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 던전의 S급 시한부 영애 (94)화 (94/218)

94화

“아.”

난 내가 갑자기 말이 없어져 당황한 것 같은 사람들에게 손을 내저었다.

“너무 감동스러워서 그만.”

[RP던전 페널티 위기! : 세니아답지 않은 뻔뻔함]

세니아는 감동 안 받냐!

난 페널티를 보면서 얼굴에 힘을 주었다.

“아무튼 이번 에델바이스 가의 시험은 게이트에서 치러집니다.”

내가 다시 말하기 시작하자 RP던전 페널티 위기 창이 사라졌다.

그리고 사람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게이트에서……?”

“위험한 거 아냐?”

100:1 서바이벌은 안전하냐, 그럼?

어이가 없었지만 따졌다간 페널티 위기가 다시 둥실둥실 뜰 게 분명했다.

“물론 안전을 위해서 여기 마탑의 마법사분들과,”

난 어느새 클로나 에이센의 모습으로 나타난 소예리 헌터를 가리켰다.

사람들의 웅성거림이 멎었다.

“진짜 마탑주님이시잖아?”

“에델바이스 영지는 못 가진 게 없군.”

웅성거리는 소리를 들으면서, 난 이미 충분히 친해진 신전 사제들을 돌아보았다.

“신전의 사제분들이 함께 갈 거고, 당연히 어려운 게이트로는 가지 않습니다.”

F급이면 능력을 시험하기에 충분하다.

난 손을 펴 보였다.

난 100:1 서바이벌 같은 멍청한 짓 안 한다.

어차피 나보다 높은 랭크인 놈들도 없어서 수준은 눈에 뻔히 보이니, 일석이조를 잡을 셈이었다.

게이트도 처리하고, 동시에 인재도 뽑고!

“난 완벽한 기사들을 원하는 게 아닙니다. 기술은 가르치면 되고 능력은 키우면 되니까.”

신재헌이 그랬듯이. 다시 그의 뒷모습이 보이는 듯했다.

‘신유리 헌터님한테는 특-히 비밀이랬어요.’

왜 자꾸 생각나는지. 난 눈을 꽉 감았다 떴다.

“하지만 기사단에서 이미 틀어진 인성까지 바로잡아줄 순 없죠. 그러니 게이트 안에서 그 모든 걸 시험할 겁니다.”

난 손을 펴 보였다.

“게이트 내에서의 생존력, 활약, 기지, 협동력. 모든 걸 볼 테니 게이트에서 에델바이스의 기사가 된 것처럼 움직여 보세요.”

내 말에 기사 지원자들이 멈칫했다.

음, 벌써 짱돌 굴리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리는군.

난 예쁘게 웃어 주었다.

“뒤에 빠져서 살아남기만 할 생각도 금지, 그렇다고 공 세우기에 급급해 앞서가는 것도 금지.”

그러자 짱돌 굴리는 소리가 멎었다. 초보 헌터들 하는 생각 다 뻔하지, 뭐.

“에델바이스의 예비 기사 여러분, 여러분과 여러분의 가족이 새로운 삶을 시작할 이곳에서, 여러분이 좋은 성과를 가지고 돌아오길 바랍니다.”

“…….”

잠시 침묵하던 사람들 사이로 작은 박수 소리가 번져 나갔다.

그리고 그건 이내 박수갈채로 번졌다.

“헐, 대박.”

그 사이에서 소예리 헌터가 말했다.

[세니아 드 에델바이스(신유리)>>> 소예리 헌터님 말! 말조심! 말!]

[클로나 에이센(예리언님)>>> 앗]

“흠흠.”

새침한 표정으로 돌아온 소예리 헌터는 부드럽게 웃어 보였다.

“연설에 감동받았답니다.”

그리고 채팅을 와다다 올리기 시작했다.

[클로나 에이센(예리언님)>>> 헐 대박 여러분]

[아이반 엘레티아 폰 카르만(신재헌놈)>>> ?]

[아리엔사 시안 데마르(주이안 씨)>>> 네?]

[클로나 에이센(예리언님)>>> 신유리 헌터님 연설 대박 잘해]

흠흠, 내가 좀. 난 어깨를 으쓱하며 박수갈채에 화답했다.

[아이반 엘레티아 폰 카르만(신재헌놈)>>> 진짜요? 대본 써간 거 아니고?]

저놈이!

[클로나 에이센(예리언님)>>> 대본 없었어요! 완전 라이브! 대박!]

[아리엔사 시안 데마르(주이안 씨)>>> 저도 들어보고 싶네요. 참석했어야 했는데…….]

짙은 아쉬움이 느껴지는 채팅이었다. 소예리 헌터는 그의 채팅에 불쑥 답했다.

[클로나 에이센(예리언님)>>> 아쉽지? 아쉽지? 완전 대박이었어요]

[아이반 엘레티아 폰 카르만(신재헌놈)>>> 뭐라고 했는데요?]

아니, 잠깐만.

