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 던전의 S급 시한부 영애 (133)화 (133/218)

133화

저걸 방 안에 놓고 가게 해서는 곤란하다.

“그렇군요. 저도 곧 들어갈 테니, 너무 신경 쓰지 마세요.”

소예리는 말하면서 빙그레 웃어 보였다. 물론 들어갈 생각은 없었다.

들어가자마자 방음이 기깔나게 잘되는 방의 특성을 이용해 저 S급의 무언가를 방에 풀어놓을 것이 분명했으므로.

“…….”

집사는 한참 동안 머뭇거리다가 결국 몸을 돌렸다.

“실례했습니다.”

그러고는 서서히 멀어져 갔다.

[‘귀는 어디에나 있다(B)’ 스킬을 사용합니다.]

소예리가 다시 스킬을 켰다.

[…….]

그리고 그녀는 복도에서 사라지는 줄 알았던 집사가 걸음을 멈춘 채 숨을 죽이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챘다.

들어가면 수작을 부리겠다는 거지?

소예리는 팔짱을 낀 채 복도를 가만히 쳐다보았다.

집사가 물러날 때까지 그녀도 방 안으로 들어갈 생각은 없었다.

[…….]

그리고 한참 동안의 침묵 끝에 집사는 결국 걸음을 돌렸다.

[5:59 AM]

소예리는 시계를 보았다가 팔짱을 끼었다.

“잠 다 잤네.”

[오전 6시입니다.]

[‘외출금지(L)’ 디버프가 해제됩니다.]

아침이었다.

***

선잠 잤다. 난 눈을 번쩍 떴다.

그리고 어제 새벽에 떴던 알림창을 빠르게 지웠다.

그중에는 소예리 헌터가 경고를 받았다는 내용도 있었다.

[클로나 에이센(예리언님) - S급(보조)

- 버프 : 시너지(A)

- 디버프 : 저택의 강력한 규율(L) 감시(L) 경고1(L)]

어제 들켜서 생긴 건가 본데…….

내가 눈살을 찌푸렸을 때였다.

―쿵쿵.

노크소리가 울렸다.

“들어와요.”

근데 여기 방음 쥑이던데 내 목소리가 밖에 들리려나?

―달칵.

하지만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는 듯이 하녀는 당연하게도 내 방에 들어왔다.

……저거 답 듣고 들어온 거 맞겠지?

의심하는 사이 하녀는 방의 테이블 위에 뭔가를 올려놓기 시작했다.

선물은 아닌 것 같은데?

슬쩍 보니 그건 웬 지도 같은 것이었다.

[메이든]

[령 지도]

네 조각으로 나뉘어 있는 것 중에 두 조각에 이어져 쓰여 있는 걸 보니 확실했다.

근데 저걸 뭘?

“이 중 한 가지를 골라 나오시면 됩니다.”

그러더니 하녀는 소리 없이 방을 나가 버렸다.

품위 따지더니 손님 대우 한번 끝내주는 집구석이란 말이야.

내가 눈썹을 치켜올렸을 때였다. 시스템창이 불쑥 떴다.

[저택의 주인은 손님들의 ‘우애’를 시험하고자 합니다.]

“오?”

우애 하면 우리 아니겠습니까? 내가 자신 있게 웃었을 때였다.

[네 명이 각기 다른 지도 조각을 가지고 나와 지도를 완성하세요.]

[실패 시, 헌터 신유리(S) 헌터 주이안(S) 헌터 신재헌(S) 헌터 소예리(S)의 경고 수치 1 증가]

파티원이라고 안 쓰고 이름을 늘어놓는 이유는 분명했다.

지도도 네 조각. 우리도 네 명.

같이 던전에 들어와서 우리와 같은 파티 취급을 받고 있는 동제국 놈들하고는 관계없이, 우리에게만 주어진 미션이라는 의미다.

[세니아 드 에델바이스(신유리)>>> 제가 1번 들고 나갈게요]

[디버프 ‘저택의 강력한 규율(L)’의 효과로 헌터채팅을 사용할 수 없습니다.]

“……아, 맞다.”

채팅 안 되지! 난 머리를 짚었다.

잠깐, 그럼 우애 시험은 어떡하라고?

아니 우애 시험을 헌터채팅 뺏고 이심전심으로 하는 게 어딨어???

이래 봬도 넷 다 찍먹파에 반민초파인 우리였다.

이런 건 같은 거 갖고 나가는 걸로 해야지! 다른 거 갖고 나가는 게 어딨어!

