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 던전의 S급 시한부 영애 (109)화 (109/218)

109화

‘미쳤냐!’

공격을 받고 날아가는 그녀를 간신히 받아내고 나서야 안도가 들었다가, 화가 났다.

순간가속을 혼자 썼다는 건, 그 공격에 모든 것을 걸었다는 뜻이니까.

“아무리 소생이 된다고 해도.”

신재헌이 눈을 가늘게 떴다.

그는 죽음의 고통을 알았다. 죽음이 허락되는 RP던전에서 죽어본 적이 있기 때문이었다.

그때 그는 온몸이 찢기는 고통을 겪다가, 그 고통이 머릿속을 아득히 채워 아무것도 느낄 수 없게 된 후에야 시스템창을 보았다.

[당신은 사망했습니다.]

죽음이란 견딜 수 없을 만큼의 고통이 왔을 때 오는 것이구나.

그는 그때 생각했다.

그러니 너는 안 돼.

그 후로 그는 결심했다. 어디에서든 신유리는 죽지 않게 하겠다고.

너만은 안 된다고. 아프지 말라고.

“순간가속.”

그가 다시 한번 중얼거렸다.

“나는 언제나 네 앞에…….”

그러다가 눈을 감았다.

간절함이 스킬을 개화시킨다는 건 정설이다. 그리고 얼마나 간절한가에 따라 스킬의 랭크가 정해진다.

그런데 ‘나는 언제나 네 앞에’, 그 스킬이 SS급이라는 건 무슨 뜻일까.

기회가 오면 대신 죽겠다는 약속을 한 건 난데.

“…….”

신재헌이 눈을 떴다.

이번에도 그랬다. 그녀는 기꺼이 죽으려고 했다.

어차피 자신은 위치를 알렸고, 적어도 그 에페라는 검사에게 중상 이상을 입혀야 다음 타깃이 될 소예리 헌터가 안전하다 생각했을 것이다.

자신이 죽어도 주이안 헌터에게 소생 스킬이 있으니까 괜찮을 거라는 계산이었겠지.

“…….”

신재헌의 입매가 뒤틀렸다.

내가 이걸 더 참아야 할까?

―탁.

그는 결국 집무실의 의자에서 일어났다.

그러고는 며칠 동안 보지 않았던, 속이 끓어 볼 수가 없었던 헌터 채팅을 흘끗 쳐다보았다.

[헌터 채팅 알람을 OFF합니다.]

신유리는 모르는 그의 방식이 있었다.

그는 그녀가 몰래 울기를 원하지 않았고, 더 고민하길 원하지 않았다.

그랬기에 그는 그녀보다 강해져야 했다.

S급인 그녀의 고민거리들을 상대하기 위해서, 끊임없이 강해져야 했다.

이번처럼, 그녀를 노리는 자가 있다면 그 뿌리를 뽑아내기 위해서라도.

[2주]

그렇게 짧은 메모를 남긴 그가 방을 나섰다.

[‘그림자 장막(L)’ 스킬을 사용합니다.]

[헌터팀 파티원에게 스킬 버프 상태가 공유되지 않습니다.]

그는 신유리가 저 몰래 움직이는 자신을 알아채길 원하지 않았다.

그녀가 제 어두운 면을 보지 못하길 바라는 간절한 마음이 스킬을 개화시켰던 건, 그가 S급이 된 날이었다.

―탓!

S급의 스탯으로 황성을 몰래 빠져나오는 건 쉬운 일이었다.

성을 빠져나온 그가 향하는 곳은, 동제국이었다.

***

발 없는 말이 천 리 간다고 했던가.

그 말은 정말 맞는 말이었다.

분명 헬렌에게 내가 혼자 몬스터와 맞섰다는 사실은 비밀로 하라고 했지만, 어쩐 일인지 다음 날부터 기사들이 나를 쳐다보는 시선이 심상치 않게 변하고 있었다.

“그게, 아무래도 현장을 살펴본 기사들의 입까지는 통제하기가 어려울 듯싶습니다. 강제적인 방법을 동원한다면 가능할 것 같습니다만…….”

“강제적?”

“입을 놀린 자에게는 벌을 내린다든지―”

“아니, 그건 아냐.”

