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9화
“원장님?”
그 말에 사람들이 웅성거렸다. 주이안은 입을 일자로 굳게 다물었다.
그는 헌터협회에서 원장의 ‘ㅇ’자도 꺼낸 적이 없었다.
누군가 뉴스에 나온 얼굴을 보고 그의 출신에 대해 입을 연 것이 분명했다.
맞은편에 보이는 거대한 스크린에 제 모습이 비치는 것이 그제야 보였다.
[(특보) 국내 최초 S급 힐러 주이안]
그렇게 왼쪽 위에 쓰여 있는 제목과 함께, 실시간으로 송출되고 있는 제 모습과 그 아래의 헤드라인.
[어릴 적 사고로 가족 잃어…… 순식간에 인생역전]
[고아원 원장 “이안이는 이렇게 될 줄 알았다”]
[원장 “주이안 헌터의 헌터 계약건은 나와 논의해야”]
주이안이 눈을 가늘게 떴다.
그렇게 말하는 원장은 주이안이 독립하기 직전까지 의견 충돌이 심했던 사람이니까.
그는 아픈 아이들이 있어도 ‘두면 낫는다’고 방치하면서 정부의 예산을 빼돌리는 전형적인 악덕 원장이었다.
“일단 원장님과는 관계가 없습니다. 제 계약은 제게만 권한이 있습니다.”
주이안이 입을 열었다. 그 말에 카메라 셔터가 파파팍 터졌다.
[주이안 “원장 이야기는 사실무근”]
헤드라인이 금세 바뀌었다.
“정말 고아였어?”
“이야…….”
그러면서 S급이 되어 지나치게 좋아진 귀에, 뒷이야기들도 들렸다. 그가 눈을 가늘게 떴을 때였다.
“주이안!”
모르는 목소리가 불쑥 들렸다.
돌아보니 전혀 모르는 여자가 손을 흔들고 있었다. 세상 반갑다는 얼굴로.
“거기서 뭐 해, 가만히 서서!”
여자는 가볍게 도약해 헌터협회 주변 동상을 밟고 뛰어오르더니, 그의 옆에 내려섰다.
“신유리?”
“신유리다!”
“신유리 헌터와 아는 사이십니까!”
“반말을 하시는데 동창이십니까!”
“두 분 출신 고등학교는 다르다고 들었는데…….”
“두 살 차이 아냐?”
기자들의 카메라 셔터가 더 빠르게 터지면서 주변이 떠들썩해졌다.
신유리.
주이안은 살짝 입을 벌렸다. 얼굴은 몰라도 이름은 아는 사람이었다.
국내 최초 S급 헌터. 게이트가 열리자마자 가장 먼저 게이트 사태에 적응하여 수많은 사람을 살린, 한국의 영웅.
조금 전 헌터협회에서 들은 헌터들의 정보에도 신유리에 관한 이야기가 있었다.
‘……S급 딜러로는 먼저 신유리 헌터님이 있습니다. 이분은 무소속이신데 그 이유가 좀.’
‘친구랑 같이 길드에 소속하고 싶으시다는데, 그 친구가 C급이라 계약 조건이 하향된다는 말에 소속 길드를 정하지 않고 계십니다.’
‘저희 헌터협회에서도 꾸준히 접촉했지만 C급을 고용하는 건 저희 입장에서도 손해가 커서…….’
‘아직 어리신 거죠.’
그렇게 말했던 헌터협회 사람은 기분이 별로 좋아 보이지 않았다.
쾌활해 보이는 눈앞의 신유리 헌터는 뒷말을 들을 만한 성격으로 보이진 않았다.
아니, 그건 둘째 치고.
“사람을 잘―”
―못 보신 것 같은데요? 하려던 주이안의 말은 신유리가 막아 버렸다.
“아프다더니 헌터협회는 왜 왔어?”
그러더니 커다란 화면 쪽을 보다가 눈을 크게 떴다.
“뭐야, 저 S급 힐러가…… 대박!”
그러더니 불쑥 어깨동무를 했다.
“나랑 같이 던전 가면 되겠다!”
누가 보면 10년지기 친구인 줄 알 것 같았다. 주이안이 멈칫했을 때였다.
“두 헌터님 아는 사이십니까!”
“어떻게 아는 사이십니까!”
“그럼 주이안 헌터도 헌터계에 인맥이 있으신 겁니까!”
기자들이 시끄러워질 때였다. 신유리가 소리를 질렀다.
“아, 시끄러워요!”
―콰직!
그러더니 눈앞에 들이밀어진 카메라 하나를 맨손으로 우그러뜨려 버렸다.
주이안은 밀가루 반죽처럼 찌그러진 카메라를 눈을 크게 뜨고 쳐다보았다.
그녀가 카메라를 박살 내고 나서야 기자들이 주춤하는 게 보였다.
