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 던전의 S급 시한부 영애 (97)화 (97/218)

97화

아무리 F급이나 E급 던전이라지만 기사 지원자들이 딜러로 있는 파티가 게이트를 클리어하는 건 어려운 일일 터였다.

예상대로 우리 팀이 들어가면 십 분 만에도 나올 F급 던전에서 며칠씩 시간이 소요되고 있었다.

그걸 내가 어떻게 아느냐면.

[현재 공략 중인 게이트 : 41개]

뜨니까 알지.

그리고 그건 마침 호재였다.

현재 서제국에서 가장 많은 게이트가 터진 건 공교롭게도 에델바이스 영지.

이쪽에서 많은 게이트를 홀드하고 있을수록 앞으로의 계획엔 유리해진다.

그 사이 신재헌과 주이안 씨, 소예리 헌터는 전국에 계획을 전달하고 있었다.

[원활한 게이트 통제를 위한 방안]

물론 우리의 L급 던전 보상 2레벨 증가에 대한 욕망은 잘 포장되었다.

그대로 말했다가 페널티 걸릴 일 있습니까?

[긴 시간 전선의 노고 끝에 게이트가 사라진 후 일정한 주기를 두고 다시 나타난다는 것이 확인되었다.

이에 카르만은 게이트의 등장 시기를 인위적으로 맞추어 게이트에 더 효율적으로 대응하고자 한다.]

신재헌의 친서는 각 가문으로 날아들었다. 난 감탄했다.

[세니아 드 에델바이스(신유리)>>> 포장업계에서 오셨어요?]

[아이반 엘레티아 폰 카르만(신재헌놈)>>>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말 포장하는 실력이 장난 아닌데?

눈치빠른놈에서 신재헌놈으로 이름을 바꾼 지 하루 만에 뻔뻔한놈으로 이름을 바꿀 뻔했다.

“게이트를 일부러 내버려뒀다가 처리한다고?”

“언제 게이트가 폭주할지…….”

“폭주할 가능성이 높은 건 먼저 처리하라 하셨소.”

처음에 게이트를 처리하던 일선의 기사들은 혼란을 겪을 수밖에 없었다.

예상한 대로였다. 하지만?

“수호기사단장님께서 그렇게 하자고 하셨다던데?”

“신전에서도 동의했대.”

“마탑에서도 적극 지원한다고 하셨다더군.”

“황제 폐하께서도 동의하셨으니 친서를 보내셨겠지.”

게이트에 관해서는 가장 많은 자료를 갖고 있는 데다, 제국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지닌 이들이 함께 세운 계획이라는 말로 신뢰를 얻었다.

그리고 그런 그들에게 신재헌은 슬쩍 불을 댕겼다.

“동제국 놈들이 우리가 게이트 관리를 제대로 못 한다고 욕했다더군.”

“뭐야? 지들은 얼마나 잘한다고?”

“글쎄, 우리가 게이트가 일찍 열렸는데도 게이트가 언제 어디서 생길지 몰라 순찰을 돈다면서 욕했다더라고.”

그렇게 불을 붙이자 서제국 사람들은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그래도 동제국에 질 순 없지!”

“동제국 놈들보다 게이트 못 잡는다는 소리는 못 듣겠다!”

그리고 한일전 직전의 한국인처럼 날뛰기 시작했다.

공동의 적 앞에서 하나로 똘똘 뭉치는 건 물론이었다.

소예리 헌터는 그 모습을 보면서 이렇게 평했다.

[클로나 에이센(예리언님)>>> 10년간 단련된 언론 길들이기 실력;]

그러게. 이건 어지간한 헌터가 할 수 있는 여론몰이가 아니다……!

아무튼 서제국민이 한일전 앞둔 한국인처럼 똘똘 뭉치는 동안, 나와 소예리 헌터는 드디어 ‘미야’ 연합 사람들과 만날 수 있었다.

