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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던전의 S급 시한부 영애 (116)화 (116/218)

116화

물론 신시안 교황이 공식적으로 동제국에 건너가는 건 불가능했다.

몰래 가야 한다.

하지만 다행히도 신시안 교는 동제국에 위기가 닥칠 때마다 사제들을 몰래 파견해 온 역사가 있었다.

귀족 중심으로 돌아가는 동제국의 정세 속에서 이리 치이고 저리 치여 죽어가는 죄 없는 평민들을 살려야 한다는 이유에서였다.

그것 때문에 물론 황가와의 마찰이 심했지만, 신시안 교단은 ‘아무 죄도 없는 신시안 님의 아이들이 다치는 걸 두고 볼 순 없다’며 맞섰다.

황가의 반대를 넘어 동제국에 사제들을 파견해온 역사.

그 덕에 건너가는 방법이야 여러 가지였다.

“현재 시기에 최단경로로 가는 방법은…….”

성기사는 빠르게 정보를 가져왔다.

그렇게 주이안은 최소한의 성기사만을 데리고 동제국과의 국경을 넘었다.

“킨나 군이 이미 황성을 차지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정보를 물어온 성기사의 말에 빠르게 몇 가지를 계산해냈다.

동제국에서 신재헌 헌터님이 관심을 가질 만한 자는 황태자 파리스뿐이다.

그가 신유리 헌터님에게 에페를 보냈으니까.

“그럼 황태자는 어디로 갔을까…….”

주이안이 뇌까렸다.

동제국의 지도를 펼쳐놓은 그가 동제국 황성 주변의 지형을 눈으로 훑었다.

멀리 도망칠 시간은 없었던 것 같다. 게다가 분명 황태자를 지지하는 세력 역시 동제국에 남아 있었다.

지금은 킨나가 갑작스럽게 황성을 차지했지만, 적통성을 중시하는 동제국의 귀족들 중 황태자의 손을 드는 자들이 분명 있을 것이다.

그들이 움직일 때까지 황태자는 기다릴 거고.

아무리 멍청한 자라지만 그 정도 머리는 있는 자였다.

“…….”

그런 그자의 뒤를 신재헌 헌터님이 쫓고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원래 황태자가 있던 황성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

그러면서 타인이 마구잡이로 헤집고 다니기 힘든 곳.

“황성 소유의 산.”

분명 황가의 인물이라면 그 산의 여러 비밀 통로나 함정을 알고 있을 테니, 그곳으로 숨어들어 기회를 노릴 것이다.

하지만 신재헌 헌터에게는 추적 스킬이 있으니, 황가 소유의 산에 무엇이 있든 피해 갈 수 있을 것이다.

황태자가 간 길을 그대로 따라갈 수 있을 테니까.

그렇다면.

“이곳을 잠시 둘러보고 올게요.”

주이안이 성기사들에게 말했다.

“저희가 안전하게 모시겠습니다.”

성기사들이 곧바로 말했지만 주이안은 고개를 저었다.

“혼자.”

“위험합니다.”

성기사들이 만류했지만 주이안은 온화하게 웃었다.

“잠깐이면 돼요. 혼자 만나야 할 자거든요.”

예상대로라면, 정말 저곳에 신재헌 헌터가 있다면, 황태자가 멀쩡한 몰골은 아닐 것이다.

그 모습을 다른 자들이 본다면 신재헌 헌터님에게 RP던전 페널티가 크게 올 테니, 보는 눈은 없는 게 낫다.

“하지만.”

성기사들은 몇 번이고 그를 만류하려고 했지만, 주이안은 신의 뜻을 고집하며 혼자 나서겠다고 단언했다.

“……알겠습니다.”

결국 성기사들은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그들이 산의 입구 근처에서 대기하는 사이, 주이안은 산을 올랐다.

“안에 몬스터가 많다고 하니, 부디 주의하십시오.”

성기사들은 그렇게 말했지만, 주이안은 걱정하지 않았다.

공격 스킬이 전혀 없는 그였지만, 그는 확신했다.

아마 몬스터가 있더라도 모두 숨었을 것이다.

S급의 숨 막히는 살기를 본능적으로 느꼈을 테니까.

―탁.

그가 근래 사람이 오간 자취를 쫓아, 사람이 머문 듯한 흔적을 만난 건 몇 시간 후였다.

“…….”

그리고 그 자리에는 보란 듯이 발자국이 나 있었다.

산길이 아니라 나무 사이를 뚫고 지나간 것 같은 길은 누군가 쫓아와도 상관없다는 듯, 앞서간 자의 흔적을 알려주고 있었다.

몬스터의 흔적도 그대로 남아 있었고, 거칠게 꺾이고 부러진 나뭇가지와 베여 나간 거대한 나무기둥도 보였다.

깔끔한 검 한 방에 베인 것이 분명한 나무를 지나쳐, 주이안은 점점 목적지와 가까워졌다.

그에게 추적 스킬이 없어도 알 수 있었다.

“…….”

숨 막히는 살기로 내려앉은 공기가 느껴졌으니까.

