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3화
그 후로도 시간이 흘렀다.
‘헤어나올 수 없는 과거’라는 이름 그대로, 과거에선 눈을 돌릴 수가 없었다.
아무리 후회하는 과거라도 그랬다.
소예리 자신의 머리가 기억하는 것 이상으로 과거의 시간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었다.
그래서 소예리는 아주 미치고 팔짝 뛸 지경이었다.
―살금, 살금.
신재헌과 신유리는 정말 그녀가 신경 쓰지 않게 하려고 기를 썼다.
대화가 길어질 것 같으면 아예 병실 밖으로 휠체어를 끌고 나가 버렸고, 그것이 아니면 필담을 할 정도였다.
그렇게 눈치 안 봐도 되는데!
지켜보는 소예리는 딱 돌아버릴 것 같았다. 심지어 과거의 소예리조차도 심심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녀가 하루 종일 하는 일이라고는 창밖을 바라보는 것밖에 없었으니까.
그마저도 햇볕이 따가워 오랫동안 창가에 서 있을 수 없었다.
“그냥…….”
떠들어도 되는데, 라는 말은 과거 소예리의 입에서 차마 나오지 못했다.
괜히 말을 번복하면 자존심 상하잖아?
그래서 그녀는 그냥 입을 다물고 누워 있었다.
일부러 다른 곳에 더 귀를 기울이면서.
그런 그녀에게 들르는 사람은 의료진뿐이었다.
몇 년간의 투병으로 사람들과도 연락이 다 끊겨 버렸으니까.
‘긴 투병이 될 거예요.’
‘치료하면 낫나요?’
‘확신은 드릴 수 없습니다만, 최대한 노력하겠습니다.’
어린 나이에 시한부 선고를 받은 건 너무 스트레스를 받아서 그럴지도 몰랐다.
사람이 너무 신경질적으로 살아서 그런 걸까?
아니면 매운 걸 좋아해서?
제게서 원인을 찾아 봐야 소용없는 일이었다.
분명 대학에 들어가서 다른 아이들처럼 캠퍼스 생활을 즐기려던 그녀의 꿈은 이미 박살 났으니까.
1년의 투병 끝에 치료를 마치고 학교로 돌아갔을 땐 동기들은 없었다.
그녀는 그냥 수척한 복학생일 뿐이었다.
그리고 한 학기 정도 더 외롭게 다녔을까. 병은 재발했고 그녀는 다시 병원 신세를 지게 되었다.
몇 년째였으니 신경이 날카로워질 법도 했다.
그걸 알기에 그녀의 주변 사람들은 그녀를 이해해 주려고 했다.
‘그냥 가라니까!’
하지만 그 호의를 거절한 건 과거의 자신이었다.
사람들이 안쓰러워하는 게 짜증이 났다.
매일 병문안이랍시고 새로 사람이 오면, 그 사람들이 입고 있는 옷이나 선물 같은 것이 더 화가 났다.
나는 못 입고 나는 못 즐기는 것들을 자기들은 기쁘게 즐기고 있다고 말하는 것 같아서.
그게 아닌 걸 알면서도 뒤틀린 반응이 나왔다. 그러자 자연스럽게 사람들의 발걸음은 끊겨 버렸다.
그리고 병이 심해지면서부터는 아예 그녀가 휴대폰을 켜지도 않았다.
그냥 연락을 끊어 버렸다. 제 이런 모습을 보여주기가 싫어서.
“잠이나 자자.”
중얼거린 과거의 소예리가 눈을 감았다.
시야가 어두워지고, 그녀의 숨소리가 조금 잦아들려는 찰나.
지켜보던 소예리는 문득 바깥에서 말소리가 들리는 것을 느꼈다.
“뭘 가져가려는 건 아니고요…….”
엄청 조심스럽게 이야기하는 건 신유리의 목소리였다.
“개인 공간에 들어가시면 곤란해요.”
간호사는 그녀를 만류하고 있었지만 그녀는 간곡하게 부탁했다.
“그럼 저거, 그 수액 다는 막대만 가지고 나오면 안 되나요?”
“폴대 말씀이세요?”
간호사와 두런두런 대화하는 소리가 들렸다.
“네.”
“그건 왜…….”
부스럭부스럭 소리가 나더니 신유리가 뭔가를 꺼내 보이는 것 같았다.
“이거 달아드리려고요.”
“어머.”
줄곧 신유리의 진입을 방해하던 간호사는 고민에 빠진 얼굴이었다.
“깨끗하게 닦은 거예요. 먼지도 없고. 그냥 이거만 달아드리려고요. 창가에서 바깥 보는 거 좋아하시는 것 같길래…….”
“으음.”
간호사가 고민하는 듯한 소리가 들렸다.
그러고 나서 커튼이 살짝 젖혀지는 소리와 함께, 바퀴 달린 폴대가 빠져나가는 소리가 났다.
뭐야, 시끄럽게?
순간 팍 짜증이 나는 건 과거의 내 감정일 것이다.
지켜보던 소예리는 마음이 답답했다. 이 기억의 미래를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
다행히 과거의 그녀는 화낼 힘도 없는지 그냥 누워 있었다.
