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 던전의 S급 시한부 영애 (100)화 (100/218)

100화

―덜컹!

신시안 교의 마차가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여기서 만날 줄은 몰랐지 뭐예요?”

“저도 의외였습니다.”

주이안이 답했다.

소예리 헌터가 펼친 방음 마법 등의 결계가 마차 내부를 몇 번 감쌌다.

이제 안쪽의 대화가 바깥으로 들리진 않을 것이다.

성기사들은 혹시 두 사람 사이에 무슨 일이 생길까 걱정되는지, 블라인드만큼은 걷어 달라고 간청했다.

덕분에 창문 밖을 돌아보면 성기사들과 가끔 시선이 마주쳤다.

하지만 대화는 들리지 않으니 페널티를 받을 일은 없으리라.

“아휴, 편하다!”

소예리 헌터가 시원하게 웃었다. 주이안이 그녀를 돌아보았다.

“오랜만에 승마를 즐기셨나 보군요.”

그 말에 소예리가 다시 웃음을 터뜨렸다.

“역시! 주이안 헌터님은 아실 줄 알았다니까. 근데 너무 달렸더니 질리지 뭐예요.”

소예리 헌터가 어깨를 으쓱했다.

“난 천생 보조계인가 봐. 땅보단 날아다니는 게 편하더라구.”

역시 특식은 조금씩만 먹어야 맛있다니까?

그렇게 조잘거리던 소예리 헌터는 손을 펴 보였다.

“아무튼 그래서 날아가려고 했는데 웬걸? 이쪽에 번쩍~번쩍한 마차가 가고 있는 거 아니겠어요?”

그녀의 발랄한 목소리가 마차를 울렸다.

“근데 딱! 뚜껑에 달린 게 신시안 교 문장이네?”

그녀가 기분 좋게 웃음을 터뜨렸다. 그러더니 슬그머니 물었다.

“혹시 방해된 거 아니죠?”

“그럴 리가요.”

주이안이 온화한 미소로 그녀의 말을 받았다.

“쪼아쪼아, 그럼 편하게 있겠어요. 안면몰수, 얍!”

소예리는 그렇게 말하고는 창문 밖에서 보이지 않을 사각지대에 몸을 기대었다.

그리고 잘 보이는 창가 자리에는 제 분신을 소환해 앉혀 놓았다.

성기사들의 의심을 받지 않기 위해서였다.

“이렇게 둘만 타니까 지난번 휴가 갔을 때 생각난다!”

널브러지려던 소예리 헌터가 고개를 번쩍 들었다.

그녀가 있으니 마차 안의 공기도 활발하게 떠오르는 기분이었다.

주이안과 눈이 마주친 소예리가 눈을 찡긋했다.

“오리배 탔을 때! 기억나요? 시합했던 거?”

“아.”

주이안은 저도 모르게 당시를 생각하다 웃어 버렸다.

반면 소예리는 얼굴을 구겼다.

그러더니 손을 열심히 펴 보이며 부당함을 주장하기 시작했다.

“아니, 딜러 둘이랑 힐러 보조계랑 피지컬 싸움이 되겠냐구!”

그때 신재헌과 신유리가 탄 배는 모터가 달린 배를 방불케 하는 속도로 앞으로 튀어 나갔다.

아무리 같은 S급이라지만 몸 움직이는 데서는 딜러들과 힐러, 보조계 사이에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

주이안이 옅게 웃었다.

“그래서 소예리 헌터님께서 오리배를 얼려서 가둬 버리셨죠.”

‘사기다! 사기!’

그렇게 외친 소예리 헌터는 한강 한가운데에서 얼음 감옥 스킬로 신재헌과 신유리의 배를 가둬 버렸다.

“헹, 그런다고 당할 인간들인가. 난 잠깐 페널티만 준 거라고요.”

소예리 헌터가 입을 비죽였다.

그녀의 말대로였다.

배가 갇히자 당황하는 것도 잠깐, 불만이 터져 나온 배에서 곧 화르륵 불꽃이 타올랐다.

―치이익!

그리고 신재헌의 화염검 스킬이 얼음 감옥을 싹 녹여 버렸다.

한강 한가운데에서 S급 헌터들의 기행이 펼쳐진 격이라, 그 모습은 당연히 화제가 되었다.

아직도 너튜브에 ‘신유리팀 오리배’라고 치면 영상이 나올 정도였다.

―파악!

강물에 내리쳐진 화염검이 주변의 물을 확 증발시키며 물기둥을 솟아오르게 한 건 장관이었다.

문제는 그 직후였다.

‘야아아악! 빡대가리야! 물살 때문에 밀려나잖아!’

신유리가 아낌없이 욕을 퍼붓는 소리가 주이안과 소예리 두 사람이 탄 배에까지 들릴 정도였다.

반면 그 물기둥 반대쪽에 있던 두 사람의 배는 뒤에서 밀려오는 물살을 타고 빠르게 이동할 수 있었다.

