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화
[신의 상점 : Lv. 4]
레벨 4라고 좀 더 까리하게 변한 시스템창에 판매 목록이 올라왔다.
[쪼꼬미 물약 – 무료]
[외형 변경 물약 – 100C]
[인벤토리 영구 증가 – 10000C]
[포만도 물약 – 1000C]
[실명 물약 – 2000C]
[체력 회복 물약 – 100C]
[마법의 신분 증명패 – 2000C]
[은하 서버 인벤토리 열쇠 – 20000C]
[은하 서버 스킬 열쇠 – 30000C]
여기까진 3레벨에도 있었던 것들이었다. 난 시선을 쭉 내렸다.
[극강 강화제 – 100000C]
그리고 첫 아이템부터 당황했다. 얼마짜리요? 일, 십, 백, 천, 만…… 십만 코인?
이게 뭔데 10만 코인을 털어가?
[극강 강화제 : 10분간 은하 서버의 ‘헌터 신유리(S)’의 능력치를 불러와 현재 능력치에 덧입힌다.]
오.
확실히 강해지는 건 맞았다. 근데 10분에 10만 코인?
“내가 이렇게 비쌌구나.”
능력치 대여에 분당 1만 코인이라니 끝내주는 값 아니냐?
[목각 인형 – 5000C]
[일정 시간 동안 특정인을 대신해 자리에 놓을 수 있는 목각 인형. 상대가 직접 베어보기 전에는 진짜와 구분할 수 없다.]
뭔가 쓸모 있어 보이지만 쓸모없는 아이템이었다. 신재헌 마실 전용 아이템인가?
아니면 나 잠행 핑계 없이도 나올 수 있게 해주는 아이템?
이렇게 생각하니 좀 많이 쓸모 있어 보였다.
[돋보기 물약 – 3000C]
[타인의 시스템창(능력치)을 열람할 수 있다. (눈이 마주치는 시간 동안, 최대 10초)]
남의 시스템창은 왜 봐?
아니지, 상대 스펙이 궁금해질 수도 있잖아. 이것도 좀 쓸모 있는 것 같았다.
[몰래몰래 물약 – 1000C]
[자신의 인기척을 줄인다. 자신과 상대의 랭크 차이에 따라 효과에 제한을 받는다.]
요컨대 나보다 랭크가 높은 놈 앞에서도 인기척을 숨길 수 있는 아이템이란 뜻이다.
그런데 그냥 S급이 먼저 되어버리면 안 될까요? 굳이 인기척을 감추는 약까지 써야 할까요?
4레벨 상점 라인업이 좀 애매하다? 내가 눈썹을 치켜올렸을 때였다.
대망의 마지막 아이템이 눈에 띄었다.
[일일퀘스트 변경 물약(랜덤) - 7777C]
[일일퀘스트 보상을 변경한다. (랜덤 적용, 하루 1회 사용 가능)]
하루에 체력 10% 주는 걸 다른 보상으로도 바꿀 수 있다는 얘긴가?
이건 좀 혹하는 물약이었다.
안 그래도 체력만 늘어나서 문제이긴 했다. 난 마력이 중요한 잔상 스킬이 딜링기이니 마력이 커야 하는데 마력을 높일 방법이 마땅치 않던 차였다.
문제는 랜덤이란 건데.
나올 때까지 뽑으면 되지 않을까요?
원래 자고로 랜덤이란 나올 때까지 뽑으면 100%라는 뜻이었다.
“좋아.”
신의 상점 아이쇼핑을 마친 난 시스템창을 껐다.
그리고 끄자마자 말의 머리 위에 앉아 있는 신재헌과 눈이 마주쳤다.
“뭐뭐뭐뭐야!”
놀라서 기겁을 했더니 말도 비틀거리려고 했다.
간신히 말을 진정시키니 여전히 미니미 성기사 모습인 신재헌이 다리를 꼰 채 물었다.
“뭐가 아까부터 그렇게 좋아?”
“아.”
이놈 있는 걸 까먹고 혼잣말을 좀 길게 한 모양이다.
“신의 상점 레벨업 했거든.”
“오.”
신재헌의 얼굴에 흥미가 감돌았다. 난 문득 목각인형이 떠올라 그에게 말했다.
“너한테 딱인 아이템 있더라.”
