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 던전의 S급 시한부 영애 (124)화 (124/218)

124화

[불가침영역은 지금껏 강력한 몬스터 때문에 접근하지 못했던 구역이 아닙니까? 그런 곳에서 몬스터들이 도망쳐 나온다는 건 필시 그 안에 더 강한 것이 있다는 뜻.

어쩌면 게이트가 있을지도 모르지요. 그러니 동서제국이 함께 조사단은 물론, 게이트 클리어 전문 병력까지 꾸려 조사하자는 아이반 황제의 말씀에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우리에겐 애석하고 동제국엔 기쁘게도, 파리스보단 훨씬 정상인인 것 같은 킨나는 그렇게 회신해 왔다.

문제는 저게 적어도 SS급 난이도 던전이라면 깰 수 있는 사람이 이 세계에 우리뿐이라는 점이었다.

[세니아 드 에델바이스(신유리)>>> 난 어차피 수호기사단장이라 자리 비워도 될 것 같거든요?]

수호기사단장이 게이트 박살 내러 가는데 불만 있는 사람?

일단 나는 문제가 없지만 다른 사람들이 문제였다.

마탑주와 교황과 황제가 동시에 자리를 비운다면? 그게 동제국에까지 알려진다면?

별로 좋지 않은 상황이 벌어질 것은 뻔했으므로 핑계가 필요했다. 우리가 최소 SS급 게이트를 클리어할 만한 시간 동안 자리를 비울 핑계가.

[클로나 에이센(예리언님)>>> 전 갑자기 연구병이 도졌다고 구라칠게요!]

[세니아 드 에델바이스(신유리)>>> 그건 구라가 아닌것같음]

[아이반 엘레티아 폰 카르만(신재헌놈)>>> 저는 2주쯤 자리 비운다고 써 놓으면 될 것 같네요.]

허구한 날 동네 마실 가는 황제 덕에 서제국의 미래가 밝아 보였다.

[아리엔사 시안 데마르(주이안씨)>>> 저도 자주 잠행을 나가니, 그걸로 핑계를 대면 될 것 같아요]

일단 이건 준비 끝났고.

다음 문제는 동제국 조사단과 만날 때였다.

공식적으로는 아직 불가침영역에 있는 게 게이트인지 아닌지도 모르는데, 거기에 교황, 황제, 마탑주 3종 세트가 따라온다?

이건 바로 페널티였다. 적어도 던전 들어갈 때까지는 모두를 속여야 했다.

그렇다면 답은?

[세니아 드 에델바이스(신유리)>>> 각자 변신할 사람 하나씩 잘 준비해 오세요]

정말 많은 문제가 신의 상점으로 쏙쏙 해결되고 있었다.

내가 감탄할 때였다.

다들 비슷한 생각인지 소예리 헌터님의 채팅이 올라왔다.

[클로나 에이센(예리언님)>>> 신의 상점 만세]

[아이반 엘레티아 폰 카르만(신재헌놈)>>> 만세]

[아리엔사 시안 데마르(주이안씨)>>> 신의 상점이 현명한 주인을 만나서 다행입니다]

나 말고 다른 사람이 가졌어도 나처럼 쓰지 않았을까요?

그래도 괜히 기분이 좋아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누가 자꾸 띄워주는 걸 보니 비행스킬은 아무래도 소예리 헌터님의 스킬창에만 있는 게 아닌 것 같았다.

[세니아 드 에델바이스(신유리)>>> 그럼 각자 전투 준비해서 오기! 끝! 해산!]

***

그리고 이틀 후.

두근두근한 마음으로 각자 기사와 성기사, 마법사 모습으로 변한 세 헌터와 나, 그리고 동서제국의 조사단은 절망적인 물건과 마주쳐야 했다.

[세니아 드 에델바이스(신유리)>>> 게이트가…… 까맣네?]

양 제국 간의 불가침영역에 있는 게이트.

우리가 들어온 이 L급 게이트처럼 먹물 같은 검은색은 아니더라도 이건 확실히 검은색이었다.

적어도 SS급, 히든 루트를 탔으니 한 단계가 더 높아져 L급의 게이트라는 소리였다.

L급 게이트 한 번 온 것도 모자라서 두 번 깨라고? 실화냐?

그리고 그것도 모자라서.

[클로나 에이센(예리언님)>>> 게게게게이트곧터지겠는데?]

게이트는 곧 터질 것처럼 불안하게 일렁이고 있었다!

최소 반나절 내로 터진다, 저거!

[아이반 엘레티아 폰 카르만(신재헌놈)>>> 말이 씨가 된다잖아요 그러게 왜 잘 익은 게이트 같은 발언을]

[세니아 드 에델바이스(신유리)>>> 다물어보세요지금급한거안보여?]

“게이트의 동태가 심상치 않습니다.”

우리 쪽에 있던 마법사가 흠칫하면서 말했다. 그렇지, 말 잘한다!

“과연 그렇군요. 이렇게 불안하게 일렁이면서 작아진 게이트들은 얼마 가지 않아 폭주한다던데.”

동제국 사람이 말을 받았다.

그러면서 심각한 표정으로 팔짱을 끼었다.

지금 팔짱 낄 때야?

“빨리 들어가는 게 좋겠습니다. 이런 색의 게이트가 폭주하면―”

[RP던전 페널티 위기! : 세니아답지 않은 경박한 말투]

노답입니다! 왜 노답이라고 말을 못 해!

내가 손에 땀을 쥘 때였다.

내 옆에서 마법사 모습의 소예리 헌터도 다급하게 말했다.

“이렇게 뭉그적대다가 터지면 살아서 돌아갈 자신 있는 사람?”

