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6화
[세니아 드 에델바이스(신유리)>>> 여러분 S급던전에 딜3탱2힐1보1 넣으면 어떨 것 같아요?]
내 채팅에 소예리 헌터가 곧바로 반응했다.
[클로나 에이센(예리언님)>>> 무슨 약을 파시는 거예요]
[아리엔사 시안 데마르(주이안씨)>>> 신유리 헌터님, 설마 그 파티의 힐러가…….]
주이안 헌터가 설마, 설마 하고 있는 얼굴이 눈앞에 보이는 듯했다.
[세니아 드 에델바이스(신유리)>>> 우리가그렇게간다는게아니고요]
내가 급히 말을 덧붙이고 나서야 안심했는지, 주이안 헌터가 답했다.
[아리엔사 시안 데마르(주이안씨)>>> 어느 파티이든 힐러가 고생할 것 같습니다]
[아이반 엘레티아 폰 카르만(신재헌놈)>>> 저 구성이면 딜러들도 사실상 각자도생이라 다 죽자는 거죠]
그렇게 말하던 신재헌이 문득 물었다.
[아이반 엘레티아 폰 카르만(신재헌놈)>>> 근데 그건 왜요?]
이놈도 혹시 우리가 이렇게 갈까 봐 걱정되나?
[세니아 드 에델바이스(신유리)>>> 리카스가 자꾸 게이트대응책을 묻길래 이렇게 말해줬어요]
[아이반 엘레티아 폰 카르만(신재헌놈)>>> 오]
그가 짧게 감탄했다. 난 눈앞에서 열심히 공부하는 척 필기하는 리카스를 보면서 속으로 혀를 찼다.
[아이반 엘레티아 폰 카르만(신재헌놈)>>> 제가 알기로 동제국엔 아직 S급 게이트 대응책이 세워진 게 없어요]
[클로나 에이센(예리언님)>>> 맞아맞아 그래서 나오는 족족 그냥 폭주시켜서 잡는다고 들었어요]
그런 나약한 마음가짐으로 게이트를 막고 있었던 거야?
괜찮아! 이제 얘가 알려주러 갈 테니까!
비록…… 약팔이지만!
[세니아 드 에델바이스(신유리)>>> 얘가 곧 전해주겠네요]
[아리엔사 시안 데마르(주이안씨)>>> 생각보다 행동을 예측하기 쉬운 자인 것 같습니다]
요컨대 보기보다 멍청하다는 소리였다.
그러게요, 이중첩자 한다길래 그래도 쪼오금 기대했는데 그냥 빡대가리였네…….
물론 빡대가리도 쓰일 데는 있는 법이었다.
난 리카스를 조심스럽게 불렀다.
“근데 오라버니.”
으아아악! 오글거려! 으아아악!
세니아는 대체 왜 이런 놈들을 오라버니라고 꼬박꼬박 불러줘서 남에게 페널티 위기를 안긴단 말인가?
“응, 세냐.”
그걸 받아주는 리카스의 목소리도 소름이 돋을 지경이었다.
하지만 호구를 엿 먹이기 위해서는 참을 수 있다!
“병력이 부족해서 그런데, 여기 게이트 클리어를 부탁드려도 될까요?”
난 지도 한쪽을 가리켰다.
병력 부족은커녕 게이트 홀딩 때문에 병력이 남아도는 상태였지만 이놈의 지능으론 안타깝게도 그걸 알아차리지 못하는 듯했다.
“어……딘데?”
리카스는 조금 자신 없는 얼굴로 말을 받았다.
내가 지도 한쪽을 가리켜 보이자 그가 난감해했다.
“세냐, 알다시피 내가 검을 잘 못 쓰잖아.”
“그래도 포를랭의 피를 이으셨는걸요.”
포를랭도 망한 것 같지만 괜찮아!
[B]
네 머리 위의 시스템창은 거짓말을 안 하거든!
여기 돌다가 죽진 않을 거야!
딱 죽기 직전까지만 멘탈이 털리겠지만!
“음…….”
