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6화
신전에 도착한 우린 쉬겠다는 말로 개인실을 배정받았다.
물론 내 앞으로 된 방은 신재헌의 주머니뿐이었다.
요컨대 없다는 소리다.
아오!
하지만.
―똑똑.
조용한 노크 소리와 함께 고개를 들이민 소예리 헌터를 시작으로, 딜러들을 치료해야 한다는 주이안 씨까지 신재헌의 방으로 몰려와 버렸다.
“이렇게 모이면 페널티 안 걸려요?”
우리 RP던전인데? 그것도 L급인데?
하지만 두 사람은 한가하게도 어깨를 으쓱거리며 대꾸했다.
“몰래 왔어요.”
“아무도 못 봤을 거예요.”
마지막 말을 하는 소예리 헌터는 윙크까지 했다.
페널티가 없는 걸 보니 맞는 것 같긴 한데…….
우리가 언제 이렇게 몰래 만나야 할 사이가 됐지?
―쿠웅.
내가 새삼스러운 기분을 느끼는 사이, 방 한쪽에서 묵직한 소리가 울렸다.
방음이 잘 되는 곳이니 바깥까지 울리진 않았겠지만 충분히 큰 소리였다.
―탁탁.
주이안 씨가 굉음의 정체이자 방금 꺼낸 그의 S급 침대를 툭툭 두드려 보였다.
저번에 신재헌이 SS급 멧돼지에 물렸을 때 뻗었던 침대와 같은 침대였다.
“일단 신재헌 헌터님부터.”
냉랭하게까지 들리는 힐러의 목소리에 저항할 수 있는 팀원은 없었다.
결국 신재헌이 침대 위로 스스륵 누웠다.
난 그 틈을 타 그의 주머니에서 빠져나왔다. 읏챠.
[아이반 엘레티아 폰 카르만(신재헌놈) - S급(딜러)
- 상태이상 : 체력 저하, 정신력 저하, 다발성 골절, 중상(집중치료 필요)]
S급들이 뼈가 부러지는 거야 자주 있는 일이었다.
그만큼 힐러들의 치유 스킬도 강력해서 뼈가 가루가 되지 않는 한 치유가 가능하고.
문제는 중상이었다.
집중치료 관련 스킬이 있는 힐러는 전 세계를 통틀어서 다섯 명도 되지 않았다.
그리고 그중 하나가 주이안 씨였다.
―탁.
주이안 씨는 머리 위에 집중치료 스킬 게이지바를 띄운 채 신재헌 옆에 앉았다.
[집중치료(SS) 스킬 준비도 : 2%]
주이안 씨의 상태창에도 게이지바가 올라왔다.
거의 모든 부상을 치료할 수 있는 대신, 대기시간이 긴 스킬이었다.
저게 없었으면 우리 팀은 아마 일 년의 반은 병원에서 보냈을 것이다. 집중치료 받느라고.
“가만히, 알죠?”
주이안 씨가 부드럽지만 엄격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건 둘 중 한 사람이 크게 움직이면 풀리는 스킬이라, 신재헌도 꼼짝없이 30분은 누워 있어야 했다.
물론 입은 움직일 수 있었으므로 주이안 씨가 물었다.
“그래서, 무슨 일이 있었던 겁니까?”
나와 신재헌의 시선이 마주쳤다. 난 누워 있는 신재헌 대신 입을 열었다.
“그게, 말하자면 긴데…….”
어차피 차지 시간은 길었으니 이야기할 시간은 충분했다.
내 입에서 수학선생님의 만행이 나오기 시작하자 소예리 헌터와 주이안 씨의 안색이 점점 변했다.
마지막에 오답노트 스킬이 올라오기 시작했다는 부분에서는, 이제 소예리 헌터는 의아한 얼굴이었다.
그녀의 얼굴이 말하는 바는 이러했다.
어떻게 살아 돌아왔어요?
“공격은 피한 건가요?”
결국 주이안 씨가 내 이야기를 듣다 말고 물었다.
난 고개를 저었다.
“아뇨, 피할 수 있는 스킬도 아니었고 4교시 자동소환 타임까지도 시간이 남아있어서 맞을 수밖에 없었어요.”
내 말에 소예리 헌터가 입을 떠억 벌렸다.
“SS급 보스 차지 어택을 받고 살았어요?”
