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2화
[‘불침번(SS)’ 스킬을 사용합니다.]
[‘불침번(SS)’ 스킬을 취소합니다.]
[‘불침번(SS)’ 스킬을 사용합니다.]
……
소예리는 연달아 스킬을 껐다 켜면서 웃음을 터뜨렸다.
[아이반 엘레티아 폰 카르만(신재헌터님) - S급(딜러)
- 버프 : 시너지(A) 기분전환(A)]
[아리엔사 시안 데마르(이안님) - S급(힐러)
- 버프 : 시너지(A) 안정(S)]
그리고 결국 백기를 드는 헌터팀을 보면서 빙그레 웃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깐. 가늘게 뜨인 눈이 곧 한 곳에 멎었다.
[아이반 엘레티아 폰 카르만(신재헌터님) - S급(딜러)]
아까 분명 저기에 ‘검의 수호자’ 스킬이 올라왔었는데.
너무 익숙한 스킬이라 몰랐다.
생각해보면 숲속에서 싸울 때부터 스킬 랭크가 어딘가 눈에 밟힌다고만 생각했다.
길게 볼 시간이 없어 미처 보지 못했다. 그리고 너무 갑작스러워 쉽게 발견하지 못한 것이기도 했다.
[검의 수호자(B)]
“원래 A였을 텐데.”
……신재헌 헌터의 스킬 랭크가 내려갔다는 사실을.
소예리는 팔짱을 낀 채 뇌까렸다.
놀라긴 놀랐다.
하지만 찬찬히 생각해 보면 왜 스킬 랭크가 내려갔는지 짐작하지 못할 일은 아니었다.
신재헌 헌터의 돌발행동은 십중팔구 헌터팀의 안위, 특히 신유리 헌터와 관련이 있다는 걸 알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스킬이 내려간 타이밍을 보면 답이 대충 나왔다.
딱 신재헌 헌터가 긴 시간 말이 없었던 시간. 그리고 동제국의 황태자였던 파리스가 실종되었을 즈음.
그때를 전후로 스킬 레벨 페널티를 받은 거라면 답은 하나뿐이었다.
“어휴.”
사랑도 좋지만 그것도 본인이 남아 있어야 하는 건데.
그녀는 파티창을 들여다보다가 몸을 일으켰다.
어쨌든 불침번에 방음벽 스킬을 잔뜩 써서 세 헌터를 억지로 재워 놓았으니, 불침번은 이쪽이 서야 했다.
마음에 걸리는 점이라면.
그녀는 초대장을 펼쳐 다시 규칙을 확인했다.
[넷. 밤에는 어떤 소리가 나더라도 방 밖으로 나오지 마세요. 손님들이 위험할 일은 없답니다.]
이 부분이 마음에 걸린단 말이야.
하필이면 소리 운운하면서 밖으로 나오지 말라고 하는 것이.
다르게 말하면 밖에서 수상한 일을 할 테니까 나올 생각 하지 말라는 거 아냐?
그러나 SS급 던전에서 수상한 일이 벌어질 걸 알면서도 가만히 두는 헌터는 없다.
그걸 모두가 알기에 각자 불침번이 되겠다고 주장한 것이리라.
“판도 딱 깔려 있고.”
아무래도 느낌이 안 좋단 말이지.
소예리는 문고리에 손을 올린 채 고민했다.
규율을 어기면 경고에 걸린다.
근데 그 경고 판정이 ‘사용인들에게 들켰을 때’만 내려지는지, 아니면 품위 어쩌고 하면서 데미지 먹이듯이 저택의 주인이 마음대로 주는 것인지는 나가 봐야만 알 수 있었다.
그래도 더 고민하고 있을 시간은 없다. SS급 던전의 함정이 언제 방에 들이닥칠지 모르니까.
―달칵.
소예리는 문고리를 과감하게 잡아 돌렸다.
[…….]
슬그머니 고개를 내밀어 바깥을 확인할 때까지도 시스템창은 조용했다.
아무래도 들켜야 경고에 걸리나 본데?
소예리는 슬쩍 방에서 나왔다.
“오.”
그리고 방에서 나오자마자 시스템창이 떴다.
[‘외출금지(L)’ 디버프 효과를 받습니다.]
소예리는 움찔했다.
방에서 완전히 몸이 나와야 디버프 걸리는 거였어?
