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5화
경험 많은 자들은 모두 안다.
강한 공격 직후에 가장 큰 빈틈이 생긴다는 걸.
그러니 딱 3초 내로 끝내야 했다.
[매크로 ‘지금몬스터날아오는데그게문제냐(C)’ 사용합니다.]
줄줄이 뜨는 잔상 스킬 시스템창을 무시하면서 놈에게 검을 빠르게 꽂아 넣었다.
암순응과 그림자 속의 무법자, 순간가속까지 들어간 잔상 수십 개가 놈에게 쇄도했다.
천상의 견갑 보너스 덕분에 순간가속에는 더 빠른 속도가 붙었다.
“!!”
난 옆으로 틀어진 상대의 몸으로 파고들어 목을 베려 했다.
하지만 놈은 간신히 몸을 틀어 피했다. 대신 내가 벤 것은 놈의 옆구리였다.
―파파팟!
물론 빠른 속도 덕에 놈의 몸에 거친 상처가 생겨나는 게 보였다.
2초.
[매크로 ‘지금몬스터날아오는데그게문제냐(C)’를 사용합니다.]
[잔여 마력 : 20% 이하]
새빨갛게 번쩍이는 시스템창은 무시했다.
다시 파고들자 놈이 팔을 들어 내 잔상을 막아내려고 했다.
―파팟!
[지나치게 강한 힘을 받아 잔상(SS+)효과가 해제됩니다.]
잔상 하나를 내준 후 놈의 팔을 깊이 베어낼 수 있었다.
그리고 1초.
난 마지막으로 놈이 들고 있는 검을 멀리로 쳐냈다.
―챙!
검 손잡이와 놈의 손 사이로 검을 찔러 넣자 놀란 놈이 검에서 손을 떼었다.
당연히 검은 멀리로 날아가 처박혔다.
물론 S급쯤 되면 검이 없다고 싸우지 못하는 건 아니지만, 검이 있는 것보단 나을 테지.
[순간가속(SS) 종료]
[순간가속(SS)의 후속효과로―]
난 시스템창이 제대로 뜨기 전에 준비해뒀던 스킬을 썼다.
[나는 언제나 네 앞에(SS) 스킬을 사용합니다.]
[―움직임이 5초간 멈춥니다.]
가장 큰 공격 후엔 가장 큰 빈틈이 온다.
놈도 내 공격이 끝난 직후를 노릴 거다.
그게 ‘나는 언제나 네 앞에’ 스킬이 2초밖에 안 되는데도 사용한 이유였다.
굳어 있는 5초 중 앞의 2초 동안 놈의 가장 강한 반격이 돌아올 테니까.
그리고 예상대로 놈의 발차기가 날아들었다.
“끝이다!”
그렇게 말하는 걸 들으면서도 몸을 움직일 수 없었다.
―콰앙!
눈앞이 까마득해졌다.
그래서 시스템창은 더 선명하게 보였다.
[나는 언제나 네 앞에(SS) 효과 발동 중]
[데미지를 받았습니다.]
[나는 언제나 네 앞에(SS) : □□□□□□ 앞에서 데미지 99% 감소]
[나는 언제나 네 앞에(SS) : □□아끼는□ 앞에서 데미지 99% 감소]
어?
안 보였던 글자가 슬며시 떠오르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언제나 네 앞에(SS) : ……앞에서 데미지 99% 감소]
그걸 자세히 보려는 순간.
―팍!
거친 바닥이나 나무둥치 대신, 누군가가 나를 받아드는 게 느껴졌다.
[잔여 체력 10% 이하]
[시야가 흐려집니다.]
시야가 흐려져도 목소리는 분명하게 들렸다.
“미쳤냐!”
화를 내면서도 놈의 공격을 막는 사람은 붉은 대검을 들고 있었다.
신재헌이었다.
“어?”
그 순간 눈앞이 새빨갛게 물들었다.
[잔여 체력 : 1% 이하]
정말 간신히 살았다. 그렇게 생각한 순간이었다.