“원래 납작 뭉개질 예정이었는데.”
난 신재헌을 흘끗 쳐다보았다. 신재헌은 날 보다가 시선을 돌려 버렸다.
자습시간에 그랬던 것처럼.
‘고마워서.’
그는 그렇게 말했지만 나는 저 표정을 알았다.
그는 C급일 때처럼, 나를 따라오기 위해 있는 힘껏 달릴 때처럼 내게 미안해하고 있었다.
안 그래도 되는데.
“이거 덕분에 살았어요.”
생각을 끊은 난 헌터 채팅에 스킬 정보 하나를 공유했다.
[세니아 드 에델바이스(신유리)>>> [나는 언제나 네 앞에(SS) : 데미지 감소 50%(2초), 후방에 □□□□□□이 있을 경우 데미지 감소 99%(2초)]]
“오…….”
모두가 내 스킬을 살펴보느라 한동안 방 안이 조용해졌다.
난 새삼스럽게 스킬 설명을 다시 보았다.
나는 언제나 네 앞에.
SS급 스킬이라면 순간 내 바람이 굉장히 컸다는 이야기다.
원래 새 스킬은 가장 강렬하게 원할 때 나타나고, 얼마나 소원하느냐에 따라 스킬 랭크가 정해지니까.
“나는 언제나 네 앞에…….”
난 아주 작게 뇌까렸다.
그 순간 신재헌의 시선이 내게 머문 것 같았다.
오답노트 막을 때는 몰랐는데, 스킬 설명창에 이상하게 깨져 있는 글자가 보였다.
뒤에 뭐가 있으면 99%인데?
“조건부 스킬이네요.”
주이안 씨가 살펴보다가 말했다.
“네. 이게 50%로 발동됐는지 99%로 발동됐는지는 모르겠는데 아무튼 살았어요.”
뭐 앞에 있어야 99%로 발동되는지는 아직 모르겠다. 내가 어깨를 으쓱했다.
“사실 오답노트 맞다가 이동된 것 같기도 하고.”
어느 쪽이든 그 상태에서 주이안 씨와 같은 공간으로 이동되지 않았으면 죽었을 것이다.
“신유리 헌터님 먼저 치료했어야 할까요?”
우리의 이야기를 다 들은 주이안 씨가 물었다.
난 손을 내저었다.
“아뇨.”
누가 봐도 신재헌 상태가 더 심했다.
나도 중상인 건 마찬가지였지만 S급은 어지간한 부상으로는 중상 상태 이상이 뜨지 않으니까.
하지만 신재헌은 기다렸다는 듯 벌떡 일어나려고 했다.
“급그누으읏으르.”
곱게 누워 있어라, 응?
난 이를 꽉 깨물고 말했다. 작은 몸으로 다가가 그의 어깨에 손을 얹자, 그는 다시 침대에 처박혔다.
S급 몸을 누른다고 잘 눌릴 리가 없는데, 그는 내 손이 닿자마자 다시 침대에 늘어져 버렸다.
“그래도 이보다 더 큰 일이 없었다니 다행입니다.”
주이안 씨는 한숨을 내쉬었다. 소예리 헌터도 혀를 찼다.
“올해 운 다 썼네.”
올해 것만 썼겠습니까? 난 고개를 거듭 끄덕여 주었다.
‘내가 그랬잖아. 기회가 오면 너보다 먼저 죽겠다고.’
난 손 치우라는 듯 쳐다보는 신재헌을 꾹꾹 눌러주며 생각에 잠겼다.
C급 때부터 그가 입에 붙이고 다녔던 말이지만 정말 그럴 줄은 몰랐다.
화도 나고 안쓰럽기도 하고.
안 그래도 된다고 말하고는 싶은데, C급 때부터 그가 쌓아온 죄책감을 알기에 나는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집중치료(SS) 스킬 준비도 : 33%]
그 사이 주이안 씨의 스킬 준비도는 꾸준히 올라갔다.
난 분위기를 환기할 겸 물었다.
“근데 아까 학생부장 따돌리는 법은 왜 물어본 거예요?”
“뭘 따돌려요?”
신재헌은 처음 듣는다는 듯 의아한 얼굴이었다.
“신재헌 헌터님 수학선생님이랑 싸울 때 채팅 오더라고요.”
내 말에 신재헌이 의아한 얼굴로 시야를 다른 곳에 고정했다.
