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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던전의 S급 시한부 영애 (134)화 (134/218)

134화

“너는?”

난 신재헌에게 불쑥 물었다. 내 질문에 신재헌은 바로 답했다.

“내 인벤토리에서 나간 건 없었어.”

그 사실에 놀라지도 않은 듯 평온한 얼굴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게 당연하다는 반응이다.

그럼 이미 무슨 물건이 인벤토리에서 사라질지 알고 있었다는 의미였다.

아니나 다를까, 그는 내 목을 보더니 눈을 가늘게 떴다.

“……진짜 없네.”

“음…….”

난 머리를 긁적였다.

“애장품인데 사라질 줄은 몰랐어.”

괜히 미안했다. 내가 뺏긴 것도 아닌데.

아무래도 애장품은 신재헌이 허락하지 않는 한 신재헌의 귀속 아이템으로 인정되니, 내 인벤토리에 있더라도 그의 아이템으로 인식된 모양이었다.

“미안. 클리어할 때까지 최대한 찾아볼게.”

못 찾고 나가더라도 목걸이는 돌아올지도 모른다.

보통 이런 던전에서 물건을 빼앗겼을 경우 찾기는 힘들었지만, 신재헌의 아이템은 애장품이니까 다를 수도 있었다.

그러고 보니 소예리 헌터님하고 주이안 씨는 뭘 빼앗겼으려나?

난 두 사람을 흘끗 쳐다보았다. 이곳저곳을 살펴보고 있는 두 사람은 생각보다 타격이 없어 보였다.

혹시 두 사람도 딜생딜사하는 나처럼 힐량 보너스 붙는 아이템이나 스킬 강화 보너스 붙은 아이템 사라졌어요?

그건 좀 치명적일 것 같……긴 한데.

신재헌이 가장 상심한 것 같았다.

“네 탓도 아닌데 네가 사과를 왜 해?”

하지만 그것도 잠깐, 그가 낮게 웃음을 터뜨렸다. 난 그의 어깨를 두드려주었다.

“애장품은 던전 나갈 때 다시 귀속처리될지도 모르니까 너무 걱정하지 말자.”

“그럼 다행인데.”

신재헌의 표정이 일순 흐려졌다.

언제는 어디 박아놨다가 이제 나왔는지 모르겠다는 듯이 주더니, 애지중지하던 게 맞는 모양이었다.

애장품을 괜히 건 게 아니었던 거지.

“…….”

어릴 때의 그가 문득 겹쳐 보였다.

‘목걸이 싫다니까?’

‘내기 패배자가 말이 많다!’

그렇게 부득불 쫓아가서 걸어준 도금 목걸이였다. 이렇게 예쁨(?)받을 줄 알았으면 더 예쁜 걸로, 비싼 걸로 사줄 걸 그랬나.

물론 그러기엔 둘 다 돈 없는 학생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지금 떠오른 거지만.

막상 목걸이를 받은 그는 그렇게 크게 싫어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

뭐라 작게 투덜거리면서 교복 와이셔츠 안으로 목걸이를 집어넣던 모습이 떠올랐다.

진짜 싫으면 벗어서 집어던지는 놈인데.

그땐 왜 몰랐지?

아니, 지금까지는 왜 몰랐지?

“……없어지면 내가 다시 사줄게.”

난 결국 입을 열었다. 신재헌이 나를 돌아보았다.

물론 그걸로 안 된다는 건 안다.

애장품을 걸어 놓았을 정도로 아끼고 있고, 추억으로 갖고 있었던 것 같으니 새 목걸이를 사줘 봐야 소용없을 것이다.

하지만 뭐라도 해줘야 할 것 같았다. 내 인벤토리에 있다가 사라진 게 미안해서.

“물론 돈이면 다 된다는 게 아니라…… 음, 중요한 물건인 건 아는데. 어…….”

난 필사적으로 언어를 짜냈다.

내가 준 물건 내 입으로 띄우자니 느낌이 이상해!

하지만 신재헌이 아끼던 건 사실이잖아?

“일단 최대한 여기서 찾아서 나가는 쪽으로―”

그 후에 만일 정말 사라졌다면 그땐 새 목걸이를 사줄 수밖에 없다.