난 머리를 싸맸다.

이대로면 경고 1회가 더해질 것이 분명했다. 그럼 소예리 헌터와 신재헌은 경고 2회가 된다.

위험하다.

그렇게 생각한 순간이었다.

불쑥 시스템창이 떴다.

[헌터 소예리(S)의 ‘방구석 1열(A)’ 스킬 효과를 승인하시겠습니까?]

[Y / N]

“오?”

이게 돼? 분명 갇힌 공간에선 안 될 텐데?

문 쪽을 돌아보니 고맙게도 하녀는 문을 아주 조금의 틈을 남겨두고 열어놓고 간 상태였다.

소리 없이 밖으로 나올 수 있게 배려한 것이 분명했다.

고맙다!

이걸로 시야 공유하면 내가 뭐 집어 가는지 볼 수 있겠지?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예리언님 역시 천재야! 우리 우애가 이렇게 지켜집니다!

[Y]

내가 스킬을 승인하자마자 시스템창이 줄줄이 올라왔다.

[헌터 신재헌(S)이 헌터 소예리(S)의 ‘방구석 1열(A)’ 스킬 효과를 공유받습니다.]

[헌터 주이안(S)이 헌터 소예리(S)의 ‘방구석 1열(A)’ 스킬 효과를 공유받습니다.]

이제 내가 뭘 집어가는지 세 사람 모두 볼 수 있게 될 것이다.

난 내 시야를 공유받을 세 사람을 위해 손으로 브이를 만들어 보인 다음, 지도의 첫 번째 조각을 집었다.

[헌터 소예리(S)의 ‘방구석 1열(A)’ 스킬 효과가 해제됩니다.]

내가 방 밖으로 나가는 사이 시스템창이 다시 올라왔다.

[헌터 소예리(S)가 ‘헌터 주이안(S)의 시야’를 공유하고자 합니다.]

[Y / N]

주이안 씨가 뭐 고르는지 보라는 듯했다.

난 이미 집고 나온 이상 볼 필요는 없었지만 그냥 Y를 선택했다.

그러자 주이안 씨의 시야가 공유되어 보이는 게 보였다.

방의 인테리어는 내 방과 소름끼치게 똑같았다. 시스템이 우리 방을 그냥 복붙해서 만들었다는 증거였다.

얼씨구.

하지만 보이는 건 달랐다.

이게 윗공기인가?

주이안 씨의 시야를 공유받을 일은 많이 없어서 새로웠다.

특히 나와는 다른 눈높이가…… 매우…… 새롭다…….

[…….]

주이안 씨는 방구석에 있는 메모지 위에 정갈한 글씨를 써 보였다.

[두 번째 조각 가져갈게요.]

혹시 착오라도 있을까 봐 알려주는 것이 분명했다.

나도 아까 브이 대신 검지만 들어 보인 다음에 나올 걸 그랬나?

브이 했다고 2번 골랐다고 착각하는 거 아니겠지?

주이안 씨의 시야 공유가 꺼지자마자 방문이 열리는 게 보였다.

“잘 들고 나왔죠?”

내 말에 주이안 씨가 온화하게 웃었다.

“예.”

[헌터 소예리(S)가 ‘헌터 신재헌(S)의 시야’를 공유하고자 합니다.]

[Y / N]

이번엔 신재헌이었다.

화면 공유를 승낙하자마자 불쑥 보인 건 말레티아의 검이었다.

방금까지 잔 거 아니었어? 검은 왜 보고 있어?

뒤늦게 제 시야가 공유된다는 걸 떠올렸는지 말레티아의 검을 인벤토리에 던져 넣은 신재헌의 시야가 움직였다.

성큼성큼 테이블로 다가간 그는 세 번째 조각을 노크하듯 두드리다가 집어 들었다.

그리고 곧 방 밖으로 나왔다.

“아니 뭔 우애 테스트를 이딴 걸로 한대요?”

그도 나와 같은 게 불만이었던 모양이었다.

“방구석 1열 없었으면 망할 뻔했는데.”

그 말에 주이안 씨가 웃었다.

“그래도 이런 상황이라면 각자 다른 걸 선택하지 않았을까요?”

그 말에 나와 신재헌은 멈칫했다.

과연 그랬을까?

나름 짱돌은 굴렸겠지만 세상 모든 일이 짱돌 굴린다고 잘되는 건 아니잖아요?

난 소예리 헌터의 시야가 공유되는 걸 보면서 두 남자에게 말했다.

“방구석 1열 없었으면 원래 뭐 골랐을 것 같아요?”

