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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던전의 S급 시한부 영애 (106)화 (106/218)

106화

물론 얼굴 가릴 거 찾다가 왔으면 난 죽은 채로 발견되었을 것이다.

“역시 저 여자에게 무언가 있는 것이로군!”

에페의 검이 더 빠르게 움직인다고 생각한 순간이었다.

신재헌과 맞서는 듯했던 놈의 검이 나를 노리고 날아들었다.

“이 몸이 죽더라도, 그분의 명령만은!”

“!”

그분이 누군데! 우리도 좀 알자!

알 것 같았지만 물어볼 틈도 없이 검을 들어 올렸다.

[잔상(SS+) - 잔상(SS+) 스킬을 사용합니다.]

빠르게 겹친 내 잔상 위로 놈의 검이 내리꽂히려는 때였다.

[수룡의 가시비늘(B)의 손상 정도가 심합니다.]

가지가지 하네!

내가 이를 악물었을 때였다.

[헌터 주이안(S)이 ‘보호의 손길(SS+)’ 스킬 효과를 부여합니다.]

―쩡!

보호스킬과 함께 신재헌의 검 역시 나와 에페 사이에 끼어들었다.

“와, 어떻게 이런 놈을 혼자 잡고 있었지?”

그는 눈살을 찌푸린 채 말했다.

에페가 입은 중상이 눈에 띈 모양이었다. 저건 신재헌이 아니라 내가 입힌 상처였다.

저것 때문에 놈이 힘을 제대로 발휘되지 못해서 다행이었다.

“랭크도 안 보이는데.”

그가 에페의 머리를 흘끗 올려다보았다.

[세니아 드 에델바이스(신유리)>>> 페널티는 아예 포기하기로 한 거야?]

그렇게 이 세계 사람 앞에서 랭크네 뭐네 떠들어도 돼?

“들으면 어때. 죽일 건데.”

신재헌은 빠르게 대꾸했다. 내가 멈칫한 순간이었다.

―쌔액!

신재헌의 몸이 앞으로 빠르게 튀어나갔다.

온갖 버프로 붉은 기운이 감도는 말레티아의 검이 놈을 후려쳤다.

―콰앙!

아슬아슬하게 빗나간 검이 바닥을 갈랐다. 에페는 뒤로 멀찍이 뛰어올라 피한 상태였다.

―우웅!

그런 그의 뒤로 연두색의 빛이 구축되었다.

보호막이었다.

그리고 그건 누군가를 보호하기 위한 것이 아닌 듯했다.

“!”

갑작스레 허공에 생긴 보호막 때문에 놈의 중심이 흐트러진 순간.

신재헌의 검은 아직 바닥에 꽂혀 있었고 움직일 사람은 나뿐이었다.

그 순간을 나는 놓치지 않았다.

[세니아 드 에델바이스 – B급(딜러)

- 버프 : 포를랭 4검식(A) 잔상(SS+) 잔상(SS+)…… 순간가속(SS)]

수도 없이 겹친 잔상 버프 뒤에 순간가속이 더해졌다.

난 그 속도 그대로 놈에게 검을 내질렀다.

아무리 B급이라고 해도 들고 있는 게 칼이고, 상대가 인간인 이상 무방비 상태에서는 맞을 수밖에 없었다.

―푸욱!

검이 놈의 몸을 파고들었다. 그리고 타이밍 좋게도.

[‘수룡의 가시비늘(B)’이 부서졌습니다!]

놈의 몸에 검을 박아 넣자마자 검은 박살 나 버렸다.

그 파편이 놈의 몸을 파고든 건 물론이었다.

“컥……!”

―쨍그랑!

검을 들고 있던 놈의 손에서 힘이 풀렸다.

신재헌이 랭크가 안 보인다고 하는 걸 보면 SS급 이상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불사신은 아니지.

털썩, 무릎을 꿇은 놈이 서서히 옆으로 쓰러지면서 뇌까렸다.

