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5화
[이 규칙만 지켜주신다면, 메이든 저택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을 거예요.
다시 한번 손님을 환영합니다.]
초대장은 그렇게 끝나고 있었다.
외형 변신 물약 효과가 남아 있어, 아직 낯선 얼굴의 세 헌터와 내 시선이 마주쳤다.
“……!”
소예리 헌터는 뭐라고 채팅하려 했는지 시선을 시야 한쪽으로 주었다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러고는 손끝으로 입을 살짝 막아 보이더니 고개를 기울였다.
‘채팅 안 돼?’
대충 이런 질문인 듯했다. 난 고개를 끄덕였다. 안 되더라고요.
“으음.”
소예리 헌터가 팔짱을 낄 때였다.
“크흠.”
동제국 사람들도 초대장을 다 읽었는지 편지를 집어넣고 헛기침을 하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별안간 여유로운 척을 하면서 주변을 휘 둘러보았다.
우리가 떨어진 곳은 저택 입구로 들어서는 대로 앞이었다.
그리고 대로는 굽이굽이 언덕을 타고 이어져 저 멀리에 저택이 엄지손톱만 하게 보였다.
뭐라더라, 경박하게 뛰지 말라며?
그럼 걸어서 저기까지 가란 소리?
메이든인지 메이드 인 CXXXA인지 몰라도 손님 대하는 매너 하나는 끝내주는 듯했다.
“특이한 곳이군.”
그때 동제국 사람 하나가 다시 입을 열었다. 그들은 이미 옹기종기 넷이 모여 있었다.
“그래 봐야 게이트일 뿐이지.”
다른 동제국 사람이 말을 받았다.
여유로운 척하는 그의 손은 달달 떨리고 있었다.
센 척이나 하지 마라, 얘들아.
그때였다.
―히히힝!
먼 곳에서 말 울음소리가 들렸다.
돌아보니 덜커덕하는 소리와 함께 고풍스러운 마차 한 대가 오는 것이 보였다.
“마차?”
여기서 갑자기? 시작부터 마차 타고 시작한 것도 아니고?
“여덟 명이 타기에는 너무 좁아 보입니다.”
그때 주이안 씨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게요.”
기껏해야 네 명 타겠는데?
원래 4인용 게이트였나? 그런 제한은 없었는데?
그럼 남은 가능성은 하나였다.
저것이 함정일 가능성.
하긴, 언제부터 SS급 던전이 사람한테 친절하게 굴었다고 마차 타고 가길 기대해?
우리 팀이 일제히 고개를 돌렸을 때였다.
“?”
없어용!
동제국 놈들이 있던 자리엔 아무도 없었다.
얘들 어디 갔냐?
“기다렸소이다!”
그들은 우리에게 빼앗겨 마차를 못 탈세라 마차를 향해 점잖은 척 빠르게 걸어가고 있었다.
뛰지 말라는 규칙만 없었으면 저기까지 날듯이 뛰어갔을 게 분명했다.
“오.”
신재헌이 영혼 없이 감탄하는 가운데, 마차가 그들 옆에 멈춰 섰다.
“메이든의 손님이십니까?”
마부가 물었다.
네 명의 동제국 멍청이들이 나란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그럼 어서 오르시지요.”
마부는 그들의 초대장도 확인하지 않고 그들에게 손짓했다.
“크흠!”
“얼른 타, 얼른!”
그들이 속닥거리면서 재빨리 마차 좌석에 엉덩이를 붙이는 것이 보였다.
“…….”
“…….”
그들과 우리의 시선이 마주쳤다.
―히히힝!
그리고 마차가 출발하자, 안도하는 표정을 짓던 그들은 우리에게 승리의 미소를 날려 보였다.
“먼저 가겠소이다. 흐흠.”
그러더니 행복한 얼굴로 우리에게서 멀어져 갔다.
남은 우리 사이로 침묵이 감돌았다.
“…….”
그리고 마차가 멀리로 사라졌을 즈음.
―우웅!
세 사람의 외형변경물약 효과가 끝나고, 익숙한 얼굴들로 돌아오는 게 보였다.
신재헌은 외형변경물약이 끝나기 전이나 지금이나 어이없다는 얼굴이었다.
팔짱을 낀 것도 그대로였다.
“참 크게 될 놈들이네.”
“그러게.”
그건 나도 동감이었다. 소예리 헌터도 한마디 얹었다.
“애들이 아주 순수해요.”
“인간의 선함을 믿는 분들인 것 같습니다.”
주이안 헌터도 인벤토리에서 단안경을 꺼내 쓰면서 말했다.
“한 몇 년 만에 저런 순수한 호구들을 보는 것 같아요.”
난 걸음을 옮기면서 말했다.
어쨌든 저택의 손님이라니까 저택으로 가긴 가야겠지, 싶어서.
나란히 걸음을 옮기던 신재헌이 내 말을 받았다.
“그러게요. 튜토리얼 이후로 저렇게 순진하게 던전 믿는 사람들 얼마 없었는데.”
“난 마차가 몬스터로 변한다는 데 한 표.”
소예리 헌터님이 불쑥 말했다. 주이안 씨가 고개를 저었다.