내 말에 답하려는 두 사람에게 난 검지를 들어 보였다.

“하나 둘 셋 하면 동시에 말하기.”

그 말에 두 남자가 내 신호를 기다렸다. 말이 없어진 두 사람을 보니 뜬금없이 귀여웠다.

“하나, 둘, 셋.”

난 구호를 세자마자 바로 말했다.

“1번.”

“1번이지.”

“4번이요.”

그리고 신재헌과 주이안 씨가 나란히 말했다.

나와 동시에 1번을 외친 건 신재헌이었다.

“이런.”

주이안 씨가 난감한 듯 웃었다.

그러는 그의 앞에서 나와 신재헌의 시선이 부딪쳤다.

“왜 1번이야?”

“뭐든 첫 번째가 제일 좋잖아.”

이놈…… 나랑 생각이 똑같은데?

아무래도 소예리 헌터가 방구석 1열을 써준 건 신의 한 수였다.

[…….]

그러는 사이 소예리 헌터가 공유한 시야로 그녀의 손이 브이를 하는 게 보였다.

장난스럽게 손가락을 접었다 펴기를 반복한 그녀는 날래게 4번째 조각을 집더니, 밖으로 빠져나왔다.

[‘방구석 1열(A)’ 스킬 공유 효과가 해제됩니다.]

방 밖으로 고개를 내민 소예리 헌터가 예쁘게 웃었다.

“나 끝내주죠?”

난 말 없이 그녀에게 엄지를 척 들어 보였다.

“없었으면 우리 경고 먹었어요.”

“진짜? 그래도 같이 있던 시간이 있는데 나름 머리 굴리면 다른 거 찍고 나오지 않았을까요?”

이쪽도 헌터팀 희망편을 말하고 있었다. 난 그런 그녀에게 물었다.

“원래대로라면 뭐 뽑고 나올 것 같은데요?”

그 말에 소예리 헌터는 고민도 없이 말했다.

“4번.”

그 말에 우리 셋은 나란히 고개를 돌렸다.

“앞으로도 방구석 1열 애용합시다.”

“망할 뻔한 거 맞잖아요.”

나와 신재헌의 말 사이로 주이안 씨의 웃음소리가 울렸다.

소예리 헌터가 눈을 깜빡였다.

“뭐야? 뭐야? 누가 누구랑 겹쳤는데?”

“둘둘씩 겹쳤어요.”

난 신재헌과 나, 주이안 씨와 소예리 헌터를 번갈아 가리켜 보였다.

소예리 헌터는 충격받은 얼굴로 물었다.

“뭐야? 왜 주이안 헌터님이 4번이에요?”

“네?”

“나이순으로 고르는 거 아니었어?”

소예리 헌터는 충격받은 얼굴이었다.

주이안 씨도 멈칫했다.

“이름 가나다순 아니었습니까?”

각자의 주장을 설파하는 가운데 나와 신재헌은 손을 내저었다.

우애고 뭐고 스킬로 만드는 거라는 헌터 세상의 이치를 뼈저리게 깨닫는 순간이었다.

[‘지도 맞추기’ 미션을 무사히 클리어하였습니다!]

[‘연회 : 메이든 부인의 시험’이 시작됩니다. 연회장으로 이동하세요.]

시스템창이 떴다.

***

손님이라더니 연회장으로 안내해주는 사용인 한 명도 없는 상황이라 우리는 알아서 연회장으로 갈 수밖에 없었다.

1층이나 3층으로 향하는 계단 쪽은 새까만 장벽으로 막혀 있으니 결국 이 2층에 연회장이 있다는 말이다.

우린 황궁 뺨치게 넓은 저택을 돌아다니며 연회장을 찾았다.

그리고 우리가 거대한 방을 일곱 개쯤 열었을 때.

여태껏 방을 찾는 데 집중하는 것처럼 보였던 신재헌이 슬쩍 내 옆으로 다가왔다.

“너 뭐 없어졌어?”

“응?”

이놈은 무슨 자다가 봉창 두드리는 소리야?

돌아보니 신재헌은 뜻밖에도 진지한 얼굴이었다.

“가장 아끼는 물건 말이야.”

아, 그거? 말하려던 난 멈칫했다.

내 아이템창에서 사라진 건 내 물건뿐만이 아니었으니까.

……잠깐.

왜 두 가지가 사라지나 했더니, 하나가 신재헌 걸로 처리돼서 나간 거였어?

내 인벤토리인데???

우리 둘의 시선이 마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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