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 던전의 S급 시한부 영애 (108)화 (108/218)

108화

“영지민들을 해칠 몬스터를 두고 도망칠 순 없었어.”

검생검사 카르만 만세!

내 말에 헬렌이 멈칫했다.

“그건 영주 이전에 한 명의 기사로서 말도 안 되는 일이니까.”

언제 이런 오글거리는 대사를 할 수 있게 된 걸까요?

역시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었다.

내가 감동받는 사이.

―팟!

RP던전 페널티 위기가 해제되었다. 후. 내가 짧은 한숨을 삼켰을 때였다.

“…….”

침묵하며 고개를 숙이고 있던 헬렌이 고개를 들었다.

그녀는 감명받은 얼굴이었다. 감명……은 받아도 되는데.

잠깐만.

저 얼굴을 보니 왠지 불길했다.

이 이야기를 들었으면 끓어오르는 피를 주체하지 못하고 포효했을 어떤 백작이 떠올라서.

난 재빨리 말했다.

“최대한 소문은 나지 않게 해. 그 이상으로 강한 몬스터는 숲에 없었으니까. 소문이 나 봐야 영지민들만 불안해할 거야.”

아무튼 소문 내지 마! 바이야 백작 귀에 들어가게 하지 마!

뒷말은 당연히 삼켰다.

그러자 헬렌이 결연한 얼굴로 묵례했다.

“……알겠습니다. 주인님의 깊은 뜻, 이 한 몸 바쳐 받들겠습니다.”

“?”

어…… 그래, 그래라…….

헬렌이 각 잡힌 걸음으로 걸어 나갔다.

그러다 잠시 멈춰 서서 눈물을 훔쳤다.

“역시…… 그분께서 가주님께 우릴 보내신 이유가 있었어……!”

B급의 쓸데없이 좋은 귀에는 안 들어도 될 중얼거림까지 흘러들어왔다.

“…….”

왜 바이야 백작 대신 숨어 있는 지뢰를 밟은 것 같지?

난 헬렌마저 텐치아 백작에 이어 그 ‘끓어오르는 피’가 될 것 같은 불길함을 지울 수가 없었다.

“아.”

그래서 중요한 걸 잊을 뻔했다.

난 눈물을 감추려 고개를 숙이고 있는 헬렌에게 말했다.

“던전 홀드 관련해서 황가로 보고서 보내는 거 잊지 말고.”

“알겠습니다!”

각 잡힌 헬렌의 인사가 울렸다.

하지만 그녀가 각을 잡든 말든 며칠 후, 상황은 묘하게 흘러가기 시작했다.

“폐하께서 외출 중이셔서, 보고를 받으시는 데에 시간이 소요된다고 합니다.”

며칠 후에 헬렌이 받은 연락이었다.

난 눈을 깜빡였다.

“외출?”

그럼 돌아와서 받으면 되는 거 아냐? 그놈이 노숙자도 아니고 길바닥에서 몇 날 며칠이고 잘 리가.

“알았어.”

난 가볍게 손짓했다. 어차피 안 받으면 부르면 되니까.

[세니아 드 에델바이스(신유리)>>> 똑똑똑똑 익스큐즈미 신재헌터님 보고서받아주세요]

하지만 신재헌은 다음 날도, 그다음 날도 답이 없었다.

“?”

난 눈썹을 치켜 올렸다.

***

신유리가 S급이 된 날부터 그녀를 노리는 사람들은 많았다.

그녀는 어렸고 심지어 옆에는 약점이 될 C급 짐덩어리를 달고 다녔으니까.

그런 그녀를 혀놀림으로 회유하려는 자들도, 계약으로 묶어두려는 자들도 셀 수가 없었다.

온통 그녀를 속이고 이용하려는 사람들 사이에서, 신유리는 힘들어했다.

‘빡치면 그냥 엎어버리지, 뭐. S급 헌터를 설마 감방에 처박겠어?’