내 위로 신재헌의 겉옷이 덮였다.
“끈질기구나!”
시야가 그 겉옷으로 가려진 사이, 놈의 목소리가 쩌렁쩌렁 울렸다.
여기저기 푹푹 찔린 주제에 여전히 우렁찬 목소리를 내는 걸 보면 아무리 봐도 끈질긴 건 저쪽이었다.
―쩡!
놈의 검과 신재헌의 검이 부딪히는 소리가 울렸다.
굉음이 울렸다.
이거 설마 충격파로 죽는 거―
[‘아방가르드 망토(L)’ 효과로 5만 이하의 데미지를 무시합니다.]
[너무 강력한 힘이 물건에 깃들어 있습니다.]
[이동속도가 제한됩니다.]
L급 방어구……. 신재헌의 망토였다.
그럼 저놈은 이거 없이 충격파를 맨몸으로 다 맞고 있단 말이야?
탱킹용으로 샀던 거 분명히 기억나는데?
무거운 몸으로 간신히 망토를 젖혀본 순간이었다. 이미 팔이며 목가며 볼이며 피투성이인 신재헌이 보였다.
그런데.
“넌 얼굴 까고 오면 어떡해!”
신재헌은 얼굴을 가리지도 않고 온 상태였다.
요컨대 서제국 황제 아이반의 얼굴 그대로라는 의미였다.
심지어 황성에서 언젠가 봤던 것처럼 화려한 옷차림 그대로에, 검은 셔츠에는 금빛의 칼라체인이 빛나고 있었다.
황가를 나타내는 독수리 모양이 곱게 새겨진 브로치까지 보였다.
“넌……!”
다른 건 몰라도 독수리 펜던트는 빼도 박도 못하게 황가 사람이라는 증거였다.
그 사실을 알아챈 놈이 눈을 크게 떴다.
분명 신재헌 앞에도 RP던전 페널티 위기가 떴을 거다.
―챙!
하지만 그는 말없이 놈의 검을 쳐냈다.
이제 저놈이 여기서 서제국 황제를 봤다는 것을 말하는 순간, 신재헌에겐 RP던전 페널티가 닥쳐올 터였다.
“처리하면 되잖아!”
신재헌이 내 말에 한 박자 늦게 대꾸했다.
뭘? 설마 저놈이 입 털기 전에 닫게 하겠다고?
L급 히든 루트인데?
그런 억지가 어디 있어?
내가 말을 못 이을 때였다.
“포션이나 먹어!”
신재헌이 외쳤다.
그러자 망토 어디에서 굴러떨어졌는지 모를 던전산 포션이 나왔다.
[HP 회복 포션(특대)]
던전산 아이템이었다.
이놈 아주 막 나가는구만?
누가 보면 페널티 없는 줄 알겠다!
다 죽어가던 인간이 물약 빨고 멀쩡해지면 퍽이나 페널티 없겠다!
[잔여 체력 : 1% 이하]
하지만 그걸 따지기에는 체력이 사망 직전이었다.
어차피 신재헌이 포션의 존재를 알린 이상 페널티를 피할 순 없었다.
뚜껑을 따고 마시자마자 포션 효과가 몸에 확 돌았다.
[체력을 최대체력의 20%만큼 회복합니다.]
[1분간 포션을 마실 수 없습니다,]
[24시간 동안 같은 종류의 포션을 마실 수 없습니다.]
익숙한 시스템창이 스쳐 지나가고 나서야 시야가 제대로 잡혔다.
―쩡!
신재헌이 간신히 놈의 검을 막고 있는 것도 보였다.
[아이반 엘레티아 폰 카르만(신재헌) - S급(딜러)
- 버프 : 검의 수호자(A) 뜨거운 피(A) 화염검(SS) 기혈개방(S) 책임감(S)]
풀버프 상태로 뛰어든 듯했다.
