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5화
[아이반 엘레티아 폰 카르만(신재헌터)>>> 텐치아면 동제국쪽 변경에서 게이트 관리도 2위 하고 있는 가문 아니에요?]
[아리엔사 시안 데마르(이안님)>>> 맞는 것 같습니다.]
두 헌터가 텐치아 백작의 신상에 깊이 관심을 갖는 사이.
마탑에 있던 소예리는 짧게 탄식했다.
“아이고, 사람 하나를 저렇게 보내 버리네.”
물론 신유리 헌터는 아무 생각도 없을 터였다.
그게 더 골 때리는 점이다.
이마를 짚은 소예리는 결국 인벤토리에서 아껴두었던 던전산 물품을 꺼내들었다.
[팝콘(A)
- 언제 먹든 갓 튀겨낸 것처럼 바삭바삭하다(캐러멜 시즈닝).]
―와작.
이럴 때 아니면 언제 먹어? 그치?
눈을 반짝인 소예리는 자꾸 갱신되는 헌터 채팅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아이반 엘레티아 폰 카르만(신재헌터)>>> 제가 알기로는 그 가문에……]
소예리 자신은 뜬금없게까지 들리는 텐치아 백작이라는 자에 대해, 신재헌과 주이안이 이렇게나 잘 알고 있는 이유는 뻔했다.
―와작와작.
“우리 어린 친구들 사랑싸움 한번 살벌해요~”
소예리는 그 사이에 저도 모르게 끼어 버린 텐치아 백작에게 조의……가 아니라 JOY를 표했다.
재밌어! 불구경은 됐고 남의 사랑싸움 구경이 최고야!
[세니아 드 에델바이스(유리유리)>>> 아무튼 빨리 갈게요 그 사이에 봉인당하면 안돼]
[클로나 에이센(소예리)>>> 아직 아무런 기색도 없으니까 천천히 와요!]
봉인 스킬에 관심이 있는 건 사실이지만, 안전 문제에 무관심한 것도 아니었다.
소예리는 이미 주변에 결계란 결계는 다 쳐 놓고 기다리고 있었다.
놈이 오면 이쪽에서 먼저 알아채야 할 거 아닌가?
신유리 헌터가 와준다고 했지만 그 전에 사고가 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었다.
“음…….”
올려 묶었던 붉은 머리카락을 편하게 풀어내린 소예리는 눈을 가늘게 떴다.
사고 하니 주이안 헌터를 노린 놈을 쫓았던 신재헌의 모습이 떠올라서였다.
몇 년 전.
자신을 노리던 강도들의 말로를 이제는 알 것 같아서였다.
‘왜 이렇게 늦었어?’
‘너무 잘 튀어서.’
신유리 헌터의 물음에 신재헌 헌터는 그렇게 답했다.
다른 놈들은 다 잡고 던전 안으로 들어갔을 때 남은 놈들은 네 명이었다.
각자 한 명씩 잡자고 했는데, 신재헌은 추적 스킬이 있는데도 가장 늦게 나왔다.
그럴 리가 없는데도.
그때야 의아했지만 정신이 없어 넘어갔는데.
‘비밀로 해 주셨으면 좋겠어요.’
이번 일을 겪고 보니 알 것 같았다.
“가장 늦은 게 아니라…….”
소예리는 턱을 괸 채 헌터팀 사람들을 하나하나 떠올렸다.
게이트 사태 이후.
생사를 걸고 싸우면서 가족 이상으로 가까워진 사람들.
그런 자의 생명을 노린 자에게 복수해주는 건 당연한 일이다.
누군가는 복수는 의미가 없다고 하지만 소예리는 그건 아니라고 생각했다.
일단 복수해서 우리가 상대를 처리하면, 다른 놈들은 우리를 만만하게 보지 않게 될뿐더러 하나의 위험요소가 삭제되는 거니까.
그래서 목숨만 거두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좀 늦었죠.’
그렇게 말하며 자연스럽게 합류하던 신재헌 헌터는 아무래도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었던 모양이다.
‘도망가.’
주이안 헌터를 노린 자에게 그가 하는 말을 들었을 때, 소예리는 조금 놀랐다.
놈은 놓아주는 건가 싶어 잠시 희망에 찬 얼굴이 되었지만, 소예리의 눈엔 보였던 것이다.
신재헌을 둘러싸고 있는 억눌린 살기가.
그는 놈을 벌하고 있었다. 공포에 시달리도록.
곱게 생명을 거두어주는 건 너무나 자비로운 처사라는 것처럼.
“나 때도 그랬겠지?”
소예리는 살짝 고개를 기울였다. 틀림없이 그랬을 것이다.
‘비밀로 해 주셨으면 좋겠어요.’
그렇게 하늘을 보며 말하던 신재헌은 분명히 소예리 자신을 보고 있었다.
“누구에게 비밀일까~”
콧노래를 흥얼거리던 소예리가 웃었다.