가만히 있기에는 미안하니까.

근데 신재헌은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불쑥 답했다.

“좋아.”

“어?”

신재헌은 미소 짓고 있었다. 언제 상심했었느냐는 듯 장난기로 반짝이는 얼굴이다.

내가 한쪽 눈썹을 치켜올렸을 때였다.

―탁.

내 한쪽 어깨를 짚은 신재헌이 다른 한 손으로 검지를 들어 보였다.

“일단 최대한 이 던전에서 찾아보고.”

“찾아보고?”

신재헌이 제 검지를 내 눈앞에서 까딱이면서 말했다.

“목걸이 사러 나가는 건 별개인 걸로.”

“응?”

뭔가 좀 이상해진 것 같다? 내가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을 때였다.

“왜? 싫어?”

신재헌이 다시 날 돌아보았다.

눈이 마주친 순간의 신재헌은 방금의 장난스러운 표정은 어디로 갔느냐는 듯, 어깨를 늘어뜨린 채였다.

힘없는 강아지처럼.

“……아니.”

그래서 난 나도 모르게 답해 버렸다. 그러자 신재헌은 금세 살아나서 말했다.

“좋아. 그럼 약속한 거다.”

그렇게 속삭인 그가 내 어깨를 두드려주었다. 그리고 더욱 작게, 내게만 들리도록 속삭였다.

“나랑만 가는 걸로.”

“그야―”

……뭐 목걸이 사러 가는데 사람 주렁주렁 달고 갈 일 있……냐…….

따지려던 난 입을 닫아 버렸다. 그와 동시에 걸음도 멈춰 버렸다.

“여긴 아닐 것 같아요. 연회라고 했으니까 복도 끝 쪽을 먼저 찾아보는 게 좋을 것 같거든요.”

신재헌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다른 두 헌터와 합류해 있었다.

소예리 헌터가 손을 펼쳐 보였다.

“그래도 어차피 들어가야 할 시간이 정해진 건 아니잖아요? 그러니까 이 층에 다른 함정이 없는지 살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은 것 같아.”

“저도 동감입니다.”

주이안 씨가 말을 받자 신재헌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그렇네요.”

그러면서 앞서가는 그는 정말 아무렇지 않아 보였다.

게다가 우리가 속닥속닥 떠드는 걸 분명 보았을 소예리 헌터님이나 주이안 씨도 별 반응이 없었다.

그야 당연하다. 우린 원래 이랬으니까.

원래…… 이랬으니까.

그런데 왜 이렇게 어색하지? 한두 번 한 게 아닌데 왜 이렇게 이상하고 신경 쓰이지?

“저쪽인 것 같거든요?”

멍하니 걸음을 옮기자 얼마 안 있어 신재헌의 목소리가 귓가를 파고들었다.

난 그제야 정신을 차렸다.

내가 돌았나 봐! SS급 던전에서 멍때렸어!

그 사이 신재헌의 목소리가 다시 울렸다.

“건물 구조상 저기가 가장 큰 홀이에요.”

“사용인들이 많이 오가는 걸 보면 거의 확실한 것 같습니다.”

주이안 씨가 말을 받았다. 신재헌이 고개를 끄덕였다.

“혹시 연회에서 뭐 할지 짐작 가시는 분 있어요?”

그 말에 주이안 씨가 고개를 기울였다.

“일단 이곳이 저택 한가운데이기도 하고, 품위를 생각하는 주인의 성정을 생각해 보면 전투는 아닐 가능성이 큽니다.”

“하긴, 여기가 카르만도 아니고.”

연회 하자고 모여서 한가운데 잔디밭에서 검술대련을 하는 나라는 또 찾아보기 힘들 것이다.

“그럼 앉아서 하는 다른 일~?”

소예리 헌터가 턱을 매만졌다.

“그래도 이 저택의 주인이 귀족적인 걸 교육하려고 하는 것 같…… 아!”

그러더니 갑자기 박수를 짝 쳤다.

“나 할 말 있어요! 완전 까먹을 뻔했어!”

그녀가 바쁘게 손짓했다. 우린 영문도 모르고 그녀의 옆으로 모여들었다.