내가 말리기도 전에 소예리 헌터의 채팅이 올라갔다.

[클로나 에이센(예리언님)>>> 난 완벽한 기사들을 원하는 게 아닙니다! 기술은 가르치면 되고 능력은 키우면 됩니다! 캬!]

소예리 헌터의 채팅에 잠시 채팅창이 멎었다.

불길한데?

그렇게 생각한 순간. 아니나 다를까, 신재헌과 주이안 씨의 채팅이 올라왔다.

[아이반 엘레티아 폰 카르만(신재헌놈)>>> 그거 헌터협회장 연설 아니에요?]

[아리엔사 시안 데마르(주이안 씨)>>> 유명한 연설문입니다.]

[클로나 에이센(예리언님)>>> 뭐어어어?]

소예리 헌터의 시선이 내게 향했다. 내 감동 책임져! 하는 얼굴이었다.

들켰다!

이래서 기억력 좋은 놈들은!

[아이반 엘레티아 폰 카르만(신재헌놈)>>> 와 볼 사람 없는 RP던전 안이라고 표절ㅇ]

[아리엔사 시안 데마르(주이안 씨)>>> 인상깊은 문장이었으니 인용하시]

[신유리(방장)가 ‘헌터 신재헌(신재헌놈)’의 채팅을 1분 금지합니다.]

[신유리(방장)가 ‘헌터 주이안(주이안씨)’의 채팅을 1분 금지합니다.]

[클로나 에이센(예리언님)>>> 와 방장 독재다!]

[‘헌터 신재헌(S)’의 이름을 ‘신재헌놈’에서 ‘눈치빠른놈’으로 변경합니다.]

[‘헌터 주이안(S)’의 이름을 ‘주이안 씨’에서 ‘눈치빠른놈2’으로 변경합니다.]

[세니아 드 에델바이스(신유리)>>> 지금 상황파악이 안 돼?]

잠시 침묵 후 채팅이 올라왔다.

[클로나 에이센(예리언님)>>> 연설 너무 멋져용 언니 사인해주세용]

지금 웃으면 페널티다! 난 필사적으로 웃음을 눌러 참았다.

***

이 시험에는 두 가지 장점이 있었다.

일단 우리 기사들이 F급이나 E급 던전을 클리어할 필요가 없다.

작은 던전에 귀한 병력을 낭비할 필요가 없다는 이야기였다.

물론 빵빵한 힐러와 마법사들을 데려간 초보 딜러들은 좋은 경험을 쌓을 기회가 될 거고.

그리고 그 다음은.

[서브 퀘스트 : 영지 관리

- 바이야 백작의 영지 이상으로 게이트가 폭증하고 있습니다.

영지의 게이트 방어율을 95% 이상으로 유지하면서, 게이트를 클리어하세요!

- 보상 : 클리어 시 공략한 게이트당 500C]

진짜 꿀은 이곳에 있었다.

[Coin : 43198]

애초에 벌써 쌓인 코인이 43000이 넘었다.

여기다 저 보상까지 합치면?

캬!

나중에 자리 잡고 스킬 열쇠 하나 까야겠다!

“이대로 보내면 돼.”

나는 기사 지원자들과 마법사, 사제들의 목록을 보고 팀을 구성해 기사단장에게 전달해주었다.

“이건 어떤 기준으로 선택되는지 궁금해하는 자들이 많습니다.”

기사단장은 내게 조심스럽게 말했다.

어떤 기준?

난 그들의 머리 위에 떠 있던 랭크를 떠올렸다. 당연히 랭크 기준이지만 그렇게 말할 수는 없고.

“수호기사단장으로서 게이트에 병력을 배정할 때와 같은 방식을 적용했어.”

대충 나랏일이니까 자세히 알려고 하지 말라는 뜻이었다.

알아들었는지 기사단장은 고개를 숙이며 물러갔다.

근데 팩트긴 했다.

수호기사단장으로서 게이트에 병력을 배정할 때도 랭크를 보고 결정했으니까.

“흐음.”

그런 내 옆에서 소예리 헌터는 근엄하게 서 있다가, 기사단장이 가자마자 다시 소파에 풀썩 드러누워 버렸다.

“나도 같이 들어갈 걸 그랬나~”

아무래도 심심한 모양이었다. 난 손을 내저었다.

“F급 던전엔 뭐 하러요?”

“마실?”

S급 기준에선 당연히 그렇겠지만 지금쯤 F급 던전에서는 기사 지원자들의 사투 아닌 사투가 벌어지고 있을 게 분명했다.

“나중에 한번 몸 풀러 가요. 마법사들 덕에 일도 쉽게 풀렸으니까 제가 제대로 모시겠습니다아.”

내 말에 소예리 헌터가 벌떡 일어났다. 그러고는 빠르게 외쳤다.

“징그러운 몬스터 안 나오는 환경에 패는 맛 나는 던전으로.”

취향이 까다로운 손님이었지만 난 바로 답했다.

“벌레 안 나오는 곳 B급 어떠십니까?”