“카메라 물어내라고 하고 싶으면 우리 집 오시든가요. 그리고 처음 각성할 때 사람 예민해지는 거 몰라요?”
몰려들었던 기자들을 순식간에 휘어잡은 그녀가 주이안을 가리켰다.
“여기 지금 많이 참고 있는 것 같은데? 힐러라니까 보살이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죠?”
그 말에 기자들이 커흠, 크흠, 헛기침을 해댔다.
솔직히 딜러가 아닌 힐러이니 화가 나서 날뛴다고 해도 큰 피해가 없을 거라고 생각했던 건 사실인 탓이었다.
“나중에 며칠 후에나 정식 인터뷰 요청하세요.”
그렇게 말한 신유리가 주이안의 어깨를 툭툭 쳤다.
“가자!”
그러더니 아주 작게 속삭였다.
“얼른 가요. 저 양반들 가만히 서 있어도 안 놔줘.”
그러더니 사람들을 먼저 헤치고 나아갔다.
주이안은 그녀가 만든 길을 따라나섰다.
“아직 높이 뛰는 건 좀 힘들죠?”
사람들과 떨어지고 나서야 그녀가 물었다. 주이안은 무심결에 물었다.
“높이면 어느 정도……?”
“음, 한.”
신유리는 바로 옆의 10층이 넘는 빌딩을 쳐다보았다가,
“아, 힐러시지.”
하더니 그 옆의 5층짜리 건물을 가리켰다.
“저 높이 정도?”
“?”
물론 그 5층도 불과 수 시간 전까지 일반인이었던 주이안에겐 너무 높아 보였다.
“아직 적응이 안 되셨구나. 원래 뭐 하시던 분이에요?”
“대학생이었습니다.”
“아.”
신유리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턱을 매만졌다.
“나 근처 레스토랑에서 밥 먹다 잠깐 나온 거거든요? 거기로 주이안 씨를 잠깐 데려가고 싶은데.”
“괜찮으시다면 부탁드릴게요.”
주이안은 조금 편안하게 웃었다.
모르는 사람인 건 같았지만 밀려들어오던 기자들보단 나아 보인 탓이었다.
신유리는 볼을 긁적였다.
“가는 방법엔 두 가지가 있어요. 빠르고 간단하지만 좀 사회적 시선이 의식되는 방법하고, 느리고 복잡하지만 이미지 메이킹엔 좋은 방법.”
그녀가 빠르게 말을 늘어놓았다.
이미지 메이킹? 그런 걸 신경 쓸 생각은 없었으므로 주이안은 가볍게 선택했다.
“그럼 첫 번째 방법으로―”
“OK. 그럼 실례.”
선택하자마자 주이안의 시야가 훅 바뀌었다.
발이 허공에 뜨면서 공주님 안기듯 안긴 탓이었다.
그리고 주이안 자신을 들어올린 건 당연히 신유리였다.
“신, 신유리 헌터님?”
놀라는 주이안을 신유리가 꽉 잡았다.
“쉽고 빠르게 가자면서요~”
그렇다고 안겨서 가고 싶은 건 아니었는데……!
그가 눈을 꽉 감는 잠깐 사이, 신유리가 바닥을 박찼다.
“!”
5층 건물이 순식간에 자신보다 아래로 내려가는 건 신기한 경험이었다.
그리고.
―달칵!
웬 비싸 보이는 레스토랑의 창문이 열렸다.
그 안에는 웬 남자 한 명이 있었다.
[C]
그 위에는 헌터 랭크가 보였다.
C랭크……. 주이안은 신유리에 대해 들은 것을 떠올렸다.
아마 저 사람이 신유리 헌터가 데리고 다닌다는 헌터일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는 사이 어느새 그의 구둣발은 레스토랑 안 바닥에 닿고 있었다.
“빨리 왔네?”
“다행히 말이 좀 통하시는 분이라.”
두 사람이 말하는 소리가 들렸다.
“처음 뵙겠습니다. 신재헌입니다.”
레스토랑에 있던 남자, 신재헌은 떨떠름한 얼굴의 주이안에게 선뜻 인사해왔다.
주이안은 손을 잡으려다 멈칫했다.
“지금 못 잡으셔.”
아. 각성 직후시지. 신재헌은 바로 손을 내렸다. 주이안은 그런 그에게 꾸벅 인사해 보였다.
“주이안 헌터시죠?”
신재헌이 물었다. 주이안은 멈칫했다.
어떻게 알았지?
그 마음속 의문에 답하듯 신재헌이 룸 한쪽의 TV를 가리켰다.
[주이안-신유리 헌터, 지인으로 추정]
[국내 최초 S급 힐러 주이안, 어떤 사람인가?]
거기엔 한창 자신의 얼굴과 신유리의 얼굴이 나오고 있었다.
“……아.”
아마 신유리가 아니었으면 저기에 여전히 서 있었을 터였다.
