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 던전의 S급 시한부 영애 (60)화 (60/218)

60화

“우리…… 팀?”

신재헌과 신유리가 서로를 마주 보았다.

신유리는 잠시 당황한 듯하더니 S급 힐러가 길드에 들어가면 받을 수 있는 대우들을 늘어놓았다.

“나랑은 사정이 다르다니까요. 어디든 가면 왕이에요, 왕. 힐러는 애초에 각성자도 별로 없잖아요.”

요컨대 좋은 조건 받고 다른 데 가는 게 그의 미래에 좋을 거라는 소리였다.

“내 헌터팀은 해줄 수 있는 것도 없어요.”

“그래도 괜찮습니다.”

하지만 그는 그때 이미 마음을 정한 상태였다.

아무것도 모르는 자신을 속이려 몰려든 다른 사람들보다, 신유리가 훨씬 신뢰가 갔으므로.

그리고 그 선택을 그는 단 한 번도 후회한 적이 없었다.

며칠 후, 신유리는 주이안과 함께 기자들 앞에 섰다.

그리고 그녀는 그와는 달리 제가 하고 싶은 말을 기자들 앞에서 시원하게 터뜨렸다.

“주이안 헌터는 내 팀에 들어올 거예요.”

카메라 셔터가 터지고 사람들이 질문을 하든 말든 그녀는 제 할 말을 했다.

“그러니까 앞으로 주이안 헌터 앞으로 초청장이고 뭐고 보내지 마세요.”

그 말에 수많은 길드의 인사팀이 반발했다.

“초청장을 보내는 건 길드의 자유입니다! 소속팀이나 길드가 있다고 보내는 것 자체를 제한할 수는―”

그 말을 신유리는 간단하게 끊어 버렸다.

“애초에 헌터 각성 처음 한 사람한테 이렇게 들이댔다가 S급이랑 감정 상하면 곤란해지는 게 누군지는 아시죠?”

그 말에 길드 인사팀들은 입을 벙긋거리다가 물러가 버렸다.

***

신유리.

그녀는 그가 처음 헌터가 됐을 때 그를 지켜준 사람이었다.

그리고 그 후 주이안이 헌터계에 익숙해질 때까지 그녀의 팀에서 보호해주었다.

그렇게 몇 개월.

익숙하지 않았을 뿐, 습득이 느리진 않은 주이안은 헌터계가 돌아가는 상황을 빠르게 파악했다.

국내에서 유일한 S급 힐러인 자신이 어떤 대우를 받을 수 있는지도.

그녀의 말대로 그는 어딜 가든 왕으로 대접받을 터였다.

그리고 그가 그 사실을 잘 알게 되었을 즈음.

‘자, 이 정도면 하산해도 돼요!’

신유리 헌터는 제 팀에서 그를 놓아주었다.

아니, 놓아주려고 했다.

그런 그녀에게 주이안은 거듭 말했다.

‘하산 안 합니다. 팀에 남고 싶어요.’

‘엥?’

그 당황하던 신유리의 얼굴을, 주이안은 아마 평생 잊을 수가 없을 것이다.

‘힐러면 부르는 게 조건이라니까요?’

당황하는 신유리에게 주이안은 담담하게 답했다.

‘그러니 남겠습니다.’

다른 길드에 가는 것보다 이곳이 더 나아서.

당신 옆이 좋아서.

그 눈부시게 빛나던, 당당한 신유리의 모습을 떠올린 주이안이 옅게 웃었다.

‘애초에 헌터 각성 처음 한 사람한테 이렇게 들이댔다가 S급이랑 감정 상하면 곤란해지는 게 누군지는 아시죠?’

“학교 이렇게 때려 부수면 입장 곤란해지는 게 누구인지는 알고 계시겠죠?”

그녀가 했던 말과 조금 비슷하지만 다른 말. 그렇지만 그때 그녀가 지었던 표정은 선명하게 기억났다.

그녀는 당당한 표정으로, 주이안 자신을 쫓아온 기자와 수많은 길드 인사팀원들에게 말하고 있었다.

“크흠.”

당황하는 학생부장에게, 그가 말했다. 그때의 그녀처럼 자신 있는 표정으로.

“학생인 저희야 어리다는 이유로 여러 가지 책임을 피할 수 있겠지만, 학생부장 선생님께서는 아닐 텐데.”