“2년 전에 들어갔던 저택 던전을 생각해 보면 마부가 적일 가능성도 있습니다.”
2년 전? 어디 갔더라? 저택 RP가 있었나?
“맞아, 그때 마부가 변신하지 않았어요?”
소예리 헌터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물었다.
“말이랑 합체했죠.”
신재헌은 질린 얼굴로 말했다.
“그래도 다행히 말과 완전히 합쳐지기 전에 잡아서 문제는 없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주이안 씨가 빙그레 웃으면서 말했다.
“그랬나?”
내가 긴가민가한 기억을 살리고 있는데 소예리 헌터님이 말을 받았다.
“맞아, 신재헌터님이 한 방에 벴잖아.”
“아!”
그 말을 들으니 생각났다. 난 신재헌을 가리켰다.
“그때도 말 베서 이제 마차는 누가 끄냐고 욕하면서 뛰어가지 않았어요?”
내 말에 소예리 헌터님이 배를 잡고 웃기 시작했다.
신재헌이 얼굴을 구겼다.
“신유리 헌터님은 왜 기억을 해도 꼭 그런 걸.”
“내 가문명 에델바이스로 지어주신 분이 하실 말씀은 아닌 것 같은데.”
우린 서로를 눈을 가늘게 뜨고 노려보았다.
물론 그것도 잠깐이었다.
SS급 던전에서 이 이상 방심하는 건 곤란하니까.
“근데 정말 저기까지 걸어가야 되는 것 같은데요?”
하지만 마음을 다잡는다고 마라톤의 미래가 바뀌는 건 아니었다.
“어쩔 수 없죠.”
신재헌이 앞서서 걸어가기 시작했다.
그 뒤로 내가 섰고, 주이안 씨와 내가 나란히, 그리고 소예리 헌터가 맨 뒤에 섰다.
주변을 경계하면서 전진하는 것이었다.
“흐음.”
그래 봐야 앞뒤 뻥 뚫려 있는 마차용 대로에서 몬스터가 튀어나올 일은 없었기에, 걸음 걷는 소리만 날 뿐이었다.
그렇게 얼마나 걸었을까.
[마차용 대로로 걸어 다니는 것은 품위 있는 행동이 아닙니다!]
새빨간 경고 메시지가 떴다.
“얼씨구.”
그럼 마차를 주든가!
우리 넷은 동시에 한쪽으로 몸을 틀었다.
“저택 주인하고 별로 좋은 친구는 못 될 것 같은데요.”
신재헌이 투덜거리는 소리가 들려다.
“저택에 들어가면 더 엄격하게 행동이 제한될 것 같습니다.”
주이안 헌터도 조금 눈살을 찌푸린 채 말했다.
그렇게 우리가 대로변에서 숲으로 들어갈 즈음.
“어?”
난 눈을 크게 떴다.
내 어깨 너머로 고개를 쏘옥 내민 소예리 헌터도 나랑 같은 것을 보고 눈을 동그랗게 떴다.
우리 앞에는 밟히고 반쯤 뽑힌 풀들이 놓여 있었다.
정돈된 다른 곳과는 달리 명백하게 훼손된 곳이었다.
아까는 품격 지키라며?
품위 때문에 대로변으로 걷지도 말라며?
[품격 있는 말을 사용해 주세요.]
그 주의사항을 생각하면서 내가 입 밖으로 튀어나오려는 말을 참았을 때였다.
“저거도 품격 있게 관리해 둔 건가?”
우리들의 참지 않는 소예리 헌터가 불쑥 말했다.
그 순간.
―따악!
딱밤 소리가 들림과 동시에 소예리 헌터가 머리를 감쌌다.
“아야!”
소예리 헌터의 체력 게이지바가 조금 깎이는 게 보였다.
“!”
놀란 주이안 씨가 힐 스킬을 쏟아붓는 게 보였다.
“경고도 먹었어요?”
내 말에 소예리 헌터가 이마를 감싼 채 고개를 흔들었다.
그녀의 이마에는 정말 누가 꿀밤이라도 날린 것처럼 붉은 자국이 나 있었다.
그녀가 이마를 문지르면서 말했다.
“품위 있게 말해 달래요.”
그런 시스템창이 뜬 모양이었다. 난 어이가 없어서 입을 벙긋거렸다.
그건 신재헌도 마찬가지인 듯 우리는 비슷한 시선으로 서로를 마주 보았다.
지금 정원 꼬라지에 딴죽 걸었다고 품격 없이 말했다는 거야?
“……저택의 주인이 아무래도 자신의 미적 감각에 확신이 있는 것 같습니다.”
주이안 씨가 고급스럽게 말했다.
[…….]
그리고 저택의 주인은 그 평가에는 만족했는지 주이안 씨에게는 꿀밤을 날리지 않았다.
우리 셋은 나란히 감탄스러운 얼굴로 주이안 씨를 돌아보았다.
“이번 던전에서 우리 파티의 품격은 주이안 씨한테 달렸어요.”
난 주이안 씨의 어깨를 잡고 말했다.
우리가 욕 박고 싶을 때 주이안 씨가 대신 해 줘! 품격 있게 욕해 줘!
우리 셋의 열렬한 시선을 받은 주이안 씨가 곤란한 얼굴로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