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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던전의 S급 시한부 영애 (127)화 (127/218)

127화

―후웅!

그 순간 별안간 경비병의 몸이 하늘로 휑 날아가 버렸다.

“?”

놀란 나와 주이안 씨는 물론이고 찔리기 직전이었던 신재헌까지 황당한 눈으로 하늘을 쳐다보았다.

그 아래로 붉은 바람이 반짝이는 게 보였다.

“어?”

저거 마탑에 있던 바람 엘리베이터 아니야?

경비병은 소예리 헌터의 비행 스킬과 바람 마법에 갇혀 허우적거리고 있었다.

이걸 이렇게 막네?

“소생 받는 줄 알았네.”

신재헌이 짧은 숨을 내쉬었다. 그때 허공에서 아동바동하던 경비병이 분노에 찬 눈을 번뜩였다.

―파악!

그리고 창을 아래로 던져 꽂으려고 했다.

―후웅!

하지만 팔이 불끈 솟아오른 정성도 허무하게 그 창 역시 허공을 부유하기 시작했다.

“……하긴, 말레티아의 검도 뜨는데 창 집어 던진 게 안 뜰 리가.”

신재헌의 말레티아의 검은 SS+급 이상의 귀속 스킬이 붙은 아이템이다.

주인이 아닌 사람이 들면 엄청난 무게를 디버프로 부여하는 스킬.

그런 말레티아의 검도 들어 올리는 바람이 SS급 경비병의 창 따위에 꿰뚫릴 리가 없었다.

저 바람 엘리베이터 완전 사기인데? 못 갖고 나가나?

손에 창도 없어진 경비병이 허무한 표정으로 우릴 내려다보는 동안, 난 불쑥 물었다.

“그냥 저대로 날려버리면 안 돼요?”

평화롭게 로X단 엔딩으로 가면 안 될까? X켓단처럼 하늘 멀리 별이 되어 사라지면 소음 낼 일도 없지 않을까요?

소예리 헌터가 눈을 깜빡였다.

“그러게? 그냥 날려버릴까?”

저택 밖으로 아웃시키면 되지 않을까?

“경비병이 날아가는 걸 다른 경비병들이 볼 수도 있습니다.”

주이안 씨는 우리의 킹쓰빅한 아이디어에 제동을 걸었다.

“그럼 어쩔 수 없죠.”

받아라. 난 신재헌의 어깨를 툭툭 두드렸다.

[잔상(SS+) 스킬을 국소 범위에 적용합니다.]

[적용 범위 : 헌터 신재헌의 ‘말레티아의 검(SS+)’]

[헌터 신재헌, 잔상(SS+)효과 승인.]

내 잔상 스킬을 시작으로 신재헌의 버프창에 버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아이반 엘레티아 폰 카르만(신재헌놈) - S급(딜러)

- 버프 : 시너지(A) 검의 수호자(B) 화염검(SS) 책임감(S) 준비된 일격(S) 기혈개방(S) 육참골단(SS) 뜨거운 피(A) 잔상(SS+) 순간집중(SS) 극대화(S)]

그동안 검을 든 채 몸을 푼 신재헌이 경비병을 올려다보았다.

그때쯤 경비병은 공포에 찬 눈으로 그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하긴, 호랑이 굴에 똑 떨어져 내리게 생겼으니 무서울 만도 했다.

신재헌은 검을 아래로 늘어뜨린 채 각까지 잡고 있었다.

“안녕해, 안녕~”

그리고 준비가 끝나자, 소예리 헌터가 딱! 손을 튕겼다.

“으아악!”

―빠악!

하늘에서 떨어져 내린 경비병은 SS급 보스 수학선생님 HP도 반절로 날려버린 풀버프 일격을 맞고 깔끔하게 절명했다.

“SS급이었네.”

잡고 나니 랭크가 보이는지 신재헌이 눈을 가늘게 떴다.

아까 신재헌이 창을 막느라 낸 소리 외에는 소음이라고 판정되지 않았는지, 더 경고를 받은 사람은 없었다.