그가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눈감아드릴까요, 아니면…….”

그가 손을 펴 보였다.

학생부장 선생님이 슬그머니 뒷걸음질 쳤다.

***

―쾅!

신재헌이 눈을 가늘게 떴다.

[잔여체력이 40% 이하입니다.]

아무리 공격을 피한다고 해도 SS급 보스몹 파워를 완전히 피할 수는 없었다. 덕분에 체력은 야금야금 깎여나가고 있었다.

게다가.

체력도 체력이지만 정신적인 문제도 있었다.

그는 어쨌든 몬스터가 아니라 인간이었으니까. 요컨대 힘이 점점 빠진다는 소리였다.

반면 수학선생님은 몸에 무한동력기관이라도 있는지 날뛸수록 움직임이 빨라졌다.

“거기 안 서!”

얼굴이 시뻘게지도록 화를 내는 걸 보면 엄청난 다혈질이 분명했다.

우리 학교 수학선생님이 원래 이랬던가?

―쾅!

내리쳐지는 컴퍼스를 보며 신재헌은 눈썹을 치켜올렸다.

들어본 적 있는 목소리인 걸 보면 확실히 물리선생님과는 달리 기억에 기반해 만들어진 보스 몬스터가 분명했다.

목소리만 익숙한 이유는 하나였다.

수학시간에 잤다.

“이노옴!”

화내는 목소리를 들으니 더 익숙했다.

아무래도 수학시간에 자다가 혼나는 게 일이라서 이런 모양인데.

수학선생님이 뭘 좋아했더라?

만점 시험지 말고……. 필사적으로 그가 머리를 굴릴 때였다.

“선생님.”

어디선가 평온한 남자아이의 목소리가 들렸다.

“?”

그 목소리에 날뛰던 수학선생님의 움직임이 우뚝 굳었다.

[분노한 수학선생님(SS)이 온화한 미소를 짓습니다!]

갑자기? 신재헌이 멈칫했다.

지금 칠까?

[분노한 수학선생님(SS) 잔여 체력 : 38%]

하지만 지금 쳐서 한 방에 골로 보낼 순 없을 것 같았다. 버프가 부족했다.

[분노한 수학선생님(SS) 분노 게이지 : 80/100]

그때 수학선생님의 분노 게이지가 뚝 떨어지는 게 보였다.

뭐야?

그 순간 뒤를 돌아본 수학선생님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천재야, 여기까지 무슨 일이니? 너무 시끄러웠어?”

그야 건물을 다 때려 부쉈으니까 시끄러운 정도가 아니지 않았을까요?

―스릉!

신재헌은 상황을 지켜보기로 하고 대검을 바닥에 내리꽂았다.

[기분 전환(A) 사용합니다.]

[체력 회복 속도 : 200% 증가, 자세 변경 시 즉시 해제됩니다.]

“아뇨, 그건 아니고요. 혹시 바쁘세요?”

그 사이 천재인지 뭔지 하는 놈이 수학선생님과 대화하기 시작했다.

“아니, 전혀.”

그렇게 말하는 수학선생님은 어느새 괴물 같은 컴퍼스를 집어넣은 상태였다.

[수학선생님 분노 게이지 : 60/100]

그 사이 수학선생님의 분노 게이지는 실시간으로 줄어들고 있었다.

“안 바쁘시면 이번 모의 문제 중에 궁금한 게 있어서요.”

“아, 그래?”

수학선생님은 금세 천재에게 다가갔다. 그런데.

“?”

신재헌은 눈썹을 치켜올렸다.

수학선생님과 대화를 나누는 학생의 모습이 어딘가 익숙했던 것이다.

정확히는 자세가.

……여기서 헌터 채팅 하면 수학선생님이 들을 수도 있는데.

어차피 디버프 때문에 사용도 못 하지만.

그는 천재라는 학생의 발 쪽을 내려다보았다.

익숙한 움직임이었다.

―슥, 슥.

오른발 앞쪽을 바닥에 비비며 땅을 다지는 모습.

그건 그가 아는 누군가가 긴장하거나, 보스몹 앞으로 튀어나가기 전에 하는 짓이었다.

설마.

그는 천재의 머리 위를 확인했지만 시스템창에서 말해주는 정보는 없었다.

“늘 공부하고자 하는 사람은 성공하기 마련이지!”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천재의 말에 수학선생님은 매우 만족했다.

