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1화
[‘헌터 소예리(S)’의 경고가 3회 누적되었습니다.]
[‘헌터 소예리(S)’가 저택의 지하에 갇힙니다.]
소예리의 시야가 새까매졌다.
경고가 쌓여서 위험할 거라고는 생각했다.
하지만 이렇게 갑자기 지하로 이동될 줄은 몰랐다.
이대로 죽는 걸까.
그렇게 생각한 순간이었다.
[장비한 ‘머리끈(B)’에 부여된 스킬 ‘지하 탐험(B)’가 발동됩니다!]
[지나치게 강력한 스킬이 발동되어 ‘머리끈(B)’가 파괴되었습니다.]
소예리는 높이 묶어 올린 머리칼이 탁 풀려 어깨로 살랑 내려앉는 것을 느꼈다.
“……어.”
그리고 멍하니 입을 벌렸다.
내가 머리끈에 지하 탐험을 걸었던가?
‘스킬 부여(SS)’는 그녀의 시그니처 스킬이나 다름없었다. 물건에 스킬을 담아두는 스킬.
처음 스킬을 얻은 후에 마구잡이로 아무 데나 스킬을 걸어봤던 건 기억이 났다.
연습을 해서 보다 능숙하게 다룰 수 있어야 하니까.
보조계답게 많은 스킬을 가지고 있는 그녀는 연습할 만한 스킬도 많았다.
그리고 그중 가장 쓸모없는 건 이 지하 탐험 스킬이었다.
그래서 그냥 잊고 살았던 것 같은데―
“아.”
지금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B급 머리끈에 간신히 걸려 있던 스킬이라 그런지, 땅 안에서 그녀가 움직일 수 있는 공간은 없었다.
딱 그녀가 존재할 수 있을 정도로만 지하에 공간이 만들어진 것이다.
이대로면 숨 막혀 죽겠어!
[보호막(S) 스킬을 사용합니다.]
[지하 탐험(B) 스킬을 사용합니다.]
원래 이런 용도로 쓰는 스킬은 아니었던 것 같은데.
타임캡슐 찾으러 들어가고 싶은 마음에 생겼던 스킬이었다. 물론…… 거기서 좋지 못한 모습만 봤지만.
거기서 건져온 건 하나뿐이었다.
구멍 난 양산.
그건 지금 그녀의 손에 없었지만.
그래도 지금은 과거를 생각할 때가 아니었다.
―파앙!
앞의 흙이 확 밀려나는 것이 보였다. 스킬의 주인이 원하는 대로 ‘지하를 탐험’하기 위한 길이 뚫리는 것이다.
하지만 산소가 부족한 건 마찬가지였다.
숨을 최대한 참은 소예리가 스킬을 연달아 사용했다.
[‘귀는 어디에나 있다(B)’ 스킬을 사용합니다.]
스킬을 쓰자마자 주변의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지하의 생명들이 움직이는 작은 소리를 건너, 드디어 소예리가 듣고 싶어 하는 소리가 귀에 들어왔다.
「……께서 화나지 않으셨을까?」
「우리가 뭐라고 말씀드릴 수 있는 건…….」
그건 하녀들의 대화였다.
“찾았다!”
소예리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귀는 어디에나 있다 스킬은 반경 2km 이내의 소리를 잡는 스킬이다.
다시 말해 저 하녀들은 반경 2km 이내에 있다는 소리다.
심지어 거리가 그렇게 먼 것 같진 않았다.
지하 깊숙한 곳에 묻히진 않은 것이다.
[지하 탐험(B) 스킬을 사용합니다.]
―파앙!
이번에 소예리가 뚫은 곳은 좀 더 위였다.
쏟아져 내리는 흙은 보호막에 의해 양옆으로 밀려나 버렸다.
덕분에 그녀의 옷에는 모래 한 알도 묻지 않았다.
[비행(A) 스킬을 사용합니다.]
“정말 나 아니었으면 어떻게 나갔을지 몰라.”
정말…… 정말 다행이었다.
