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 던전의 S급 시한부 영애 (152)화 (152/218)

152화

소예리의 시야에는 커튼에 가려진 사람의 실루엣이 간신히 들어왔다.

S급으로 각성한 뒤로 이렇게 흐릿한 시야는 처음이라, 소예리는 눈썹을 치켜올렸다.

―촤악!

그때 소예리가 보고 있던 자리에서, 앙상한 손이 튀어나와 커튼을 잡아당겼다.

커튼이 가리지 않은 곳으로 언뜻언뜻 보였던 사람의 모습이 완전히 감추어졌다.

드러난 팔 여기저기에 멍이 들고 피부는 비늘처럼 일어나 있었다.

“……서 오늘 교수님이…….”

“너는 교양 시간에…….”

살짝 열린 창문 틈으로 바깥의 소리가 들려 왔다.

유독 다른 소리보다 더 귀에 박혀 오는 듯했다.

대학생인 듯한 이들의 웃음소리가 울렸다.

―찰랑.

커튼을 쳤던 사람이 다시 슬쩍 커튼을 걷어 보았다.

그리고 슬그머니 창밖으로 시선을 주었다.

소예리는 그녀가 뭘 보는지 알 것 같았다. 그녀는 자유롭게 돌아다니는 대학생들을 보고 있었다.

자신과는 달리.

[XXX]

침대 발치에 달려 있는 이름표에서 이름은 가려져 있었다. 하지만 그 아래의 나이는 보였다.

[25Y11M]

만 25세라는 소리다. 11개월이면 생일이 지나기 전이니까 27살.

소예리는 저 커튼 너머에 무엇이 있을지 알 것 같았다.

블록으로 만들어진 달력 외에도, 낡은 담요와 해져가는 모자가 있을 것이다.

이제는 오지 않는 친구가 떠준 실뜨개 모자는 실이 거의 풀려 있을 것이다……. 아마도.

그리고 핸드폰은 방전된 지 오래되어 깨진 액정 사이로 먼지만 끼어 있겠지.

오래전의 기억이지만 그것들만큼은 분명히 기억이 났다.

“……님.”

그때 간호사가 커튼을 젖히고 들어가는 게 보였다.

소예리는 왜인지 몰라도 움직일 수 없었기에, 병실 한가운데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고만 있었다.

“네.”

“바이탈 한 번만 잴게요. 오늘 날씨 좋죠?”

간호사가 뭐라고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붙이는 소리가 들렸다.

하지만 환자는 심드렁하게 대꾸하길 반복했다.

“담요 세탁해 드릴까요? 뽀송뽀송한 담요가 있으면 기분도 조금 새로우실 텐데.”

“그냥 둬요. 빨아 봐야 얼마나 더 쓴다고.”

연달아 퉁명스러운 답이 들려 왔다.

“새로운 물건을 두는 것만으로도 기분 전환이 될 거예요.”

간호사는 그렇게 말했지만 환자는 짜증을 냈다.

“알겠으니까 가세요.”

“그럼 편히 쉬세요.”

간호사는 결국 환자와 더 대화하는 것을 그만두고 커튼을 젖히고 나왔다.

걱정스러운 얼굴의 간호사가 떠난 후. 소예리는 커튼 안에서 뇌까리는 소리를 들었다.

“새로 사면 뭐 해. 내년에 다시 쓰지도 못할 텐데.”

환자의 목소리였다.

[…….]

그렇게 밤과 낮이 수도 없이 지났다.

마치 영상을 빠르게 재생한 것처럼 순식간에 병실 안이 밝아졌다가 어두워지기를 반복했다.

그러는 내내 환자의 커튼은 걷힐 줄을 몰랐다.

의료진이 오갈 때만 잠깐 젖혀질 뿐이었다.

그러던 중, 빠르게 흐르던 시간이 다시 원래대로 흐르기 시작했다.

소예리의 시야는 그때까지도 커튼이 쳐진 자리에 고정되어 있었다.

다른 곳으론 시선을 돌릴 수 없었다.

「?」

소예리가 고개를 갸웃거릴 때였다.

문득 목소리가 들렸다.

“신재헌 환자님? 옷 갈아입으시고…….”

들려오는 이름에 귀가 쫑긋하는 듯했다. 소예리는 눈을 크게 떴다.

