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7화
게이트 홀딩을 풀기까지는 얼마 남지 않았다.
[클로나 에이센(예리언님)>>> 준비 완료~]
[세니아 드 에델바이스(신유리)>>> 저도 준비는 완료됐는데]
[아리엔사 시안 데마르(주이안씨)>>> 신전 쪽도 준비가 끝났습니다]
출석체크엔 여전히 한 명이 안 보이고 있었다.
[아이반 엘레티아 폰 카르만(신재헌) - S급(딜러)
- 버프 : 없음]
상태창에 이상이 생기지 않는 걸 보면 던전이나 어딜 간 건 분명히 아닌데.
그럼 뭐 때문에 답이 느린 거지?
그렇다고 완전히 헌터채팅을 안 보는 건 또 아니었다.
[세니아 드 에델바이스(신유리)>>> 신재헌 헌터님 진짜 무슨 일 있는 거 아니죠?]
이렇게 물으면.
[아이반 엘레티아 폰 카르만(신재헌놈)>>> 정말 아무 일도 없어요]
이렇게 답이 온단 말이지?
내가 정말 무슨 일이 있나 불안해할 즈음에는 귀신같이 나타나서 저렇게 답을 하는데, 길게 대화가 이어지지는 않았다.
평소와는 확실히 달랐다.
[세니아 드 에델바이스(신유리)>>> 어딜 갔길래 그렇게 보고를 못 받아요?]
[아이반 엘레티아 폰 카르만(신재헌놈)>>> 아]
신재헌은 잠시 침묵하다가 말했다.
[아이반 엘레티아 폰 카르만(신재헌놈)>>> 서브퀘스트 떠서 처리하느라 정신이 없었어요]
[아이반 엘레티아 폰 카르만(신재헌놈)>>> 게이트 홀딩 풀리기 전엔 처리해두는 게 좋으니까]
말이야 좋은데……. 난 눈썹을 치켜올렸다.
대체 무슨 서브퀘스트가 떴기에.
[세니아 드 에델바이스(신유리)>>> 스킬은 하나도 안 쓰고요?]
대체 무슨 서브퀘스트를 했으면 상태창이 며칠 동안 벽돌처럼 꿈쩍도 하지 않았던 거지?
내 말에 잠깐 말이 없었던 신재헌이 답했다.
[아이반 엘레티아 폰 카르만(신재헌놈)>>> 안 쓰는 게 조건이라]
그딴 서브퀘스트……가 있을 수도 있긴 하지.
내가 눈썹을 치켜올렸을 때였다.
[아이반 엘레티아 폰 카르만(신재헌놈)>>> 근데 이제 끝났어요]
[아이반 엘레티아 폰 카르만(신재헌놈)>>> 새벽 네 시에 채팅해도 칼답가능]
[세니아 드 에델바이스(신유리)>>> 서브퀘스트랑 같이 수면도 끝나셨나요?]
[아이반 엘레티아 폰 카르만(신재헌놈)>>> ㅇㅇ 사실 겨울잠이었어요]
말이나 못하면!
그는 정말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평소같이 떠들고 있었다.
난 그걸 눈을 가늘게 뜨고 보다가 물었다.
[세니아 드 에델바이스(신유리)>>> 보고는 받았어요? 홀드 관련해서]
[아이반 엘레티아 폰 카르만(신재헌놈)>>> 네 돌아오자마자 받았어요]
그러더니 그가 바로 이어 말했다.
[아이반 엘레티아 폰 카르만(신재헌놈)>>> 한 시간쯤 후에 홀드 풀고 들어가는 거죠?]
그러자 그때까지 말이 없던 소예리 헌터님이 바로 답했다.
[클로나 에이센(예리언님)>>> 네 슬슬 연락 돌리려고요~]
[아리엔사 시안 데마르(주이안씨)>>> 약속한 시간이 다가오고 있으니 일선의 병력들도 준비하고 있을 거예요]
“흐음.”
그럼 이제 정말 동제국에게 밀물 같은 게이트를 넘겨줄 때가 됐다는 말이다.
내가 웃을 때였다.
―쿵쿵.
“가주님, 헬렌입니다.”
집사 헬렌이 올라왔다.
“응?”
문 쪽을 돌아보며 들어오란 뜻으로 테이블을 두어 번 두드려 주자, 헬렌이 방 안으로 들어왔다.
그녀는 다소 심각한 얼굴이었다.
“가주님. 동제국 국경의 행태가 수상합니다.”
“?”
거긴 맨날 수상하지 않았니?
