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 던전의 S급 시한부 영애 (157)화 (157/218)

157화

싸늘한 현실에 부딪힌 과거의 메이든 부인은 어린 자신을 잊어갔다.

그걸 지켜보던 메이든 부인은 처음엔 창피해하다가, 웃다가, 어느새 울고 있었다.

어릴 때의 메이든 부인은 웃고 있었지만, 크면서 그녀는 완전히 웃음을 잃어버렸다.

「하고 싶은 건 해야지. 지금 아니면 언제 하겠어?」

메이든 부인의 어머니는 그 말을 입에 붙이고 살았다. 하지만 어릴 때는 그 말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했고, 커서는 새까맣게 기억 뒤편으로 묻어버렸다.

교육받지 못한 영애라고 손가락질 받던 기억만이 남은 것이다.

그 탓에 저도 모르게 리펜에게 교양을 강요하기 시작했다.

「사교계가 만만한 줄 알아!」

아이를 아끼고 사랑하던 그녀는 사라지고, 윽박지르는 메이든 부인밖에 남지 않았다.

부인이 리펜을 혼내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을 마지막으로, 시야가 다시 새하얗게 물들었다.

***

[메이든 부인의 ‘묻혀있던 과거(L)’에서 빠져나옵니다.]

시스템창과 함께 우린 다시 서재의 의자에 앉아 있었다.

“…….”

메이든 부인은 오르골에서 한동안 시선을 떼지 못했다.

기억을 보는 사이 흘린 것이 분명한 눈물을 재빨리 눈가에서 훔쳐낸 그녀가 표정을 정리했다.

기억을 보고 표정이 부드러워졌던 것도 잠깐, 그녀의 얼굴에 다시 날카로움이 깃들었다.

하지만 기억을 봤기 때문일까, 그 표정은 다르게 보였다.

전에는 그냥 독기 가득한 표정으로 보였다면, 지금은 조금 안타까워 보였다.

“내 어릴 때의 행동을 지적하고자 가져온 건가요?”

그녀가 날카로운 목소리로 물었다.

소예리 헌터가 고개를 저었다.

“아뇨, 누구나 되돌리고 싶은 과거가 있을 것 같아서요.”

누구나? 되돌리고 싶은 과거?

그렇게 말하는 소예리 헌터의 얼굴에서는 웃음기가 지워져 있었다.

여느 때보다도 진지한 목소리로 그녀가 말했다.

“메이든 부인의 지금이 그런 시간이 되지 않았으면 좋겠어서요.”

메이든 부인은 소예리 헌터를 노려보았다.

다른 사람들이라면 표독스럽다고까지 생각할 시선이었다.

하지만 난 본능적으로 눈치챘다.

저 시선엔 살기가 없었다.

[메이든 부인(L)]

메이든 부인이라는 이름 옆에 떠 있던 ‘L’이라는 랭크가 서서히 흐려졌다.

그리고.

[메이든 부인]

몬스터화나 보스화되지 않는 다른 특수던전의 인물들처럼 평범한 이름으로 바뀌었다.

오, 설마?

[메이든 부인의 호감도가 100 상승합니다.]

[메이든 부인 현재 호감도 : +1]

오? 오???

그래도 아직 방심할 수 없었다.

전에 떴던 시스템창에 따르면 호감도 +50까지는 SS급으로 보스화할 수 있으니까.

“인상적인 이야기네요.”

하지만 메이든 부인은 보스가 될 생각은 없는 듯했다.

검을 쓰더라도 품위 있게 자랄 수 있지, 어쩌고 하며 중얼거리던 그녀가 목을 가다듬었다.

“이번에 손님 대접이 소홀했군요. 리펜이 초대하는 손님들에게 나도 모르게 선입견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네요.”

그녀가 부채질을 했다. 얼굴은 조금 붉어진 채였다.