“뭔데?”
아니나 다를까, 신재헌이 꼬고 있던 다리를 풀고 눈을 깜빡였다.
저런 순수하게 궁금해하는 얼굴 보기가 쉽지 않은데.
원래 희소성 있는 표정을 보면 놀리고 싶은 법이었다.
난 씩 웃었다.
“비밀.”
“야.”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신재헌이 말이 흔들리자 비틀거렸다.
중심을 잡은 그가 눈을 부라리는 걸 한참 동안 즐긴 후에야 난 목각인형에 대해 말해 주었다.
“그런 게 생겼단 말이지.”
이야기를 들은 그의 표정은 걸작이었다.
그가 손을 내밀었다.
“얼마면 돼?”
아주 진지한 얼굴이었다.
난 그 조그만 손을 툭 쳐주며 말했다.
“비매품입니다.”
“왜???”
“코인 다 털렸어용.”
“나랑 던전 가자.”
그렇게 매달리는 신재헌은 왠지 다급해 보였다.
아무래도 이놈은 정무가 정말 안 맞는 듯했다.
이 나라 우리 집에 갈 때까지 안 망하는 거 맞겠지?
***
나와 신재헌은 무사히 복귀했다.
신재헌은 그렇게도 가기 싫어하던 황성으로 돌아갔고, 난 에델바이스 저택으로 돌아왔다.
‘목각인형이 그래서 얼마라고?’
신재헌은 끝까지 미련을 버리지 못했다.
‘코인이 있어야 한다니까.’
‘내가 조만간 갈 만한 던전 찾아볼게.’
그러더니 황성 의전관이 들으면 기절할 말을 늘어놓았다.
‘한 열 개쯤 사서 놔두고 놀러 다녀야지.’
서제국이 망할 징조였다.
그렇게 복귀한 지 반나절이 지났을까.
눈을 뜨자마자 보인 헌터 채팅에는 소예리 헌터의 채팅이 올라오고 있었다.
[클로나 에이센(예리언님)>>> 여어어어러분 굿뉴스 빅뉴스!]
[세니아 드 에델바이스(신유리)>>> ?]
[클로나 에이센(예리언님)>>> 멸망계시록 자음이었던 거 글자 열렸어요]
뭐? 눈 뜨자마자 잠이 확 깼다.
[아리엔사 시안 데마르(주이안씨)>>> 앞으로의 위협에 대해서도 나와 있었나요?]
역시 주이안 씨가 가장 먼저 생각하는 건 그것인 듯했다.
신재헌의 쓸데없는 해석에서 그나마 유의미했던 ‘황제’, ‘교황’, ‘마탑주’ 세 단어.
교황이 독으로 위협을 받았으니 다음은 황제나 마탑주, 즉 신재헌이나 소예리 헌터 차례였다.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었다.
[클로나 에이센(예리언님)>>> 아예 내용을 써 줄게]
그러고 나서 잠시 후 긴 채팅이 올라왔다.
[클로나 에이센(예리언님)>>> 이계인들은 이계의 지식으로 게이트를 잠재우려 한다. 하지만 인간의 적은 또 다른 인간, 다른 인간 세력이 나타나 그들의 앞길을 가로막는다.]
여기까진 아는 내용이었다. 그 다음!
[클로나 에이센(예리언님)>>> 유약한 황제에게는 암살자를 보내고, 우유부단한 교황에게는 독을 먹이고, 홀로 돌아다니는 마탑주의 마법은 봉인하여 이 대륙의 패권을 손에 넣으려 한다.]
요컨대 황제는 암살자, 마탑주는 마법 봉인? 내가 중요한 걸 읽어내는 사이 채팅창이 우르르 올라갔다.
[아이반 엘레티아 폰 카르만(신재헌놈)>>> 제가 언제 유약했죠?]
저놈은 저걸 지금 왜 따져?
[세니아 드 에델바이스(신유리)>>> 설정상의 문제겠지]
애초에 황제 아이반은 그가 빙의하기 전에는 정말 유약한 성격이었던 듯했으니까.
[아리엔사 시안 데마르(주이안씨)>>> 우유부단한…….]
하지만 이쪽은 이야기가 달랐다.
