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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던전의 S급 시한부 영애 (61)화 (61/218)

61화

[3교시 쉬는 시간이 시작됩니다.]

쉬는 시간이지만 다음 수업도 없는지 수학선생님은 여전히 날 재촉하고 있었다.

하긴, 제대로 된 학교였으면 학교가 박살 났는데 수학문제 물어본다고 교무실로 데려오진 않았겠지!

교무실은 개판이 난 바깥과는 달리 평화롭기만 했다.

[외형 변신 물약 : 00:17:57]

변신 물약 시간은 넉넉하게 남았고…….

“화장실에 10분쯤 있는다고 뭐라고 안 하겠지?”

방광염 말고 변비라고 할 걸 그랬나? 그렇게 김천재 군의 미래를 마음대로 주물럭거리려는 때였다.

[수학선생님의 의심도 : 10/100]

[‘오늘따라 천재가 왜 저러지?’]

벌써 의심하고 있냐고! 난 부리나케 화장실로 뛰어갔다.

아무래도 적당히 화장실에서 시간 끌다가 의심도가 올라가면 교무실로 복귀해야 할 듯했다.

―벌컥!

그리고 난 아무 생각 없이 여자화장실 문을 열어젖혔다.

[RP던전 페널티 위기! : 김천재의 실수]

넌 실수도 안 하고 사냐!

“오, 쏘리.”

남자 모습인 난 재빨리 여자화장실 문을 닫았다.

그러고는 남자화장실로 향했다. 못 볼 꼴을 볼 수도 있지만 어쩔 수 없었다.

내 눈에 조의를 표하며 남자화장실로 몸을 튼 순간이었다.

―탁!

“!”

누군가 내 입을 막고 그 옆의 한적한 복도로 끌고 들어갔다.

C급 힘으로 떨쳐내기엔 강한 힘이었다.

그렇다고 S급 짬을 무시하지 마라!

―탁, 탁!

끌려가는 힘을 역이용해서 놈을 엎어치려는 순간이었다.

“나야.”

익숙한 목소리가 속삭여왔다.

“!”

놀라서 뒤를 돌아보니, 머리에서 피가 흐르는 신재헌이 보였다.

“너…….”

사람이 시간 끌고 있으면 멀리로 튀어야지 뭐 하는 거야?

하려던 말은 목구멍에서 걸려 버렸다.

팔이 바르르 떨리는 게 몸 상태가 좋아 보이진 않았던 것이다.

게다가 머리에서는 얼굴 한쪽을 물들인 피가 아직도 흐르고 있었다.

[수학선생님 의심도 : 20/100]

[‘얘가 왜 이렇게 안 돌아와?’]

“이건 뭐야?”

신재헌도 같은 시스템창이 떴는지 눈살을 찌푸렸다.

“얘로 내가 변신…… 잠깐, 너 어떻게 알았어?”

새삼 내 입에서 나오는 남자애 목소리가 어색했다.

신재헌은 뚱하게 대꾸했다.

“내가 널 모를까. 바닥에 발 부비는 버릇까지 똑같던데.”

그는 어이없다는 표정이었다.

“아, 그랬나?”

그랬던가? 수학선생님이 그대로 컴퍼스 들고 머리 쪼갤까 봐 긴장해서 기억도 안 났다.

그때 신재헌이 살짝 인상을 썼다. 검을 바닥에 꽂은 그가 손을 쥐었다 펴 보았다.

움직임이 제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처럼.

“괜찮아?”

그 손 역시 피투성이였다.

아까 수학선생님 뒤에 있을 땐 자세히 못 봤는데, 생각보다 심하게 다친 것 같았다.

[신재헌(신재헌놈) - S급(딜러)

- 상태 이상 : 체력 저하, 정신력 저하, 출혈]

난 힐러가 아니었으므로 상태 이상을 풀어줄 방법은 없었다.

체력이라도 못 채워주나?

반절도 안 되는 신재헌의 잔여 체력을 보다가 신의 상점을 켜 보았다.

[신의 상점 : Lv. 2]

아이템 목록 중에 쓸모 있어 보이는 건 하나 정도였다.

[체력 회복 물약 – 100C]

설명을 보니 가관이었다.

[체력 회복 물약 : 체력을 100만큼 회복합니다.]

100% 말고 100?

이걸로 신재헌의 체력 수백만을 채우려면 물배가 터져버릴 것이 분명했다.

“좀 움직이기 힘들긴 한데 버틸 만해.”

신재헌은 담담하게 대꾸했다. 하지만 몸이 조금 떨리는 건 어김없이 내 눈에 보였다.

아무리 체력을 회복시킨다고 해도 신체에 일시적으로 가해진 데미지가 사라지는 건 아니다.