이건 다름 아닌 텐치아 백작의 북쪽 발령 축하 연회였다.

“어서 오십시오!”

우리를 보고 큰 소리로 인사하는 건 어깨에 붕대를 감은 바이야 백작이었다.

“아니, 어깨는 무슨 일이에요?”

내가 놀라 묻자 바이야 백작이 호탕하게 웃음을 터뜨렸다.

“게이트에서 부상을 당했소이다. 하지만! 이 또한 기사에게는 명예의 훈장이 아니겠소!”

크하하핫! 하고 웃는 모습에 난 감탄했다.

이 사람은 아마 머리 위에 퓨어딜러 마크가 박혀 있다는 걸 알려주면 좋아 죽을 것 같았다.

“마탑주님께서 직접 자리해주시다니! 이렇게 귀한 손님을 모시게 되어 기쁘기 그지없소이다!”

언제는 소 닭 보듯 하더니 게이트 몇 번 굴러본 기사들은 마법사들을 귀하게 대하기 시작했다.

그러게, 보조계 무시하지 말라니까?

그만큼 바이야 백작이 소예리 헌터를 대하는 자세가 극진해진 것은 물론이었다.

“그러게요. 직접 와주실 줄이야.”

다른 미야의 귀족들이 감탄했다.

마탑에서 아무리 긍정적인 의사를 내비쳤다고 해도, 대외활동을 주로 맡는 마탑의 2인자가 올 줄 알았지 마탑의 주인이 직접 올 줄은 몰랐던 것이다.

“이번에 게이트 대응과 관련해서 함께 논의하고 싶다고 하셔서요. 마침 영지에도 계셨고.”

내가 말했다. 사실 여기 오려고 우리 영지에 있었던 거지만 앞뒤는 아무래도 좋았다.

“클로나 에이센입니다.”

흥분하는 퓨어딜러들에게 소예리 헌터가 사근사근한 미소를 보였다.

[클로나 에이센(예리언님)>>> 세상에, 진짜 딜러들뿐이잖아!]

하지만 그 미소 뒤에는 무시무시한 호기심이 감춰져 있는 게 분명했다.

[클로나 에이센(예리언님)>>> 어떻게 이렇게 골라 놓은 것처럼 딜러들만 있지?]

그녀의 눈이 과하게 반짝이기 시작했다.

이 사람 또 채팅이랑 헷갈리는 거 아니야?

내가 걱정하는 사이 바이야 백작이 호탕하게 웃었다.

“부족하지만 이번 연회를 주최하게 된 바이야 백작이외다!”

목소리가 쩌렁쩌렁 울렸다. 그는 반가운 얼굴로 손짓했다.

“자자, 이쪽으로 오시지요!”

그러고는 차린 게 없다고 주장하면서 식당 한가득 음식이 쌓여 있는 곳으로 우릴 데려갔다.

이번엔 전장이 아니었으므로 꽤나 귀족다운 식사였다.

특히 클로나 에이센 앞에서 기사들이 잘 먹고 잘 산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는지 상차림은 다소 과하기까지 했다.

문제는.

[클로나 에이센(예리언님)>>> 집밥먹고싶다!!!!!]

소예리 헌터는 지옥의 한국인 입맛이라는 것이었다.

[세니아 드 에델바이스(신유리)>>> 좀만 참아!!!!!]

[아리엔사 시안 데마르(주이안 씨)>>> 확실히 서제국의 음식이 느끼하긴 합니다]

[아이반 엘레티아 폰 카르만(신재헌놈)>>> 그건 그래요 전국민 고추재배령 내릴까봐]

저놈은 왜 미쳐도 저렇게 거국적으로 미친단 말인가?

“사실 미야에서 마탑을 초청해주실 줄은 몰랐답니다.”

다행히 소예리 헌터는 채팅창으로 두유노김치를 외치면서도 클로나 에이센의 역할에 충실하게 임했다.