근데 듣자 하니 정말 수상했다.
“동제국 내부에 무슨 일이 있는 것 같습니다. 몰래 동제국 국경을 넘어 서제국으로 오려는 평민들의 수가 비정상적으로 늘었습니다.”
몰래?
동제국과 서제국 국민들이 서로를 싫어하는 걸 생각해보면 어지간히 급한 게 분명했다.
“뿐만 아니라 짐도 귀중품이나 생필품 일부만 급히 챙겨 피난을 오는 모습이었다고 합니다.”
“……동제국 게이트 관리가 그렇게 안 되나?”
그럴 리가 없는데?
난 시스템창 한쪽에 떠 있는 게이트 장악도를 보았다.
[서제국 게이트 장악도 : 9%]
[동제국 게이트 장악도 : 91%]
저번에 내 ‘서브 퀘스트 : 영지 관리’를 하면서 40여 개 정도의 게이트를 넘겼을 때.
서제국 전국에서 넘어간 게이트까지 포함해 서제국과 동제국의 게이트 장악도는 82%와 18%로 64% 차이였다.
하지만.
[서브 퀘스트 : 견제]
[동제국 대비 서제국의 게이트 관리도가,
*60% 이상 높을 경우 : 보상 레벨 +3
*40% 이상 높을 경우 : 보상 레벨 +2
*20% 이상 높을 경우 : 보상 레벨 +1]
이 퀘스트에서 3단계 보상을 받으려면 64% 같은 아슬아슬한 숫자로는 부족했다.
이 L급 RP던전의 끝에 뭐가 있을지 몰라도, 80% 정도는 차이가 나야 시간을 좀 벌 수 있지 않겠는가?
아슬아슬하게 맞춰 뒀다가 동제국이 갑자기 일 열심히 해서 59% 차이로 2단계 보상 먹으면 어떡해?
빡쳐도 그렇게 빡칠 수가 없을 것 같았다.
내가 그렇게 생각했을 때였다.
[클로나 에이센(예리언님)>>> 어, 멸망계시록 업데이트 됐어요!]
[세니아 드 에델바이스(신유리)>>> 오]
홀딩 푸는 거 한 시간 남기고?
갑자기 난이도 급상승하는 건 아니겠지?
긴장한 난 헬렌에게 손짓했다.
“일단 피난민들의 규모와 출신 지역을 모아서 가져다줘.”
그럼 어디서 난리가 나고 있는지는 바로 파악할 수 있을 테니까.
“알겠습니다.”
그렇게 헬렌이 물러가자마자, 난 헌터 채팅을 살폈다.
[클로나 에이센(예리언님)>>> 읽어줄게요]
그렇게 말한 소예리 헌터는 곧이어 멸망계시록의 내용을 쭉 올렸다.
[클로나 에이센(예리언님)>>> 동제국에는 내란이 일어난다. 하지만 무능한 황태자가 황성에서 도망치다가 실종되고, 황제는 의식이 없는 가운데 혜성처럼 나타난 자가 권좌를 차지한다.
그리고 그의 통치에 동제국의 기세는 올라가고, 서제국과의 갈등은 심화된다.]
“뭐?”
헬렌 내보내길 잘했다!
멸망계시록 내용에 놀란 난 눈을 크게 떴다.
[세니아 드 에델바이스(신유리)>>> 뭐야 황태자 황성에서 튀었어?]
그 뻔들거린다는 애 망한 거야?
[클로나 에이센(예리언님)>>> 그러게요, 동제국 국경 시끄럽다더니]
소예리 헌터도 처음 듣는 소리인 듯했다.
우리야 그렇다 치고 신재헌은 동제국 쪽에 사람 붙여놓고 있었던 거 아닌가?
특히 황태자의 목을 딸 준비를 하고 있었던 것…… 같은…….
“잠깐만.”
난 한쪽 눈썹을 치켜올렸다.
이전 멸망계시록에도 동제국이 시끄러워진다는 이야기야 있었지만 황태자가 실종되거나 잘못된다는 이야기는 없었다.
갑작스럽기까지 한 소식이었다.
설마?
[아이반 엘레티아 폰 카르만(신재헌놈) - S급(딜러)
- 버프 : 기분전환(A)]
휴식 중인지 기분전환 스킬이 올라와 있었다.
난 보란 듯이 움직이는 상태창을 보면서 눈을 가늘게 떴다.
이놈이 며칠간 연락이 없었던 게, 설마…….