내 말에 리카스가 조금 고민하는 듯했다. 난 부탁한다는 듯이 그를 올려다보았다.
안 가? 네깟 게 튕겨?
물론 속마음은 감춘 채였다.
“알았어.”
그는 비교적 쉬운 게이트임을 확인한 후에야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B급인데 D급 던전도 클리어하지 못할 리는 없다.
문제는 늪 던전이라 온갖 기상천외한 비주얼의 몬스터들이 나온다는 점이었다.
개고생하고 나와서 동제국하고 포를랭에 기가 막힌 S급 공략법 소문도 내 줘!
“준비해 볼게, 세냐.”
그는 마지못해 말하는 기색을 내지 않으려고 기를 썼지만 내 눈엔 다 보였다.
괜찮아요, 친구. 안 죽어!
자다가 갑자기 자던 자리가 늪으로 변해서 개고생할 수는 있지만!
“고마워요, 오라버니!”
난 왠지 수 분 만에 수척해진 것 같은 뒷모습으로 사라지는 리카스에게 손을 흔들어 주었다.
―달칵.
그렇게 문이 닫히고 나서 난 어깨를 으쓱했다.
“그러게, 뒤통수도 머리가 좋아야 치는 거야.”
우린 저택 던전에 들어가기 전에 이미 리카스가 첩자라는 사실을 알았다.
리카스가 킨나에게 보낸 편지를 소예리 헌터가 손에 넣었으니까.
쯧쯧, 그러게 편지 좀 잘 보내지 그랬냐?
“그나저나…….”
흐아아암. 기지개를 쫙 켠 난 상태창을 살폈다.
반짝반짝 빛나는 개인 퀘스트창이 유독 눈에 띄었다.
없던 게 생겼으니 당연하긴 한데.
[개인 퀘스트(MAIN) : 수호]
내용이 참 뭐하단 말이지.
[클리어 조건 : 은하 서버 ‘헌터 신유리(S)’의 능력치보다 50% 이상 높은 능력치로 ‘연약한 시한부 영애에 빙의해버렸다(L)’ 던전 클리어]
기존 내 능력치보다 50% 이상 높은 능력치로 이 RP던전을 클리어해라.
참 골 때리는 조건이 아닐 수 없었다.
“내 능력치가…….”
애초에 내 능력치도 낮은 편이 아니었다.
숫자가 잔뜩이었지만 그걸 기억하지 못할 리 없었다.
많은 사람들이 상위 랭커일수록 숫자가 커지면서 자기 능력치를 기억하지 못할 거라 착각했다.
하지만 반대였다.
능력치가 높아질수록 능력치를 올리기가 더 어려워지기 때문에, 외우기 싫어도 외울 수밖에 없었다.
일의 자리까지야 기억하지 못해도 천의 자리부터는 확실히 기억했다.
그리고 내 기억에 마지막으로 남아 있던 내 능력치는 이러했다.
[체력 : 226.3만
근력 : 11만
마력 : 76.8만
민첩 : 29.7만
지구력 : 14만
방어력 : 17.2만]
아이템 추가 능력치야 매번 달라졌지만 마지막으로 기억한 건 이랬다.
저거보다 50% 이상 높은 능력치를 가지고 나가라고?
안 될 것 같진 않았다.
여긴 게이트 밖과는 달리 능력치를 % 단위로 퍼주는 던전이었기 때문에.
문제는 헌터랭크였다.
[세니아 드 에델바이스 / 25세, 딜러(A)]
A랭크에서 S급으로 올라가는 것.
보다 강해지는 것.
S급이 되면 ‘체육선생님의 목검(SS)’을 써도 아이템이 지나치게 강하다는 시스템 메시지는 안 뜰 터였다.
그리고 그 아이템에 붙어 있는 능력 자체가 전체 능력치+30%다.
그걸 포함해서 이전의 능력치만 넘기면 된다는 소리였다.
한마디로 S급으로만 올라가면 된다는 건데…….
“음…….”
내가 처음 S급으로 각성한 건 게이트에서였다.
당연히 이유는 살고 싶어서가 아니었을까?