문제는.

“!”

난 본능적으로 목 뒤가 서늘해지는 걸 느꼈다.

주변에 강한 몬스터들이 몰려오고 있다.

B랭크여도 스탯이 높은 데다 딜러의 본능까지 어디로 가는 건 아니었기에, 신재헌 다음으로 느낄 수 있었던 듯했다.

나와 신재헌의 눈이 마주친 순간.

“근처로 몬스터가―”

일행 주변으로 감지 결계를 유지하고 있었는지 주이안 씨가 고개를 번쩍 들었다.

그리고 그가 그렇게 말했을 때 이미 몬스터들은 지척까지 다가온 상태였다.

일단 숨어!

나와 신재헌은 옆에 있는 사람 한 명씩을 냅다 들고 인기척이 나는 곳 반대편으로 뛰어갔다.

다행인 건 아까 우리가 잡은 경비병이 몬스터로 처리돼서 재로 날려 사라졌다는 점이었다.

―타타탁!

우리가 나무 뒤로 숨자마자.

경비병들이 쏙쏙 고개를 내밀었다. 그들은 여덟 명이었다.

“분명 이 근처에서 소리가 들리지 않았나?”

그들이 주변을 두리번거리기 시작했다.

***

“…….”

난 숨을 참은 채 그들을 보았다.

주변을 쓸데없이 두리번거리기만 하는 걸 보니 수색 관련 스킬은 없는 것 같았다.

시야에 들어가지만 않으면 될 것 같은데. 쓸데없는 소리 내지 말고.

난 슬쩍 잡고 있던 사람의 입을 막은 손을 풀어냈다.

“거기서 멍 때리고 있으면 얻어맞아요.”

그리고 아주 작게 속삭였다.

S급이어도 힐러는 힐러였다.

난 주이안 씨를 흘끗 올려다보았다.

내 앞에 서 있는 연갈색 머리칼의 힐러님은 빳빳하게 굳어 있었다.

어쩐지 들고 오는데 나무토막 들고 오는 기분이더라니.

“괜찮아요? 어디 부러진 건 아니지?”

난 굳은 그의 팔 뒤에서 슬쩍 고개를 들이밀며 속삭였다.

“아, 괜찮습니다.”

그제야 주이안 씨가 삐걱삐걱 답했다.

놀라긴 엄청 놀란 듯했다.

“신유리 헌터님은 괜찮으십니까?”

없는 정신이 이제야 돌아온 것 같은 그가 물었다. 난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S급 옮기는 거 가지고 데미지 받진 않아요.”

이래 봬도 던전 시작할 때보다 십만 배 이상 튼튼해졌다고! 난 손을 내저었다.

“……이렇게 빨리 접근할 줄은 몰랐습니다.”

주이안 씨는 나를 돌아보지도 않고 말했다. 경비병 쪽으로 시선을 준 채였다.

“쉿.”

고개 집어넣고!

누가 딜링기 하나 없는 퓨어힐러 아니랄까 봐 이런 잠입이나 은신에는 약한 그였다.

난 그의 얼굴을 나무 뒤로 잘 집어넣어주며 바깥을 흘끗 내다보았다.

“흐음…….”

경비병들은 날카로운 눈으로 주변을 살피고 있었다.

다행히 고개를 빼꼼 내밀었던 주이안 씨를 보진 못한 듯했다.

“지금부터 10초 동안 가만히 있는다, 실시.”

난 그런 주이안 씨의 어깨를 딱 잡아 세웠다.

은신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이 기척을 살피는 것보단 그냥 가만히 있는 게 나았으니까.

그러자 주이안 씨가 숨도 안 쉬고 움직임을 멈추었다.

아니, 숨은 쉬어도 되는데…….

말해줄까 하다 말았다. 으음, S급의 폐활량을 믿어보자.

***

“갈 때까지 숨어 있죠.”

신재헌이 낮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소예리는 눈을 깜빡였다.