[수학선생님 분노 게이지 : 30/100]

“그런데 이번 모의는 만점인 걸로 아는데, 김천재 군?”

이름이 김천재였냐? 설마 공부 잘하니까 김천재야?

심각한 네이밍센스에 신재헌이 눈살을 찌푸렸을 때였다.

잠깐 멈칫한 김천재가 머리를 긁적였다.

“아, 그거요. 사실 22번 문제를 좀 이상하게 푼 것 같거든요.”

“아, 그래? 교무실 가서 자세히 볼까?”

“넵.”

수학선생님은 마치 신재헌의 존재를 잊은 것처럼 등을 돌려 김천재에게 다가갔다.

“…….”

신재헌은 눈을 가늘게 뜨고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그러면서 파티창을 확인했다.

[신유리(신유리) - C급(딜러)

- 버프 : 시너지(A) 물리선생님의 기쁨(S)]

별다른 버프는 없어 보이는데? 그가 눈썹을 재차 치켜올릴 때였다.

김천재의 걸음걸이를 눈여겨본 그는 제 눈을 믿을 수가 없었다. 김천재의 걸음걸이 역시도 그가 아는 사람을 너무나도 닮아 있었다.

신유리의 그, 가벼운 걸음을.

신재헌이 입을 떠억 벌렸다.

설마, 정말 신유리?

***

내 계획은 아주 간단했다.

4교시 시작되기 전까지만 시간 끌면 되지 않을까?

3교시가 끝나고 쉬는 시간 10분만 버티면 4교시 교실로는 자동 이동될 가능성이 컸다.

그럼 수학선생님도 따돌릴 수 있는 거다.

설마 뭐, 시험 보는 도중에 컴퍼스 들고 쳐들어와서 방해하겠어?

그런데 딜러치고 완벽한 내 계획엔 한 가지 사소한 문제가 있었다.

“자, 함수를 한번 그려볼까?”

수학선생님은 정말 친절했다.

아까 신재헌을 통째로 박살 낼 것처럼 컴퍼스를 휘두르던 사람과 동일인이라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하지만 내 뇌는 친절하지 못했다.

아니, 가만히 있는 그래프 따라 그리기도 못하는데 맨땅에 성을 쌓으라고요?

내 앞에 놓인 수학 22번 문제는 정말…… 외계어였다.

SS+급 학생 정도 되려면 이런 문제를 풀어야 한단 말인가?

난 자신이 수학문제라고 주장하는 영어문장을 보면서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김천재 군?”

그때 수학선생님이 다시 나를 불렀다.

“아, 네.”

“그래프 한번 그려보자.”

그러면서 빈 종이를 하나 주었다.

이게 뭔데? 어떻게 그리는 건데?

한 십 년 전 잠결에나 봤을 것 같은 y= 어쩌고 하는 문장들이 내 머릿속을 어지럽혔다.

“으음.”

난 펜을 들고 있다가 고민했다.

그래프 잘못 그렸다간 바로 분노한 수학선생님으로 돌변할 게 분명했다.

그 앞에 C급 몸으로 서 있기?

이건 자살행위나 다름없었다.

일단 신재헌이 반으로 조각나는 것보단 시간을 끄는 게 나을 것 같아서 오긴 했는데, 이것도 녹록지 않았다.

―탁.

결국 난 펜을 내려놓았다.

“잠시 화장실 좀 다녀와도 될까요?”

설마 화장실도 못 가게 하겠어?

하지만 내 말에 수학선생님은 멈칫했다.

“응?”

뭔가 이상하다는 얼굴이었다.

“평소엔 궁금한 건 다 듣고 화장실 가더니, 김천재가 웬일이야?”

그런 애였냐!

하긴, 이 상황에 자습실에서 무려 머리 위에 물컵을 올려놓고 자습하는 것만 봐도 심상치 않은 놈이기는 했다.

하지만 난 아무 말이나 털어댔다.

“그렇게 참았더니 병원에서 방광염 진단을 받아 가지고…….”

“저런.”

수학선생님의 표정이 안타까움으로 물들었다.

“얼른 다녀오렴.”

다행히 제자를 아끼는 수학선생님은 나를 보내주었다.

4교시까지 시간 얼마나 남았지?

그렇게 생각한 순간이었다.

―♬♪♩~

종소리가 울렸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