그리고 누군가 발견해도 상관없다는 것처럼, 불타고 쓰러진 나무들이 만들어낸 공터가 보였다.

그리고 그 한가운데.

“……신재헌 헌터님.”

신재헌이 앉아 있었다.

주이안은 탄식했다. 이미 늦은 듯했다.

신재헌 뒤의 새빨간 게이트는 벌써 굳어져 가고 있었다.

그리고 신재헌은 통증을 참는 것처럼 눈을 가늘게 뜬 채였다.

[통증 경감(A) 스킬을 사용합니다.]

[효과 없음]

미동도 없는 그에게 주이안이 천천히 다가갔다.

그가 모습을 보이기 전까지 검을 휘두를 것처럼 살기를 드러내던 신재헌이 탁 풀린 미소를 지었다.

“왜 그렇게 조용히 와요.”

그가 검 손잡이를 놓으면서 말했다.

“죽일 뻔했잖아.”

“신재헌 헌터님.”

주이안은 그에게서 살벌한 기운을 느꼈다.

그리고 그가 지키고 서 있는 게이트를 보았다.

이미 누군가 들어간 지 한 시간이 다 되어가는 듯, 거의 움직임이 없는 게이트였다.

누가 들어갔는지, 아니 던져 넣어졌는지는 뻔했다.

“……왜 그러셨습니까?”

신재헌의 온몸이 긴장되어 있는 건 분노 때문만은 아닐 터였다.

힐러인 주이안은 잘 알고 있었다.

신재헌은 통증을 참고 있었다. 팔에 힘줄이 돋을 정도로.

“뭘요?”

하지만 애써 내는 목소리는 평온했다. 그 통증으로 오히려 자신을 억누르고 있는 것처럼.

저건 일종의 자해였다.

“페널티가 심한 것 같아요.”

그야 당연하다.

저 안에 던져 넣은 게 정말 동제국의 황태자 파리스라면, 대륙 전체의 정세에 상당한 영향을 주었을 테니까.

당연히 신재헌에게 강력한 페널티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못 참겠더라고요.”

결국 신재헌이 말했다.

그는 깔끔하게 잘린 나무둥치에 걸터앉아 있었다.

“가만히 있을 순 없잖아요. 내가 왜 S급이 됐는데.”

짙은 푸른색의 눈동자가 주이안을 똑바로 주시했다.

“그 애가 혼자 남기 싫다잖아요. 그래서 S급이 됐는데 이런 잡스러운 것들이 방해할 줄은, 진짜, 상상도 못 해서.”

신재헌이 이마를 짚었다.

까마득한 기분이었다고, 그가 뇌까렸다.

그 위기의 순간 혼자였던 그 애가 신경 쓰여서, 죽었다면 혼자 남았을 그 애가 너무 눈에 밟혀서, 무사함을 확인한 뒤엔 분노가 차올랐노라고.

“멀쩡하게 1년만 버티다가 세상 구하고 가주겠다잖아. 왜 이렇게 방해하는 것들이 많지?”

서늘한 목소리가 울렸다. 주이안은 입을 일자로 굳게 다물었다.

“신유리 헌터님도 신재헌 헌터님이 이러길 바라지는 않으셨을 거예요.”

오는 순간까지 그녀는 당신을 걱정하고 있었다.

연락이 뜸한 그가 신경 쓰인다고 했던 것 같다.

내가 옆에 있는 순간에도 그 사람은 당신을 보았다.

분명 나를 보고 있었는데 이상하게도 그 시선은 내 너머를 보는 것 같았다.

‘주이안 씨, 나 좋아해요?’

그 순간 손을 잡아버리지 못한 것도 그 때문이었다.

나는 이 사람을 행복하게 해줄 수 없구나, 싶어서.

그저 불안하게만 할 수 있구나. 이 사람을 행복하게 할 사람은 따로 있구나.

그걸 너무 깊이 깨달아 버려서.

그럼 차라리 행복하기를 바랐다. 그런데 이쪽도 아직은 갈 길이 먼 모양이다.

“……무슨 짓을 더 할지 모르는데 그대로 둘 순 없었어요.”

신재헌의 목소리가 울렸다. 주이안이 그를 돌아보았다.

“이게 내 방식이에요. 몇 년을 이렇게 살았는데.”

낯설어요? 그렇게 묻는 신재헌에게 주이안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그러고는 바로 말을 이었다.

“알아요.”

신재헌은 눈을 크게 떴다.

“사람은 죽어도 서류는 남는다잖아요.”

주이안이 그를 돌아보았다.

놀란 신재헌의 시선과 담담한 주이안의 시선이 마주쳤다.

주이안은 신재헌이 마냥 가벼운 사람이 아니라는 걸, 팀에 들어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알게 되었다.

그가 S급까지 기를 쓰고 올라왔을 때도 놀라지 않았다.

그에게는 명확하고 간절한 목적이 있었으니까.

신유리를 지켜주고 싶어.

S급이 된 후. 그는 그녀를 험담하거나 방해하는 자들을 차차 제거해 나갔다.

그리고 그 사실을 가장 먼저 알아차린 건, 주이안이었다.

‘기자…….’

