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 던전의 S급 시한부 영애 (92)화 (92/218)

92화

[연회에서 곧 뵙겠습니다.

- 클로나 에이센]

소예리 헌터, 아니 마탑주 클로나 에이센은 기꺼이 ‘동-북쪽 미야 확장 기념 연회’에 참석하겠다고 했다.

바이야 가의 기사에게 그 회신을 들려 보내자, 그가 기뻐하다가 열정에 차서 게이트로 뛰어갔다는 소문이 여기까지 들려왔다.

“진짜 여러모로 목소리 큰 사람이라니까.”

저렇게 열정적이면 안 지치나? 안 더워?

여하튼 소예리 헌터는 미야 연합과의 일 때문에라도 우리 영지에 오래 머물게 되었다.

“좋은 게 좋은 거 아니겠어요~?”

그녀는 즐거워 보였다.

사실 마탑과 기사들의 연합 어쩌고는 상관없고, 그냥 혼자 있기가 심심한 거지???

연구는 안 하고 내 옆에서 탱자탱자 노는 걸 보니 십중팔구 맞는 듯했다.

“근데 이렇게 오래 자리 비워도 괜찮아요?”

내 말에 소예리 헌터는 소파에 드러누운 채 손을 내저었다.

허공에는 [보이지 않는 손(B)] 스킬로 책을 띄워 놓은 채였다.

“괜찮아, 괜찮아~ 그리고 우리 수호기사단장님이 나 지켜줘야 하잖아요.”

‘마탑은 불안해~ 아이, 불안해~’ 하며 눈을 찡긋하는 모습을 보니 진정성이 느껴졌다.

소예리 헌터에게는 한 점 불안감도 없다는 진정성이.

[아이반 엘레티아 폰 카르만(신재헌놈)>>> 아직 멸망계시록 업데이트 안 됐나요?]

그때 신재헌의 채팅이 올라왔다. 소예리 헌터가 눈을 반짝이며 채팅하기 시작했다.

[클로나 에이센(예리언님)>>> 어젯밤에 봤을 땐 안 됐던 것 같은뎅]

그래도 그녀는 휴가를 만끽하면서도 수시로 멸망계시록을 확인하는 걸 잊지 않았다.

―촤륵!

이야기 나온 김에 또 볼 생각인지 그녀가 인벤토리에서 멸망계시록을 꺼내 들었다.

그리고 페이지를 몇 번 넘긴 순간.

“어?”

그녀가 자리에서 튕기듯이 일어났다.

“뭐 생겼어요?”

그렇지 않고서야 저런 반응이 나올 리가?

난 그녀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클로나 에이센(예리언님)>>> 바뀌었어요!]

마탑주의 마법을 봉인하려다 실패했다는 내용까지 업데이트된 건 봤다.

그런데 그 다음 줄은 아예 새로운 내용이었다.

[아리엔사 시안 데마르(주이안 씨)>>> 또 다른 위협이 있나요?]

주이안 씨는 그답게 가장 먼저 위험을 걱정했다.

나와 소예리 헌터의 시선이 바뀐 멸망계시록에 향했다.

위험이라면 위험인데…….

[클로나 에이센(예리언님)>>> 이세계인들로부터 ‘경고’를 받은 자는 분노에 차 복수할 방법을 찾게 된다]

경고? 설마 내가 주이안 씨 죽이려는 암살자 살려 보낸 거?

동제국 황태자한테 목 닦고 기다리라고 한…… 아니, 모가지 달고 살고 싶으면 작작 하라고 한 거?

그녀가 추가된 멸망계시록 내용을 읽어주자 내 생각을 읽은 듯한 신재헌의 채팅이 바로 올라왔다.

[아이반 엘레티아 폰 카르만(신재헌놈)>>> 아니 복수는 우리가 해야지 지가 왜 해]

[세니아 드 에델바이스(신유리)>>> 내말이 ㅋㅋㅋㅋㅋㅋㅋ]

그걸 받고 찌그러질 거라고는 기대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쪽에서 암살자를 살려 보낸 것을 봐서라도 수준 차이를 파악해 자제할 줄 알았다.

그런데 오히려 이를 갈아?

드디어 제대로 돌아버렸단 말인가?