“동제국을…… 위하여.”

그 순간 주변이 회색으로 물들었다.

[히]

얼마 전처럼 누군가 손으로 쓰는 것처럼 천천히 나오는 글씨였다.

[히 든]

[히 든 루 트 클 리 어]

놈이 죽었다는 걸 확실히 나타내는 시스템창이었다.

―파앗!

다시 회색으로 물들었던 세상이 원래의 색으로 돌아오고, 놈이 완전히 힘을 잃고 쓰러져 버렸다.

―툭.

그리고 그 옆으로 장갑 하나가 떨어져 내렸다.

“보호막 위치 어땠어요?”

그 위로 폴짝 뛰어내린 건 당연히 소예리 헌터였다.

아까 저놈의 중심을 완전히 무너뜨린 사람.

난 그녀에게 말없이 엄지를 척 들어주었다.

소예리 헌터가 날 보더니 한숨을 포옥 내쉬었다.

“얼마나 놀랐는지 알아요!?”

그러면서 나한테 달려들어 폭 안겼다.

“으어어, 체력 빠져요!”

“안 빠져! B급이면 안겨도 돼!”

[지나치게 강한 힘을 받아 체력이 소모됩니다.]

[-10232]

“안 될 것 같은데요?”

“돼!”

다시 소예리 헌터가 날 으스러져라 끌어안았다.

“상처, 상처!”

내가 비명을 지르자 그제야 놓아 주었다. 그녀는 웃는 얼굴과는 달리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그만큼 급하게 달려왔다는 뜻이리라.

―콰직!

주변을 살피던 신재헌은 위험 요소가 더 이상 없다는 걸 확인하고 나서야, 말레티아의 검을 땅에 박고 바닥에 뻗어 버렸다.

“십년감수했네.”

“얼마나 놀랐는지 모릅니다.”

주이안 씨도 하얘진 얼굴이었다. 나도 고개를 끄덕였다.

“마실 나와서 저런 거 마주칠 줄은 몰랐지.”

내가 에페의 검에 깔끔하게 잘려나간 나무둥치에 걸터앉았을 때였다.

에페를 살피던 소예리 헌터가 그에게서 굴러떨어진 무언가를 살폈다.

“뭐예요, 그건?”

“음.”

소예리 헌터는 눈썹을 치켜올렸다가 말했다.

“주이안 헌터님이 싫어할 물건?”

“?”

누가 봐도 장비 아이템인데?

우리의 시선이 쏠린 가운데 소예리 헌터가 주이안 씨에게 물건을 건네주었다.

자세히 보니 장갑이었다.

주이안 씨는 장갑을 살피다가 눈살을 찌푸렸다.

“확실히 우리한테는 필요 없는 물건이네요.”

“뭔데?”

“?”

나와 신재헌의 시선이 나란히 장갑을 따라갔다.

L급 던전에서 히든 루트 보스를 클리어했는데 쓸모없는 걸 줄 리가?

[아리엔사 시안 데마르(주이안 씨)>>> 투쟁의 장갑(SS) 특수버프 ‘투쟁의 의지(SS)’ : 골절이나 중상 상태에서도 고통을 느끼지 않고 최상의 컨디션으로 움직일 수 있다(사망 시까지 적용).]

사망 시……까지?

요컨대 저 장갑을 쓰면 뼈가 부러져도 멀쩡하게 움직일 수는 있다는 소리였다.

부러진 뼈로 움직이는 대가로 몸에 데미지는 받겠지만.

그래서 사망할 때까지 적용이라고 쓰여 있는 것이 분명했다.

한마디로 죽자 사자 할 때 쓰는 물건이라는 건데.

“혹시 모르니까―”

신재헌이 그에게 손을 내밀었다. 주이안 씨는 딱 잘라 말했다.

“안 됩니다.”