그그그렇게까지 심각한 비밀은 아니거든?

내가 그걸 만류했기 때문인지, 소문은 더욱 퍼지고 퍼져 일부러 나와 에페가 싸운 숲으로 견학(?)을 가는 기사들도 있었다.

성지순례라나 뭐라나.

아니, 주이안 씨도 안 하는 성지순례를 너희들이 왜 해!

“저러다가 눈 좋은 놈이 알아채기라도 하면…….”

사람과 사람이 전투한 흔적이라는 걸 알아보는 자가 있을지도 모른다.

그럼 다시 RP던전 페널티 위기의 수렁에 빠지는 것이다.

내가 골머리를 싸매려는 때쯤, 일은 기이하게도 술술 풀렸다.

“혹시 이전에 만나셨다던 몬스터에 대해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조금 다급하게 내 집무실에 들어온 헬렌의 질문 덕이었다.

“그 몬……스터는 왜?”

몬스터처럼 세긴 했지. 내가 되묻자 헬렌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혹시 이전에 만난 적이 있는 종류의 몬스터였습니까?”

“만난 적이 있는 종류?”

그 종류는 지금도 만나고 있어요…….

인간이라고 혹시 아니? 난 고개를 끄덕였다.

“그랬지.”

“그럼 익숙한데 보다 강한 힘을 가진 몬스터였다는 말씀이시군요.”

“맞아.”

인간이야 질리도록 봤는데 엄청나게 무식하게 센 놈은 맞았―

근데 얘는 어떻게 알고 와서 스무고개를 하고 있는 거지?

설마 현장 살펴보고 눈치 깠나?

“그건 왜?”

하지만 헬렌의 반응을 봐서는 내가 걱정하던 일이 일어난 건 아닌 듯했다.

대신 그녀는 하얗게 질린 얼굴로 말했다.

“지금 제국 전체가 난리입니다! 게이트도요! 원래 파악되었던 것보다 게이트의 수준이 훨씬 강해졌습니다!”

“뭐?”

길 가던 모든 몬스터가 에페처럼 바뀌었단 소리는 아닐 터다. 내가 멈칫했을 때였다.

“이전에 매뉴얼에 쓰셨던 등급 관리 체계 기준으로, 적어도 한 단계씩은 높아진 느낌입니다. 게이트 한두 개가 아니라, 모든 게이트가요!”

저 등급 관리 체계는 수호기사단장과 황제, 마탑주, 교황이 함께 골머리를 앓아 만들어낸(사실 우리 세계에 있는) 게이트 등급 제도를 말했다.

F에서 S까지 게이트의 양상과 색을 보고 판별하는 방법.

그런데 그게 한 단계씩 높아졌다고?

“게이트 색도 바뀌고?”

내 말에 헬렌은 고개를 저었다.

“아뇨, 색은 그대로입니다! 대신 안에 있는 몬스터들이 갑작스럽게 강해졌다고 합니다!”

“오.”

난 짧게 탄식했다.

히든 루트인 에페를 해치웠으니 뭔가 변화가 있을 거라고는 생각했다.

보통 히든 루트를 뚫으면 그 뒤로 던전 클리어가 어려워진다는 건 정설이었으니까.

덕분에 우리는 에페를 잡고도 긴장했다.

잡기 전에야 히든 루트가 개방되기만 했을 뿐, 전체적인 난이도에 영향을 주는 환경적인 히든 루트는 아닌 것 같았기 때문에 실감하진 못했다.

심지어 히든 루트가 활성화되었다고 해도 만약 에페가 우리와 마주치지 못했더라면 히든 루트고 뭐고 클리어될 일이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번엔 히든 루트인 에페를 마주쳤고 클리어해 버렸으니 이 L급 RP던전 전체에 영향이 간 게 분명했다.

그것도 게이트 사태의 난이도가 올라가는 것으로.

“큰일인데……. 그럼 던전 들어가 있던 사람들은?”

갑자기 던전 난이도가 한 단계씩 올라갔으면 고전하는 걸 넘어서 모두 사망했을 수도 있었다.

“그건―”

헬렌이 답하기도 전에 난 답을 찾아냈다.

“아, 홀딩했지!”

신의 한 수가 아닐 수 없었다.