동제국이 필요한 RP만 아니었어도 이미 우린 동제국 황태자의 모가지로 테니스를 치고 있었을 것이다.

어이가 없어서 채팅을 갈기는데 소예리 헌터가 눈을 가늘게 떴다.

그러더니 진지하게 말했다.

“우리도 암살자 보낼까 봐.”

이…… 이 사람 진심이다!

하지만 그 말엔 나도 공감이었다.

우리 사이에 암살자 클래스 있었으면 이미 동제국으로 출발했을 것이다.

다행히 멸망계시록으로 미래를 본 덕에 우리 중에 피해를 입은 사람은 주이안 헌터뿐이었다.

하지만 주이안 헌터는, 정말 위험했다.

“…….”

난 눈을 가늘게 떴다.

그때 놀란 것만 생각하면 황태자놈 모가지를 비틀어 버리고 싶지만.

그랬다간 빼도 박도 못하게 RP던전 페널티를 받을 터였다.

뭐라고 뜨려나?

‘RP던전 페널티 위기! 이유 없는 국제분쟁 야기!’ 뭐 이런 거?

그것도 아무리 황태자가 멍청한 놈이라고 해도 L급 던전의 인물이다.

그 근처에 어떤 수준의 딜러와 힐러가 붙어있을지 모르니 혼자 쳐들어갈 수도 없다.

팀 단체로 들어가면 부상 없이 잡을 수도 있다.

그리고 우리 쪽에 서제국 황제가 있으니 어떻게든 게이트 사태를 꼬투리 잡아서 전쟁을 일으킬 수도 있기야 하겠지만…….

그럼 신재헌은 아마 과로로 세상을 뜬 최초의 S급 헌터가 될 것이 분명했다.

동제국까지 그가 다 관리해야 할 테니까.

게다가 이런 배경의 RP던전에서 큰 정세 변화를 줘 봐야 변수만 커질 뿐이니 별로 좋은 선택은 아니었다.

[아리엔사 시안 데마르(주이안 씨)>>> 복수라는 단어가 마음에 걸립니다]

[아이반 엘레티아 폰 카르만(신재헌놈)>>> 저도요]

[아리엔사 시안 데마르(주이안 씨)>>> 항상 파티창 주시하고 있을게요. 각자 안전에 유의하시고…….]

채팅창에 휴가철마다 올라오는 ‘주이안의 외출 매뉴얼 72번’이 공유되는 동안 난 소예리 헌터를 내려다보았다.

“아무튼 사흘 후까진 여기 있는 거 확정이죠?”

사흘 후에 미야의 연회 일정이 정해져 있었으니까.

소예리 헌터가 고개를 끄덕였다.

“넹.”

그러면서 기지개를 쫙 켰다.

누가 봐도 방구석 백수잖아! 연구하러 온 사람 아니잖아!

집무실 책상에 쌓인 일거리를 보다가 소예리 헌터를 돌아보니, 소예리 헌터는 드러누워 있던 몸을 슬며시 일으켰다.

그리고 소파에 걸터앉은 채 눈을 찡긋했다.

“바쁜 사이에도 쉴 건 쉬어야 한댔어요. L급 던전 속에서도 휴식을 취하는 헌터가 바로 참헌터 아니겠어요?”

“마아아알이라도 못하면!”

일 좀 도와주든가!

아니 백작가 영지 관리도 이렇게 할 일이 많은데 마탑주는 어째서 드러누워 백수 짓을 해도 상관이 없단 말인가?

“좀 도와줄까요?”

소예리 헌터는 슬그머니 자리에서 일어났다.

미안하긴 미안했던 모양이다.

“아뇨, 그냥 있어요.”

숨 참고 후딱 한 다음에 나도 논다!

난 업무용 책상으로 돌아갔다.

[아리엔사 시안 데마르(주이안 씨)>>> 곧 기도라 길게 말씀드리진 못하겠지만, 늘 걱정하는 것 아시지요?]

이미 길게 말한 것 같지만 마음은 충분히 전해졌다.

[세니아 드 에델바이스(신유리)>>> 알죠알죠]

[아이반 엘레티아 폰 카르만(신재헌놈)>>> 주이안 헌터님도 조심하시고요. 한 번 했다고 두 번 습격하지 않으리란 보장도 없으니]

[아리엔사 시안 데마르(주이안 씨)>>> 걱정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채팅이 지나가는 사이, 소예리 헌터가 기지개를 쫙 켜는 게 보였다.

