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 던전의 S급 시한부 영애 (145)화 (145/218)

145화

[메이든 부인이 만족스러워합니다!]

[메이든 부인 호감도 상승까지 00:04:56…….]

아무튼 메이든 부인은 속아 넘어간 듯했다. 이제 리펜하고 재밌게 놀아 줘서 호감도를 올려야 했다.

“…….”

리펜은 중간중간 아슬아슬하게 음이 튀는 주이안 헌터의 연주가 불안한 듯 위쪽으로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일부러 틀리는 거라는 사실을 모르는 듯했다.

아이의 신경은 온통 위로 쏠려 있었다. 아마 아까 메이든 부인이 그랬던 것처럼 호통을 칠까 무서워서겠지.

어쩌면 쫓아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조마조마할지도 몰랐다.

어른은 건너올 수 없는 미로라고 자신했지만, 아이의 세계에서 어른은 미지의 힘을 발휘하는 존재들이었으니까.

“우리가 메이든 부인이 오시는 것 같으면 바로 말해줄게.”

난 리펜을 안심시켰다. 그러자 리펜이 멈칫했다.

“진짜?”

되묻는 그에게 난 고개를 끄덕였다.

“응.”

“엄만 발소리도 작단 말이야. 오는 소리 못 들으면 어떡해?”

여기 S급 헌터가 몇인데 못 듣겠니?

……같은 소리가 아이에게 먹힐 리 없었으므로 난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리고 신재헌을 보면서 말했다.

“저 오빠가 귀가 밝아.”

아무튼 S급 딜러니까 밝을걸?

그때 불시에 삿대질 당한 신재헌이 바로 말을 받았다.

“맞아. 키가 커서 멀리까지 들려.”

엄청나게 논리적인 말에 주이안 헌터님이 악보를 보다 말고 이쪽을 돌아보는 게 보였다.

조조조용히 있어요!

아이는 신재헌의 말에 잠시 생각에 빠졌다.

그러더니 어떤 사고회로를 거쳤는지 모르지만 놀랍게도 납득했다.

“좋아! 그럼 형이 말해줘야 돼!”

그 말에 신재헌은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그가 귀를 기울일 필요는 없을 것이다.

[클로나 에이센(예리언님) - S급(보조)

- 버프 : 놀아주기(L) 메이든 부인의 흡족함(L) 귀는 어디에나 있다(B)]

소예리 헌터님의 귀어디 스킬이면 충분했으니까.

소예리 헌터님이 손으로 OK 사인을 하자, 우린 리펜과 눈높이를 맞추었다.

“자, 그럼…….”

일단 논다고는 했는데…… 뭐 하고 놀지?

우리의 고민을 알아챘는지 순간 리펜의 표정이 흐려졌다.

“난 노는 법 잊어버렸어. 엄마가 재밌게 놀던 친구들한테 나쁜 말 해서 다 쫓아냈거든.”

저런. 난 살짝 미간을 좁혔다.

“음…….”

할 수 없지. 난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맨땅에서 놀기 하면 또 신유리 전문 아니겠습니까?

난 근처의 크레파스를 가져왔다.

“그럼 땅따먹기 할래?”

생각 없이 뛰어놀기엔 이게 최고지!

내 말에 리펜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영지전이야?”

내 말에 소예리 헌터가 웃음 참기 챌린지를 시작했다.

그렇게 스케일 큰 걸로 받지 말아 줄래?

“아냐, 봐봐.”

난 바닥에 땅따먹기 맵을 그리기 시작했다.

***

―폴짝!

리펜은 생각보다 몸이 가벼웠다.

무엇보다 아이에게 맞춰 칸을 조금 작게 그렸더니, 거의 판 위를 날아다녔다.

문제는 나나 소예리 헌터나 신재헌은 조금만 삐끗하면 선을 밟을 수밖에 없을 정도로 협소한 공간이라는 것이었다.

물론 그건 딜러인 나나 신재헌한테는 별 상관 없는 이야기였다.

까짓 거 까치발 디디면 되지.

하지만 소예리 헌터는 S급이라도 몸을 섬세하게 쓰는 클래스는 아니었으므로, 번번이 선을 밟았다.

“윽! 또 똑같은 데서 밟았어!”

주저앉은 소예리 헌터가 입을 비죽거렸다.

“져주지 마!”

리펜은 호승심이 있는 편인지 소예리 헌터가 탈락할 때마다 외쳤다.

하지만 소예리 헌터는 진심으로 억울한 얼굴이었다.

“나도 이기고 싶어!”

하지만 S급 보조계가 이기기에는 SS+급의 가벼운 몸놀림이 너무 뛰어났다.

물론 나와 신재헌은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적당히 선을 밟아 주었다.

우리가 이겨 봐야 애가 허무해할 거 아냐?

그렇게 수십 분.