지금 서제국 대부분의 게이트는 홀딩된 상태였다.

요컨대 던전 공략 중에 난이도가 바뀐 팀은 없을 거라는 뜻.

물론 터지기 직전의 게이트야 빠르게 클리어하기 위해 인력이 투입된 상태였지만, 그들은 괜찮았다.

말 그대로 빠르게 클리어하기 위해서 필요한 전력보다 더 큰 전력을 투입했으니까.

게이트 난이도가 갑작스럽게 상승해도 정상적으로 클리어할 수 있을 것이다.

“홀딩 시간이 어느 정도 남았지?”

“50시간 정도입니다.”

한 번에 게이트를 공략하기로 한 시간까지는 50시간.

난 헬렌에게 손짓했다. 지금 내가 멍때리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에페 때문에 몸이 박살 날 것 같았지만 티 낼 수도 없었다.

“지금 우리 영지에 홀드해둔 게이트가 몇 개지?”

“27개입니다.”

헬렌이 바로 답했다.

“일단 홀드한 게이트들 폭주할 시간은 안 바뀌었는지 전수조사하고, 그 게이트에 들어가기로 했던 팀 목록 다 가져와. 그리고…….”

홀드하고 있던 게이트의 공략팀이야 적절한 병력으로 바꿔주면 그만이다.

문제는 터지기 직전이라 곧 공략에 들어가려고 했던 게이트들이었다.

그중 하나가 분명…….

“테라 강 하류 게이트는?”

C급이었는데? 등급도 좀 있는데다 터지기 직전이라 주시하고 있던 게이트였다.

내 말에 헬렌이 하얗게 질린 얼굴로 고개를 숙였다.

“그곳은 우선 확인했습니다만 게이트 폭주 시간이 바뀌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그래도 터지기 직전인 건 마찬가지란 소리다.

게다가 문제는 그 게이트가 B급 수준이 되었다는 것.

C급 공략팀으로 갔다간 탈탈 털릴 거라는 뜻이다. B급과 C급부터는 차이가 현격하게 나기 시작하니까.

이건 직접 가야겠다.

“지금 들어가기 직전인 파티 목록부터 싹 가져와. 빨리!”

이러다 게이트 터지겠다!

***

난 미야에 급히 게이트 난이도에 대한 소식을 전하는 한편, 전체 게이트 팀 구성을 재편했다.

기사와 마법사, 사제의 수준을 각각 파악해둔 것을 다시 보고 한 단계 높은 게이트에 알맞게 병력을 재편한 것이다.

그리고 그것도 모자라서.

[C급 던전 ‘물살’ 클리어!]

B급 난이도인 주제에 C급이라고 구라치고 있는 게이트까지 클리어해 버렸다.

S급 초과였던 에페를 상대하다가 B급 몹을 상대하니 쉬운 건 좋았다.

문제는 내가 너무 피곤한 상태란 점이었다.

―우우웅!

내가 지쳐 보이긴 했는지 사제들이 연달아 신성마법으로 힐을 올려 주었다.

하지만 저 사제들이 100명이 몰려오고 거기에 주이안 씨까지 온다고 해도 정신적인 피로는 어떻게 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몬스터 잡는 기계 된 기분이잖아!

게다가 일은 그것만 있는 게 아니었다.

난 C급 던전을 클리어하고 나오자마자 헬렌과 마주했다.

“미발견 게이트가 있었습니다, 가주님!”

넌 그런 말을 무슨 게이트 클리어한 지 7초밖에 안 된 딜러한테 하니?

“대응은?”

“비상시에 사용하라 하셨던 병력으로 대응하였습니다!”

그럼 잘 해결된 거잖아!

지금 막 터져서 노답인 것처럼 보고하지 마!

“알았어.”

난 손을 휘휘 내젓고 저택으로 향했다.

[세니아 드 에델바이스(신유리)>>> 개판이다 진짜 다들 괜찮아요?]

[아리엔사 시안 데마르(주이안 씨)>>> 신전 사제 병력도 최대한 동원하고 있어요. 갑자기 던전 난이도가 높아져서 부상자가 속출하는 바람에…….]