힘들지 않느냐고 물어보면 신유리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그렇게 답했다.

하지만 신재헌은 어느 날 새벽에 알았다.

잠이 유독 오지 않던 날, 눈을 뜬 그는 숨죽여 우는 누군가의 울음소리를 들었다.

당시 두 사람이 있던 헌터협회의 임시 거처는 충분한 방음을 제공하는 곳이었다.

하지만 그것도 일반인 기준에 불과했다. S급 옆에 있으니 빛을 발하지 못할 뿐, C급도 충분히 범인의 수준을 벗어난 감각을 가지고 있었다.

그랬기에 그는 들었다.

‘…….’

숨죽여 우는 신유리의 울음소리를.

그는 일어나서 위로할 수가 없었다. 숨조차 쉴 수가 없었다.

아니, 애써 평온하게 숨을 내뱉어야 했다.

저보다 더 귀가 좋을 신유리는 자신이 자고 있는 줄 알아야 했다.

그래야 그녀는 울 수 있었다.

제 앞에서는 울지 않으려는 신유리가 울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을, 그는 망쳐버릴 수 없었다.

먹먹한 울음소리에 숨이 막히는 것 같아도 그랬다.

늘 괜찮다는 신유리. 그런 그녀를 위로하지도 못하는 자신.

그 사정을 누군가에게 털어놓은 건 S급들의 모임에서였다.

‘C급이 여길?’

‘아, 신유리 헌터의 그…….’

당시 C급이었던 그는 ‘신유리의 초청손님’으로 자리에 있었다.

신유리가 혼자 갈까, 같이 갈까 고민할 때 같이 가자고 한 건 자신이었다.

둘이 떨어져 있을 때 다른 헌터들이 그를 귀찮게 굴까 봐 그녀가 마음을 쓴다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다른 헌터들이 거슬리게 굴 텐데, 괜찮아?’

거슬리게 구는 게 아니라 지나가던 돌멩이나 없는 것 취급을 하겠지만, 신유리는 그걸 알면서도 그렇게 말하지 않았다.

‘괜찮아.’

신재헌은 고민 없이 답했다. 그리고 무시를 견뎌냈다. 그건 익숙한 일이니까.

네가 혼자 나가서 내 걱정을 하는 것보다는 나아.

그 말은 삼켜 버렸다.

항상 속으로 생각이 많은 신유리. 자신이 생각이 없다고 매일 말하지만 아니라는 걸 신재헌은 알았다.

그녀는 너무나도 복잡하고, 너무나도 쓸데없이 상냥했다.

그 사실을 알면서도 그는 모른 체했다. 끝까지 모른 척 속으로 삼키려고 했다.

하지만 그날, S급들을 위한 파티에는 함정 아닌 함정이 있었다.

어지간한 알코올에는 반응도 하지 않는 S급들을 위해 독주가 준비되어 있었던 것을, 그는 몰랐다.

‘…….’

세상이 빙글빙글 돌아간다고 생각할 즈음에, 신유리가 화장실을 다녀오겠다며 잠시 자리를 비웠다.

신재헌은 없는 정신에도 알았다.

저건 헌터협회장이 보자고 해서 나간 거다.

또 길드 사람들과 헌터협회장이 그녀를 어떻게든 꼬드기려고 애쓰고 있을 것이다.

그걸 알면서도 나간 거고.

그리고 나는 그걸 모른 척하고.

신재헌이 복잡한 마음으로 눈을 감았다 떴을 때, 눈앞에는 붉은 머리의 여자가 있었다.

유리가, 아니다.

그 사실을 깨닫는 건 늦었다.

‘당신이 신재헌 헌터죠?’

그렇게 묻는 여자는 당연히 S급이었다. 하지만 반짝이는 금안에는 호기심이 엿보였다.

다른 S급들의 시선과는 달랐다. 그래서 긴장을 풀어 버렸는지도 몰랐다.