주이안 헌터의 어딘가 삐끗거리는 피아노 선율과 함께 게임이 끝나 갔다.

리펜은 우리의 혼신의 놀아주기에 감동했는지, 결국 조금씩 웃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게임이 끝났을 땐 환호성을 질렀다.

“와! 내가 이겼어!”

리펜은 해맑은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때쯤 위에서 목소리가 들려 왔다.

「이만하면 됐다! 오늘따라 만족스럽구나. 연회장에서도 이렇게만 했으면 됐을 것을…….」

메이든 백작부인의 목소리에 우린 모두 멈칫했다.

주이안 헌터님이 슬며시 피아노에서 손을 내렸다.

[‘같이 놀자(L)’ 버프가 해제되었습니다.]

그러자 시스템창이 떴다. 그러면서 호감도 창이 떴다.

[메이든 부인 : -30

리펜 드 메이든 : +55]

-90과 0에서 시작한 걸 생각하면 엄청난 쾌거였다!

이대로면 리펜 드 메이든은 보스화하지 않을 것이다.

호감도가 +50 이상이면 보스로 변화하지 않는다고 했으니까.

우리가 한숨 돌리는 사이, 리펜의 얼굴이 금세 침울하게 변했다.

“곧 엄마가 있는 곳으로 가 봐야 해요. 교양 수업 선생님이 오실 시간이거든요.”

그러면서 어깨를 늘어뜨렸다.

신재헌은 그런 아이에게 물었다.

“하루 종일 공부해?”

리펜은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네.”

“다 던지고 나가고 싶겠네.”

신재헌이 바로 말을 받았다. 아이가 열렬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네!”

마음을 알아주는 사람이 있어서 그런지 아이의 눈이 반짝반짝 빛났다.

난 순간 불길함을 느꼈다.

너…… 그대로 나가라고 하는 거 아니지?

다행히 신재헌은 뒷말은 하지 않았다. 그 사이 리펜의 목소리가 울먹이는 목소리로 변했다.

“즐거웠어요.”

아이는 이제 그만 ‘일탈’하고 들어가야 한다는 사실을 안 것이다. 아이가 작게 중얼거렸다.

“더 숨어 있으면 엄마가 화낼 거예요. 딱 한 시간 정도만…… 참아주시거든요.”

딱 한 시간만 어리광을 부릴 수 있다.

그 사실을 아는 아이는 지나치게 조숙해 보였다. 그 모습이 안타까웠다.

특수던전이라도 설정이 너무하네…….

내가 볼을 긁적일 때였다.

눈물을 훔친 리펜이 밝은 얼굴로 말했다.

“꼭 저한테 와 줘야 해요!”

그 말에 우리 넷은 서로를 마주 보았다.

피아노를 정리한 주이안 헌터님이 아이와 눈높이를 맞추며 물었다.

“어떻게 갈 수 있죠?”

그 말에 아이는 고민하다가 위를 가리켰다.

높이가 짐작도 가지 않는 새까만 빈 공간이었지만, 아이가 가리키는 게 저택의 4층 너머라는 것 정도는 알 수 있었다.

“꼭대기에서 만나요.”

아이가 헤헤 웃었다.

“진짜 친구면…… 와줄 수 있죠?”

어차피 이 저택의 ‘주인의 서재’에 가는 것이 던전의 목표였다.

서재에 아이가 있을 가능성은 적으니까, 꼭대기에서 다른 공간을 찾아야 한다는 소리가 된다.

진짜 헤어지기 싫은 얼굴의 리펜은 우리를 보면서 해맑은 목소리로 말했다.

“안 오면 화낼 거예요.”

[리펜 드 메이든이 여러분과의 재회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기대를 저버릴 시 : 리펜 드 메이든의 호감도 –150]

……호감도 쌓은 거 다 부질없는 거 아니냐?

이게 무슨 수련회 레크리에이션 점수 내기 같은 계산이야?

앞에선 5점, 10점씩 주다가 마지막에 점수 퍼주는 게 너무 닮았는데?

문제는 이쪽은 마이너스란 점이었다.

레크리에이션은 기분이라도 좋지! 난 얼굴을 구기지 않기 위해 힘써야 했다.

“응, 다시 보자.”

안 보면 네가 우리를 죽일지도 모른다는 강렬한 예감이 들기 시작했단다…….

―스르륵.

우리와 인사를 마친 리펜의 모습이 천천히 흐려져 갔다.

그러면서 우리도 리펜의 공간에서 자연스럽게 빠져나왔다.

“아까 그 복도네?”

우리가 나온 곳은 리펜의 공간으로 들어가기 전의 복도였다.

시스템창이 불쑥 떴다.

[안내를 따라 4층의 손님방으로 이동해 주십시오.]

“오, 4층?”

소예리 헌터가 눈을 크게 떴다. 여긴 3층이었다.