말하는 걸 보니 그동안 리펜이 초대했던 손님들은 메이든 부인의 기준을 충족시키지 못한 게 분명했다.

그래서 우리도 그럴 줄 알고 처음부터 그렇게 험하게 대했던 모양이다.

그게 새삼 후회되는지 팰 거 다 패놓고 메이든 부인이 곤란해했다.

“뭐라도 더 챙겨줬어야 했는데. 그런 것들을 신경 써주는 게 아니라……”

그녀가 말하는 ‘그런 것들’은 동제국 놈들이 분명했다.

그러면서 어쩔 줄 몰라 하는 그녀의 얼굴에는 날카로움이 많이 사라져 있었다.

어린 시절의 그녀처럼.

“미안해서 어쩌지…….”

기억 속에서, 아장아장 걸어 다니는 리펜을 안아주던 메이든 부인의 모습이 꼭 이랬다.

리펜을 향해 사랑스러운 미소를 지었던 그 모습이.

괜찮으니까 우리 사지 멀쩡하게 내보내주기만 하시면 됩니다!

……라는 속내를 어떻게 고급스러운 말로 바꿀지 고민할 때였다.

신재헌이 불쑥 입을 열었다.

“그럼 선물 하나만 주시겠습니까?”

이놈은 여기서 갑자기 삥을?

난 움찔했다.

메이든 부인이 ‘역시 버릇없는 놈들이었군!’ 하면서 흑화하면 끝이라고!

미쳤냐!

헌터채팅이 가능했으면 우린 아우성이었을 것이다.

나는 물론이고 소예리 헌터와 심지어 주이안 헌터까지 그를 강렬하게 돌아보았다.

하지만 불도저 신재헌은 멈추지 않았다.

“어떤 걸 원하죠?”

메이든 부인의 말에 신재헌이 고민도 없이 서재 한쪽을 가리켰다.

“저 그림이요.”

그림? 난 그가 가리킨 것을 홱 돌아보았다.

어?

그리고 나도 모르게 입 밖으로 소리를 뱉을 뻔했다.

그가 가리킨 그림은 이 메이든 저택의 전경이 그려져 있는 그림이었다.

그런데 우리가 돌아보는 순간, 거기에 있던 무언가가 빠르게 움직인 것 같았다.

“……?”

분명 뭐가 있었는데?

“저택 앞에 혼자 계시는 게 외로워 보여서요. 리펜하고 같이 있는 그림으로 바꿔드리고 싶은데, 어떠세요?”

삥인 줄 알았는데 딜이었다.

오……. 내가 소리 없이 감탄하는 가운데 메이든 부인이 기뻐했다.

“그래 주겠어요?”

[메이든 부인의 호감도가 50 올랐습니다.]

그리고 얼굴에 화색이 돈 건 메이든 부인뿐만이 아니었다.

[메이든 부인 현재 호감도 : +51]

이렇게 되면 보스화는 막은 셈이다!

메이든 부인은 유리장 안에 들어 있던 액자를 꺼냈다.

그리고 그 안의 그림을 꺼내 신재헌에게 건네주었다.

아까 뭔가 움직이는 것 같았는데.

그림은 당연히 동영상이 아니었으므로 멈춰 있었다.

내가 눈썹을 치켜올렸을 때였다.

신재헌이 메이든 부인의 책상에 있는 펜과 종이를 빌려, 무언가를 그리기 시작했다.

그건 우리가 지나온 리펜의 방에 마주 앉아 있는 리펜과 메이든 부인의 모습이었다.

“간단히 그려주어도 괜찮아요. 화가를 불러 제대로 그림을 그리고 싶으니.”

메이든 부인은 그렇게 말하면서 미소 지었다.

“그럴게요.”

신재헌은 간단히 답하면서도 신중하게 그림을 그렸다.

그가 말하는 디테일 어쩌고를 채우려면 시간이 꽤 걸릴 것 같았다.