‘네.’

‘난 소예리예요.’

그게 소예리와의 첫 만남이었다.

그녀는 두 사람에게 관심이 많다고 했다.

‘왜요?’

‘그야 생사가 오가는 헌터계에서 택하기 쉬운 조합은 아니니까?’

그녀는 솔직한 사람이었지만, 신경을 긁는 말은 요령 좋게 잘 피하는 사람이었다.

‘내가 짐덩어리라서요?’

‘글쎄요, 짐인지는 모르겠지만 보통 짐도 쓸모가 있으니까 들고 다니는 거죠.’

생긋 웃는 소예리 헌터의 눈은 반짝였다.

그 눈은 이야기를 이끌어 내는 힘이 있었다.

‘힘들진 않아요? 같이 다니는 거.’

오랜 시간 사람을 불신하던 신재헌이 입을 열었던 것도, 알코올의 힘만은 아니었을 터였다.

‘아뇨, 전 안 힘들어요.’

처음이었다. 진실을 털어놓을 수 있었던 것은.

‘그 애가 힘들죠. 그 애는…….’

신유리는 역시 늦었다. 헌터협회와 길드 사람들이 놓아주지 않는 것이리라.

‘……내 앞에선 울지 않아요.’

소예리는 눈도 깜빡이지 않고 그의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처음엔 몰랐어요.’

그냥 늘 활기찼으니까. 넌 그런 애니까.

그렇게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너는 울 자리가 없었던 것뿐이다.

숨어서 울 수밖에 없었던 것뿐이다. 너보다 약한 나를 위해서.

네가 지켜줘야 하는 내가, 불편하지 않게 하려고.

‘신재헌 헌터님은 짐이 아니구나.’

그때 그 모든 이야기를 들은 소예리는 그렇게 말했다.

‘신유리 헌터님이 기댈 기둥 같은 사람이네요. 신재헌 헌터님은.’

소예리의 목소리는 담담했다. 꾸며낸 목소리가 아니었다.

‘부러지지만 않으면 돼요. 괜찮아.’

그 말은 오히려 신재헌에게 기폭제가 되었다.

그로부터 딱 한 달 걸렸다. 신재헌이 A급이 되기까지는.

손에 피가 나고 근육이 끊기는 것 같아도 그는 멈출 수가 없었다. 어떻게든 그는 강해져야 했다.

그 간절함이 만들어낸 것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강해질수록, 그는 그녀를 대신해서 많은 것을 처리했다.

‘S급치고는 너무 현실감각이 없지 않아?’

‘어린 거지.’

그녀에 대해 뒷이야기를 떠들던 자들을 처리했다. 그녀가 불편한 말을 듣지 않도록.

그리고 그녀의 짐이 아닌 기둥이 되기 위해 기를 쓰고 노력했다.

[신재헌…… 등급 판정 결과.]

[S]

그렇게 그의 랭크업으로 전 세계가 떠들썩했던 날.

그는 시끄러운 뉴스 따위는 쳐다보지도 않았다. 집 앞에 모여든 기자들에게도 일말의 관심조차 주지 않았다.

‘진짜 힘들었을 텐데, 버텨줘서 고맙고! 축하해!’

그렇게 말하는 신유리만 보았다.

버틴 게, 너일까 나일까?

하지만 그날 이후로는 좋았다.

그는 강해진 자신이 좋았다. 더는 신유리의 등만 보지 않아도 되는 자신이 좋았다.

그녀가 불안해하지 않을 정도로 강해진 자신이, 좋았다.

그런데.

‘……!’

이번에 숲에서 본 신유리는, 그와 아주 가까이에서 눈이 마주친 순간.

불안한 표정을 지었다.

너는 왜 늘…….

[세니아 드 에델바이스(유리) - B급(딜러)

- 버프 : 잔상(SS+)…… 순간가속(SS)]

나를 보면 그런 표정을 짓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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