주이안 씨와 같이 있을 때부터 쌓였던 충격 때문에 움직이기 힘든 게 분명했다.

그때였다.

[수학선생님 의심도 : 30/100]

[‘아까 천재가 좀 이상했어.’]

그와 동시에 불길한 시스템창이 떴다.

[수학선생님의 의심도에 비례하여 수학선생님의 능력치가 상승합니다! (의심도 1당 1%)]

“미쳤냐!”

난 입을 떠억 벌렸다. 신재헌이 혀를 찼다.

“4교시 시작될 때까지 버틸 수 있으려나 모르겠네.”

“숨어 있으니까 괜찮지 않을까?”

난 딜러답게 행복회로를 돌려 보았다. 하지만 같은 딜러 주제에 신재헌이 회로를 박살 내 버렸다.

“여기 교무실 근처 복도잖아. 멀리 데려올 수가 없어서 일단 여기로 데려오기는 했는데…….”

여차해서 신재헌과 내가 같이 있는 걸 들키면, 수학선생님이 극대노할 것은 뻔했다.

“그냥 내가 나가서 수학문제 질문이나 할까?”

내가 자리에서 일어나려는 때였다. 신재헌이 내 머리를 부드럽게 내리눌렀다.

“가서 지식수준 뽐내지 말고 가만히 있어.”

맞는 말이긴 한데 왜 이렇게 얄밉지?

내가 눈썹을 치켜올렸다.

“어차피 수학선생님이 네가 가짜라는 것만 최대한 늦게 알아채면 되니까.”

신재헌이 그렇게 말한 순간이었다. 새빨간 시스템창이 떴다.

[!!WARNING!! : 수학선생님이 ‘김천재’ 학생과 마주쳤습니다!]

“뭐?”

“뭐야?”

우리 둘이 동시에 경악했다. 신재헌이 날 돌아보았다.

“걔 기절 안 시켰어?”

“얘 무려 쓰플급이야. 기절시키려고 했다가 곱게 물러 나왔다.”

신재헌이 내 말에 심각한 표정이 되었다.

[수학선생님 의심도 : 60/100]

[‘천재가 왜 인사만 하고 가지? 화장실 다녀오는 거 아니었나?’]

수학선생님의 의심도가 치솟기 시작했다.

[수학선생님 의심도 : 70/100]

[‘설마 아까 그놈이…… 가짜였나?’]

왜 생각이 저렇게 빨리 튀는데!

내가 눈살을 찌푸리며 뭐라고 하려는 때였다.

신재헌이 내 입을 다급히 막았다.

그와 동시에 우리가 있던 어두운 복도에 수학선생님의 목소리가 울렸다.

“천재야, 거기 있니?”

난 숨을 멈췄다. 부드러운 목소리에는 살기가 묻어 있었다.

[‘가짜 놈은 어디에 있지?’]

벌써 가짜라고 생각하고 있잖아!

수학선생님의 살기가 복도를 뒤덮기 시작했다.

지금 화장실 볼일 끝났다고 나갔다간 그대로 반으로 썰릴 것 같았다.

“천재야~?”

그리고 그 사이 수학선생님의 목소리는 점점 가까워지기 시작했다.

“…….”

나와 신재헌은 숨을 죽였다.

신재헌이 나를 숨긴 곳은 교무실이 있는 층의 버려진 동아리방 근처였다.

“이거 튈 데도 없고 걸리면 죽겠는데.”

내가 작게 속삭였다. 신재헌이 고개를 끄덕였다.

[5분 후 4교시 장소로 자동이동됩니다.]

[적정장소 외 자동이동 페널티 : 능력치 -50%(1시간)]

그때 동아줄 같은 시스템창이 떴다.

역시 4교시 때에는 자동이동되는 거였다!

5분만 버티면 된다!

문제는.

“천재야? 어디 있어, 응?”

점점 가까워지는 수학선생님의 목소리와.

[수학선생님 의심도 : 85/100]

[‘아까 덤비던 놈이 수작을 부린 건가?’]

치솟는 수학선생님의 의심도였다.

아니, 선생님 뇌가 너무 말랑한 거 아니냐?

사람이 딴 사람 모습으로 변신할 가능성이 있다는 걸 그렇게 빠르게 납득하면 곤란하지 않을까요?

게다가 이 RP던전은 게이트가 터지기 전의 고등학교 배경이었다.

헌터네, 각성자네 하는 초인들이 나타나기 전의 세계라는 말이다.

변신 스킬도 없이 딴 사람 모습으로 변장하는 게 쉬운 일이 아니거든요?

―또각.

그러는 사이 수학선생님의 구둣발소리가 복도를 울렸다.