물론 지금도 살고 싶고, 그 어느 때보다 분명하게 힘이 필요했다.
그리고 그걸 위해 부족한 것이 무엇인지도 알고 있었다.
“일단 스킬이 부족하지…….”
난 시스템창을 살폈다.
은하 서버에 저장된 내 정보보다 스킬 수가 부족할 수밖에 없었다.
물론 그것도 방법이 없는 건 아니었다.
[신의 상점 Coin : 92130]
그동안 자잘한 퀘스트와 몬스터 사냥으로 모은 코인이었다.
“일단 이걸로 스킬을 사고.”
[은하 서버 스킬 열쇠를 구매하였습니다.]
[은하 서버 스킬 열쇠를 구매하였습니다.]
[잔여 Coin : 32130]
일단 3만 정도는 남겨 놓고…….
난 다시 경건한 마음으로 자리를 고쳐 앉았다.
원래 자고로 뽑기 할 때는 물욕을 지워야 하는 법이다. 난 눈을 감았다.
어떤 스킬이 나와도 괜찮다.
[은하 서버 스킬 열쇠를 사용합니다.]
[은하 서버에서 ‘헌터 신유리(S)’의 스킬 목록을 불러옵니다…….]
난 어차피 시스템창에 나오지 않는 능력치로 계산되는 스킬 개수를 늘리기 위해 이걸 쓰는 거니―
[스킬 획득 : 채썰기(E)]
끄아아아아!!!
하지만 이건 아니지!
아니야, 물욕을 버리자!
난 부엌일을 하기 싫어했던 과거를 뒤로하고 다시 한번 경건한 마음으로 눈을 감았다.
[은하 서버 스킬 열쇠를 사용합니다.]
[은하 서버에서 ‘헌터 신유리(S)’의 스킬 목록을 불러옵니다…….]
난 어떤 것이든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다!
[스킬 획득 : 기력 전수(SS)]
“…….”
난 착잡한 마음으로 눈을 떴다.
이 비참한 기분은 뭐지?
채썰기에 기력 전수요?
기력 전수야 물론 SS급으로 높은 등급의 스킬이었지만 지금의 내 성장과는 아무런 관련도 없었다.
왜냐고? 남한테 내 경험을 전해주는 스킬이거든.
한마디로 남 좋은 일 할 때만 쓰는 스킬! 남의 랭크 오르길 바랄 때만 쓰는 스킬!
그리고 지금 랭크가 올라야 하는 건 누구?
나!
X발!
“아냐, 진정하자.”
어차피 강해지는 방법이 스킬만 있는 건 아니었다.
코인이야 다시 모아서 돌리면 되고, 문제는 이 세계에서 강해지는 방법이다.
다시 말해 이 세계에서만 얻을 수 있는 스킬을 얻는 것.
[버터관자구이 먹고 싶다(E)]
“…….”
이딴 거 말고.
[나는 언제나 네 앞에(SS)]
물론 이 스킬만으로도 엄청난 수확이었다.
―탁, 탁, 탁, 탁…….
난 생각에 잠겨 테이블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공격이 아니라 방어용 스킬이다.
[가장 아끼는 것 앞에서 데미지 99% 감소]
99% 감소. 난 입을 일자로 굳게 다물었다.
‘신재헌!’
저 스킬을 보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건 신재헌의 뒷모습이었다.
‘기회가 되면 너 대신 죽겠다고.’
그렇게 멍청한 소리를 지껄이는 놈의 눈은 진심이었다.
‘10초만.’
그리고 내게 10초만…… 제가 친구가 아니라고 생각해 보라고 했던 그의 눈도 진심이었다.
“네가…….”
친구가 아니면 어땠을 것 같냐고?
나는 네가 없는 미래는 생각할 수가 없는데.
너는 내 인생의 반을 넘게 내 옆에 있었고, 네가 없는 인생을 생각해 보려면 너무나 까마득한 과거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하는데.
입을 일자로 굳게 다문 난 눈을 감아 버렸다.
그러다가 벌떡 일어났다.
“일단 할 수 있는 것부터 하자.”