결국 승리는 주이안과 소예리 두 사람의 것이었다.

“그래서 우리가 이겼죠.”

당시를 회상한 주이안은 결국 웃음을 터뜨렸다.

소예리도 깔깔 웃었다.

“신재헌 헌터님이 다시 하자고 바득바득 우기던 거 기억나요? 지고는 못 산대. 하여간 천생 딜러들이라니까.”

그 시합은 아쉽게도(?) 재개되지 못했다.

재개되었다면 한강에 몰려든 수많은 인파들 사이에서 예능 아닌 예능을 찍었겠지만, 그들의 스킬을 버텨내기에 오리배는 너무 약했다.

‘변상해주셔야겠습니다.’

S급 헌터도 무섭지만 망가진 오리배 값이 더 무서운 관리자는 그렇게 말했고, 결국 휴가는 오리배 변상 엔딩으로 끝나 버렸다.

“…….”

주이안은 그때 즐겁게 놀던 신유리와 신재헌의 얼굴을 문득 떠올렸다.

‘이놈이 트롤링을 창의적으로 하네.’

‘너랑 나 정도면 물살을 가르고도 갈 수 있어야 하거든?’

‘근데 못 갔잖아. 오리가 박살 나서.’

‘오리가 튼튼하질 못하네.’

‘S급 힘을 버티는 오리배면 여기 있겠냐?’

티격태격하던 모습도.

그래, 늘 그랬다.

그리고 그걸 지켜본 자신도 늘 같은 자리에 있었다.

늘 비슷한 거리에서 두 사람을, 아니 신유리를 지켜보았다.

신유리가 눈치채지 못하도록.

그녀가 혹시나 혼란스러워할까 봐. 제 마음을 알아챌까 봐.

팀에 일어날 파문을 알아챌까 봐.

지금까지 잘 참아왔잖아.

주이안은 천천히 눈을 감았다.

잘 참아왔는데, 그랬는데.

나, 자꾸 조바심이 나요.

자꾸…… 한 번이라도 더, 먼저 나를 봐주셨으면 좋겠어.

당연하게 당신 옆에 서 있는 게 신재헌 헌터가 아니라 나였으면 좋겠어.

하지만 그 사이에 끼어드는 게, 옳은 일일까?

그 파문을, 그 변화를, 신재헌 헌터와 내 갈등을 당신은 달가워하지 않을 텐데.

“…….”

이미 당신이 신재헌 헌터에게 시선을 주고 있다는 걸 아는데. 당신보다도 더 잘 아는데.

‘이대로 마음을 묻어 버리고 싶진 않아.’

다시 악마가 속삭여 왔다.

문득 헛웃음이 나왔다.

이런 자신을 신성한 교황 역에 넣어 버린 시스템이 어이가 없어서.

이 RP던전은 정말 웃겼다.

교황은 사리사욕이 없다고 했다.

누가?

소원이 없는 자라 했다.

누가?

그렇기에 누구에게나 평등할 수 있는 자라고…… 했다.

대체, 누가?

주이안이 소리 없이 웃었다.

나도 원해요.

당신을 원해요.

당신의 시선을 받고 싶어. 받다 못해 독차지하고 싶어.

당신 옆에 서 있는 것만으론 안 돼. 옆모습만으로는 안 돼.

나는…… 나는―

“주 이 안 헌 터 니 이 이 임.”

그때 소예리 헌터의 목소리가 귓가를 울렸다. 멈칫한 주이안이 상념에서 깨어났다.

팔짱을 낀 소예리 헌터가 그를 보고 있었다.

“……아.”

순간 놀란 주이안이 고개를 살짝 숙였다.

“죄송합니다.”

대화하다 말고 갑자기 멍하니 있으니 놀라셨을 터다.

“무슨 생각 해요~?”

소예리 헌터는 그런 그를 탓하는 대신 물어 왔다.

“아.”

그러자 거짓에 익숙하지 않은 주이안의 머리가 억지로 이유를 만들어냈다.

“시급한, 문제가 있어서요.”

“뭔데요?”

“신전의 일입니다.”

그 말에 소예리 헌터가 개구쟁이처럼 웃었다.

“그럼 나도 도와줄래. 뭔데요?”

“그―”

외부인은 안 된다고만 하면 되는데.

물론 마탑과 신전의 관계가 가까워졌으니 마탑에서 신전의 일을 도와도 좋은 모습이 되리라.

게다가 지금은 길 가던 마탑주가 교황에게 신세를 진 격이 아닌가?

그러니 페널티를 받을 일도 없는데.

주이안은 말문이 막혀 버렸다. 그야 당연했다.

급한 일 따위는 없었으니까.

그런 그를 보다가 소예리가 눈을 가늘게 떴다.

“거짓말 진짜 못한다니까.”

그러다가 웃음을 터뜨렸다. 결국 주이안이 이마를 짚었다.

그런 그에게 소예리가 물었다.

“무슨 고민 있어요?”

“조금 있습니다.”

“조금이 아닌 것 같은데~?”