동아리방 전용 복도에 선생님이 들어선 것이다.

“김천재~”

[수학선생님 의심도 : 90/100]

저게 100이 되면 무슨 일이 생길지 몰랐다.

이미 선생님의 상태는 그냥 수학선생님이 아니라 ‘분노한 수학선생님(SS)’이었다.

“내가 나가서 5분은 끌어 볼게.”

그때 신재헌이 아주 작게 말했다.

5분? 의심도 때문에 능력치가 90%나 증가한 SS급 보스 몬스터한테 5분?

“잘못 맞으면 즉사야.”

버프도 없이 맞았다간 좋은 꼴은 못 날 게 분명했다. 내가 빠르게 속삭이자 신재헌이 손을 펴 보였다.

“좋아. 그럼 여기 같이 있다 죽자. 한날한시 한 방에 죽는 것도 헌터계에선 로맨틱한 엔딩―”

“다물어.”

“넵.”

난 신재헌의 나불거리는 입을 막아 버렸다.

어떻게든 이 상황을 타개할 방법을 찾아야 했다.

“역시 그놈이었나……!”

그러는 사이 복도에 들어온 수학선생님이 흑화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수학선생님이 흥분하기 시작합니다!]

하지 마!

[수학선생님 의심도 : 95/100]

[‘그놈들이 내 아끼는 제자를!’]

아니, 그 제자 멀쩡하다고! 밖에서 봤잖아!

그때 수학선생님의 노성이 복도를 울렸다.

“이놈들!”

결국 빡친 수학선생님이 다시 거대한 컴퍼스를 꺼내들었다.

―콰드드드득!

날이 벽을 파고들면서 파편이 튀었다.

“!”

신재헌이 빠르게 몸으로 나를 감쌌다.

[신재헌(신재헌놈) - S급(딜러)

- 상태 이상 : 체력 저하, 정신력 저하, 출혈, 골절(늑골, 왼팔)]

SS급 능력치로 쳐낸 파편이라고 파편 하나하나가 주는 데미지가 상당했다.

신재헌의 체력 게이지 바가 바닥에 가까워지는 게 보였다.

[3분 후 4교시 수업 장소로 자동이동됩니다(능력치 -50%).]

무슨 페널티를 받아도 좋으니 빨리 이동시켜 줘!

“감히 나를 속여!”

[수학선생님 의심도 : 99/100]

수학선생님의 의심도는 이제 100 직전이었다.

“여기 숨어 있는 거지! 다 안다, 이놈들!”

[수학선생님의 의심도가 MAX가 되었습니다!]

[분노한 수학선생님(SS)이 ‘오답노트(SS+)’ 스킬을 준비 중입니다(16%)…….]

[4교시 수업 장소 이동 : 00:02:01]

급박하게 뜨는 시스템창에 나와 신재헌의 시선이 마주쳤다.

그냥 스킬도 아니고 차지스킬이라고?

무기를 휘두르기만 해도 이 근처를 박살 내는 보스 몬스터가 힘을 모아서 공격하면?

그냥 우리 둘 다 피떡으로 발견될 것이다.

“당장 나오지 못해!”

[수학선생님이 포효합니다!]

[오답노트(SS+) 준비도 : 49%]

차지 속도는 무시무시하게 빠르게 올라갔다.

결국 신재헌이 나를 감싼 팔을 풀었다.

그가 검을 다잡는 게 보였다.

“나가게?”

난 아주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미쳤어? 돌았어?

100% 능력치 증가된 SS급 몬스터 차지 어택을 버프도 없이 막겠다고?

“둘 다 죽을 순 없잖아.”

신재헌이 짧게 답했다.

“차라리 내가 나가서 시간 끌게.”

그래도 얼굴이 귀한 제자 얼굴인데 바로 뭉개버리진 않을걸?

내가 몸을 일으켰을 때였다.

신재헌이 다시 내 머리를 눌러 앉혀 버렸다.

쉿.

그렇게 말하는 것처럼 그가 검지를 들어 제 입에 올려 보였다.

[오답노트(SS+) 준비도 : 91%]

[4교시 수업 장소 이동 : 00:00:09]

이대로면 수업 장소 이동 전에 오답노트가 터질 것이다. 내가 다시 자리에서 일어나려는 때였다.

“내가 그랬잖아.”

또렷한 목소리가 울렸다.

[오답노트(SS+) 준비도 : 98%]

[4교시 수업 장소 이동 : 00:00:06]

그는 더 이상 인기척을 감출 생각이 없다는 듯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만일 기회가 오면, 너 대신 죽겠다고.”

내가 눈을 크게 뜬 순간이었다.

―스릉!

바닥에서 말레티아의 검을 뽑은 신재헌이 복도로 뛰어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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