[아이반 엘레티아 폰 카르만(신재헌놈)>>> 에페가 동제국의 명예네 뭐네 하더니, 그놈이 죽은 걸로 시끄러워졌나보네요]
그 사이에 신재헌의 헌터 채팅이 다시 올라왔다.
“음…….”
난 그 채팅을 한참 동안 쳐다보았다.
그야…… 시끄러워질 수 있지.
황태자 그놈이 삽질한 게 몇 갠데.
그놈이 서제국에 밀리는 걸 보면서 동제국 귀족들이 불만을 가졌을 법하다고는 생각했다.
게다가 에페까지 잃었으니 불만이 터질 법도 했다.
하지만.
애초에 이 RP던전의 스토리에 반란이 일어나는 것까지 포함되어 있었을까?
“…….”
물론 대륙의 멸망을 막는 게 메인스토리니까, 동제국의 멸망이나 분열이 있을 수도 있다.
근데 어차피 대륙의 멸망을 막는 건 게이트 막는 걸로 클리어되는 거 아니었어?
그럼 동제국에 굳이 분열이 일어날 필요가 있나?
“RP던전인데…….”
난 조용히 뇌까렸다.
RP던전은 대체로 클리어 목표를 스토리 내에서 명확히 제시하는 편이다.
아무리 여기가 L급이라지만, 일부러 클리어 목표나 조건을 감추지는 않을 거라는 소리였다.
요컨대 동제국까지 무너뜨리면서 던전 클리어 조건이 ‘게이트 사태 종결’이 아니라 동제국과 관련된 무언가인 것처럼 헷갈리게 만들진 않을 거라는 뜻이다.
“히든 때문에 난이도가 조절됐나?”
그렇다고 보기엔…… 좀 묘했다.
뭔가 위화감이 느껴졌다.
내가 모르는 게 있는 것 같다.
다 맞춘 퍼즐에서 딱 한 조각만 잃어버린 것 같은 찝찝한 기분이 들었다.
[아이반 엘레티아 폰 카르만(신재헌놈)>>> 뭐 우린 클리어하기만 하면 되니까요]
신재헌이 그 사이에 쿨하게 말했다.
그런 그에게 내가 물었다.
[세니아 드 에델바이스(신유리)>>> 근데 황태자는 실종이라는데 어디 갔을까요?]
네가 사람 붙여 놨잖아?
아주 잠깐 틈을 두고 신재헌의 답이 돌아왔다.
[아이반 엘레티아 폰 카르만(신재헌놈)>>> 제가 붙여놓은 사람이 보고한 바로는 황가 소유의 산에서 종적이 끊겼어요]
“오……. 그니까, 놓쳤다고?”
난 팔짱을 낀 채 의자에 몸을 기댔다.
다른 건 다 둘째 치고 황태자가 그리 기민하게 숨을 수 있는 지능을 가진 것처럼 보이진 않았는데?
[아리엔사 시안 데마르(주이안씨)>>> 일단 게이트 홀드를 해제하는 데에 집중하는 게 좋겠어요]
주이안 씨가 때마침 주의를 환기했다. 하긴 중요한 건 이쪽이긴 했다.
그래도 뭔가 마음에 걸리는 것 같단 말이야…….
내가 눈을 가늘게 뜰 때였다.
소예리 헌터의 채팅이 다시 올라왔다.
[클로나 에이센(예리언님)>>> 실시간 멸망계시록 갱신 중!]
오?
좀 기다리자 소예리 헌터가 멸망계시록의 내용을 올렸다.
[클로나 에이센(예리언님)>>> 한편 게이트의 발생 원인을 궁금해하던 마법사들은 갈피를 잡지 못하다가, 지속하던 연구 끝에 의외의 실마리를 잡는다.]
[아리엔사 시안 데마르(주이안씨)>>> 게이트의 원인을 찾은 건가요?]
[아이반 엘레티아 폰 카르만(신재헌놈)>>> 해결하면 탈출?]
[세니아 드 에델바이스(신유리)>>> 오 그래서 원인이 뭐래요?]
하지만 소예리 헌터는 말이 없었다.
[세니아 드 에델바이스(신유리)>>> 그래서 실마리가 뭐래요?]
결국 궁금증을 참지 못한 내가 물었다.
그러자 황당한 답이 올라왔다.
[클로나 에이센(예리언님)>>> 아니 거기까지 써 있으면 내가 말했지!]
[아리엔사 시안 데마르(주이안씨)>>> 아직 안 나온 건가요?]
[클로나 에이센(예리언님)>>> 그런 것 같아요]
[아이반 엘레티아 폰 카르만(신재헌놈)>>> ?]