아마 놈을 함께 쫓던 사람이 신유리 헌터가 아니라 주이안 헌터였다면 신재헌 헌터는 굳이 비밀로 해 달라는 이야기는 안 했을 것이다.
소예리가 그렇게 생각할 때였다.
―사락.
바깥에서 기이한 인기척이 들렸다.
“?”
소예리가 눈썹을 치켜올렸다. 채팅을 끈 그녀가 바깥에 온 신경을 집중했다.
결계엔 아무것도 안 느껴졌는데?
인기척이 제대로 느껴지지 않는 걸 보니 최소 A급 암살자나 S급 이상이었다.
“봉인하러 온 마법사가?”
A급이나 S급 암살자라고? 이렇게 익숙하게 기척을 감춘다고?
뭔가 잘못됐다고 생각한 순간이었다.
소예리가 있던 층의 창문이 그림자로 완전히 가려졌다.
“……!”
창문을 돌아본 소예리가 난감한 얼굴로 말을 흘렸다.
“이런.”
채팅을 할 틈도 없이 창문이 벌컥 열렸다.
***
다들 남의 연애사업도 아니고 망사랑에 왜 이렇게 관심이 많아?
덕분에 난 마차가 흔들리는 내내 심심하진 않았다.
[세니아 드 에델바이스(신유리)>>> 아무튼 난 관심없다니까]
내가 그렇게 말하든 말든 두 남자는 이제 텐치아 백작의 과거도 읊고 있었다.
[아이반 엘레티아 폰 카르만(신재헌놈)>>> 그놈 파혼 건 잘 생각해 보니까 어릴 때 한 거네요]
[아리엔사 시안 데마르(주이안씨)>>> 어릴 때?]
[아이반 엘레티아 폰 카르만(신재헌놈)>>> 왜 그런 거 있잖아요 어릴 때 부모님끼리 아들딸 미리 약혼시키는 거]
[아리엔사 시안 데마르(주이안씨)>>> 아, 그걸 문서화했던 거군요. 그럼 파혼이라고 보기가 어려운……]
나도 몰랐던 같은 연합 소속 귀족의 과거가 대체 왜 저쪽에서 더 많이 나오는 거냐?
[세니아 드 에델바이스(신유리)>>> 내가 RP던전에서 연애할 사람으로 보이냐고ㅗㅗㅗㅗㅗㅗ]
내가 그렇게 말하고 나서야 두 남자의 채팅은 멎었다.
[세니아 드 에델바이스(신유리)>>> RP에서 사람 사귀는 거야말로 망사랑 아님?]
RP던전에서 평생 살 일 있어?
[아리엔사 시안 데마르(주이안씨)>>> 그러네요]
[아이반 엘레티아 폰 카르만(신재헌놈)>>> 그러네]
그들은 그제야 납득했다. 아니, 이 사람들 이상한 데서 머리 안 돌아간다니까?
―덜컹!
내가 어깨를 으쓱하는 사이 마차는 마탑이 있는 신페아리아 영지로 들어서고 있었다.
“주인님, 신페아리아 영지입니다.”
“응, 보여.”
난 짧게 답하면서 채팅했다.
[세니아 드 에델바이스(신유리)>>> 신페아리아 들어왔어요 곧 간다~~]
그러자 지금까지 조용했던 소예리 헌터의 반응은 곧바로 날아왔다.
[클로나 에이센(예리언님)>>> 야호!]
신나하는 게 보이는 것 같았다.
그렇게 얼마나 달렸을까.
“에델바이스 백작 일행이십니까?”
좀 먼 곳에서 누군가 묻는 소리가 들렸다.
그러면서 마차의 속도가 천천히 느려졌다.
뭐지?
창문을 열고 바깥을 보니 마탑 사람들이 날아오고 있었다.
“오.”
마탑은 사람도 날아와서 반겨주냐?
나와 함께 온 기사들도 좀 놀란 기색이었다.
“네, 에델바이스 백작입니다.”
내가 창문을 열고 인사하자 마법사들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마차 문을 열고 나가야 하나 고민하는데, 마법사들이 고개를 숙였다.
“백작께서 허락하신다면 정중히 모셔 오라는 명이 있었습니다.”
정중히? 뭘? 보통 저런 단어 쓰면 정중하다고 읽고 협박하는 거 아니야?
[세니아 드 에델바이스(신유리)>>> 혹시 나 정중하게 모시라고 했어요?]
검증 들어갑니다.
[클로나 에이센(예리언님)>>> 당근당근 안 피곤하게 신경써서 정중하게! 모셔오라고 했죠~]
음, 진짜 마탑 사람들 맞군.
난 ‘어떻게 할까요?’ 하고 묻는 듯한 기사들의 시선을 받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부탁할게요.”
내 말이 떨어지자마자 마법사들이 나름 신속하게 움직였다.