이게 사후세계의 또 다른 시작 같은 것이 아니라면 기적일 수밖에 없었다.
앞으론 우리 헌터님들 물건에 꼭 지하 탐험 하나씩 달아 놔야지.
저도 모르게 미소가 비어져 나왔다.
[클로나 에이센(소예리) - S급(보조)]
“시스템창엔 아무것도 안 뜨네.”
그녀는 위로 계속 지하 탐험을 쓰면서 의아한 얼굴로 시스템창을 살폈다.
버프도 디버프도 아예 사라져버린 건 죽기 직전 상태나 마찬가지였다.
“시스템도 내가 죽을 줄 알았나 보네?”
보조계 헌터를 무시하지 마라!
메롱 혀를 내보인 소예리 헌터는 위로 빠르게 올라갔다.
「서재 층에서 시끄러운 소리가…….」
「모르는 척해.」
하녀들의 목소리가 점점 가까워졌다.
“옆쪽이다.”
제대로 올라오긴 했는지 위가 아니라 옆쪽에서 소리가 들려왔다.
[지하 탐험(B) 스킬을 사용합니다.]
―파앙!
몇 번이나 옆으로 길을 냈을까. 어느 순간 소예리는 단단한 바닥을 발견했다.
“오…….”
L급 저택의 바닥이라고 B급의 공격계도 아닌 스킬에는 뚫리지 않는 것이 분명했다.
그리고 하필 소예리는 폭발적인 딜량을 내는 스킬은 없는 사람이었다.
그런 게 있으면 딜러지 보조계겠는가?
[얼음 감옥(S) 스킬을 사용합니다.]
―파파팟!
가장 먼저 사용한 스킬이 저택의 바닥을 때렸다. 하지만 저택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래도 L급이라는 거지?
소예리는 눈살을 찌푸렸다.
이렇게 되면 번개 스킬 같은 대규모 스킬을 사용해야 하는데, 하필 번개는 하늘에서 내리는 스킬이었다.
여기서 써 봐야 저택 지붕이나 박살 낸다는 소리다.
[급속냉동(A) 스킬을 사용합니다.]
소예리가 다시 저택의 바닥에 스킬을 사용했다.
―쩌저적!
살벌하게 얼어붙는 소리가 나기 시작했다.
얼어붙은 것은 생각보다 더 내구성이 낮다.
[얼음 감옥(S) 스킬을 사용합니다.]
―콰지직! 콰직!
다시 한번 S급 스킬의 파괴력이 가해지자 드디어 바닥에 커다란 금이 갔다.
그 후는 쉬웠다.
[얼음 감옥(S) 스킬을 사용합니다.]
―파파팍!
원래 수많은 얼음 결정을 쏘아보내 얼음 창살을 만들어내는 스킬이었지만, 소예리는 이 스킬을 다양하게 사용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날카로운 얼음 결정은 공격 수단이 되니까.
그리고 이내.
―콰직!
빛이 새어들었다.
지금껏 스킬로 인한 불빛만 보고 있던 소예리는 숨이 탁 트이는 듯했다.
그 틈으로 공기가 훅 들어오면서 숨을 쉬기가 훨씬 쉬워졌다.
“후우우아!”
그렇게 숨을 내쉰 그녀가 몸을 띄워 올려 저택 안으로 들어섰다.
[‘메이든 저택’에 입장합니다.]
이렇게 지하로 들어가도 입장하는 걸로 쳐주는 거야?
다행히(?) 죽은 걸로 보였는지 감시 스킬이나 저택의 엄격한 규율 같은 디버프도 없어져 있었다.
세 번 쌓였던 경고도 마찬가지였다.
“좋아…….”
소예리는 그대로 방에서 나가려고 했다.
“어?”
하지만 문득 이상한 점을 깨달았다.
[귀는 어디에나 있다(B) 스킬을 해제합니다.]
스킬을 해제해도 다른 사람의 목소리가 들릴 정도로 사용인들과의 거리가 가까운 방이었다.