신유리에 대한 악성 기사만을 싣던 기자를 법적으로 처리할 방법이 없을까 고민할 즈음이었다.

하필 그 기자는 헌터 활동을 겸하는 A급이었고, A급은 그 전력상 어지간한 사고를 치지 않으면 사실상 처벌을 받지 않았다.

무보수로 게이트 처리하기 같은 사회봉사 처분이나 받게 되겠지.

그것보다 더한 벌을 줄 방법이 없을까, 싶었을 때.

‘…….’

그 기자는 실종되어 버렸다. 처음부터 없었던 것처럼.

그리고 주이안은 그가 마지막에 있던 자리에서 묘한 열기를 느꼈다.

신재헌의 화염검을 아주 가까이에서 여러 번이고 봤던 그는 알 수 있었다.

‘아.’

신재헌 헌터, 당신이구나.

하지만 당시의 신재헌은 지금만큼 치밀하지 못했다. 덕분에 흔적을 남겼다.

사람은 죽어도 빈 자리에 생각보다 많은 서류가 남는다는 사실을, 지금보다 어린 당시의 신재헌은 몰랐다.

그 뒤, 묘하게 비어버린 ‘실종자’들의 흔적을 없앤 건 주이안이었다.

“그래서 서류 처리도 제가 했어요. 계속하면 들킬 것 같아서.”

주이안은 신재헌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신재헌은 멈칫 굳어 있었다.

상상도 못 했다는 듯이.

“신유리 헌터님이 아시면 불편해하실 것 같았거든요.”

그 말에 신재헌은 입을 일자로 굳게 다물었다.

“……일단 돌아가요. 이미 신유리 헌터님도 걱정하고 계실 거예요. 평소보다 채팅도 덜 하셨으니.”

주이안이 몸을 일으켰다. 신재헌은 그제야 그를 따라 몸을 일으켰다.

그 순간 그들의 뒤에서 천천히 움직이던 게이트가 완전히 움직임을 멈췄다.

[‘돌아오지 않는 황태자’로 인한 RP던전 페널티를 받습니다.]

그리고 신재헌의 눈앞에 새빨간 시스템창이 떠올랐다.

던전 안에서 살아 나올 가능성은 없는 모양이다. 신재헌이 차게 웃은 순간이었다.

[‘날카로운 상처(L)’ 디버프 효과를 받습니다(위치 : 왼쪽 어깨).]

[L급 이하의 치유계열 스킬로 치유 불가]

“!”

신재헌은 저도 모르게 눈을 꽉 감았다.

왼쪽 어깨를 인두로 지지는 것처럼 거친 통증이 파고든 탓이었다.

‘전신 통증 극대화(L)’ 디버프 상태에서 생긴 상처라 통증은 더했다.

[헌터 주이안(S)이 ‘통증 경감(A)’ 스킬 효과를 부여합니다.]

[효과 없음]

아까부터 거듭 사용된 스킬이었지만 당연히 소용없었다.

신재헌이 눈을 가늘게 떴을 때였다.

“페널티죠?”

주이안의 말에 그가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 페널티도 있나요?”

“스킬 랭크 하락이요.”

신재헌이 짧게 답했다. 주이안이 멈칫했다.

그도 알았다. 이건 들키기 너무 쉬웠다.

“어떤 스킬이요?”

“검의 수호자요.”

“아…….”

하필 전투 중에 항시 사용하는 스킬이었다. 바로 들킬 게 분명했다.

“신유리한테는 말하고 싶지 않아요.”

“페널티가 생긴 걸 모르실 리가.”

A급 스킬이 B급으로 내려갔는데 모를 리가 없었다.

하지만 신재헌은 살짝 고개를 저었다.

“어떻게 페널티가 생겼는지만 모르면 돼요.”

그 말에 주이안은 입을 일자로 굳게 다물었다.

과연 신유리 헌터님이 눈치를 못 채실까?

동제국의 황태자가 죽었다는 소문과 함께 비슷한 타이밍에 사라졌던 신재헌 헌터.

그리고 그에게 생긴 상처와 스킬 랭크 하락.

“……신유리 헌터님은 알고 싶어 하실 거예요.”

완전히 감출 수 없다면 차라리 말하는 게 좋을 것이다.

하지만 신재헌은 눈썹을 치켜 올렸다.

“그 애가, 내가 그 애를 생각하다가 어떤 대가를 치렀는지 알고 싶어 한다고요?”

“…….”

주이안은 그 말에 멈칫했다.

그건 아닐 터였다. 하지만 감출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신재헌은 말레티아의 검을 인벤토리에 던져 넣었다.

“그래도 완전히 감출 수 없다면 거짓말하는 것보단 나을 겁니다.”

그건 정답이었다. 신재헌은 숨이 꽉 막히는 기분이었다.

너무 잘 알고 있다.

주이안 헌터는, 그녀에 대해 너무 잘 알고 있다.

왜겠어?

“알아요, 근데 주이안 헌터도 아시잖아요. 내가 아무 말도 할 수 없다는 걸. 당신이라도 이랬을 거잖아요.”

신재헌이 주이안을 주시했다.

“당신도 유리 좋아하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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