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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던전의 S급 시한부 영애 (78)화 (78/218)

78화

신재헌은 신유리가 어둠 속으로 사라지는 것을 보았다.

그림자 속에서 보정을 받는 스킬이 많으니 그녀가 위험할 일은 없을 것이다.

[‘추적(A)’ 스킬 효과 유지 중]

그의 시선이 신유리가 사라진 쪽으로 향했다.

그녀가 간 곳은 비교적 흔적이 적은 곳이었다.

저곳에 상대가 있을 확률은 적다.

그런데도 그곳으로 신유리가 가도록 유도한 건 몇 가지 이유가 있었다.

일단 적어도 놈이 암살 스킬을 제대로 쓰지 못할 정도로 손은 써두어야 했다.

그는 신유리가 혹시나 위험해지길 바라지 않았으니까.

“…….”

대신 신재헌은 정면을 쳐다보았다.

그리고 굳이 인기척을 숨기지 않은 채 걸음을 옮겼다.

―툭, 콰직.

옷에 걸린 나뭇가지가 부서지고 밟히는 소리가 선명하게 울렸다.

이 정도면 A급, 그것도 암살자 계열의 인물이라면 틀림없이 들었을 것이다.

게다가 점점 다가갈수록 난잡하고 짙게 나 있는 흔적들.

이 근처가 놈의 생활반경임은 물론.

[추적(A) 스킬 추가 효과 : 대상 근처 50m 반경 안에 접근 시 능력치 +5%]

[추적(A) 스킬 추가 효과를 받습니다(능력치 +5%)]

잡았다.

신재헌의 입꼬리가 소리 없이 올라갔다.

애초에 추적 스킬은 능력치가 올라가는 것 때문에 쓰는 스킬이 아니었다.

이 5% 능력치 증가 효과가 뜨면, 상대가 반경 50m 안에 있음을 알 수 있으니 쓰는 것이었다.

“거기 있구나.”

신재헌이 나지막하게 말했다. 풀숲에 나름 철저하게 숨어 있는 놈이 움찔하는 게 보였다.

하지만 S급인 신재헌의 눈에는 너무나도 엉성해 보이는 엄폐였다.

신재헌의 시선이 똑바로 놈에게 향했다.

“다 보여.”

그가 소리 없이 웃은 순간이었다.

―쌔액!

놈이 재빨리 그에게 단도를 날렸다. 틈을 만들어 도망치려는 생각인 듯했다.

나름 단도 투척술에는 자신이 있는 듯, 상상 이상으로 빠른 속도였다.

―탁!

하지만 신재헌이 기대한 것만큼은 아니었다.

그는 장갑 낀 손으로 날아오는 단도를 잡아채 버렸다.

“……!”

놈이 놀라 멈칫하는 게 보였다. 그 머리 위에 뜬 랭크는 예상대로.

[A]

기껏해야 이 정도 힘이면, A급에 간신히 턱걸이할 정도였다.

유리가 마주쳐도 위험하지 않을 수준이다.

[…….]

얼마나 약한지 데미지가 들어오지도 않았다.

외형 변신 물약의 특성상 그의 장비 상태 대신 성기사의 장비가 적용되었는데도 그랬다.

신재헌의 기본 방어력조차 뚫지 못했다는 의미였다.

―콰직!

신재헌은 받아낸 단도를 한 손으로 우그러뜨려 버렸다.

정말 독은 메인 스토리 보정 때문에 강해진 것일 뿐, 이놈은 별 거 아니었던 모양이다.

아마 이놈이 신전 침입에 성공한 것도 메인스토리 보정 때문일 가능성이 컸다.

주이안 헌터가 독을 먹는 것이 메인 스토리상 정해져 있었기 때문에.

“너지?”

신재헌이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그 말에 멈칫했던 놈은 몸을 휙 돌렸다.

―타다다닥!

꽁지 빠지게 튀는 꼴을 보면서도 신재헌은 급하게 움직이지 않았다.