[클로나 에이센(예리언님)>>> 우리쪽도 연구마법사고 전투마법사고 다 뛰어나가서 게이트 막고 있어요]

마탑도 신전도 난리였다. 그러는 와중에도 한 명은 답이 없었다.

[아이반 엘레티아 폰 카르만(신재헌놈) - S급(딜러)

- 버프 : 없음]

며칠째 미동도 안 하는 상태창은 오류가 났나 싶을 정도였다.

당연히 말도 없었다.

[세니아 드 에델바이스(신유리)>>> 신재헌 헌터님, 황가 쪽은 어때요?]

[…….]

그는 답이 없었다. 이놈 대체 뭐 하는 거야? 설마 던전 들어갔나?

근데 그런 것치고는 상태창이 너무 조용한데?

설마 습격이라도 당……했으면 버프창이 조용할 리가 없지.

[아이반 엘레티아 폰 카르만(신재헌놈)>>> 네 황성쪽도 대응하고 있어요]

그의 답은 한참 후에 올라왔다. 이놈 잡았다!

[세니아 드 에델바이스(신유리)>>> 전에 보낸 보고서 회신좀]

[…….]

하지만 신재헌은 다시 말이 없었다.

대체 뭔 일이야?

그런데 그걸 신경 쓰기에는 내 앞으로 쏟아진 일거리가 너무 많았다.

난 테이블 가득 쌓인 기사들과 마법사, 사제들의 프로필, 그리고 던전들의 정보를 보다가 머리를 싸맸다.

“말세다, 말세.”

아마 지구에서 이랬으면 전 세계가 패닉이었을 것이다.

그나마 좁아터진 동네에 A급 던전이 잘 안 나와서 다행이지!

A급이면 S급으로 변했을 텐데, 그걸 공략 중인 헌터들이 있었으면…… 오…….

난 끔찍한 상상을 몰아내려고 애썼다.

“일단 처리부터 하아아아암…….”

나도 모르게 하품이 튀어나왔다. 잠이 미친 듯이 몰려왔다.

놀랍게도 이건 체력 부족이었다.

무슨 십 년 전에 운동한다고 설칠 때나 왔던 피로를 헌터씩이나 돼서…….

“으흐아아아암.”

하지만 그러기엔 너무 피곤했다.

에페와 상대하고 나서 서류 처리하고 던전 처리하느라 제대로 잠들지도 못했으니까.

“진짜 전엔 이 정도로 뻗지 않았는데.”

S급이었으면 멀쩡했을 것이다. 난 눈을 꽉 감았다 떴다.

“30분만 자자.”

이럴 땐 자는 게 보약이다. 답이 없다!

원래 낮잠은 30분이 최고효율이랬으니까 30분만…….

……그러니까 1시간 자면 최고효율이 두 번이 아닐까?

한 시간쯤은 자도 되지 않을까? 아니지, 자는 김에 두 시간…….

난 수마를 뿌리치려고 애쓰면서 테이블 이곳저곳을 짚었다.

“알람 맞춰 두고…… 아.”

여긴 핸드폰이 없지.

난 핸드폰 대신 사람을 부르기 위해 설렁줄을 잡아당겼다.

테이블에 얼굴을 기대자마자 잠이 쏟아지는 것 같았다.

“헬렌, 30분 후에…….”

깨워줘.

내가 말을 제대로 했는지 모르겠다.

할 일은 많은데 몸이 버티질 못하고 있었다.

역시 그 에페인지 에퉤퉤인지 하는 놈이 컨디션을 박살 내놓은 게 틀림없었다.

주이안 씨 치료를 받았다고 해도 한계는 있었다.

치유 스킬 받고 멀쩡해지면 이 세상에 병원은 왜 있고 침대는 왜 있냐?

어디 일 대신해주는 우렁각시 안 나타나나…….

―툭.

설렁줄을 당겼던 팔을 내리지도 않고 잠들었다는 사실을 깨닫는 건 아주 잠깐이었다.

팔이 침대에 떨어지면서 잠깐 든 정신에 목소리가 들린 것도 같았다.

‘……님, 교……께서…….’

웅웅거리는 소리.

‘……게요. 피곤하신……, ……은데.’

부드러운 중저음이 들리는 것도 같았다. 그렇게 난 꿈속으로 빠져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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