정신이 확 드는 것 같았다.

“그니까 내가 거기서 미끄럼틀 타지 말랬지.”

“삐끗한 거라니까.”

비슷한 나이 대 여자아이의 목소리도 들렸다.

시야 끝에 교복이 스쳤다.

아, 신유리 헌터님이다.

하지만 지금보다는 훨씬 앳된 것 같은 목소리들이었다.

소예리는 움직일 수 있었다면 입을 막았을 것이다.

“걷는 것보다 타고 내려가는 게 빠른데 굳이 걸어야 할까요?”

―팍!

“이게 다리 부러지고도 정신 못 차리네.”

“좀 더 연습해서 다음엔 안 부러지는 쪽으로―”

―팍! 팍!

“옷이나 갈아입어.”

“넵.”

그러고 잠시 침묵이 흐르더니 커튼이 확 젖혀지는 소리가 났다.

“내가 나가면 벗어야지, 바로 벗는 게 어디 있어?”

남자아이가 웃는 소리가 들렸다.

고등학생 시절의 소예리 헌터와 신유리 헌터다.

소예리의 시야가 흐려졌다.

그녀는 두 사람의 목소리를 듣는 순간 깨달았다.

저 닫힌 커튼 너머에 있는 사람이 누구인지도.

[‘헤어나올 수 없는 과거(L)’에 들어섭니다.]

이곳에 들어올 때 떴던 시스템창의 의미도.

그리고 이 ‘헤어나올 수 없는 과거’에서 나갈 수 있는 방법도…… 어렴풋이 알 것 같았다.

“가자. 몸무게 재야 한대.”

“넌 눈 감아라.”

“왜?”

속닥거리는 신재헌과 신유리의 목소리를 들으면서.

소예리의 시야가 흐려졌다.

***

어느 순간 소예리는 커튼 안에 있었다.

아마 이곳이 어디인지, 이 ‘헤어나올 수 없는 과거(L)’가 무엇인지 알게 된 순간부터였을 것이다.

그제야 환자의 이름이 보였다.

정확히는 제 손목에 달려 있는 환자 팔찌의 내용이 보였다.

[환자번호 : 08028411

이름 : 이진아(여) / 25Y11M]

자신의 이름이 박힌 환자 팔찌. 그리고 가는 팔과 혈색 없는 피부.

……그리고 자신밖에 모르는 이름.

「아.」

잊고 싶었던 이름. 헌터가 되면서 버렸던 이름. 필사적으로 등 돌렸던 이름.

그 이름을 보자마자 소예리는 뒷목에 찬물이 끼얹어지는 것 같았다.

여기는 과거다.

하지만 과거의 자신과 시야를 공유할 뿐, 몸은 움직일 수 없었다.

“…….”

말없이 창밖을 바라보는 과거 자신의 시야와 움직임을, 소예리는 따라갈 수밖에 없었다.

“……니까 조용히 해야 돼.”

“넵넵.”

커튼 너머, 맞은편 자리에서 속닥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분명 큰 소리로 속닥거리는 건 아니었다.

6인실에서 사람들에게 피해가 되지 않을 정도로 작게 의사소통하고 있을 뿐이었다.

하지만 소예리에게는 유독 크게 들렸다.

……아마 과거의 내게도, 그랬나 보다.

입술이 비틀리는 걸 보면.

소예리는 과거의 제가 두 사람의 속닥거림을 아니꼬워한다는 것을 느꼈다.

“오늘 선생님이 너 다친 거 말했더니 애들이 왜 다쳤냐고 물어보더라.”

“그래서 뭐라고 했어?”

“어쩌긴. 하지 말란 짓 하다가 솔선수범해서 다리 아작났다고 전해줬지.”

어린 신유리 헌터의 목소리. 지금은 고등학생일 것이다.

두 사람의 학창시절 이야기가 오가는 듯했다.

특히 신유리는 병원에 있는 신재헌이 심심할 거라고 생각했는지, 여러 가지 이야기를 풀어놓고는 했다.

“오는 길에 어떤 할머니가 학생 기다렸다면서 이걸 주시는 거야.”

찰랑, 뭔가를 흔드는 소리가 들렸다.

음료수?