[세니아 드 에델바이스(신유리)>>> 뭐야 결제하면 보여줌?]
어디다 긁으면 되는데? 돈이야 많았지만 긁을 데가 있을 리 없었다.
[클로나 에이센(예리언님)>>> 아직 안 나온 것 같아요]
[아이반 엘레티아 폰 카르만(신재헌놈)>>> 연구 끝에 실마리를 잡는다니 하던 연구에 집중하라는 뜻인 것 같은데요]
[클로나 에이센(예리언님)>>> 마력석이나 열심히 캐라고?]
[세니아 드 에델바이스(신유리)>>> 진행 중인 연구가 마력석 광산만 있는 건 아니잖아요]
[클로나 에이센(예리언님)>>> 그래 봐야 거기서 거긴데?]
소예리 헌터가 고개를 갸웃거리는 게 눈앞에 보이는 듯했다.
[아리엔사 시안 데마르(주이안씨)>>> 지금 진행되고 있는 연구들이 빨리 성과를 보이길 기대해야겠네요]
성과? 성과를 불러오는 방법은 대부분 자본에 있습니다!
[세니아 드 에델바이스(신유리)>>> 빵빵하게 지원해야겠네]
저 게이트 발생 원인을 없앨 수 있다면? 우리의 클리어도 가까워지는 거다!
그럼 나가자마자 헌터협회는 세로로 쪼개버리고! 언플한 놈들은 가로로 쪼개버리고!
내가 희망찬 미래계획을 그리는 사이 채팅이 다시 올라왔다.
[클로나 에이센(예리언님)>>> 일단 더 뜨면 말해줄게요! 그럼 슬슬 홀딩 푸는 거죠?]
소예리 헌터는 홀드를 풀고 싶어서 드릉드릉하고 있는 듯했다.
“드디어!”
물론 그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던전에서 몬스터들을 한곳에 모아 홀드해 놓고, 광역기로 한 번에 쓸어버리는 것만큼 쾌감 있는 게 없었다.
이번에도 그와 비슷한 거 아닌가.
물론 대상이 몬스터가 아니라 던전이라는 게 다르지만.
[클로나 에이센(예리언님)>>> 간다간다~]
[아리엔사 시안 데마르(주이안씨)>>> 대기하겠습니다]
소예리 헌터는 분명 신나는 얼굴로 불새를 날렸을 것이다.
그리고 그 불새 중 하나는 당연히 동부 주요 영지 중 하나인 우리 영지에도 도착했다.
―삐이!
투명하진 않아도 목청 좋게 울부짖는 것이 좀 세 보이는 불새였다. 편지를 건네받은 난 곧 웃음을 터뜨렸다.
[준비, 땅!]
편지 내용은 간단했다. 난 설렁줄을 잡아당겼다.
“부르셨습니까?”
헬렌이 일하러 갔는지 다른 기사가 고개를 들이밀었다. 난 그에게 웃음을 감춘 얼굴로 손짓했다.
“동부 영지들에 연락 보내서 홀드 풀라고 해.”
전투다!
[서제국 게이트 장악도 : 9%
동제국 게이트 장악도 : 91%]
이제 이게 한 번에 뒤집힐 시간이었다.
***
그리고 다음 날 아침.
“확실히 날이 갈수록 다르단 말이야.”
이른 아침, 난 몸을 움직이면서 연무장으로 향했다.
스탯이 오를수록 확실히 몸 상태는 내 기억과 비슷하게 변하고 있었다.
태생 S급이었던 내 몸 상태로.
[일일 퀘스트 : 매일 아침을 건강하게]
[매일 아침 훈련을 게을리 하지 마세요!]
[보상 : FULL마력 +5%]
7777코인을 이용해서 마력으로 바꾼 일일퀘스트 보상은 여전히 꿀처럼 달콤했다.
이 RP 나가서도 이런 일일퀘스트 있으면 좋겠다!
……라는 꿈을 꿔봤지만 나가면 없겠죠? L급 보상으로 주면 안 되냐? 내가 날로 먹는댔어?
아침에 막노동 시켜도 좋으니까 이런 폭의 스탯업 아주 좋다니까?
그렇게 실없지만 진심인 생각을 하면서 연무장에 나왔을 때였다.
“어?”
계단에 누군가 앉아있는 게 보였다.
무릎에 팔꿈치를 대고 두 손을 깍지 낀 채, 그 손에 턱을 괴고 있는 건 다름 아닌.
“신재헌?”
얼굴 가릴 생각도 없어 보이는 신재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