그런데 경고와는 다른 것인 듯했다.
[외출금지(L) : 밤에 밖으로 나온 상태. 사용인들에게 들키면 경고를 받습니다.]
“아하.”
설명을 본 소예리는 가슴을 쓸어내렸다.
아직 경고는 아니네!
안심하자 그제야 외부의 소리가 귓가에 들려오는 게 느껴졌다.
무서울 정도로 고요한 방 안과는 딴판이었다.
아무래도 방 안에는 바깥의 소리를 듣지 못하는 장치를 해둔 게 분명했다.
“이런 곳에서 방에 가만히 있으면 바보지.”
소예리는 문을 소리 없이 닫은 후 복도 입구로 다가갔다.
하필 네 사람이 배정된 곳은 막다른 복도였다.
게다가 이 복도로 접근하는 길은 하나밖에 없었다.
요컨대 밖에서 뭐가 오면 습격당하기 딱 좋은 위치라는 소리였다.
“흐음.”
뭐가 올지 모르는 이런 데에 경고 1회인 신재헌터님에 연약해진 우리 유리 헌터님이나, 공격 스킬 하나 없는 주이안 헌터를 내보낼 수는 없지.
최대한 안 걸려야겠지만, 경고에 걸려도 이제 1회인 소예리 자신이 나오는 게 가장 나았다.
무엇보다 그녀가 경고를 감수하고서라도 바깥의 사정을 살피려는 건 이유가 있었다.
‘…….’
저택에 들어오면서부터 느꼈던 그 묘한 분위기.
특히 안주인과 대립하는 것 같은, 이 저택의 또 다른 주인 ‘리펜’이라는 자.
사용인들도 주인들의 알력에 따라 두 파로 나뉘어 있는 게 보였다.
그리고 저택 배경인 특수던전에서 저택 내부의 사정을 알아내는 건 필수적인 일이었다.
그 일에 특화된 건 역시 보조계인 자신이었다.
[‘귀는 어디에나 있다(B)’ 스킬을 사용합니다.]
[반경 2km 이내의 소리를 선명하게 들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스킬을 켜자마자 소예리는 귀청이 떨어져 나가는 줄 알았다.
「너!」
날카로운 목소리가 귓가를 파고들었다.
“엄마야~”
소예리는 저도 모르게 귀에 손을 가져갔다.
너무 선명한 목소리라 처음에는 누가 복도에서 제게 소리치는 줄 알았다.
그런데 그게 아니라 멀리에서 스킬을 타고 들려오는 소리였다.
어느 방향이지?
그녀는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귀는 어디에나 있다’ 스킬에 위치추적 기능이 달린 건 아니었으므로, 정확한 위치 특정은 불가능했다.
하지만 방향 정도는 짐작이 갔다.
“……위?”
소예리가 중얼거릴 때였다.
날카로운 소리가 다시 그녀의 귓전을 때렸다.
「또, 또 이상한 애들을 데려왔어!」
“어우.”
소예리는 귀어디 스킬을 꺼버릴 뻔했다.
그녀가 눈썹을 치켜올렸다.
아니, 손님한테는 품위 지키라고 닦달이더니 이렇게 소리 지르는 사람은 품위 있어서 안 잡는 거야?
“아니지, 잠깐만.”
소예리가 다시 위를 올려다보았다.
여긴 2층이다. 그리고 이 저택은 5층인 데다가 상층부로 갈수록 지위 높은 사람이 머무는 건 상식이다.
그런데 여기서 이렇게 소리를 지를 수 있는 사람이면?
……저택의 안주인 아니야?
날카로운 목소리는 중년 부인의 것이었으니 거의 확실했다.
아니, 본인 품위는 어디다 갖다 버리시고 우리한테만!
소예리가 눈을 가늘게 떴다.
밤에 나오지 말라는 것도 부부싸움 하려고 그랬냐!
저택의 안주인과 소리 지르면서 싸울 만한 사람이면 뻔하다―
그렇게 생각한 순간이었다.
「……이상한 애들 아니에요.」
답하는 목소리에 소예리는 멈칫했다.
예상 밖의 앳된 목소리. 그건 어린아이의 목소리였다.
설마?
소예리의 시선이 저도 모르게 위로 올라갔다.