책임감까지 켰으면 절대 물러날 생각이 없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파티 중 가장 선두에 있을 때 데미지가 감소되는 스킬. 대신 파티원보다 뒤로 물러나게 되면 추가 데미지를 받는다.
그래서 그가 쉽게 쓰지 않는 스킬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걸 따질 틈도 없다는 소리였다.
“대체 황제가 한낱 백작을 왜……!”
놈이 눈살을 찌푸리면서 뒤로 물러났다.
설마 튀려는 거?
잔상을 만들어 막으려는 순간, 놈이 검을 크게 쳐들었다.
그러면서 눈을 번뜩였다.
[에페(?) ‘뇌전의 정복자(L)’ 스킬 준비율 59%]
딱 봐도 이 숲은 우습게 날려버릴 광역기였다.
거기다 L급? L급???
―콰르르릉! 쿠릉!
놈의 검 끝으로 마른하늘 어디에서 튀어나왔는지 모를 창백한 낙뢰가 거듭 내리꽂혔다.
[아이반 엘레티아 폰 카르만(신재헌놈) - S급(딜러)
- 버프 : 검의 수호자(A) 뜨거운 피(A) 화염검(SS) 기혈개방(S) 책임감(S) 육참골단(SS)]
신재헌이 버프를 휘감은 검을 놈에게 내리꽂았다.
―쿠콰쾅! 콰직!
하지만 신재헌의 검은 놈의 주변을 감싼 배리어를 뚫지 못했다.
강한 스킬을 준비할 때 자동생성되는 방어막이 지나치게 단단한 것이다.
금이 간 방어막에 신재헌의 검이 다시 내리꽂혔다.
―콰직!
하지만 방어막은 부서질 듯 부서지지 않았다.
[에페(?) ‘뇌전의 정복자(L)’ 준비도 : 75%]
스킬 준비 속도가 너무 빨랐다.
신재헌은 그 앞에서 말레티아의 검을 든 채 몸을 낮추었다.
[아이반 엘레티아 폰 카르만(신재헌놈) - S급(딜러)
- 버프 : 검의 수호자(A) 뜨거운 피(A) 화염검(SS) 기혈개방(S) 책임감(S) 준비된 일격(S) 육참골단(SS)]
저걸 막는 건 말도 안 되는 일이다. 그는 방어막을 깨려는 듯했다.
어쨌든 스킬 준비만 방해하면 되니까.
[잔상(SS+) 스킬을 국소 범위에 적용합니다.]
[적용 범위 : 헌터 신재헌의 ‘말레티아의 검(SS+)’]
신재헌이 멈칫하는 것도 잠깐.
[헌터 신재헌, 잔상(SS+)효과 승인.]
몇 배는 강해졌을 그의 검이 방어막에 내리꽂히려는 순간이었다.
[아이반 엘레티아 폰 카르만(신재헌놈) - S급(딜러)
- 버프 : 검의 수호자(A) 뜨거운 피(A) 화염검(SS) 기혈개방(S) 책임감(S) 준비된 일격(S) 육참골단(SS) 잔상(SS+) 보호의 손길(A) 안전지대(S) 순간집중(SS)]
그의 버프창이 번쩍이면서 버프가 순식간에 더해졌다.
어?
[헌터 주이안(S)이 ‘회복의 손길(SS+)’ 스킬 효과를 부여합니다.]
[잔여 체력 : 70% 이상]
[‘상태이상 : 무기력’ 해제]
주이안 씨? 그가 어디에 있는지 돌아볼 틈도 없이.
[에페(?) ‘뇌전의 정복자(L)’ 준비도 : 100%]
눈앞이 창백한 전기로 뒤덮였다.
―콰콰콰쾅!
팍 깎이는 듯했던 신재헌의 체력이 안정적인 상태로 올라오는 게 보였다.
―탁.
그리고 내 앞에 다급히 뛰어온 것 같은 주이안 씨가 섰다.
그러자 놈이 눈을 크게 떴다.
“교황까지……!”
댁도 얼굴 까고 왔냐!
페널티 파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