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 던전의 S급 시한부 영애 (63)화 (63/218)

63화

신재헌이 살짝 고개를 저었다.

[그럼 왜 그렇게 봐]

그 밑에 다시 글씨를 쓰자 신재헌은 천천히 눈을 감았다 떴다.

그는 날 돌아보았다가, 내 필통을 뒤져 샤프를 하나 더 꺼냈다.

샤프 끝을 톡톡 누르며 고민하던 그가 고민한 시간에 비해 영 허접한 답을 내놓았다.

[고마워서]

정말? 난 그를 흘끗 보았다.

할 말 많아 보이는데? 하려는 말이 그게 아닌 것 같은데?

“…….”

난 할 말 해보라는 듯 턱짓했다.

하지만 신재헌은 고개를 저었다.

―스윽.

그러더니 별안간 내 노트를 가져가 버렸다.

―슥, 스슥.

그러더니 샤프로 공책에 낙서를 하기 시작했다.

“?”

창문을 흘끗흘끗 보면서.

낙서처럼 시작된 그림이 순식간에 번져 만들어낸 것은 우리의 모습이었다.

나부터 신재헌, 그리고 앞자리의 주이안 씨와 소예리 헌터까지.

가장 앞에는 창문에 비친 신재헌의 모습이었다.

‘오.’

그림 잘 그리는 줄은 알았지만 이렇게 잘 그릴 줄은 몰랐다.

고등학교 때보다 더 잘 그리는 것 같네. 연습할 틈이 있었나?

수십 분. 낙서가 점점 무게를 더해가는 사이 시스템창이 떠올랐다.

[곧 점심시간이 시작됩니다.]

4교시가 끝 아니었어? 내가 눈썹을 꿈틀거릴 때였다.

그림을 다 그린 신재헌이 그림 위에 불쑥 필담을 남겼다.

[약속은 꼭 지킬게]

“약속?”

나도 모르게 되물었다. 앞의 두 사람과 주변 학생들이 돌아볼 정도로 큰 목소리였다.

하지만 다행히 체육선생님은 어느새 꿈나라를 헤매고 있었다.

난 의아한 얼굴의 주이안 씨와 소예리 헌터에게 손을 내저어 보였다.

그러고는 신재헌에게 입만 벙긋거려 다시 물었다.

‘약속?’

신재헌은 내 말에 가볍게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약속했잖아. 기회가 오면, 너보다 먼저 죽겠다고.’

그가 했던 말이 불쑥 떠오르는 건 기분 탓은 아닐 것이다.

설마 그거?

죽을 생각 하면 뒈지는 수가 있다! 내가 주먹을 꽉 쥐어 보이자 신재헌이 소리 없이 웃었다.

‘드리자.’

그러더니 공책을 들어 주이안 헌터를 가리켰다.

‘?’

그는 제 서랍에서 아무 책이나 꺼내더니 거기에 글씨를 써냈다.

[외로움 많이 타시잖아]

하긴, 주이안 씨가 외로움을 좀 타긴 하지.

게이트 공략을 끝내고 개인 시간을 가질 때도 주이안 씨는 나가는 일이 거의 없었다.

그의 방에는 우리 넷이 같이 찍은 사진이 항상 반짝반짝한 액자에 담겨 있었고.

[주이안 씨 주려고 그린 거?]

내 글씨에 신재헌이 성의 없이 답을 써냈다.

[ㅇㅇ]

죽다 살아난 놈이 할 말은 없고?

이게 맞고 싶어서!

―탁!

그의 책을 덮은 내가 책 모서리로 그의 정수리를 찍으려고 했다.

신재헌이 재빨리 몸을 피하면서 두 손을 들어 보였다.

‘항복.’

입을 벙긋거리는 것도 잊지 않았다.

아오, 이놈을 확!

난 신재헌을 째려보다가 노트를 인벤토리에 집어넣어 보았다.

아, 넣기 전에 마지막 필담한 부분은 찢어 버리고 넣었다. 외로움 타시지 않느냐는 이야기를 본인이 보는 건 좀 기분이 그럴 테니까.

이거 근데 가지고 나갈 수 있는 물건인가?

[노트(B)]

다행히도 가지고 나갈 수 없는 물건은 아닌지 인벤토리에 무사히 들어갔다.

그때 다시 시스템창이 올라왔다.

[점심시간까지 1분 남았습니다.]

점심시간은 그냥 밥 먹으면 되는 건가? 가끔 RP던전 끝에 있다는 보너스 보상 타임이 이런 거?

근데 우리 학교 급식이 맛있던가?

시스템창을 보면서 생각했을 때였다.

어림도 없다는 듯 시스템창이 새빨갛게 변했다.

[점심시간 : 가장 빨리 식당에 도착하십시오.]

[헌터팀 합계 순위가 12위 아래로 내려갈 경우 점심을 먹을 수 없어 사망합니다.]

예? 뭐요?

[곧 점심시간이 시작됩니다.]

시스템창 사이로 학생들이 어느새 한쪽 다리를 책상 바깥으로 내밀고 있는 게 보였다.

잠깐, 저거 달릴 준비 하는 거였냐!

[3]

[2]

[1]

―♬♪♩~

우당탕! 종소리와 함께 별안간 학생들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점심시간 레이스가 시작됩니다.]

[레이스 중에는 고등학생 평균치로 신체 능력이 제한됩니다.]

우리의 시선이 마주쳤다.

우리 넷이 나란히 4등까지 먹어도 합쳐서 1+2+3+4=10등이잖아!

장난해!

하지만 따질 틈은 없었다. 옆으로 시스템창이 바로 뜨는 게 보였다.