눈 한 번 깜빡였을 뿐인데 눈앞이 후욱 변하더니, 두 번째 깜빡일 즈음에는 나무 뒤에 서 있었다.

“?”

몇 년이나 함께했으니 적응될 법도 하건만, 여전히 그녀는 눈이 돌아갈 정도로 빠른 딜러들의 움직임에 익숙해질 수가 없었다.

“분명 이 근처에서 소리가 들리지 않았나?”

경비병의 목소리가 들려 왔다.

그러고 보니 주이안 헌터님도 뭐가 온다고 했지?

그건 스킬로 탐지한 거고, 그렇다면 두 딜러는 뭐가 보이기도 전에 본능적으로 움직였다는 소리였다.

아마 주이안 헌터님 말이 끝난 후에야 움직였으면 꼼짝없이 저 자리에서 들켰을 것이다.

그럼 SS급 몬스터 8마리와 소리를 안 내고 대적해야 했을 거고.

[소음에 주의해 주세요.]

소예리는 초대장에 쓰여 있던 규칙을 떠올렸다.

[아이반 엘레티아 폰 카르만(신재헌터님) - S급(딜러)

- 버프 : 시너지(A) 뜨거운 피(A) 책임감(S) 검의 수호자(B)

- 디버프 : 저택의 강력한 규율(L) 감시(L) 경고1(L)]

경고가 박힌 신재헌의 시스템창도 보였다.

저게 3회가 되면 지하에 갇힌다고 했던가?

[지하층 없이 튼튼한 지반 위에 세워져 저택이 무너질 염려는 없으니…….]

하지만 안내 초반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그럼 경고 세 번을 받으면 어떻게 되는 거지?

오싹한 생각에 소예리는 멈칫했다.

신재헌 헌터가 더는 경고받지 않게 주의해야 할 듯했다.

“…….”

슬쩍 신재헌을 돌아보니 그는 심각한 얼굴이었다.

경비병이 다가오면 베어버릴 셈인지 말레티아의 검을 나무 뒤에 숨긴 채였다.

숨조차 쉬지 않고 집중하는 모습이다.

“…….”

그 옆모습을 본 소예리는 슬그머니 시선을 돌렸다. 그러고 작게 웃었다.

그래도 던전에 들어와서까지 기 싸움을 하진 않아서 다행이었다.

하긴, 목숨이 오가는 상황에서까지 치정싸움을 하기에는 S급인 그들의 경험이 너무 많았다.

그래, 사랑도 살아야 하지. 음음.

프로는 공사구분은 철저하게!

“…….”

재차 빙그레 웃은 그녀가 붉은 머리칼 끝을 꼬면서 생각에 잠겼다.

경비병들한테 수색 스킬이 있는 것 같진 않고, 여기서 들키지만 않으면 되겠다.

이럴 땐 가만히 있기지!

학창시절부터 유구하게 어딘가에서 튀어본 경험이 있는 소예리는 이런 상황에 나름 익숙한 편이었다.

……근데 주이안 헌터님도 잘 숨은 거겠지?

소예리가 흐뭇한 얼굴로 슬며시 나무 밖을 내다보았을 때였다.

“……!”

살짝 고개를 내민 채 바깥을 살피는 주이안의 얼굴이 보였다.

아니, 그렇게 대놓고 내밀고 있으면 어떡해?!

‘빨리 고개 집어넣어요!’

그녀가 손짓했다. 하필 헌터채팅도 안 돼서!

근데 주이안은 목석처럼 굳어 있었다.

아니, 자세히 보니…….

“…….”

새빨갛게 푹 익은 얼굴로 눈을 내리깔고 있었다.

그런 그의 얼굴을 누군가의 손이 불쑥 튀어나와 나무 뒤로 감추는 게 보였다.

보나마나 신유리 헌터님이다.

어휴.

소예리는 소리 없이 이마를 짚었다.

프……로? 공사구분 철……저?

그녀는 헌터팀에 대한 제 평가를 좀 수정할 필요를 느꼈다.

어휴, 이 순진한 힐러님을 어쩌면 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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