답은 바로 돌아왔다.

주이안과 시선이 마주친 소예리는 고개를 살짝 기울인 채 묘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나한테 말 못 할 고민이에요?”

주이안은 그 말에 짧게 고민했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예.”

그러자 소예리가 기다렸다는 듯 말했다.

“그럼 팀하고 관련된 일이네?”

반드시 그렇다고 할…… 수는…… 없는데…….

차라리 온전히 자신과만 관련된 일이라면 쉽게 말했을 것이다. 각자 가족사도 아는 사이에 뭘 새삼스럽게 숨긴다고.

이렇게 숨길 일이라고 하면 팀에 영향이 가는 일일 수밖에 없다.

그 사실을 소예리도 지적한 것이다.

“진짜 말 못 해요?”

소예리가 다시 물었다.

“…….”

주이안은 곤란한 얼굴로 살짝 눈을 감았다.

“시스템적인 문제?”

그런 그에게 소예리가 물었다.

RP던전 내부이니 시스템창의 제한으로 발설할 수 없는 문제냐 묻고 있는 것이다.

그가 말하지 않은 메인 개인 퀘스트에 대한 것이라고 생각하는 듯했다.

주이안은 흐릿해진 시야로 메인 개인 퀘스트 쪽을 흘끗 보았다가 고개를 저었다.

“그건 아닙니다.”

어차피 거짓을 말하려 해 봐야 다 들킬 테니.

그는 결국 비밀을 꽁꽁 싸매길 포기했다.

“아니야???”

근데 소예리 헌터는 제가 정답일 줄 알았는지 놀라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럼 뭐야? 주이안 헌터야말로 스카우트 제의 받았어요?”

“예?”

뜬금없는 소리에 주이안이 되물었다.

S급 힐러를 탐내는 국내외 길드와 단체들은 많았다.

하지만 그는 매주 월요일 오전 11시마다 똑같은 답장을 보냈다.

[죄송합니다. 팀을 옮길 생각이 없습니다.]

스카우트 조건은 읽어보지도 않은 답장이었다.

그는 지금이 좋았으니까.

좋았으니까……, 좋았었으니까.

‘정말로?’

‘아직도 만족스러워?’

머릿속을 다시 악마가 채운다고 생각한 순간. 소예리가 말했다.

“뭔지 말해 봐요. 내가 들어줄게.”

예쁘게 웃은 그녀가 손을 펴 보였다.

“끙끙 고민할 만한 일이면 어디다 털어놔 봐요. 자꾸 그렇게 마음에 담아두기만 하면 썩어 버려. 그럼 주이안 헌터님만 아파.”

그러더니 고개를 기울였다.

“주이안 헌터님이 고민할 팀 일이면…… 역시 안전 문제?”

그녀가 물어 왔다.

이번엔 정답이라 확신하는 듯 눈이 반짝였다.

주이안은 소리 없는 웃음을 삼켰다.

그럴 법도 했다.

그는 자신조차도 속을 정도로 자신의 마음을 드러내지 않았으니까.

이 던전에 들어오고서야 제가 줄곧 신유리를 보고 있었다는 걸 알았을 정도로.

그가 생각했다.

그렇게 나를 속일 수 있다면.

차라리, 나는 사실 신유리 헌터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그냥 정들어서 이런 것뿐이라고.

……이렇게 나를 속일 수 있다면 좋을 텐데.

신유리 헌터님이 뭘 좋아하고 뭘 사랑하는지 모른다고 나를 속일 수 있다면 좋을 텐데.

그가 입술을 깨물 때였다.

“……아냐?”

소예리 헌터가 고민하는 표정으로 고개를 기울였다.

정말 모르실까?

소예리 헌터님도 내 마음을 못 알아채셨을까?

팀 사람들에 대해 모르는 척하면서도 모든 것을 꿰뚫고 있는 소예리 헌터였다.

그랬기에, 그렇기에 이렇게 말할 수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녀라면, 제가 충동적인 고백을 하면, 신유리 헌터가 어떻게 반응할지, 팀에 무슨 파문이 생길지 알 것이라고 생각해서.

그래서 자신을 말려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서.

“……짝사랑하는 사람이 생겼습니다.”

그 말에 소예리 헌터는 멈칫했다. 하지만 놀라는 얼굴은 아니었다.

역시 알고 계셨습니까.

주이안이 웃었다.

“그런데 그분은 다른 분을 보고 있는 것 같아요. 그리고, 행복해 보여요.”

주이안이 천천히 눈을 감았다 떴다.

나는 두 분 사이의 파문이 될 거예요. 원치 않는 파문이.

소예리 헌터는 그의 말을 가만히 듣고 있었다. 놀라지 않고.

……이것조차도 알아채셨습니까.

그렇다면 답해주세요.

고해를 받느라 고해할 곳이 없는 내 고해를 받아주세요.

“그러면…… 드러내지 않고 사랑하는 것도, 죄가 될까요?”

주이안의 시선이 소예리와 마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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