「저번엔 귀족으로서의 소양도 없는 것들을 데려와서는 기가 차게 하더니! 이번에도 똑같아!」
아무래도 우리 얘기 같은데? 소예리가 팔짱을 낀 채 귀를 기울였다.
「이번에 온 애들도 검을 들고 있었다더구나! 또 네가 그렇듯 미친 망아지처럼 날뛰는 아이들이겠지!」
뭔 망아지? 소예리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그때 아이의 주눅 든 목소리가 들려왔다.
「검도…… 귀족이…….」
아이가 뭐라고 말을 끝내기도 전에 중년의 부인이 윽박을 질렀다.
「검은 네 나이에 익히라고 있는 게 아냐! 내가 정해준 대로 따라오기만 하라는데, 왜 이렇게 말썽이야? 내 말대로 하는 게 그렇게 어려워?」
신경질적으로 한숨을 내쉰 부인이 다시 소리 질렀다.
「근본 없이 자랐다는 소리 듣고 싶어!?」
“와우.”
소예리는 저도 모르게 감탄했다.
애를 무슨 근본까지 따지면서 혼내요?
아니, 근데 뭐 때문에 혼나는 거야?
그녀는 다시 귀를 기울였다.
「……연습할게요.」
아까보다 더 주눅 든 남자아이의 목소리가 들렸다. 안쓰러울 정도로 기가 죽어 있었다.
그리고 울먹이는 소리가 섞여 들려왔다. 소예리가 조금 인상을 썼다.
―♬♬
그때 피아노 소리가 울렸다.
아이가 꾹꾹 눌러 치는 것 같은 피아노 음은 다소 두서없었다.
음정은 모르겠고 박자가 무시당하고 있는 건 분명했다.
「다시!」
중년 부인이 외치자 피아노 연주는 처음부터 다시 시작되었다.
피아노 배우라고 하는 건가? 하긴, 저택 배경인 데다 귀족 소양 어쩌고 할 거면 악기 연주 하나쯤은 배워둘 법도 했다.
문제는 불행하게도 아이가 피아노에 지독하게 재능이 없다는 점이었다.
……아니면 흥미가 없거나.
「리펜!」
결국 아이가 다섯 번쯤 실수할 때 중년 부인이 다시 소리를 질렀다.
“리펜?”
소예리는 눈을 크게 떴다.
아까 사용인들이 리펜 님 어쩌고 하지 않았나?
‘리펜 님의 손님들인가 봐.’
우릴 보고 분명히 그렇게 말했지.
그 리펜이 누군가 했는데 남자애였어?
“아하…….”
소예리의 머릿속에서 빠르게 퍼즐이 맞추어지기 시작했다.
무기를 가져갔던 사용인들.
그때 우리는 일제히 검을 내밀었고 사용인들은 그걸 받아갔다.
그리고 그 사실은 이 저택의 안주인이자 리펜의 어머니인 메이든 부인의 귀에 들어간 모양이다.
그리고 어머니는 리펜이 ‘아직 배울 필요가 없는’ 검을 휘두르는 ‘미친 망아지 같은’ 친구보단, 좀 더 정적이고 교양 있는 친구들을 초대하길 원하는 모양이었다.
피아노를 억지로 가르치는 것도 그 때문이고.
“흐음.”
확실한 건 이 저택에 영향을 끼치는 어린 주인과 안주인이 대립 관계라는 점이었다.
어린 리펜보다는 안주인의 입김이 강한 것은 당연할 테고.
“혹시 동제국은 메이든 부인 쪽 손님으로 처리돼서 그렇게 잘 대접받은 건가?”
마차 타고 온 것하며.
물론 경고를 다발로 받아든 걸 보니까 그쪽도 만만찮게 험난했던 모양이지만 SS급 던전이니 날로 먹으려고 들면 곤란하다.
“대충 설정이 이해가 가네.”
특수던전에 한두 번 온 것도 아니고 상황을 짜 맞추는 건 순식간이었다.
맨 처음 마차를 탈 때, 이 던전에 들어온 사람이 어느 쪽의 손님인지 정해진 게 분명했다.
마차를 타고 간 동제국 놈들은 당연히 저택에서 입김이 강한 안주인, 메이드 부인의 손님이자 그녀가 원하는 ‘아들의 친구가 될 만한 품격 있는’ 자들로 설정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별로 품격 있는 관상들은 아니었지.”