그리고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차르륵.
커튼이 조심스럽게 열리고 다시 폴대가 안으로 들어왔다.
아주 작은 속닥거림도 들렸다.
“이거 누르면 이렇게 펴지거든요.”
―팔락.
천이 펴지는 소리도 났다. 간호사의 목소리가 들렸다.
“오.”
그녀는 놀라면서도 기쁜 듯한 반응이었다.
결국 과거의 소예리는 눈을 떴다.
「눈 뜨지 마―!!」
지켜보던 소예리는 당연히 미래를 알고 있었으니 속으로 비명을 질렀다.
그 비명을 들은 것처럼 움찔했던 과거의 소예리는 신유리를 보자마자.
“남의 자리 와서 뭐 하는 거예요?”
짜증을 냈다.
「아니아니아니진정해!」
미래의 소예리가 말리든 말든 짜증이 담긴 말은 그대로 쏘아져 나갔다.
“아, 죄송합니다. 이거…… 이거 버튼 누르면 펴지고 다시 누르면 접히거든요…….”
신유리가 곤란한 얼굴로 폴대를 가리키는 게 보였다.
시선을 들어 보니 폴대 쪽은 커다란 그림자에 가려져 있었다.
그 폴대에 손재주 좋게도 달아 놓은 건 웬 양산이었다.
“창밖 보실 때 눈부셔서 불편하신 것 같아서요. 혹시 필요하실까 하고…….”
신유리의 말에 과거의 소예리는 눈을 크게 떴다.
폴대에 매달려 펴지거나 접혀지게 하려고 구멍을 낸 어쩔 수 없었지만, 분명 양산은 해를 가리는 데에 도움이 될 것이다.
병실 자리 맞은편에서 화만 내는 사람에게 준비해주기엔 너무 세심한 선물이었다.
아는 사이도 아닌데.
과거의 소예리는 순간 말을 잊었다.
그러자 신유리가 더 미안한 얼굴로 머리를 긁적였다.
“좀 볼품없긴 한데…… 햇빛은 잘 가려지거든요.”
신유리가 열심히 설명을 해댔다. 과연 양산이 가리는 곳은 햇빛을 정확히 막고 있었다.
이게 있으면 창밖을 더 오랫동안 바라볼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보시면 편할 것 같아서요.”
신유리의 목소리가 점점 작아졌다.
과거 소예리의 신경질적인 시선을 받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쨍알쨍알 시끄러워.
그렇게 생각한 과거의 소예리는 결국 눈을 감아 버렸다.
「고맙다고 한 마디만 해 봐, 좀!」
지켜보던 소예리가 속으로 비명을 질렀지만 결국 신유리는 자리를 빠져나갔다.
“쉬시는데 방해해서 죄송합니다.”
신유리가 말하는데, 과거의 소예리는 한술 더 떠서 날카롭게 말했다.
“빨리 나가요.”
그리고 그걸 지켜보던 소예리는 아주 돌아버릴 노릇이었다.
「내가 아플 때 저렇게 성깔이 더러웠나?!」
……더러웠지.
다른 건 기억 안 나도 성질낸 기억은 나는데.
업보니라, 업보…….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소예리는 소리 없는 비명을 참을 수가 없었다.
인성질(?)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신유리가 나간 후.
“거추장스럽게.”
과거의 소예리는 굳이 일으키기도 어려운 몸을 일으켜서 폴대를 잡아당겼다.
그리고 기를 쓰고 양산을 접어 버렸다.
―팍!
빛을 가리던 양산이 접히자 다시 햇빛이 들었다.
뜨겁고 따가워.
그렇게 생각하면서 과거의 그녀는 이불을 머리끝까지 올려 써 버렸다.
***
그 후로도 며칠 동안 과거의 그녀는 짜증만 냈다. 아예 신유리와 신재헌이 거슬린다는 것처럼.
“병실 바꿀 순 없어요?”
심지어 두 사람이 있을 때 간호사에게 들으란 듯이 말했다.
“지금 옮길 만한 자리가 없어서요.”
“그럼 자리 나면요?”
그렇게 대화하는 사이 당연히 건너편 자리의 두 사람은 숨을 죽이고 있었다.
그동안 신유리가 준 양산은 펴보지도 않았다.
구멍 난 양산.
과거의 소예리는 날카로운 시선으로 그것을 쏘아보았지만, 지켜보던 소예리는 달랐다.
그냥 줘서 고맙다고 한마디만 했으면 좋았을 텐데.
[헤어나올 수 없는 과거(L)]
시스템창이 빨갛게 반짝이는 게 보였다.
소예리는 이 과거에서 빠져나갈 방법을 알았다.
과거의 소예리 자신이 느끼는 부끄러움이나 미안함, 자존심, 고마움 같은 것들이 뒤섞여 느껴졌으니까.
“오후에 퇴원하시면 됩니다.”
오전에 회진을 도는 의사의 목소리가 맞은편에서 들려왔을 때에는 그 생각이 더 심해졌다.
좋겠네.
쟤들은 폴대에 양산 매달 힘도 있는 데다 퇴원도 하고.
