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5화
[클로나 에이센(예리언님) - S급(보조)
- 버프 : 시너지(A)
- 디버프 : 강력한 저택의 규율(L) 감시(L) 경고2(L)]
“앗.”
소예리 헌터도 곤란한 얼굴이었다. 그녀가 뒤늦게 입을 막았다.
“이것도 안 되는 거였어!?”
저택 기밀이다 이거야? 그녀가 곤란한 얼굴로 상태창을 볼 때였다.
난 그녀에게 손짓했다.
“이이이제부터아무것도하지마요.”
소예리 헌터님이 뭐라도 하려고 하면 내가 다 할 거야!
소예리 헌터도 당황했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야겠어요. 세상에. 진짜 조심해야겠네. 근데 이것도 정보라니 너무하다.”
입을 비죽인 소예리 헌터는 아직도 많이 놀란 얼굴이었다.
저기서 경고를 한 번만 더 받으면 3회로 아웃이다.
[3회 이상 경고를 받을 경우, 저택의 지하에 갇히게 됩니다.]
그리고 초대장에 따르면 이 저택의 지하는 탄탄한 지반뿐이다.
즉, 그냥 생매장된다는 소리다.
살벌한 던전이 아닐 수 없었다.
“손님 네 분?”
그때 누군가 불쑥 우리에게 다가왔다.
그건 하인이었다. 연회장에서 우릴 찾기 시작한 것 같았다.
그는 왜 이런 곳에 손님이 있나 하는 표정이었다.
“연회장은 이쪽입니다.”
그것도 모르냐는 표정 짓지 마라! 너희들이 안내도 안 했잖아!
하지만 우린 따질 틈이 없었다.
모두의 시선이 걱정을 담아 소예리 헌터에게 한 번씩 닿았다 떨어졌다.
소예리 헌터는 애써 괜찮은 척하고 있었지만 많이 놀란 듯했다.
그녀의 손을 잡아주니, 다소 차가워진 게 느껴졌다.
“…….”
소예리 헌터가 일순 나를 돌아보았다.
평소의 웃음기가 사라진 얼굴은 긴장이 깃들어 있었다.
소예리 헌터도 경고 3회가 뜻하는 게 무엇인지 진작 알아차린 게 분명했다.
그때였다.
“그럼 약속된 토론 준비를 마쳐 주십시오.”
하인은 우리를 연회장 안으로 들여보내면서 말했다.
“네?”
뭐요? 그게 뭔데? 난 나도 모르게 되물었다.
푸푸품격없다고따지지마라!
[…….]
다행히 저택의 주인은 되묻는 것 가지고는 품위가 없다고 생각하진 않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하인은 우리를 이상하다는 듯 돌아보았다.
“미리 준비해 오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만…….”
여기서 아닌데요? 했다간 경고 받을 게 분명했다.
우리 넷은 서로를 쳐다보았다.
하인이 앞으로 시선을 돌린 사이 우린 제각기 다른 동작으로 황당함을 표현했다.
당연히 금시초문이었다.
아니, 선물 뜯어가는 것도 모자라서 토론도 한다는 건 초대장에 안 써놓고, 규칙만 써 놔?
정말 친절하기 그지없는 집구석이었다.
***
“손님 네 분께서 들어오십니다.”
우린 황당함을 일단 감추고 연회장 안으로 들어섰다.
그리고 우리보다 먼저 와 있던 것 같은 동제국 사람 넷과 눈이 마주쳤다.
“어?”
그들은 우릴 보자마자 입을 떠억 벌렸다.
“저, 저……!”
그들은 말도 제대로 잇지 못했다. 그중 하나는 우리를 삿대질하기도 했다.
저렇게 삿대질하면…….
[파티의 누군가가 경고를 받았습니다!]
저럴 줄 알았다! 삿대질한 사람의 얼굴이 파래지는 게 보였다.
무려 이 연회장이 ‘메이든 부인의 시험’이 치러지는 연회장인데, 저렇게 삿대질하면 벼락같이 경고가 들어갈 수밖에.
“이게 어떻게 된…….”