신유리도 아마 속보를 보고 구해주러(?) 온 것이 분명했다.
“사람들은 대충 쫓아냈으니까 밥 먹고 집 가시면 돼요.”
신유리는 테이블 앞 의자에 털썩 앉으며 말했다.
“감사합니다.”
주이안은 두 사람에게 인사해 보였다. 신유리가 어깨를 으쓱했다.
“그냥 기자들이 싫어서 도와준 거예요. 별 건 없고.”
그러다가 인상을 팍 썼다.
“아니, 근데 거기서 그걸 다 듣고 있으면 어떡해요? 아이고, 답답해.”
쿵쿵! 제 가슴을 치기 시작한 신유리는 먹던 밥이 얹혔다는 표정이었다.
“빡치지 않아요? 나 같으면 거기 반으로 쪼개고 나왔다.”
그 말에 주이안은 난감한 표정으로 웃었다.
“사람을 해칠 수는 없으니까요.”
그 말에 신유리가 감탄했다.
“저 정도는 돼야 사람이 S급 힐러로 각성하는구나.”
“예?”
주이안이 되묻는 사이 신재헌도 자리에 착석했다.
“볶음밥 좋아하세요?”
그러더니 별안간 멀쩡한 볶음밥을 내밀었다. 신유리가 멈칫했다.
“그거 내 건데.”
“넌 이따 더 시켜.”
그러더니 그에게 손을 흔들어 보였다.
“편하게 드세요.”
신유리 헌터 거라고 하셨는데. 그 말에 주이안이 멈칫하자 신재헌은 신유리를 가리켰다.
“얘 세 그릇째예요.”
“들켰나.”
신유리가 투덜거렸다. 그녀가 볶음밥을 밀어주었다.
“먹어요. 얼른.”
결국 주이안은 떨떠름한 얼굴로 그 자리에 착석했다. 그 사이 신유리가 말했다.
“길드는 한…… 한 달 후에나 들어간다고 하세요. 지금은 정신없는 사이에 S급 힐러 사기계약으로 낚아채려는 사람들밖에 없을 테니까.”
그렇게 말하는 신유리를 보며 주이안은 문득 그녀에 대한 소문을 떠올렸다.
“……신유리 헌터님은, 길드가 없다고 들었는데 맞나요?”
그걸 물을 줄은 몰랐는지 숟가락을 들고 있던 신유리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맞아요. 난 길드 들어가면 불편하기만 해서.”
그러더니 그녀가 눈살을 찌푸렸다.
“난 내가 싫은 건 절대 안 하거든요. 조건 맞춰줘도 갈까 말까인데 비싼 척 구는 길드 들어갈 생각 없어요.”
그러더니 어깨를 으쓱했다.
“전 팀 만들려고요. 얘랑.”
그녀가 신재헌을 가리켰다.
“아…….”
신유리와 함께 돌아다니는 C급.
헌터협회를 나오니 그 이야기를 이전에도 들었던 기억이 났다.
그 친구는, 이름 대신 ‘신유리의 짐덩어리’라고 불렸다.
S급의 발목을 잡는 짐덩어리라고.
“주이안 씨라고 했죠? 여하튼 싫은 건 싫다고 하고 끌리는 것만 하세요. 안 그럼 아까처럼 붙잡혀서 만 년쯤 동상처럼 서 있게 될걸.”
그녀가 손을 펴 보였다.
“S급 힐러라면 부르는 게 조건일 거라고요. 그렇다고 아무 데나 가지 말고!”
그녀의 손끝이 TV를 가리켰다.
“다들 S급 힐러 쥐어짜려고 기를 쓸 텐데, 일단 한 달에 들어갈 던전 개수 제한하고요. 안 그럼 하루 종일 힐셔틀 되는 수가 있으니까.”
그녀가 속사포처럼 말했다.
“무엇보다 갖고 싶은 건 다 해달라고 하세요. 물건이든 사람이든 다 갖다 줄 테니까. 어떻게든 주이안 헌터 잡으려고 기를 쓸걸요.”
볶음밥을 한 입 먹은 그녀가 어깨를 으쓱했다.
“그럼 그때 받을 거 다 받고 선택해도 안 늦어요. 어차피 저놈들은 주이안 헌터만 있으면 길드 가치가 확 올라가니까 말로는 길드는 무슨, 나라도 준다고 할―”
헌터협회 사람처럼 말이 많은 사람이었다. 하지만 헌터협회 사람과는 달리 불쾌하지는 않았다.
그랬기에 주이안은 불쑥 입을 열었다.
“원하는 건 다 말하라고 하셨죠.”
그 말에 신유리가 눈을 깜빡였다.
“네. 누구든 맞춰줄걸요?”
그 말에 주이안이 물었다.
“그럼 신유리 헌터님의 헌터팀에, 들어갈 수도 있나요?”
충동적인 질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