[추적(A) 스킬 효과 유지 중]

어차피 그의 눈에는 놈이 흘리고 가는 적개심의 흔적이 보였으니까.

그리고 무엇보다 서두를 필요가 없었다.

놈이야 조급하겠지만 어차피 서둘러 산맥을 내려간다고 해도 이곳을 나가지는 못할 테니.

신재헌의 목표는 하나였다.

유리보다 먼저 찾으면 된다.

그녀보다 먼저 찾아서, 아주 잠깐 해야 할 일이 있었다.

―탁.

그는 놈이 숨어 있던 풀숲의 나뭇가지를 검으로 쳐내 버리며 걸음을 옮겼다.

언젠가 소예리 헌터가 독을 마셨을 때를 떠올리면서.

자신들을 헌터계의 강도라고 칭하던 그 A급 집단은, 제 입으로 그렇게 말했다.

던전은 치외법권이라고.

그렇게 말한 주제에 S급에게 쫓기던 그들은, 대담하게도 던전 안으로 숨어들었다.

미끼랍시고 제 팀 중 몇 명을 던전 밖에 버려놓은 채.

어차피 던전 안으로 들어가면 1시간 후에는 게이트가 닫히니, 1시간만 따돌리면 추적을 피할 수 있다는 계산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S급 헌터들의 기동성을 무시했다.

미끼는 진작 잡혔고, 던전이 닫히기 몇 분 전에 신유리 헌터팀은 그들이 있는 던전에 들어갈 수 있었다.

[B급 던전 ‘유적’에 들어섭니다.]

그들이 들어간 던전은 지하 미로 같은 구조였다.

‘쪼개져서 찾죠.’

쫓을 놈들은 4명. 이쪽도 회복한 소예리 헌터까지 포함해 4명.

A급 헌터 여럿에게 습격당해 봐야 이미 만반의 준비가 되어 있는 S급이 당할 리가 없었다.

게다가 소예리 헌터가 독을 마셨던 건 저들이 파티에서 그녀에게 갈 잔에 의도적으로 독을 탔기 때문이었다.

소예리 헌터를 맞닥뜨려서 제압할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겠지.

그리고 그 독이 해독된 소예리 헌터에게 그들은 상대가 되지 못했다.

[소예리 헌터>>> 찾았어요.]

가장 먼저 목표물을 찾았다고 한 건 소예리 헌터였다.

하지만 그 당시, 가장 먼저 놈들을 찾은 건 신재헌이었다. 그때도 추적 스킬이 있었기에.

……채팅에 보고하지 않았을 뿐이지.

‘여, 여기까지 쫓아왔다고?!’

놀라 혼비백산하며 도망치는 놈들에게 독을 쓴 자가 누구냐고 물은 것도 그였다.

그리고 의리 없게도, 놈들은 한 놈을 지목하고 다른 곳으로 뿔뿔이 흩어져 도망쳤다.

그리고 신재헌은 지목당한 놈만을 쫓았다.

그렇게 수 시간 후, 던전이 클리어되고도 한참 동안 그는 놈을 쫓았다.

클리어된 던전 안에서.

출구엔 이미 헌터팀이 기다리고 있을 테니, 놈이 탈출할 염려도 없었다.

그렇게 신재헌은 놈이 죽을 것 같은 공포에 결국 멈춰 서게 만들었다.

차라리 죽여 달라고 할 때까지, 느긋하게 그를 쫓았다.

‘아니, 왜 이렇게 늦었어?’

던전 출구에서 기다리던 신유리가 물었지만 그는 가볍게 답했다.

‘너무 잘 튀어서.’

‘걱정했잖아.’

그렇게 웃으며 말을 받는 신유리를 보며, 신재헌은 뒷말을 삼켰다.

“너무 일찍 편하게 해줄 순 없잖아.”

그때 삼켰던 말을, 그는 지금 뇌까리고 있었다.

소예리 헌터가 독을 마신 날, 헌터팀은 한숨도 자지 못했다.

‘진짜, 진짜 괜찮겠지?’

