 영지부터 어떻게 하자니까요? 이러다가 저택 습격당하게 생겼다고요!”

키칼은 3n년 인생에 흔치 않은 옳은 말을 했지만, 포를랭 자작은 그 말을 와작 씹어 버렸다.

“너는 네 할 일이나 제대로 해라! 밤에 출정만 하면 뭘 하느냐? 활약을 해야지, 활약을!”

“활약할 만한 몬스터 무리가 없다고요!”

“몬스터만 보면 꽁지 빠지게 튀는 주제에 무슨!”

“몬스터가 너무 많단 말입니다!”

노답 부자의 매우 생산적인 논쟁은 결국 아무런 수확도 없이 끝나 버렸다.

“아무래도 안 되겠어.”

키칼은 포를랭 자작의 방을 돌아 나오면서 생각했다.

그의 손에는 오늘 밤 그가 클리어해야 하는 던전의 위치가 표시된 지도가 들려 있었다.

하지만.

―콰직!

지도를 구겨 버린 키칼은 더 이상 몬스터를 해치우러 갈 생각은 없었다.

애초에 출정해 봐야 기사들은 허접하고 몬스터는 너무 강했다.

제가 허접하다는 생각은 꿈에도 하지 않는 자존감의 화신 키칼은 눈을 가늘게 떴다.

이대로면 죽고 만다!

내 살길은 내가 찾아야겠어!

“동제국은 몬스터도 안 나타난다던데.”

그가 중얼거렸다.

기사들이나 중소 귀족들 사이에 알음알음 퍼진 소문이었다.

동제국에서 뿌린 헛소문이었지만 키칼이 그걸 알 리가 없었다.

“이대로면 몬스터 밥이 될지도 몰라.”

키칼은 마른침을 삼켰다.

전처럼 다시 마법 강화제를 먹고 강해지지 않는 한 이런 출정 일정을 소화하는 건 무리였다.

게다가 아직 약의 부작용이 낫지 않은 상태.

이 상태에선 약을 먹어 봐야 효과가 나지 않는다.

역시 튀어야겠다.

“그래……. 마침 난 포를랭 가 사람이잖아?”

무려 현 서제국 실세 에델바이스 백작의 본가, 포를랭 사람이 아닌가?

동제국에서도 에델바이스 백작의 행동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고 들었다.

그런 상황에서 수호기사단장의 본가 사람인 내가 접촉한다면, 내게서 얻을 정보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을까?

피는 못 속인다고, 리카스와 놀라울 정도로 똑같은 생각을 한 키칼은 동제국으로 편지를 보낼 자를 물색했다.

“으음.”

일단 물러터져 보이고 자기가 하는 일이 뭔지도 몰라 보이는 어벙한 놈이 좋겠어.

그렇게 눈을 번뜩이는 키칼의 눈에 한 인물이 딱 걸렸다.

“거기, 너. 이리 와 봐.”

“네, 네?”

그에게 지목받은 건, 얼마 전 에델바이스의 마차를 본의 아니게 약탈한 바람에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던 신입기사 론이었다.

“이걸 동제국에 은밀히 전달해라. 갑옷이랑 가문의 인장이 박힌 것들은 당연히 다 벗고 가고. 가문의 명운이 달린 중요한 문제다.”

가문이 아니라 제 명줄이었지만 그런 사소한 사실은 묻어두기로 했다.

“이건 착수금이다. 편지봉투에 쓰인 곳에 편지를 제대로 전달하고 돌아오면 이 금액의 세 배를 주지.”

편지봉투에 쓰인 그곳은 동제국 사교계에서도 킨나가 자주 나타난다는 사교회 건물이었다.

키칼이 없는 인맥을 총동원해 알게 된 비장의 장소이기도 했다.

“빨리 가! 얼른!”

우물쭈물하는 론의 등짝을 친 키칼이 게이트에 들어갈 준비를 했다.

이 게이트만 끝내고 돌아오면 동제국에서 답변이 와 있을 것이다.

그럼 동제국으로 뜬다!

키칼은 미소를 감추며 뛰쳐나갔다.

“…….”

그리고 그 뒤에 남은 론은 아련한 표정으로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자작님은 에델바이스 마차를 털라더니, 이번엔 적국에 편지를 보내라고요……?

그는 눈을 끔뻑이다가 슬그머니 주머니에 돈과 편지를 집어넣었다.

그리고 몸을 돌렸다.

어디로?

기사관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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