과거의 소예리는 그 소리에 저도 모르게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난 사이비인 줄 알았는데 잘 보니까 내가 저번에 도와드린 분인 것 같더라고.”

“넌 맨날 사람 도와줘 놓고 까먹더라.”

신재헌의 말에 신유리가 어이없어하며 말을 받는 게 들렸다.

“뭐 하러 애써 기억해. 그냥 그때 뿌듯하고 마는 거지.”

―팡!

시원하게 캔을 따는 소리가 들렸다.

소예리는 그들의 대화를 들을수록 심장이 조이듯이 아파 오는 것 같았다.

과거의 자신이 느꼈던 감정이 그대로 올라오는 것이다.

그건, 질투였다.

나도 건강했으면 쟤네들처럼 살 수 있었을 텐데.

“…….”

과거의 소예리는 입술을 깨물었다.

아무것도 안 해도 마른 입 속에서는 늘 피 맛이 났다.

하필 대학교와 붙어 있는 대학병원이라, 바깥에서는 대학생들의 목소리가 들려 왔다.

그녀는 가지지 못한 대학 생활을 가진 사람들이었다.

부럽지만 노력해도 가질 수 없다는 걸 안 후로는 화가 났다.

그리고 건너편 자리의 아이들도, 곧 가지게 될 거라는 사실이 못 견디게 화가 났다.

그래서.

―촤악!

손이 나갔다.

소예리는 과거의 자신을 막고 싶었지만 막을 수가 없었다.

순식간에 시야가 걷히고, 커튼에 가려졌던 어린 신재헌과 신유리의 모습이 드러났다.

“저기, 좀 조용히 해 줄래요?”

충분히 조용했지만 그냥 그렇게 말하고 싶었다.

멀쩡한 애들이 굳이 병원에 와서 떠들지 않았으면 좋겠어.

그런 비틀린 생각이 들었다.

―촤악!

다른 자리에서 떠드는 소리가 더 컸는데도 굳이 한 소리를 들은 두 사람의 눈이 크게 뜨이는 게 보였다.

아이고.

소예리는 눈을 가리고 싶었다.

이건 정말 헤어나올 수 없는 과거였다.

생각날 때마다 후회하는 과거이기도 했다.

하지만 과거이기에 돌이킬 수 없는 것이기도 했다.

“시끄러워 죽겠어, 진짜.”

들으란 듯이 그렇게 말한 과거의 소예리는 침대에 누워 버렸다.

아이고, 아이고!

과거의 자신에 갇혀 소예리는 소리 없는 비명을 질렀다.

“죄송합니다.”

그때 커튼 너머에서 소리가 들려 왔다.

신유리의 작은 목소리였다.

너무 미안해하는 게 커튼 너머로 보이는 듯했다.

아니야!! 유리 헌터님, 안 미안해해도 돼!

그냥 부러워서 그런 거야!

소예리가 속으로 머리를 싸매든 말든 과거의 그녀는 답도 하지 않았다.

그녀가 냉랭한 것을 느꼈는지, 얼마 후 커튼 밖에서 손 하나가 쑥 들어왔다.

날카로운 과거 소예리의 시선이 그쪽으로 향했다.

교복을 입은 손 하나가 포스트잇이 붙은 과자 하나를 슬그머니 창턱에 놓고 사라지는 게 보였다.

[죄송합니다ㅠㅠ 조용히 할게요! 요거 드시고 힘내세요!]

그러면서 두고 간 건 과자였다.

과거의 소예리는 짜증을 냈다.

“이런 거 입천장 다 까져서 먹지도 못하는데.”

연식만 먹어야 하는데 놀리는 거야, 뭐야?

―팍!

과거의 소예리는 그 쪽지와 과자를 챙기지도 않고 쓰레기통에 던져 버렸다.

쓰레기통에 과자가 처박히는 소리가 요란하게 울렸다.

그 소리를 들으라는 듯이.

“…….”

“…….”

아이 쪽은 물론이고 병실 내부가 다 조용해지는 게 느껴졌다.

그리고 그런 과거의 자신을 보면서 소예리가 속으로 비명을 질렀다.

「으아아아으아아! 그거 아니야! 그만해!!!」

물론 그런다고, 과거가 바뀌는 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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