[점심시간 레이스 RANKING

- 1st 김천재

- 2nd 이수재

- 3rd 박범재

……

순위 없음 : 신유리(신유리)]

일단 가만히 있으면 X된다는 건 알겠다!

“일단 뛰죠!”

아무리 주이안 씨의 힐 스킬이 있었다고 해도 나와 신재헌은 중상 상태였다.

이 상태로도 뛰어야 해? 굳이 점심을 위해 그래야겠어?

……라고 묻기엔 너무 급한 상황이었다.

“일단 뛰죠!”

난 통증을 애써 삼키며 바로 책상에서 뛰어나갔다. 내 뒤로 세 사람이 우르르 뛰어오는 게 느껴졌다.

[소예리(예리언님)>>> 뭐야 이게 뭔데? 급식 반으로 안 가져다줘?]

고등학교에 다닌 지 20년이 지난 소예리 헌터가 정신을 못 차리는 와중 주이안 씨의 채팅이 올라왔다.

[주이안(주이안씨)>>> 모르겠습니다]

[주이안(주이안씨)>>> 그런데 뛸 수 있겠어요?]

[신유리(신유리)>>> 뛸만하긴 해요]

오래 뛰었다간 골병 들 것 같아서 그렇지!

내가 인상을 찌푸리는 사이 신재헌의 채팅이 올라왔다.

[신재헌(신재헌놈)>>> 아니 점심시간에 뛰는 거 십 년만에 처음인데]

상황 파악이 빠르게 끝났는지 그의 모습이 곧 내 앞으로 튀어나갔다. 나랑 매번 식당에 가장 먼저 도착하던 놈다웠다.

저놈은 아프지도 않나 봐!

[점심시간 레이스 RANKING

- 1st 김천재

- 2nd 이수재

- 3rd 신재헌 (NEW!)

- 4th 박범재

……

- 7th 신유리 (NEW!)]

점심시간에 뛰어본 적 없는 주이안 씨도 일단 식당에 늦게 도착하면 뭐 된다는 것쯤은 알아차린 듯했다.

그의 달리기가 점점 빨라졌다.

[소예리(예리언님)>>> 아니 식당이 어딘데???]

와중에 소예리 헌터는 길을 헤매기 시작했다.

하긴 나와 신재헌이 다닌 고등학교였으니 길을 헤매는 건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그니까 여기가…….”

우리가 있던 곳은 5층이었다.

식당은 2층.

난 고등학교의 구조를 대충 떠올렸다. 10년이나 지났는데도 고등학교 지도는 선명하게 떠올랐다.

학교 다닐 때 식당 뛰어가려고 시뮬레이션을 너무 열심히 돌렸나?

아무튼 지금은 좋은 일이었다.

“이쪽 중앙계단으로 쭉 내려가면―”

그렇게 말하려던 난 움찔했다.

잠깐, 3~4층은 신재헌, 아니, 수학선생님이 반박살을 내놨을 텐데?

난 급히 몸을 돌렸다.

[신유리(신유리)>>> 이쪽으로! 창문으로 뛰어요!]

[주이안(주이안씨)>>> ?]

[소예리(예리언님)>>> ?]

[신재헌(신재헌놈)>>> 아]

아래층이 박살 난 걸 알 리가 없는 두 헌터만 의아해하는 사이, 나와 신재헌이 몸을 확 틀었다.

[주이안(주이안씨)>>> 창문은 왜…….]

애초에 점심시간에 뛰어본 적이 없는지 주이안 씨는 매우 혼란스러워 보였다.

하지만 소예리 헌터는 좀 뛰어봤는지 반응이 달랐다.

[소예리(예리언님)>>> 밑에 길 막히는구나!]

[신유리(신유리)>>> 네 거기다가 수학선생님이 거길 박살을 내놔서 뛰어가려면 오래걸려요]

그 사이 우리 앞으론 복도 끝 창문이 가까워지고 있었다.

[신재헌(신재헌놈)>>> 그냥 2층으로 뛰어들어!]

[주이안(주이안씨)>>> 아니 급식을 이렇게까지]

[신유리(신유리)>>> 안 먹으면 죽는다고요!]

주이안 씨는 우리야 목이 달랑달랑하니 뛰는 게 당연하지만 다른 학생들까지 목숨 걸고 뛰는 게 이해가 안 되는 모양이었다.

밥심에 학교 다니는 거라고요!

[WARNING! : 팀 전체가 순위권 밖입니다!]

우리가 제대로 된 길을 이탈하자 곧 시스템창이 떴다. 순위도 순식간에 바뀌었다.

[점심시간 레이스 RANKING

- 1st 김천재

- 2nd 이수재

- 3rd 박범재

……

- 147th 신유리

- 148th 신재헌

- 149th 소예리

- 150th 주이안]

천재수재범재가 나란히 상위권을 차지한 가운데 난 창문을 벌컥 열어젖혔다.

―쾅!

[헌터 소예리(S)가 ‘비행(A)’ 스킬 효과를 부여합니다.]

그러자마자 우리 넷의 몸이 두둥실 하늘로 떠올랐다.

능력치 제한이라더니 스킬 제한은 없는 모양이었다.

창밖으로 빠져나온 우리는 소예리 헌터의 움직임에 따라 곧바로 2층 창문으로 난입했다.

그러자 순위가 확 바뀌었다.

[점심시간 레이스 RANKING

- 1st 소예리

- 2nd 신유리

- 3rd 김천재

- 4th 신재헌

- 5th 이수재

- 6th 주이안

…….]

이대로면 순위 합계 1+2+4+6=13으로 순위 합계가 달려서 사망할 위기였다.

“식당은 2층 복도 끝이에요!”

내 말에 팀 전체가 앞으로 튕기듯 뛰어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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