“음, 이 집 맛집이야.”

손님은 만족한 듯 다시 드러누웠다.

우린 너 나 할 것 없이 웃음을 터뜨렸다.

사실 이 시험은 소예리 헌터가 오고 나서 생각난 것이었다.

기사를 뽑긴 뽑아야 하는데, 게이트에 들어가서 뭘 해야 할지 처음부터 가르치기엔 시간도 인력도 너무 부족했다.

무엇보다 협동심이 있는 놈인지 없는 놈인지 알아내는 것도 중요했다.

그럼? 나 대신 알아볼 사람들을 붙이면 된다.

“마법사들이 잘 기록하고 있겠죠?”

당연하지만 던전마다 내가 들어갈 순 없으니, 협동력을 평가하는 건 던전에 같이 들어간 사람 중 하나였다.

그리고 많은 기사 지원자들이 평가자가 사제일 거라고 생각했지만, 땡.

정답은 마법사였다.

소예리 헌터가 클로나 에이센의 기억을 뒤져 믿을 만한 마법사 목록을 만들어 온 덕이었다.

“어차피 실력은 고만고만한데 그중에서 제가 잘났다고 설치는 놈은 필요가 없으니…….”

잘들 하고 나와라. 그래서 기사 많이많이 해라. 우리 영지 복지 좋다.

기사들이 늘면 당연히 영지 치안에도 좋은 영향을 줄 터였다. 그게 제대로 된 기사들이라면 말이다.

혼자 설치는 A급보다 협동 잘하는 B급이 낫다는 건 모두가 안다.

그래서 협동심을 가장 우선으로 평가하라고 했으니 곧 결과가 올 터였다.

[게이트 방어율 : 96%]

[영지 내에서 공략 중인 게이트 : 43개]

난 시스템창을 보면서 고개를 기울였다.

인원이 많은 만큼 빠르게 클리어될 테니, 곧 나는 코인 방석에 올라앉을 터였다.

문제라면.

“돈이 꽤 많이 드네.”

이거였다.

신의 상점 코인 말고 영지 돈.

사실 기사 지원자가 이렇게 많을 줄은 몰랐다.

“아니, 우리 영지가 그렇게 인기가 많……지.”

그렇지.

그래, 3대 세력이 여기에 관심을 보이는 데다가 게이트 영지 관리도 1위에, 기사가 되면 가족도 이 영지로 이사 올 수 있다는 조건을 걸었다.

어디에 게이트가 터질지 모르는 흉흉한 시국에 끌릴 만도 했다.

그런데 이렇게까지 사람이 몰릴 줄은 몰랐다.

“흐음.”

이 기사 지원자들을 시험하겠다고 게이트에 넣긴 했지만, 불만 어린 소리가 없는 건 아니었다.

‘손 안 대고 코 풀겠다는 꼴 아냐?’

‘영지 병력을 쓰기가 싫어서 기사 지원자들을 써먹으려는 거지.’

하지만 그런 이야기는 곧 들어갔다.

내가 이래 봬도 헌터협회에 길드-헌터 간 불공정 계약을 신고한 사람이거든?

물론 신고할 문서는 주이안 씨가 써 줬지만 아무튼 그랬다.

그래서 우리가 기사 지원자들을 게이트에 넣는 조건은 이랬다.

[입장 거부 가능. 그리고 게이트에 입장하겠다는 선택을 할 경우 최대한의 안전 보장은 물론 위험수당과 함께 게이트 클리어 수당 별도 지급]

공짜로 사람 안 부려먹습니다아.

그리고 그 돈을 꽤 묵직하게 설정해서인지 기사 지원자들의 불만은 쏙 들어가 버렸다.

문제는 내 예상보다 사람이 너무 많이 몰려서 내가 예산으로 잡은 돈의 배 이상을 지출했다는 점이었다.

“너무 인기 많은 삶도 힘들다니까.”

내 말에, 소예리 헌터가 소파 등받이 밑에서 얼굴을 불쑥 들어 올렸다.

소파에서 뒹굴거리느라 다소 헝클어진 붉은 머리칼이 보였다.

“돈 문제는 조만간 해결될걸요?”

“왜요? 마탑에서 지원해주나?”

혹시 마탑주님 숙박비? 통 크게 쏘시는 거? 난 눈을 반짝였다.

이거야말로 인맥빨?

물론 인맥빨로 지금까지도 수많은 걸 이뤘지만, 원래 사람은 날로 먹어 봤으면 한 번 더, 또 한 번 더 날로 먹고 싶은 법이었다.

내 말에 소예리 헌터가 흐음, 하더니 웃었다.

“그건 아니지만 그렇게 될지도 몰라요.”

“네?”

이게 무슨 기면 기고 아니면 아닌 화법이야?

이게 바로 말로만 듣던 ‘우리 집은 없는 것 빼고 다 팔아요’ 화법?

하지만 그게 무슨 뜻인지, 난 곧 알게 되었다.

웬…… 뜻밖의 금덩이가 굴러들어온 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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