[클로나 에이센(예리언님)>>> 그건 맞는 듯]
[세니아 드 에델바이스(신유리)>>> 저건 설정상의 문제가 아닌것같음]
[아이반 엘레티아 폰 카르만(신재헌놈)>>> 시스템이 보는 눈이 있네]
한마디 했다가 세 대 얻어터진 주이안 씨는 말이 없었다.
지금쯤 이마를 짚고 한숨을 포옥 내쉬고 있을 그를 생각하니 웃음이 터지려고 했다.
[아리엔사 시안 데마르(주이안씨)>>> ……아무튼 어떤 종류의 위협인지 나타났으니, 두 분께서는 좀 더 단단하게 대비하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주이안 씨의 채팅에 뒤이어 신재헌의 채팅이 올라왔다.
[아이반 엘레티아 폰 카르만(신재헌놈)>>> 주이안 헌터 건도 여기 애들이 L급 독을 가지고 있었던 건 아닌 것 같고, 시스템 보정으로 다른 독이 L급 독이 된 것 같거든요]
그거야 예상하고 있었던 사실이었다.
[아이반 엘레티아 폰 카르만(신재헌놈)>>> 저도 조심할 테니, 소예리 헌터님도 조심하세요]
[클로나 에이센(예리언님)>>> 오케이 긴장하기!]
그렇게 말하더니 소예리 헌터는 곧바로 채팅을 올렸다.
[클로나 에이센(예리언님)>>> 근데 마법 봉인은 어떻게 하는 거래?]
설마? 난 불길한 마음으로 채팅창을 들여다보았다.
[클로나 에이센(예리언님)>>> 독 같은 것만 아니면 어차피 스킬 종류일 텐데]
[클로나 에이센(예리언님)>>> 여기 애들은 마법 형태로 쓸 거고. 그럼 마법진만 연구하면 마법 봉인 어떻게 하는지 알 수 있을지도 몰라요]
불길함이 심화되기 시작했다.
[세니아 드 에델바이스(신유리)>>> 설마 그래서 한번 봉인돼보겠다는 소리는 아니죠?]
주이안 씨와 신재헌도 같은 소리를 하고 싶었는지 채팅이 조용했다.
그리고 잠시 후, 예상대로 소예리 헌터의 채팅이 올라왔다.
[클로나 에이센(예리언님)>>> 안 될까?]
되겠냐! 저놈의 연구병!
[클로나 에이센(예리언님)>>> 어차피 마법이면 사용자가 죽으면 풀린단 말이에요]
그녀가 스킬이 많은 보조계 헌터 중에서도 유독 스킬이 많은 이유가 있었다.
그녀는 처음 보는 스킬이면 호기심에 불을 켜고 스킬을 연구했던 것이다.
그래서 꼭 비슷한 스킬을 얻어내고야 말았다.
근데 이번엔 봉인에 꽂힌 모양이다.
아니, 꽂힌 건 좋은데.
[아리엔사 시안 데마르(주이안씨)>>> 너무 위험해요]
[아이반 엘레티아 폰 카르만(신재헌놈)>>> 아무리 스킬이 맞아가면서 배우는 거라지만 L급 던전에서는 좀]
[클로나 에이센(예리언님)>>> 이 RP던전 세계관상 봉인 마법을 건 놈만 처리하면 된다니까~? 이번만큼 안전하게 스킬을 배울 수 있는 기회가 없어요!]
[세니아 드 에델바이스(신유리)>>> 아이고 저사람 또 약파네 잡상인 안받습니다]
그러자 잠시간의 텀을 두고 채팅이 올라왔다.
[클로나 에이센(예리언님)>>> ♚♚스킬즈 오브 더 봉☆인♚♚걸릴시$$마법 봉인☜☜스킬100%증정※ ♜스킬오브 보조계♜많을수록 좋음¥ 특정조건 §§봉인걸려보기§§안할시☞☞★공허한스킬창★단한번의획득기회@@@즉시연락]
미친 거 아니냐?
***
우리 팀은 다행히 모두 정신이 똑바로 박힌 인간들이었으므로 소예리 헌터의 실험정신을 반대했다.
아니, 그런 줄 알았다.
그런데 정확히 하루 후.
[아이반 엘레티아 폰 카르만(신재헌놈)>>> 이번 기회에 소예리 헌터님이 봉인 스킬 익혀보시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네요]
갑자기 신재헌이 의견을 바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