뒤틀린 생각과 질투가 머릿속을 뒤덮었다.
그녀는 이번 회진에서도 의사가 제 몸 상태만 보고 나갈 거라는 걸 알고 있었다.
“이진아 님?”
커튼을 젖히고 들어오는 의사들.
과거의 소예리는 습관적으로 이불을 어깨까지 올려 덮어 버렸다.
오랫동안 투병하면서 앙상해진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았다.
“오늘은…….”
차트를 보며 뭐라고 하는 의사의 말은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버렸다.
그리고 그날 오후.
점심시간이 되기 전에 앞자리가 부산스러워졌다.
“학생들, 가? 고생했어.”
“저 아가씨가 원래 화가 좀 많아.”
그렇게 속닥거리는 건너편 병상의 사람들 목소리가 귀를 파고들었다.
“저 아가씨 때문에 우리도 힘들거든.”
작게 속삭이는 소리였지만 다 들렸다.
“아니에요.”
“아니긴 뭘. 거의 울먹거리더만. 마음 곱게 쓴 학생들이 이해해.”
그쯤 듣고 있던 과거의 소예리는 결국 커튼을 확 걷어 버렸다.
“……!”
그리고 속닥거리던 신재헌 옆자리의 환자, 보호자와 눈이 마주쳤다.
“어유, 오늘 점심이 뭐지?”
노골적으로 그녀를 피하며 커튼을 쳐 버리는 환자와 보호자.
결국 그녀와 시선이 마주친 건 신재헌과 신유리였다.
“가나 봐요?”
과거의 소예리가 날카롭게 말했다.
[1분 후 헤어나올 수 없는 과거(L)가 반복됩니다.]
시스템창과는 관계없이, 소예리는 과거의 자신의 감정에 짓눌리는 것 같았다.
짜증, 부끄러움, 화남, 미안함, 질투, 고마움.
눈이 마주치자 두 사람의 시선이 이쪽에 박히는 게 보였다.
“……!”
커튼을 젖히느라 앙상해진 몸을 가리는 걸 잊었다. 과거의 그녀는 재빨리 커튼을 치려고 했다.
“네, 오늘 퇴원하게 돼서요.”
하지만 이미 시선은 마주친 뒤였다.
신재헌이 습관적으로 작게 말했다가 목을 가다듬었다.
얼마나 목소리를 낮추려고 했으면 목이 다 잠겨 있어?
지켜보던 소예리는 마음이 답답했다.
답답한 마음 조금과, 자존심과 뒤틀린 마음이 공존했다.
아직까지는 후자가 훨씬 강했다. 과거의 제게 지배당하는 것처럼.
“지금까지 감사했습니다! 쾌차하세요!”
신유리가 말했다. 감사는 뭘 감사야, 성질내는 것만 들었으면서.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나가는 말은 달랐다.
“쾌차를 할 수 있는지부터 먼저 물어보시든지.”
그 말에 신유리가 머리를 긁적이는 게 보였다.
「무안해하잖아! 악악!」
지켜보던 소예리가 속으로 비명을 지르는 사이, 신재헌이 그녀에게 웃어 보였다.
“와, 오늘 컨디션 좋아 보이시는데요?”
신재헌의 말에 소예리가 얼굴을 구기기도 전이었다. 신유리가 그의 뒤통수를 후려갈겼다.
“맨날 그러셨거든.”
“아, 그래? 난 누워만 있어 가지고.”
저때도 똑같았구나.
지켜보던 소예리는 새삼 웃음이 났다. 하지만 과거의 소예리는 아니었다.
그녀의 표정이 점점 굳어갔다.
“그…….”
입술을 깨문다. 지금의 소예리는 그때 하지 못했던 말을 알고 있었다.
[10초 후 헤어 나올 수 없는 과거(L)가 반복됩니다.]
왜 반복되는지 알고 있었다.
반복의 고리를 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알고 있었다.
자신이 간혹 꿈에서 보던 이 모습이 왜 그렇게 기억에 남는지도, 알고 있었다.
무엇을 후회해서 그러는지도 알고 있었다.
“그…….”
과거의 소예리가 다시 한번 중얼거렸다.
입 밖으로 나오지 않는 말을 아이들은 끈기 있게 기다려 주었다.
과거 소예리의 시선이 양산으로 향했다.
구멍 난 양산.
신유리의 말대로 볼품없이 매달려 있었지만 성능만은 확실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소예리를 생각하는 두 사람의 마음이 느껴졌다.
하지만 과거의 소예리는 끝내 말하지 못했다.
고맙다고.
지켜보던 소예리는 미래를 알았다.
그냥 이 자리에서 아이들을 보냈던 그녀는 몇 시간 후 뉴스를 보았다.
[(속보) 서울 은령고등학교 일대, ‘기현상’으로 접근 불가능]
[은령고등학교 재학생 및 교직원 700여 명, 행방불명]
뉴스를 본 병실 사람들이 경악하고서야 알았다.
날카로워진 자신에게, 선뜻 호의를 베풀어준 아이들이 어떤 지옥에 떨어졌는지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