그는 인벤토리에 던져 넣은 아이템을 뺄 생각이 없어 보였다.

그러고는 우리에게 진단 스킬을 사용했다.

[헌터 주이안(S)이 ‘진단(S)’ 스킬을 사용합니다…….]

[진단 완료.]

[헌터 주이안(S)이 헌터 신재헌(S)의 진단 결과를 공유합니다 : 이상 없음]

신재헌의 진단 결과는 멀쩡했다. 그 사이 나와 신재헌의 시선이 마주쳤다.

그가 눈살을 찌푸렸다.

“너 저거 잡으려고 했지.”

그러더니 별안간 정곡을 찔렀다.

“멀쩡하게 보낼 수는 없잖아.”

난 그 말에 좀 늦게 답했다. 신재헌이 눈을 가늘게 뜨는 게 보였다.

“그럼 너는 죽은 채로 발견되고?”

그 말에 난 입을 벙긋거렸다.

어차피 소생 스킬 있으니까 저놈한테 중상만 입히면, 저놈 처리하고 와서 살려주면 되잖아?

……라는 계획을 뻔뻔하게 떠들 수는 없었다.

나 살리겠다고 뛰어온 사람들 앞에서.

무엇보다 신재헌은 정말 죽을 뻔했다.

적절한 순간에 주이안 씨가 오지 않았다면 놈의 차지스킬 방어막을 뚫을 수 없었을 거고, 신재헌은 어떻게든 내게 오는 피해를 최소화하려고 했을 것이다.

그런 놈이니까.

‘너 대신 죽겠다고.’

“……데미지 감소 스킬로 버티려고 했지.”

‘나는 언제나 네 앞에(SS)’.

그거면 50% 데미지 감소는 되니까 어떻게든―

[……것 앞에서 데미지 감소 99%]

잠깐, 아까 분명 99%가 뜨지 않았나?

내가 눈을 크게 떴을 때였다.

“일단 쉴 곳부터 찾아 봐요.”

주이안 씨의 온화한 목소리가 우리 시선을 갈라놓았다.

나를 노려보던 신재헌의 시선이 가려졌다.

무모하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내가 멈출 수 없었다는 걸 신재헌은 알 것이다.

내가 무엇을 노리고 S급 이상의 적에게 B급 스탯을 들고 달려들었는지, 모르지 않을 것이다.

‘넌 좀 너를 챙길 필요가 있어.’

‘난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게 다 죽고 나 혼자 사는 거야.’

십 년을 이래왔으니까.

“……쉴 곳이라면 있어요.”

결국 나를 쏘아보던 시선을 돌린 신재헌이 몸을 일으켰다.

이 주변에 쉴 곳이 있다고?

난 멀리 보이는 에델바이스 가의 저택을 돌아보았다.

“……내 저택?”

이렇게 오늘 하루 페널티 파티 즐기는 거야?

“에델바이스 기사들이 오고 있어요. 일단 여기서 피해야 할 것 같은데…….”

소예리 헌터가 멈칫하더니 먼 곳을 돌아보았다.

사람을 감지하는 결계를 깔아두신 듯했다.

“빠르기도 하지.”

이럴 땐 좀 늦게 오면 안 돼?

이래서 열심히 사는 놈들이 문제라니까!

내가 눈살을 찌푸릴 때였다.

“따라와요.”

신재헌이 몸을 일으키더니 인벤토리에 말레티아의 검을 던져 넣었다.

***

우리가 숲을 가로질러 걸어서 온 곳은 놀랍게도 황가 소유의 안전가옥이었다.

아무도 없는 곳. 하지만 잘 숨겨져 있는 소담한 집.

난 안심하면서도 놀랄 수밖에 없었다.

“아니, 내 저택 옆에 왜 안전가옥이 있어?”

“별장이야.”

신재헌이 성의 없이 대꾸했다.

너는 무슨 별장을 친구 집 앞마당에 만드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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