그래서 다발로 경고를 받은 모양이다.
반면 우리는 마차를 타지 않고 걸어왔다.
처음부터 찬밥신세인 게 왜 그런가 했더니 리펜이 초대한 친구 역할이자, ‘안주인의 마음에 별로 차지 않는’ 사람들이기 때문이었나 보다.
“좋아…….”
대충 어떻게 된 일인지 알겠으니 이 정보는 헌터팀에게 전해줘야 할 터였다.
그녀가 머릿속을 정리하고 있을 때였다.
―또각, 또각.
소리를 최대한 죽인 것이 분명한 구둣발 소리가 귓전을 파고들었다.
‘귀는 어디에나 있다’ 스킬 덕에 잘 들렸다.
그리고 그 발소리는 점점 이 복도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
갑옷을 입은 자의 무거운 발소리는 아니다.
소예리는 순간 방 안으로 들어가야 할지 갈등했다.
하지만 그녀는 이내 고개를 저었다.
경고를 받더라도 넷이 각자 습격당하는 것보다는 넓은 곳에서 자신이 상대하는 게 낫다.
―탁.
그리고 이내 가까워진 발소리의 주인이 그녀가 있는 복도로 들어섰다.
“……!”
발소리의 주인, 집사는 그녀를 보고 멈칫했다.
그 순간.
[‘헌터 소예리(S)’가 ‘저택의 규율 4번’을 어겨 경고를 받습니다!]
[밤에는 밖에 나오지 마세요!]
[클로나 에이센(소예리) - S급(보조)
- 버프 : 시너지(A) 귀는 어디에나 있다(B)
- 디버프 : 강력한 저택의 규율(L) 감시(L) 경고1(L)]
이런. 소예리가 눈을 가늘게 떴을 때였다.
[아이반 엘레티아 폰 카르만(신재헌터님) - S급(딜러)
- 버프 : 검의 수호자(B) 뜨거운 피(A) 화염검(SS)]
경고가 뜬 걸 봤는지 반응이 빨랐다. 소예리가 움찔했다.
신재헌터님 안 자고 뭐 해! 키 안 커! 얼른 자!
[‘방음벽(S)’ 스킬을 사용합니다.]
[‘방음벽(S)’ 스킬을 사용합니다.]
조용히 있어! 그러는 사이 집사가 입을 열었다.
“밤에는 나오지 말라는 규칙이 초대장에 쓰여 있었을 텐데요…….”
눈을 가늘게 뜨는 것이 손님보단 불청객을 보는 시선이었다.
음, 이쪽은 역시 안주인 쪽 사람인 모양이다.
“방에 창문이 안 열리더라고요.”
소예리는 능청스럽게 받아쳤다.
“답답해서요.”
그 말에 집사는 잠시 침묵하다가 말했다.
“……사용인들에게 조치하라 지시할 테니, 들어가시죠.”
강압적이네? 소예리는 살짝 눈썹을 치켜올렸다.
어떻게든 방 안에 넣으려고 하는 것 같으니 그대로 따라줄 생각은 없었다.
“근데 그건 뭐죠? 선물인가요?”
그녀는 집사의 손에 들린 상자를 가리켰다.
가끔 손님들이 오면 귀족가에서 숙면을 위해 준비하는 향 같은 것을 새벽에 준비하고는 했지만, 그런 걸로는 보이지 않았다.
향이라 한들, 남자인 집사가 여자 손님들의 방에까지 들어가게 할 리는 없었다.
그리고 이 복도에는 네 사람의 방뿐이니, 저 상자에 수상한 것이 들어있는 게 분명하다.
“……별 것, 아닙니다.”
아니나 다를까 집사가 멈칫하다가 상자를 뒤로 감추었다.
호오오.
“이쪽에 볼일이 있으셨던 것 아닌가요?”
소예리가 손을 펼쳐 보였다. 그러자 집사가 당황한 듯 말했다.
“길을 잘못 들었습니다.”
집사가 저택에서 길을 잘못 들어?
어이없는 답이었지만 소예리는 추궁하지 않았다.
[S] [S] [S] [S]
집사가 들고 있는 상자 위에 네 개의 등급이 올라와 있었기 때문이었다.
앞구르기 하고 보고 뒤구르기 하고 봐도 몬스터였다.
집사가 방에 놓고 가려 했던 것이 분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