특히 신유리는 스트레스를 크게 받았다. 팀을 지키지 못했다는 죄책감 때문이었다.

아니, 정확히는 그렇게 보였지만 그녀 자신조차 모르는 다른 이유가 있었다.

그녀는 몰라도 신재헌은 진짜 이유를 알았다.

신유리는 늘 그랬으니까.

네 명 중 하나라도 위험해지면 누구보다도 예민하게 반응하는 사람이 신유리였다.

그녀는 즐거운 이 헌터팀이 어떤 식으로든 박살 나지 않기를 바랐다.

그랬기에 그때도 소예리 헌터가 정신을 차리고, 놈들을 잡아 죽일 때까지 신유리는 마음고생을 했다.

팀에 아무 이상이 없고, 그런 짓을 한 놈들을 정리한 후에야 안심할 수 있었다.

그녀는 그런 사람이었다.

“…….”

신재헌의 머릿속이 차게 식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그녀의 얼굴은 피곤해 보였다.

물론 같은 팀의 헌터가 위험에 노출된 건 신재헌에게도 당연히 화가 나는 일이었다.

하지만 그것과는 별개의 감정이 끓었다.

신재헌은 그녀의 ‘안정’을 해치고 싶지 않았다. 그녀가 좋아하는 이 상태의 헌터팀에 변화를 주고 싶지 않았다.

그녀가 그것을 가장 좋아한다는 걸 알기에.

“…….”

제가 원하는 감정을 얻기 위해서는 그 안정을 해쳐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그러면서도.

싫어.

그가 뇌까렸다.

내가 아닌 다른 것으로는 싫어.

―탁.

그가 걸음을 좀 더 빠르게 옮겼다. 놈이 쥐새끼처럼 도망치는 소리가 선명하게 귓가에 닿아 왔다.

“그래, 도망가 봐.”

그가 속삭였다.

그는 굳이 달리지 않았다. 대신 놈의 위치에 따라 방향만 미묘하게 꺾어 걸었다.

놈이 충분히 무서워하도록.

저놈은 처음에는 거리를 벌려서 도망칠 수 있다는 희망을 가졌을 것이다.

그러다가 이쪽에서 일부러 천천히 쫓아온다는 사실에 긴장했다가, 산을 거의 다 내려갈 즈음에는 다시 희망을 가질 것이다.

동제국으로 넘어가면 서제국 신성기사가 동제국의 영역을 침범할 수 있을 리 없으니.

하지만 이내 다시 절망할 것이다.

A랭크의 힘으로는 소예리 헌터의 방벽을 뚫을 수 없을 테니.

그때부터는 공포에 짓눌리게 될 것이다. 자신을 추격해오는 자와의 거리가 좁혀질수록, 더더욱.

―쿠웅!

이내 먼 곳에서 결계와 누군가 부딪히는 소리가 났다.

신재헌이 웃었다. 예상대로였다.

“이, 이게 뭐야!”

놈은 당황해서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차르륵! 챙!

검을 휘둘러도 방벽을 부술 수 없는 것도 예상대로였다.

신재헌은 절망으로 일그러지는 얼굴 앞에 천천히 모습을 드러냈다.

“대체…… 대체 무슨……!”

상황파악이 아직 제대로 되지 않는 듯했다.

하지만 때로는 본능이 이성보다 더 먼저 상황을 알아채는 법이었다.

놈은 공포에 재게 다리를 놀려 그에게서 멀어지려다가, 다리가 꼬여 넘어져 버렸다.

“오지…… 오지 마!”

―쿵!

놈이 다시 방벽에 부딪히면서 허공에 파문이 일었다.

“그렇게는 못 깨.”

신재헌이 입을 열었다. 그가 천천히 놈에게 다가가며 말했다.

“좀 더 간절하게 깨야지.”

그가 방벽을 가리켰다.

“검을 써서,”

그의 시선이 놈의 부러진 검으로 향했다가 다시 올라왔다.