“다른 친구들은 그럼, 가벼운 다과라도 들겠어요?”

메이든 부인이 우릴 돌아보았다.

“괜찮습니다.”

주이안 헌터가 곧바로 답했다.

그림 그리는 사람을 이동시킬 리는 없으니 보나마나 신재헌만 남기고 우리 셋만 보내질 게 분명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메이든 부인은 우리 생각을 읽은 것처럼 답했다.

“걱정하지 말아요. 더는 공격할 마음이 없으니.”

그러면서 우리에게 손을 펴 보였다.

그 순간 우리 앞에 연둣빛이 피어올랐다.

아니, 우리 같이 나가고 싶거든요?

하지만 그렇게 외치기에는 아직 디버프 창에 있는 ‘강력한 저택의 규율(L)’이 마음에 걸렸다.

경고 걸릴 순 없는데!

그러는 사이 신재헌이 우리에게 손짓해 보였다.

“괜찮으니까 먼저 가 있어요.”

그는 정말 여유로워 보였다.

내가 눈썹을 치켜올리는 걸 신재헌이 봤는지 못 봤는지 몰라도, 우리는 저택 바깥으로 이동되었다.

메이든 부인의 약속대로 다과가 놓인 야외의 테이블이었다.

감시하는 사람은 없었지만 신재헌도 당연히 없었다.

……잘 나올 수 있을까?

새삼 우리의 시선이 저택 꼭대기로 향했다.

***

연두색 빛에 휩싸여 신유리와 소예리, 주이안이 사라진 직후.

신재헌은 그림을 그리는 속도에 박차를 가했다.

메이든 부인은 완성되어가는 그림에 매우 만족스러워했다.

“고마워요.”

다행히 액자는 크지 않았기에 시간은 오래 걸리지 않았다.

“채색을 하지 못한 게 조금 아쉽네요.”

신재헌의 말에 메이든 부인이 고개를 저었다.

“색은 입히지 마세요. 리펜에게 부탁하고 싶으니.”

“아.”

신재헌은 그 말에 깔끔하게 그림에서 손을 뗐다.

그러면서 말했다.

“아시겠지만 리펜하고 놀면서 봤는데, 그림 잘 그리더라고요.”

“그래요? 재능 있어 보이나요?”

메이든 부인이 즐거운 얼굴로 물었다.

신재헌은 선뜻 고개를 끄덕였다.

“제가 여섯 살일 때보다 잘 그리던데요.”

그건 진실이었다.

그 말에 메이든 부인이 흡족하게 웃었다.

“우리 아이도 이렇게 멋진 그림을 그리는 아이로 자랐으면 좋겠는데.”

“충분히 그럴 겁니다.”

신재헌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고마웠어요. 다음에 꼭 친구들과 함께 다시 메이든에 들러 주세요.”

그러고는 몸을 돌렸다.

“음…….”

바삐 걸음을 옮기는 메이든 부인은 중요한 걸 까먹고 있었다.

―달칵.

문이 닫히고 서재 안에 남은 신재헌이 볼을 긁적였다.

“아니, 아무리 아드님 보고 싶어도 그렇지, 나도 좀 보내주고 가시지.”

그러면서도 그는 어깨를 으쓱했다.

이건 오히려 그에게는 기회였으니까.

[세니아 드 에델바이스(유리) - B급(딜러)

- 버프 : 시너지(A) 순간가속(SS)]

신유리의 버프창이 번쩍거렸다.

순간가속.

그녀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빨리 안 튀어나와?’

“조금만 기다려 봐.”

신유리에게 말하듯 중얼거린 그는 서재에 아무도 없음을 확인한 뒤에, 메이든 부인에게 받은 그림을 꺼내 들었다.

신유리를 생각할 때 잠깐 떠올랐던 미소가 사라지는 건 순식간이었다.

“다 봤으니까 나오지?”

서늘한 시선이 저택의 전경을 그린 그림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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