그들은 일단 마차를 끌고 있는 말의 눈을 검은 천으로 가리고, 말을 쓰다듬어주었다.
―히힝…….
어랍쇼, 저놈들 자는데?
마차인데 말을 꿈나라로 보내 버리면 이건 누가 끌어요? 댁들이 날아서?
내가 눈썹을 치켜올렸을 때였다.
―둥실.
“오.”
마차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어느새 웬 통나무에 올라타게 된 기사들도 떨떠름한 얼굴로 하늘로 떠오르고 있었다.
지상에서 우리가 데리고 온 말들을 보살피는 마법사의 모습이 점점 멀어져 갔다.
“이, 이건…….”
기사들은 당황한 기색이었다. 나 같아도 그럴 것 같았다.
아니, 베이직하게 빗자루나 양탄자도 있는데 저 엄청 긴 통나무는 뭐야?
다인용 빗자루야?
황당해하는 사이 기사들을 태운 통나무와 마차가 날아올라 마탑 쪽으로 향했다.
이게 바로 마탑식 사람 전송법?
[세니아 드 에델바이스(신유리)>>> 이야 마탑 최첨단이다 사람을 막 실어다주네]
[클로나 에이센(예리언님)>>> 말도 쉴 땐 쉬어야죠~]
기분 좋게 웃는 쾌활한 소예리 헌터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날아올라 마탑으로 향하자 도착하는 건 금방이었다.
높디높은 마탑을 올려다보고 있자니 마차가 서서히 땅으로 내려앉는 게 느껴졌다.
“기사님들은 다리 안 깔리게 다리 높이 들어주십시오.”
이건 또 뭔 소리야?
돌아보니 기사들은 떨떠름한 얼굴로 다리를 쫙 편 채 하강하고 있었다.
아, 통나무에 다리 깔리지 말라는 소리였어?
[세니아 드 에델바이스(신유리)>>> 저 통나무 운송법엔 의외의 부작용이 있네요]
[클로나 에이센(예리언님)>>>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리엔사 시안 데마르(주이안씨)>>> ?]
[세니아 드 에델바이스(신유리)>>> 나중에 꼭 통나무에 타고 이동해보세요 주이안씨]
[아리엔사 시안 데마르(주이안씨)>>> 빗자루가…… 아니라요?]
그도 베이직한 마법사들의 이동수단(?)을 생각하고 있는 게 분명했다.
그것과는 다르다, 그것과는!
헌터 채팅엔 사진 찍어주는 기능이 없다는 게 한이었다.
“마탑주님께서는 이곳 최상층에 머물고 계십니다.”
마차에서 내리자, 마법사가 내게 손짓했다.
“고마워요.”
난 가볍게 걸음을 옮겼다. 그러다가 멈칫했다.
잠깐. 이거 아까 봤던 무지막지하게 높은 탑 아니야?
물론 거길 마차째로 날아서 들어갈 거라고 생각하진 않았지만…….
내가 걸음을 옮기는 사이 내 기사들은 제지받고 있었다.
“입장이 최소한으로 제한되어 있는 구역이라…… 저희도 함부로 입장할 수 없는 곳입니다.”
혹시나 이쪽에서 불쾌해할까 뒷말을 덧붙인 것 같았다.
죄송하다는 듯 고개를 숙이는 마법사들을 보며, 난 기사들에게 손짓했다.
“다녀올 테니 잠시 쉬고 있어. 마탑에서 잘 쉬게 해주실 테니까. 그렇죠?”
내 말에 마법사들은 고개를 거듭 숙여 보였다.
“물론입니다. 마탑주님께서 최고의 대우를 하라 명하셨습니다.”
내 말이 떨어지고 나서야 에델바이스의 기사들은 내게서 한 걸음 물러섰다.
그 사이 난 20층은 넘어 보이는 높이의 막막한 탑을 올려다보았다.
“이거 엘―”
[RP던전 페널티 위기! : 이 세계에는 없는 문물]
아차차. 눈앞이 번쩍이는 걸 보자마자 난 바로 입을 닫아 버렸다.
[세니아 드 에델바이스(신유리)>>> 이거 엘리베이터는 있는 거죠?]
내가 페널티 위기도 받아가며 물어봤지만 돌아온 답은 이랬다.
[클로나 에이센(예리언님)>>> 와보면 알아요~]
“뭔가 필요하신 일이라도?”
그때 마법사가 조심스럽게 물어 왔다. 내가 말하다 끊은 게 신경 쓰인 모양이었다.
“엘……?”
거기까지 들었냐! 마법사가 의아한 듯 묻는 말에 난 손을 내저었다.
“엘레강스하게 생긴 탑이네요!”
내가 뭐라고 하는 거야, 지금?
“아, 감사합니다.”
엘리베이터는 없는 주제에 엘레강스는 알아듣는 기이한 마법사들을 뒤로하고 난 탑으로 들어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