저건 한 사흘쯤 드러누워서 먹고 자고 너튜브만 보다가 일어났을 때 모습 아냐?

누가 봐도 놀다 못해 찌뿌둥한 몸을 일으킨 모습이었다.

난 눈을 가늘게 떴다가 말했다.

너튜브가 없어서 그런가, 심심해 보였다.

“그래도 사흘 동안 지루하진 않을 거예요.”

자신 있다! 내 말에 소예리 헌터가 눈을 반짝였다.

“왜? 왜? 왜? 무슨 일 있어요?”

그녀가 들뜬 목소리로 말하며 날듯이 업무용 책상으로 다가왔다.

내가 그런 그녀에게 손으로 브이를 만들어 보였다.

“곧 에델바이스 기사단 새로 뽑거든요.”

퓨어딜러들 쫙 서 있을 거 생각하니까 기분 쥑이지 않아요?

내 말에 소예리 헌터가 눈을 반짝였다.

“세-상에. 초롱초롱한 초보 헌터들 몰려오는 거야?”

초롱초롱하진 않겠지만 아마도 그럴 것이다.

“뭐야뭐야, 그 사람들 프로필 보고 있었어요? 나도 볼래!”

그러더니 소예리 헌터는 내 집무용 의자에 엉덩이를 낑겨 앉았다.

“나 밀려나요!”

“밀려나도 돼! 딜러는 튼튼해서 서서 일해도 돼!”

“그건 탱커겠지!”

의자 위에서 뜻밖의 엉덩이 지분 싸움이 벌어졌다.

그 사이 소예리 헌터는 내 책상 위에 있던 프로필 일부를 덥석 집어가 버렸다.

그러면서 촤르륵 넘겨 보았다.

“오…….”

고양이 같은 금안이 새초롬하게 빛나는 게 보였다.

하긴, 이 사람 안 그래도 헌터협회에 자주 놀러 가는 사람이었지.

새로 헌터 되는 사람들 기분 내키면 도와주기도 하고.

한마디로 그녀는 뉴비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종이를 넘길수록 소예리 헌터의 얼굴이 환해졌다.

“이거 언제예요? 언제 뽑아?”

아마 우리 가문 기사단에 지원하는 사람들은 자신들이 마탑주의 비상한 관심을 받고 있다는 걸 모를 거다.

난 종이 한쪽을 가리키며 말했다.

“내일 낮 세 시부터.”

“꺅!”

소예리 헌터가 어쩔 줄 몰라 하며 의자에서 발장구를 쳤다.

“나 떨어져!”

“떨어져도 돼! 꺄아아아!”

나야, 뉴비 헌터야!

내가 의자에서 버티기를 하는 동안 소예리 헌터가 기쁜 마음에 채팅을 올렸다.

[클로나 에이센(예리언님)>>> 나 재밌는 거 본다~~~~]

[아리엔사 시안 데마르(주이안 씨)>>> 신유리 헌터님하고 같이 계시지 않았나요?]

주이안 씨의 벼락같은 반응이 돌아왔다.

저 사람 아까 기도 들어간다고 채팅 못 한다고 하지 않았냐?

아무래도 신시안 교 교황의 신앙심이 바닥난 듯했다.

말세로다.

하긴, 원래 종교 있는 사람도 아니었다. 저 정도로 해내는 게 대단한 거였다.

나 같으면 기도실 한가운데에서 졸다가 페널티 먹었다.

[클로나 에이센(예리언님)>>> 맞아맞아 유리헌터님이랑 같이 보기로 했어용]

[아이반 엘레티아 폰 카르만(신재헌놈)>>> 뭔데요?]

신재헌도 관심이 있는 듯 채팅이 올라왔다.

원래 재밌는 건 나눠야 하는 법이지 않은가?

하지만 안타깝게도 귀족 영지에서 열리는 기사단 선발전에 교황님이나 황제 폐하가 올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있을 리가…… 없었……다.

맞지? 못 오지? 바쁜 거지? 우리 나라 안 망하지?