그러자 자리해 있던 미야의 귀족들이 헛기침을 했다.

“아무래도 그간 마법사와 기사들 간의 교류가 부족하긴 했지요.”

부족한 게 아니라 기사들이 마법사들을 책상물림이라고 싫어했던 거 아니냐?

[클로나 에이센(예리언님)>>> 보조계는 사람으로도 안 봤으면서 흥칫뿡]

“아무래도 카르만에서 마법사를 보는 시선이 곱지 않은 건 사실이니까요.”

소예리 헌터의 겉과 속이 다른 두근두근 페널티 직전 토크가 시작되었다.

[세니아 드 에델바이스(신유리)>>> 마마말조심]

시한폭탄이다!

난 언제든 소예리 헌터를 말릴 수 있도록 한쪽 손을 아래로 내린 채 대화에 집중했다.

음식이 한두 번쯤 코로 들어가도 죽진 않을 것 같았다.

“……그건 분명한 사실이오.”

바이야 백작은 답지 않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더니 소예리 헌터에게 고개를 숙였다.

“지금껏 마법사들을 무시해온 것이 사실이오. 하나! 이번 게이트 사태로 많은 것을 알게 되었소이다!”

그의 목소리가 식당을 쩌렁쩌렁 울렸다.

바이야 백작은 목소리 크고 인맥이 넓은 데다 실력도 좋은 만큼 미야의 실세나 다름없었다.

그런 그가 고개를 숙이자 다른 귀족들도 조심스러운 눈으로 소예리 헌터를 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소예리 헌터는, 진심으로 사과하는 사람을 내치지는 않는 사람이었다.

[클로나 에이센(예리언님)>>> 하긴, 세계관이 원래 이런데 어쩌겠어~]

“귀한 인사를 받게 되었으니 마탑에서도 기사들을 돕는 데에 더욱 신경 써야겠습니다.”

겉과 속이 다른 목소리가 울렸다.

그러자 바이야 백작이 호탕하게 웃었다.

“카르만은 검의 나라. 폐하께서도 검의 주인이시지만 마탑과 신전을 함부로 대하지 않으셨소이다.”

그가 열정에 가득 찬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처음엔 난 그런 폐하의 의중을 헤아리기 어려웠지만, 이제는 알 것 같소이다!”

그가 주먹을 꽉 쥐었다.

“검은! 단순히 검으로만 설 수 있는 것이 아니었소이다!”

난 그 말에 기립박수를 칠 뻔했다.

[세니아 드 에델바이스(신유리)>>> 그거지! 뭘 좀 아네!]

“그렇죠.”

나도 결국 겉과 속이 다른 토크에 참여했다.

그러면서 묘한 데자뷔를 느꼈다.

왜 전에도 비슷한 상황이 있었던 것 같지?

그러면서도 시선이 집중되니 말이 저절로 튀어나왔다.

“전장엔 기사만 서는 것이 아닙니다. 전장에 선 모두가 제 역할을 해낸다면 더 큰 일을 할 수 있죠.”

1+1이 2가 되지만은 않는 곳이 바로 전장이었다.

그게 내가 협동심을 기사들의 덕목으로 본 이유고.

요컨대 보조계랑 힐러 무시하지 마라! 큰코다친다!

내 말에 바이야 백작은 눈을 크게 떴다.

“크으으으!”

그러더니 갑자기 무릎을 치고 이마를 치더니 주먹을 허공에 꽉 쥐어 보이기 시작했다.

[클로나 에이센(예리언님)>>> 뭐뭐뭐뭐야 주식 상한가쳤어?]

소예리 헌터도 자기가 주식 상한가 칠 때 비슷한 동작을 한다는 걸 알고는 있었던 모양이다.

이쯤 되면 옆에서 같이 오바쌈바를 떠는 사람이 있어야 하는데?

하지만 그 텐치아 백작은 자리에 없었다.