바로 4층으로 간다고?

4층 다음엔 주인의 서재였다.

정말 쉴 틈도 없이 몰아치는 던전이었다.

대체 얼마나 좋은 보상을 주시려고 이렇게 쉴 틈 없이 굴리십니까?

SS급 던전의 탈을 쓴 L급 난이도 특수던전의 결말이 점점 궁금해졌다.

……무사히 깨야, 볼 수 있겠지만.

***

저택은 지독하게 넓었다.

그리고 아까 지나갔을 땐 분명 아무것도 없었던 복도에 커다란 계단이 생긴 게 보였다.

역시 다음 층으로 향하는 계단은 던전 내에서 특정 조건을 달성해야 나오는 것이 분명했다.

―달칵.

우리의 취급이 그래도 좀 나아졌는지, 우리가 안내된 곳은 저번과는 달리 구석지지 않은 방이었다.

와! 감동스럽다!

뿐만 아니라 우리 넷은 같은 방에 배정되었다.

방이 널찍하고 좋긴 하지만, 우리 귀족가 영식하고 영애 설정 아니었어? 같은 방에 이렇게 몰아넣어도 돼?

품위…… 유지할 자신 있어?

그렇게 이 집의 품위를 걱정한 지 2초 만에 난 걱정을 잊어야 했다.

“그럼 저택의 주인께 드릴 선물을 준비해 주십시오.”

“?”

그거 전에 뜯어가지 않았니? 난 새삼 허망한 마음에 인벤토리를 켜 봤다.

당연히 내 사라져버린 목검도, 신재헌의 도금 목걸이도 돌아오지 않았다.

―쿵!

우리의 욕이 담긴 시선을 해석해냈는지는 몰라도, 하녀는 문을 닫고 쌩하니 퇴장해 버렸다.

가면서 한마디 남기는 건 물론 잊지 않았다.

“주인님께서 기대하고 계십니다.”

우린 서로를 마주 보았다.

감시 스킬이 다시 디버프에 올라와 있었기 때문에 욕은 할 수 없었다.

자, 침착하게 생각해보자.

아까도 선물을 뜯어갔지만 한 번 더 선물을 뜯는다.

이게 품격 있는 귀족가의 손님 대우 방식이란 말인가?

혹시 메이든엔 비밀이 있어서 알고 보니 가업이 날도둑 내지는 강도였을 가능성은?

내가 미간을 좁힐 때였다.

소예리 헌터가 의견을 냈다.

“전에 가져간 건 리펜한테 줄 선물이었던 것 같고, 이번엔 메이든 부인에게 줄 선물을 말하는 게 아닐까요?”

그런가? 난 소예리 헌터를 돌아보았다.

하긴, 생각해보면 우리가 선물을 뜯길(?) 때까지만 해도 우린 메이든 부인에게 불청객이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메이든 부인의 호감도를 무려 60이나 올린 지금!

그래도 –30이지만 어쨌든!

연회장에서 얼굴도 봤겠다, 분명 메이든 부인도 우리를 눈여겨보고 있을 것이다.

……그래서 선물을 뜯어가는 거야?

이거 완전 양X치 아니냐? 품격과 품위를 위해 난 입을 막았다.

“선물을 뭘 드린담.”

소예리 헌터는 입을 비죽였다. 그때 주이안 헌터가 입을 열었다.

“분명 귀족적인 교양을 요구할 겁니다.”

딜러의 진정한 교양은 단시간 폭딜인데……. 아무래도 메이든 부인은 딜러의 교양은 별로 좋아하지 않을 것 같았다.

“악기연주는 좀 그렇겠죠?”

신재헌이 의견을 냈다. 다룰 수 있는 병장기만큼이나 다룰 수 있는 악기가 많은 그였다.

하지만 난 고개를 저었다.

“그건 올라가서 직접 보여줘야 하잖아요. 저번에 선물 뜯어간 거 보면 뭔가 형태가 있는 선물을 줘야 하나 본데.”

신재헌을 선물상자에 악기와 함께 잘 포장해서 올릴 순 없는 노릇…… 아니지, 잠깐만.

난 눈을 반짝였다.

“아, 생각났다!”

메이든 부인이 만족할 만한 선물!

나한테 세 사람의 시선이 모였다.

그때 신재헌이 심각한 얼굴로 말했다.

“제가 들어갈 만한 선물상자는 없을 텐데.”

혹시 내 생각 읽었니? 이놈이 소름 돋게 하네.

난 그의 말을 생각도 않고 쳐냈다.

“그건 교양 있는 선물이 아니잖아요.”

그거 말고!

신재헌이 어이없다는 듯 손을 펴 보이는 것도 잠깐.

이어진 내 의견을 들은 그의 표정이 폈다. 다른 두 헌터도 마찬가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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