[클로나 에이센(예리언님)>>> 안알려주지롱]

그 사이 소예리 헌터는 두 남자를 놀리느라 정신이 없었다.

[아이반 엘레티아 폰 카르만(신재헌놈)>>> 아니 염장을]

[아이반 엘레티아 폰 카르만(신재헌놈)>>> 안 가르쳐주시면 할 수 없죠]

할 수 없죠? 뭘 하려고?

[아이반 엘레티아 폰 카르만(신재헌놈)>>> 사람 보내서 에델바이스 영지에서 뭐 하는지 알아내야지]

너어는 국력을 그딴 데다 써야겠어요?

결국 난 이실직고했다.

[세니아 드 에델바이스(신유리)>>> 우리 가문 새 기사 뽑거든요]

[아리엔사 시안 데마르(주이안 씨)>>> 아]

[아이반 엘레티아 폰 카르만(신재헌놈)>>> 아]

두 남자는 그제야 알았다는 반응이었다.

설마 쫓아오는 거 아니지? 응?

다행히 두 남자는 이 던전이 RP던전이란 사실을 이제라도 자각했는지 쫓아온다는 얘기는 없었다.

그러는 사이 소예리 헌터가 들뜬 얼굴로 채팅했다.

[클로나 에이센(예리언님)>>> 어디 얼마나 튼튼한 친구들 오는지 볼까~?]

내 영지 기사들 뽑는데 나보다도 더 신난 얼굴이었다.

난 그런 그녀를 보다가 불길함을 참지 못하고 말했다.

“그…… 말실수하면 안 돼요. 알죠?”

응? 알지?

내 말에 소예리 헌터가 날 돌아보았다.

그러더니 얼굴을 굳혔다.

“……자신 없는데.”

그럼 말을 하지 마! 으이그!

난 엉덩이로 그녀를 의자에서 밀어냈다.

***

[클로나 에이센(소예리 헌터님)>>> 안알려주지롱]

주이안은 올라오는 채팅을 보다가 웃을 뻔했다.

엄숙한 대기도실 한가운데에서 교황이 웃음을 터뜨렸다간 변명의 여지도 없이 페널티를 받을 터였다.

그래도 그는 채팅을 끄지 못했다.

무슨 일인지 알 것 같았다. 에델바이스 가에서 있을 일이라면 뻔하다.

내일이었지, 참.

그러면서 속으로 뇌까렸다.

황가-신전-마탑 세 세력이 힘을 합치기로 한 뒤, 사제가 필요한 곳을 미리 파악해둬야 하는 그였으니 모를 리가 없었다.

애초에 에델바이스 가의 기사 선발전에 사제를 지원하라 한 것도 주이안 자신이었다.

사실, 무슨 일인지 본의 아니게 알게 됐어요.

그렇게 채팅할까 했지만 그는 곧 관둬 버렸다.

줄곧 신유리에게 시선이 가 있었던 건 사실이었으니까.

“그럼 신성 예하께서 신시안 님께 올리는 이번 대기도의 말씀을 낭독하시겠습니다.”

대기도는 채팅창과는 달리 엄숙한 분위기로 이루어졌다.

―사락.

주이안의 옷자락이 바닥을 스치는 소리가 대기도실을 울렸다.

그만큼 침묵과 엄숙함으로 가득 찬 대기도실에서, 강단 위에 오른 주이안은 낭독문을 내려다보았다.

[대기도를 시작하며.]

그렇게 시작하는 낭독문이 보였다.

“대기도를 시작하며.”

그의 맑은 목소리가 대기도실을 울렸다.

[신시안 님께 바치는…….]

그러나 다음 문장을 읽던 주이안은 눈을 가늘게 떴다. 어느 순간 시야가 흐릿해진 탓이었다.

또.

그가 눈을 잠시 감았다 떴다.

[……하여 ……(L)이 활성화됩니다.]

시스템창이 떴지만 무시한 그는 흐릿한 시야로 낭독문을 읽어 내려갔다.

문제는 없었다.

혹시나 이런 일이 생길지 모른다는 생각에 몇 번이나 읽고 외워둔 낭독문이었으니.

“……그럼 신시안 님께, 마음을 담아.”

그가 가슴에 손을 얹고 짧게 묵례했다.

흐릿해진 시야는 여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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