헌터채팅이 있었으면 편히 말했겠지만 아쉽게도 헌터채팅은 불가능했다.

“어제 불침번 섰을 때 있었던 일이에요.”

그녀가 말했다. 난 눈을 가늘게 떴다.

어제 스킬창이 움직이는 건 봤다. 경고당한 것도 알고 있고.

……소예리 헌터는 걱정받는 거 별로 안 좋아하니까 말하진 않았는데.

난 다시 소예리 헌터를 살폈다. 몸에 이상이 있는 것 같지는 않았다.

“어제 뭐 만났어요?”

몬스터라든지, 몬스터라든지…….

내 말에 소예리 헌터가 팔짱을 끼고 말했다.

“집사가 수작 부리려는 거 막았어요. 나오지 말란 거 들켜서 경고 한 번 받았고.”

“아.”

그 경고는 소예리 헌터가 불침번을 자처하면서부터 이미 받을 거라고 생각하기는 했다.

SS급 던전의 수상한 밤에 아무도 불침번을 안 설 수는 없으니 나가는 걸 말리진 않았지만.

결국 그때 걸린 모양이다.

근데 집사가 수작?

“수작이요?”

신재헌이 물었다. 소예리 헌터가 고개를 끄덕였다.

“몬스터 들어있는 상자 같은 걸 들고 오더라고요. 몬스터인진 자세히 모르겠는데, 위에 S라고 랭크 표시되어 있는 거 봤어요.”

“설마 혼자 상대하신 건가요?”

주이안 씨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물어 왔다. 소예리 헌터는 손을 내저었다.

“집사가 우리 방 안에 하나씩 놓고 가려고 했던 것 같아요. 예쁘게 네 마리였거든. 근데 여하튼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

소예리 헌터는 재빨리 연회장 쪽을 살폈다.

“손님들은 늦으시나?”

“아까 출발하셨다는 것 같았는데…….”

그런 소식통이 있으면 길 안내도 좀 해주지 그러냐?

물론 NPC가 붙는 것보단 우리끼리 이동하는 게 편하긴 했다. 내가 눈썹을 치켜올렸을 때였다.

시간이 얼마 없다는 걸 안 소예리 헌터가 빠르게 말했다.

“어젯밤에 나가 있다가 누가 소리 지르는 걸 들었거든요. 밤에 밖으로 나오지 말라는 게 아무래도 그거 때문인 것 같아요.”

“소리를 질러요? 누가?”

누가? 이 품격 넘치는 저택에서?

그러자 소예리 헌터가 그 질문을 기다렸다는 듯이 답했다.

“이 가문의 안주인이요.”

“네?”

본인은 품격 없어도 되고 우리는 품격 있어야 하는 시스템?

우리가 황당해서 서로를 마주 보았을 때였다.

“‘리펜’이라는 아이에게 화내고 있었어요. 아들인 것 같더라고요.”

사용인들이 말하던 리펜이 누군가 했더니 아들이었어?

잊을 만하면 아동용품이 튀어나왔던 게 괜히 그랬던 것은 아닌 모양이다.

“아들한테 피아노를 가르치려고 했는데, 아이는 싫어하는 것 같고…….”

그러면서 소예리 헌터는 중요한 정보를 전달했다.

“아마 마차를 탈 때부터 정해진 것 같아요. 마차를 타고 품격 있게 입장한 쪽은 메이든 부인이 부른 손님들이 되는 거고, 다른 길로 걸어 들어온 우리는 초대받았지만 안주인이 싫어하는 아드님의 손님인 거죠.”

“아…….”

그럼 저택의 미묘한 분위기가 이해가 간다.

“여하튼 이 저택에서 중요한 건 두 사람의 관계인 것 같아요. 우린 어쨌든 아드님 쪽 사람이니까 그거 생각해서 움직여야―.”

소예리 헌터가 그리 깔끔하게 결론을 내릴 즈음이었다.

“!”

소예리 헌터의 얼굴이 순간 하얘졌다. 그리고 그건 우리 셋도 마찬가지였다.

[‘헌터 소예리(S)’가 ‘저택의 규율 3번’을 어겨 경고를 받습니다!]

[저택 안에서 얻은 정보를 입 밖으로 내지 마세요!]

또 경고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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