“그게 안 되면 주먹으로라도 부숴 봐야지.”

그때쯤에는 두 사람의 거리가 5m도 안 될 정도로 가까워져 있었다.

“이, 이, 이단심문관?”

교황 아리엔사 시안 데마르를 닮아 온화한 사제들이 대부분인 현재 교단에서, 살벌한 분위기를 가진 자들이라면 당연히 한 부류밖에 없었다.

신재헌이 웃었다. 어느 쪽으로 오해받든 상관없었다. 그가 어깨를 으쓱했다.

―털썩.

완전히 주저앉은 놈이 다리를 질질 끌며 그에게서 멀어지려고 했다.

신재헌은 그대로 걸음을 옮겨 놈 앞에 닿았다.

공포에 하얗게 질린 얼굴 앞으로, 신재헌이 몸을 낮춰 눈높이를 맞추었다.

“묻고 싶은 게 많지만 중요한 것만 묻지.”

그가 살짝 고개를 기울였다.

“독은 어디에서 났어?”

그 말에 몸을 덜덜 떨던 놈이 움직임을 멈추었다.

“그걸 말할 것 같나?”

이대로면 진부하게 흘러갈 것이다. 하지만 신재헌은 그대로 둘 생각이 없었다.

“어차피 동제국의 황태자가 독을 썼다는 건 알아.”

그 말에 놈의 눈동자가 크게 흔들렸다. 자백이나 다름없는 반응이었다.

이렇게 정답을 확신하고 있을 줄은 몰랐겠지.

아마 멸망계시록이 없었다면 조금은 헤맸을지도 모르지만, 애초에 정답은 너무 명확했다.

“이 대륙에서 그렇게 경솔하게 남을 노리는 자는 그자 말고는 없지. 그래서 그건 별로 안 궁금했어.”

네가 협조할 의사가 있는지 궁금해서 물어본 거야.

그렇게 속삭인 신재헌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완전히 사라졌다.

“그래서 네가 썼던 독이 뭐지?”

“뭐?”

놈은 갑자기 이제 와서 그걸 왜 묻느냐는 얼굴이었다.

그러다가 그의 얼굴이 서서히 폈다.

신전에서 사람들이 쫓아올 건 알고 있었다. 하지만 예상외의 실력자라 꼼짝없이 죽는 줄 알았다.

게다가 교황이 죽었다는 소문도 없었으니 계획마저 실패한 채 끝나는 줄 알았다.

근데 쫓아온 이단심문관 같은 이 성기사는 독의 정체를 알아내려 하고 있었다.

만일 해독했다면 그 독의 정체를 모르고 있을 리가 없었다.

암살자의 얼굴에 순식간에 희망이 차올랐다.

“죽었나? 교황이?”

그가 이를 드러내며 웃으려는 순간이었다.

신재헌이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대꾸했다.

“아니.”

그랬으면 동제국은 퀘스트고 뭐고 없이 날아갔을 것이다.

“뭐?”

암살자가 눈살을 찌푸렸다.

“내가 설명해야 할 의무는 없지.”

신재헌은 성기사의 검을 뽑아 놈의 목에 들이댔다.

이단심문실에서 ‘답’을 듣기 위해 어떤 방법을 쓰는지는 몰랐지만, 신재헌 역시 만만치 않게 여러 가지 방법을 알고 있었다.

말하기 싫어하는 사람에게 ‘효과적으로’ 질문하는 방법을.

그건 헌터계에서 살아남기 위해 알아야 했던 방법이었다.

빛나는 신유리 옆에서, 그림자였던 그가 자처한 일이기도 했다.

“난 죽는 것보다 고통스럽게 하는 방법을 여러 가지 알아. 이런 질문은 여러 번 해 봤거든. 그러니까.”

그의 검이 서서히 놈의 턱 밑을 파고들었다.

“번거롭게 굴지 말고 말해 주지?”

신재헌이 웃었다.

“어차피 죽을 텐데, 예쁜 모습으로 죽는 게 낫지 않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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