[클로나 에이센(예리언님)>>> 지금 당장 들어가야 합니다!]

헌챗이랑 말이랑 바뀐 것 같은데요?

앞에는 터지기 직전인 게이트에, 뒤에는 시한폭탄 소예리 헌터가 붙은 꼴이었다.

난 다급히 말했다.

“일단 동제국에서도 게이트에 대비해 온 병력이 있지 않습니까? 함께 들어가시죠.”

내 말에 동제국 조사단 사이에서 네 명이 걸어 나왔다.

[?] [?] [?] [?]

내 눈에 랭크가 안 보이는 걸 보니 적어도 A급인 놈들이었다.

음, 트롤링은 안……하겠……지?

클래스마크는 확실히 보였다. 세 명이 보조계에 한 명이 딜러다.

“서제국 수호기사단장께서는 굉장히 즉흥적이시군요. 급할수록 돌아가라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그리고 그들은 안타깝게도 입만 산 종자들이었다.

지금 여기서 돌아갈 시간이 없거든? 돌아가시게 생겼거든?

“제가 즉흥적이라는 말을 듣는 건 상관없지만, 이 게이트가 터져서 민간인들이 피해를 보는 걸 지켜볼 마음은 없습니다.”

난 빠르게 말했다.

이 정도면 페널티 피할 수 있지? 세니아, 곧은 기사 파이팅!

[…….]

아니나 다를까, 페널티는 없었다. 좋아!

난 그대로 게이트로 향했다.

[세니아 드 에델바이스(신유리)>>> 쟤들 왠지 트롤할거같아요]

[클로나 에이센(예리언님)>>> ㅇㅇ 심상치 않은 트롤의 향기가 남]

이럴 땐 틀리는 일이 없는 촉을 세우면서 우린 게이트에 진입했다.

*

[던전 ‘저택의 손님(SS+)’ 입장합니다.]

[디버프 ‘저택의 강력한 규율(L)’이 적용됩니다(스킬 해제 불가).]

[저택의 규율을 어길 시, 정도에 따라 데미지와 함께 경고 1회를 받습니다.]

SS급 이상 던전이 좀 괴이한 것들이 많은 건 사실이지만.

저번에 RP던전에 이어서 이번엔 행동제한이 있는 던전이야?

내가 눈썹을 치켜뜰 때, 눈앞에 주르륵 안내문이 떴다.

[여러분은 이 저택의 손님으로 초대받았습니다.]

[저택의 주인은 품격을 중시하는 유서 깊은 귀족가의 일원으로, 여러분에게 저택의 규칙을 철저히 지킬 것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예의범절을 중시하는 저택의 주인은 항시 여러분을 지켜보고 있을 것입니다.]

[디버프 ‘감시(L)’의 효과를 받습니다(스킬 해제 불가).]

시작부터 디버프가 덕지덕지 발리는 게 아주 근본 있는 던전이었다.

“흐음.”

난 눈썹을 치켜올렸다.

그러는 사이 시스템창이 하나 더 떴다.

[저택 주인의 초대장]

별로 좋은 사이는 못 될 것 같은 저택 주인의 초대장이 인벤토리에 들어왔다.

동제국 쪽 사람들을 보니 저쪽은 인벤토리가 없어서 손 위로 편지가 툭 떨어져 내리는 게 보였다.

―사락.

편지를 펴 보니 초대장치고는 글자가 많은 것이 보였다.

[저택의 손님께.

제 초대에 기꺼이 응해주어 고마워요.]

초대라기보단 ‘그쪽에서 안 들어오면 쳐들어간다’ 하신 거 아닌지?

터지기 직전까지 잘 여물어 있던 게이트 입구를 생각하던 난 눈을 가늘게 떴다.

[이 메이든 저택은 매우 넓지만, 전시나 비상시에 땅이 흔들리더라도 무너지지 않도록 단단하게 지어졌답니다.

뿐만 아니라 지하층 없이 튼튼한 지반 위에 세워져 저택이 무너질 염려는 없으니 걱정은 내려놓아도 좋아요.]

저택에 초대받으면서 저택 무너질 걱정 먼저 하는 사람이 있단 말인가?

이 사람…….

[세니아 드 에델바이스(신유리)>>> 누군지 몰라도 S급들 한두 번 초대해본 게 아닌가 본데?]

[디버프 ‘저택의 강력한 규율(L)’의 효과로 헌터채팅을 사용할 수 없습니다.]

못 써??? 이것 봐라?

[하지만 다른 저택에도 규칙이 있듯, 이 ‘메이든 저택’에도 규칙이 있답니다.

그러니 손님들께서는 아래의 규칙을 꼭 지켜주시길 바라요.]

직접 나타나기는커녕 사용인 하나 안 보내고 편지로만 인사하는 주제에 규칙은 엄청나게 많았다.

[하나. 시끄러운 파괴 행위는 금지되어 있습니다. 소음에 주의해 주세요.

둘. 품격 있는 말을 사용해 주세요.

셋. 저택에서 알게 된 메이든 가에 대한 정보는 무엇이든 입 밖으로 내지 마세요(필담도 곤란하답니다).

넷. 밤에는 어떤 소리가 나더라도 방 밖으로 나오지 마세요. 손님들이 위험할 일은 없답니다.

다섯. 경박하게 뛰지 말아 주세요.

마지막으로, 위 규칙을 어길 때마다 경고가 한 번씩 부여됩니다. 3회 이상 경고를 받을 경우, 저택의 지하에 갇히게 됩니다.]

“아까는 지하 없다며?”

밑도 끝도 없고 싸가지도 없는 데다 심지어 앞뒤도 없는 초대장이었다.

있는 게 없네?

난 아래로 시선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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