뒤늦게 헌터 채팅 밀린 걸 읽어보는 게 분명했다.
“아, 그거!”
그 사이 소예리 헌터가 외쳤다.
“학생부장 선생님이 너무 쫓아와서 따돌리려고 했던 건데, 잘 해결됐어요.”
그 말인즉슨 SS+급 보스 몬스터 앞에서 어떻게든 튀었다는 뜻?
“어떻게 따돌렸어요?”
그게 되나? 그 좁은 학교 던전에서? 학교 나갔으면 페널티 먹었을 텐데?
내 말에 소예리 헌터가 주이안 씨를 슬그머니 돌아보았다. 그러고는 나긋하게 말했다.
“―논리력으로?”
“?”
논리력? 주이안 씨가 논리력이 좀 뛰어나긴 하지?
그런데 눈이 마주친 주이안 씨의 시선이 포르르 아래로 내려가 버렸다.
마치 내가 주이안 씨 너튜브 ASMR 채널을 틀어줬을 때처럼, 귀까지 새빨개져서.
[집중치료(SS) 스킬 준비도 : 27%]
덩달아 집중치료 준비도도 내려가기 시작했다. 주이안 씨가 집중하지 못하고 있다는 증거였다.
“어어, 집중!”
소예리 헌터가 깔깔 웃으면서 그의 머리 위를 가리켰다.
“아.”
결국 주이안 씨는 곤란한 얼굴로 다시 스킬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일단 이거부터 볼까요?”
그리고 실실 웃던 소예리 헌터가 눈에 띄게 이야기 주제를 돌려버렸다.
뭔데? 뭐냐고?
내가 눈썹을 치켜올렸을 때였다.
소예리 헌터는 다른 이야기를 못 하게 하려는 셈인지 치사하게도 멸망계시록을 불쑥 꺼냈다.
이렇게 된 이상 주이안 씨가 왜 부끄러워하는지는 나중에 캐내야겠네.
“신재헌 헌터님이랑 주이안 헌터님은 치료하면서 봐요.”
우리의 시선이 소예리 헌터에게로 향했다.
거대한 책을 편 소예리 헌터는 이미 내용을 봤는지, 우리에게만 보이게 책을 활짝 펼쳐 주었다.
“오…….”
책은 저번에 봤을 때와 다른 페이지가 펼쳐져 있었다.
그런데 글자가 저번처럼 깨져 있지는 않았다. 선명하게 채워진 글자가 보였다.
“‘이계인들은 이계의 지식으로 게이트를 잠재우려 한다.’”
신재헌이 그 문장을 읽어보았다.
“이계인은 우리 말하는 거겠죠?”
딴 세계에서 온 사람이니까?
내가 나를 가리키며 묻자 소예리 헌터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도요.”
“이거 혹시 저번에 봤던 글자들도 그대로 나왔어요?”
저번에 깨져 나왔던 글자들도?
내 질문에 소예리 헌터는 말없이 페이지를 앞으로 넘겼다.
“오…….”
우리 셋의 시선이 책으로 모였다.
[어느 날 이계인들이 들어와 우리 사이에 섞인다. 그들은 이계의 능력을 바탕으로 대항하려 하지만, 괴물들이 그들의 앞을 가로막는다.
그리고 이내 그것들이 세상에 강림하여 그들이 오는 곳을 게이트라 이름하고…….]
“게이트 뜨는 게 멸망계시록에 나와 있었네?”
게이트로 한바탕 하고 나서 읽으니 괘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어날 일을 미리 알려주는 거네요.”
신재헌이 간단히 답을 정리했다. 하지만 괘씸함이 가시는 건 아니었다.
“아니, 그럼 좀 일찍 알려주지 그랬냐?”
“그러게요.”
주이안 씨도 눈을 가늘게 떴다.
그의 머리 위 집중치료는 느리지만 꾸준히 올라가고 있었다.
“그땐 몬스터를 많이 안 잡았어서 그런가?”
우리가 쑥덕거리는 사이 소예리 헌터가 다시 페이지를 넘겼다.
아까 봤던 부분의 아래쪽 글자가 보였다.
[하지만 인간의 적은 또 다른 인간. 다른 인간 세력이 나타나 그들의 앞을 가로막는다.]
“가로막아?”
나랑 신재헌이 동시에 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