스킬 뽑기도 깔끔하게 망했으니 이건 신의 계시였다.
무슨 계시냐고? 있는 거나 잘 쓰라는 계시!
[나는 언제나 네 앞에(SS)]
딜링기와 딜링 보조기만 가득했던 내 스킬창에 뚝 떨어져 내린 이 방어계 보조 스킬을 어떻게 쓸 것인가?
지금처럼 맨몸으로 들이대며 99% 데미지 감소만 기대할 수는 없었다.
[받아치기(C)]
[흘려보내기(A)]
세니아가 갖고 있던 스킬을 사용해볼 때였다.
***
포를랭 기사단.
기사단의 선임기사 이디스는 오늘도 기사들을 독려하느라 진이 빠질 지경이었다.
“연이은 패전에 기사단의 사기 하락세가 뚜렷합니다.”
그와 1년 간격으로 입단했던 다른 기사가 말했다.
이디스의 표정이 흐려졌다.
“……힘 빠지는 건 어쩔 수 없지.”
몬스터와의 전투에서 연달아 패했으니 힘이 빠지는 건 당연하다.
누군가는 죽지 않은 게 어디냐, 할 수도 있겠지만 애초에 검을 든 자들이 ‘패배’하는 상황을 얼마나 견뎌봤겠는가?
패배는 곧 죽음인 전장에서 살아온 자들인데.
애초에 몇 번이나 연달아 지고도 살아있는 지금이 이상한 거였다.
그리고 그 이상한 상황을 만들어낸 지휘관은 다름 아닌.
“……키칼 드 포를랭.”
그는 감히 제 상관의 이름을 뇌까려 보았다.
제 주군이나 다름없는, 포를랭의 피를 이은 장자에게 이런 생각을 품어선 안 된다는 건 알고 있었다.
하지만 전투가 이어질수록 이디스는 상관에 대한 존경심을 가지기가 힘들었다.
“원래 그런 분이었나?”
그가 고개를 기울였다.
어릴 때 수습기사로 들어와 오랜 시간을 포를랭 기사단에서 보낸 이디스였지만 키칼이 원래 어떤 사람이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았다.
이 가문의 장자인데, 왜?
“……아.”
이디스는 새삼스러운 사실을 떠올렸다.
원래 실질적으로 기사단을 이끌던 사람은 세니아 드 포를랭이었다.
첫 후계자 계승식이 있기 전에도 마찬가지였다.
그녀는 기사단에 관심이 많았다.
기사 한 명 한 명의 이야기를 들어주거나 검을 가르쳐주는 데에도 스스럼없었다.
하지만 키칼 드 포를랭은 아니었다.
‘거기 너, 이리 와 봐.’
그는 일단 선임기사와 기사들의 종자조차 구분하지 못했다.
“…….”
이디스의 표정이 더욱 흐려졌다.
물론 세니아 쪽이 특이한 케이스라는 걸 이디스도 알고는 있었다.
하지만 지휘관이 기사와 종자들을 구분하지 못하는 것도 모자라 전장을 보는 눈이 없다는 건 치명적이었다.
‘수, 수가 너무 많잖아!’
단순히 몬스터를 머릿수로만 판단하는 키칼은 정말 최악의 지휘관이었다.
키칼의 지휘는 단순했다.
기사들보다 몬스터의 수가 많으면 후퇴. 기사들이 몬스터보다 많으면 진군.
“…….”
이디스는 결국 얼굴을 구겼다.
그래, 어떻게 감히 주군 가문을 욕보이는 생각을 할 수 있지?
정신 차려라, 이디스!
‘후, 후퇴하라!’
……하지만 그런 상황이 몇 번이나 더 이어지고, 그때마다 키칼이 후퇴를 외치며 꽁지 빠지게 달아나는 걸 보고 나니 저도 모르게 본심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저렇게 멍청한 자는 처음 본다.”
포를랭 기사들의 마음에서 충성심이 슬슬 사라지고 있었다.
그러던 중, 포를랭 선임기사들의 충성심을 본격적으로 뒤흔드는 사건이 일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