하지만 방에는 조명 하나 없었다.
마법 조명은 물론이고, 촛불을 붙여 조명으로 썼던 공간인 모양인데 불이 붙은 것이 언제인지 심지는 먼지와 하나가 되어 있었다.
방 안에 들어오는 빛은 높이 달린 창문에서 살짝 비치는 외부의 조명이 다였다.
“……?”
소예리는 촛대 앞으로 다가갔다.
화염계열 스킬이 없는 그녀가 초에 불을 붙일 방법은 없었다.
하지만 하나는 알 수 있었다.
“거미 대가족이네.”
촛대에 달라붙은 거미줄이나 거미의 수만 봐도 불 안 붙인 지 오래된 방이었다.
“창고인가?”
그녀가 주변을 살폈다.
품격을 그리도 중시하는 귀족가에서 이렇게 물건을 적재하는 곳을 청소도 안 해?
리펜의 비밀 공간처럼 아예 잊힌 공간이라면 모를까…….
―철그럭.
걸어 다니는 소예리의 발에 무언가가 채었다.
그건 웬 장난감 칼이었다. 끝이 뭉툭하고 가벼운.
“리펜 건가?”
뛰어노는 걸 좋아하는 리펜이었으니 검 장난감을 가지고 있을 수도 있었다.
그걸 메이든 부인이 뺏어서 여기다가 둔 거라면……. 그렇게 생각할 때였다.
옅은 조명에, 검에 음각된 이름이 눈에 띄었다.
[넬라 드 칼센]
“넬라……?”
이 이름을 최근에 들어본 적이 있는 것 같은―
‘저는 이 가문의 안주인, 넬라 드 메이든 백작부인입니다.’
“메이든 부인의 이름?”
소예리가 입을 떠억 벌렸다.
[감정(B) 스킬을 사용합니다.]
[사용 대상 : 장난감 검(?)]
소예리의 눈이 감정 스킬로 빛났다. 그리고 이내.
[넬라 드 메이든 백작부인이 어릴 적 사용했던 장난감 검.
사람의 손을 타지 않은 지 20년이 훌쩍 넘었다.]
[감정 등급 : B]
누가 L급 던전 아니랄까 봐 수십 년 지난 장난감 검도 B급이었다.
소예리는 옅은 빛에 의지해 주변의 물건을 살펴보았다.
주변에는 꼬마 헬멧같이 생긴 투구도 있었고, 어린아이가 타고 놀았을 법한 썰매도 있었다.
그리고 그 옆에는 웬 상자가 있었다.
[넬라 드 칼센, 내 사랑스러운 아이에게]
메이든 부인의 부모님이 준 선물?
그녀가 경계하면서 아주 살짝 상자를 건드린 순간.
―벌컥!
기다렸다는 듯 상자가 열렸다. 그리고.
[‘과거의 오르골(L)’이 개방됩니다.]
“아니, 골방 창고에서 L급 아이템이 나오는 게 어디 있어!”
그녀가 기겁한 순간이었다.
―화악!
오르골이 내는 빛 사이에서 그녀는 분명히 보았다.
제가 가지고 있었던 구멍 난 양산이 구석에 펼쳐져 세워져 있는 것을.
“……!”
그녀가 저도 모르게 양산으로 손을 뻗었을 때였다.
[‘헤어나올 수 없는 과거(L)’에 들어섭니다.]
시스템창과 함께 눈앞이 흐려졌다.
***
그리고 다음 순간 눈을 뜬 소예리는 어느 공간을 바라보고 있었다.
기억에 있는 곳이다.
약 냄새가 나는 곳…… 병실.
……과거?
과거의 공간으로 소환된 건가?
주변을 살펴보니 먼지 쌓인 달력이 보였다.
블록으로 이루어져 있어 매일 날짜를 바꿔야 하는 것. 소일거리라며 사두었지만 비참함만 더해 주었던 물건.
[2011년 4월 17일]
2011년.
게이트가 처음 열리기도 전의 날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