아니 주인공 어디 갔어? 주인공 없는 주인공 파티야?

“정말 명언이십니다. 대대로 남겨야겠소이다!”

여하튼 내가 당황하는 사이 바이야 백작이 하인을 부르면서 소란을 떨었다.

“아니, 박제까지 할 필요는 없는…….”

그렇게 말하던 난 이 기분을 어디서 느껴봤는지 뒤늦게 알아챘다.

[헌터/헌터(국내)/S급/신유리(딜러)]

“게이트에서 죽기 직전까지 검 들고 설치는 게 딜러의 사명이죠.”

- 헌터방송 인터뷰 中]

지식나무 박제되던 날이랑 똑같은 기분이잖아! 으아아악!

아무리 봐도 하인에게 종이를 받아 글귀를 휘갈겨 전해 주는 바이야 백작의 모습을 보니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저도 한 장만 주시겠소이까?”

그 옆에선 어떤 귀족이 종이를 한 장 더 뜯어가고 있었다.

댁은 왜 또 뜯어?

“그럼 저도…….”

“저도 부탁드립니다.”

그러자 눈치를 보던 귀족들이 슬그머니 종이를 한 장씩 가져가기 시작했다.

난 에델바이스 백작 명언 컬렉션이 탄생하기 전에 재빨리 말을 돌렸다.

이 분위기 오래가봐야 박제만 될 뿐이다.

이 세계에 지식나무가 없어서 다행이야!

이 세계에 지식나무 대신 더 쪽팔리는 가문의 현판이라는 게 있다는 걸 알게 된 건 나중 일이었다.

“그그근데 텐치아 백작께서는 보이지 않으시는군요. 설마 이미 북쪽으로 가신 건가요?”

우리 주인공 없이 축하하고 있는 건가요?

중요한 일인데 누가 대답해 줄 사람?

내 질문에 귀족들의 시선이 일제히 내게로 향했다.

그들의 눈은 반짝이고 있었다. 특히 바이야 백작의 눈에선 광채가 나고 있었다.

그가 물었다.

“섭섭하시오? 그런 것이오?”

“예?”

이 인간들이 뭘 생각하는 거야?

멈칫했던 난 뒤늦게 중요한 사실을 떠올렸다.

맞다, 그 인간 나한테 고백했었지!

S급 헌터가 되면서 별의별 놈팡이들이 다 꼬이는 바람에, 그도 지나가는 놈1 정도로 인식해 버려서 새까맣게 까먹고 있던 참이었다.

“안 보이셔서 여쭤본 것뿐입니다. 연회의 주인공이시니까요.”

철벽! 난 한 손을 펴 보이며 말했다.

그러자 바이야 백작과 귀족들이 서로를 쳐다보았다.

“그 외에 다른 의도는 전혀 없습니다.”

여기선 확실히 철벽 쳐줘야 한다! 여지는 싹을 자르는 것은 물론이고 불태워 버려야 한다!

“그으러셨소이까.”

하지만 바이야 백작의 표정은 은근했다.

그리고 이 로맨스에 미친 중년 남성은 마탑과의 전선 회의 중에도 불쑥불쑥 이야기를 꺼냈다.

“에델바이스 백작께서는 텐치아 백작과 따로 연락망을 가지시는 게 어떻겠소?”

“제 영지는 동쪽 끝이고 텐치아 백작령은 북쪽 끝이 될 텐데요?”

어림 반 푼어치도 없는 소리 하지 마라.

내가 철벽을 치자 바이야 백작과 귀족들이 입맛을 다셨다.

“미야의 첫 커플이 탄생하는 줄 알았거늘…….”

뭘 기대한 거야?

“그저 업무에 관한 연락만 주고받을 뿐입니다.”

그러자 바이야 백작의 눈이 더 아쉬움으로 물들었다.

그렇게 아쉬우면 댁이 사귀든가!

난 스테이크를 凸 모양으로 썰면서 손을 내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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