동제국 사람들이 속닥거리는 게 보였다.
물론 놀라는 건 이해가 갔다.
그야 들어올 땐 수호기사단장인 나를 제외하면 평범한 마법사와 기사, 사제였던 자들이 마탑주와 황제, 교황으로 떡하니 나타나니 놀랄 법도 했다.
놀려 주고 싶었지만 우리도 이제 조심해야 했다.
소예리 헌터의 경고도 그렇고, 저쪽에서 우리 넷이 지나치게 친해 보인다는 생각을 해서는 곤란하니까.
난 대충 컨셉을 정했다.
지금부터 상전 세 명 모시는 불쌍한 수호기사단장으로 간다!
어차피 다른 헌터들도 알 터였다.
이 컨셉이 최선이라는 걸.
원래 얼굴 다 까인 마당에 친한 티 내다가 페널티 받을 일 있어?
“주인님께서 오십니다.”
하인이 작게 말했다. 품위가 그렇게나 중요하시다는 메이든 가의 주인이 연회장 안으로 들어서는 순간이었다.
소예리 헌터의 말에 따르면 아마 저 사람은 메이든 부인일 것이고…….
―또각.
작은 구둣발 소리를 내며 그녀의 옆으로 따라오는 건 메이든 가의 어린 주인이자 도련님일 것이다.
우리가 저 애의 손님이라는 거지?
우리가 아이를 살피는 사이, 메이든 부인이 연회장의 중앙 단상으로 올라섰다.
“손님이 모두 오셨군요. 메이든의 초대에 응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그렇게 빙그레 웃는 그녀는 말과는 다르게 우리 쪽에는 싸늘한 시선을 던졌다.
반면 동제국 쪽에는 웃어주시는 게 아주 품격 있기 그지없었다.
“저는 이 가문의 안주인, 넬라 드 메이든 백작부인입니다. 그이는 일이 있어 자리를 비운 상태라, 그의 인사까지 대신 전합니다.”
그녀가 고개를 숙여 보였다. 그러고는 아이를 돌아보았다.
“여긴 아시다시피 제 아들, 리펜 드 메이든입니다.”
아이, 리펜은 긴장한 얼굴이었다. 메이든 백작부인이 리펜에게 웃어 주었다.
“환영 인사를 드려야지?”
리펜은 그 말에 긴장한 얼굴로 걸음을 떼었다. 아이가 향하는 곳에는 커다란 피아노가 있었다.
아이가 치기에는 지나치게 커 보였다.
소예리 헌터의 말대로라면 리펜은 어제 피아노 연습을 했다. 아이는 피아노를 잘 치는 편은 아니라고 했다.
아이 맞춤 정장까지 입고 우아하게 앉는 모습을 보면 멋들어진 연주를 할 것 같았지만, 아무래도 현실은 반대일 모양이다.
물론 나도 음치인 마당에 악기 연주하는 데에 왈가왈부할 생각은 없었다.
대신 난 벌써부터 긴장한 아이 앞에서 박수 쳐 줄 준비를 했다. 아이가 최대한 곤란하지 않게 내려가도록 해주어야 할 듯했다.
그리고.
―쿠쿵♬
손님을 환영하는 곡치고는 지옥에서 올라오는 굉음 같은 서곡이 울렸다.
―쿵! 쿠쿵♪
아이가 고개를 푹 숙였다. 저도 제가 잘 치지는 못한다는 걸 알고 있다는 뜻이었다.
하지만 저럴 수밖에 없을 것 같은데?
아이의 작은 손이 피아노를 누르기 위해서는 과하게 많은 힘이 필요해 보였으니까.
“…….”
피아노를 잘 치는 편인 신재헌도 살짝 눈썹을 올린 채 리펜의 손에 집중하고 있었다.
사람의 움직임, 특히 무기를 든 손과 팔의 움직임에 예민한 나와 신재헌은 바로 알 수밖에 없었다.
아이는 정말 있는 힘껏, 최선을 다해 피아노를 치고 있었다.
“크흠.”
“흠.”
반면 동제국 쪽은 많이 놀란 듯 서로 쑥덕거리는 게 보였다.
그것도 모자라서 한 명은 웃음을 감추기까지 했다.
“…….”
그리고 동제국 쪽으로 안주인의 날카로운 시선이 꽂힌 순간.
[‘메이든 부인’과 ‘리펜 드 메이든’의 호감도가 나타납니다.]
호감도? 이런 던전에서 호감도라 하면 보통 보스 난이도와 직결되기 마련이었다.
긴장한 내 눈에 동제국 쪽의 호감도가 먼저 들어왔다. 그들의 머리 위에 쓰인 숫자는 이러했다.
[메이든 부인 : +25
리펜 드 메이든 : -30]
그와 동시에 우리의 시스템창 옆에도 글자가 생겨났다.
[메이든 부인 : -90
리펜 드 메이든 : 0]
……우리가 압도적으로 불리한데?
메이든 부인 너무 우리 싫어하는 거 아니야?
그때 메이든 부인이 우리 쪽을 돌아보았다.
그리고 조금 의외라는 표정을 지었다.
[메이든 부인이 ‘경청’에 흡족해합니다.]
[메이든 부인의 호감도+5]
[메이든 부인 : -85]
반면 동제국 쪽의 호감도는 +25에서 +20으로 줄어드는 게 보였다.
-90이나 –85나 절망적인 건 마찬가지 같은데?
정확히는 이 호감도가 던전에 미치는 영향을 알아야 짐작할 수 있을 듯했다.
그리고 우리가 기다리고 있다는 걸 안다는 듯이 연달아 시스템창이 올라왔다.
[‘주인의 서재’에 입장 시, 특정 인물의 호감도에 따라 보스의 랭크가 변동됩니다.]
[-50 이하 : L급 보스 발현
-49 ~ +49 : SS급 보스 발현
+50 이상 : 보스 발현하지 않음]
그렇다는 건 최악의 경우에는 저 두 사람이 모두 L급 보스로 발현할 수 있다는 소리?
이건 어떻게든 50 이상으로 만들어야 했다.
근데 동제국과 호감도가 따로 계산된다는 건, 저쪽하고 우리가 다른 보스를 만난다는 건가?
머리가 팽팽 돌아갔다.
확실한 건 어쨌든 적어도 우리 쪽 호감도만이라도 좋게 만들어야 한다는 점이었다.
SS급 던전인데 지금 몬스터들의 세기가 한 단계 올라가 있으니, SS급 보스 몬스터라도 L급 보스가 되는 셈이었다.
게다가 호감도가 –50 이하라면, 이론상으로는 L급보다 한 단계 위의 보스를 상대해야 한다는 말이 된다.
[메이든 부인 : -85]
[리펜 드 메이든 : 0]
그리고 우리 앞엔 까마득한 미래가 펼쳐져 있었다.
이대로면 메이든 부인은 L급에 리펜은 SS급으로 나오게 된다!
아무래도 점수를 제대로 따야 할 듯했다.
그리고 이 연회장에서 펼쳐질 ‘메이든 부인의 시험’은 점수 따는 데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것이 분명했다.
―쿠구궁♪
그때 리펜의 연주가 딱 끝났다.
아이의 긴장한 얼굴이 우리를 쳐다보기도 전에, 우리는 박수를 쳤다.
“……!”
의외의 박수갈채에 아이는 놀란 얼굴로 우리를 돌아보았다.
매너상 치는 박수가 아니란 걸 보여주기 위해 난 고개도 연신 끄덕여 주었다.
잘했어요! 여섯 살에 이만하면 엄청나게 잘 친 거지!
난 그때 악보는 콩나물 팬아트인 줄 알았어! 워후!
“…….”
리펜은 우리를 보고 조금 얼굴을 폈다.
[리펜 드 메이든의 호감도가 5 상승했습니다.]
[리펜 드 메이든 : +5]
시작이 순조로웠다.
[메이든 부인 : -85
리펜 드 메이든 : +5]
……아니, 시작은 개판이었지만 아무튼 우린 성공할 것이다!
참 눈물 없이 보기에 암담한 호감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