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8화
[‘분노한 학생부장 선생님(SS+)’의 분노를 가라앉히십시오!]
[분노 게이지 : 100/100]
시스템창이 떴다.
제대로 마주친 이상, 이제 학생부장의 분노를 가라앉히든, 이 RP던전의 규칙에 맞게 학생부장 선생님을 ‘설득’하든, 뭐라도 하지 않으면 사망 확정이었다.
“처음엔 저희가 학교를 부수었으니 학생부장 선생님이 따라오는 건 당연하지만.”
주이안은 그중 후자를 택할 생각이었다.
‘할 말은 다 해야죠!’
그는 신유리를 생각하면서 폐허가 된 체육관을 가리켰다.
“상황이 바뀌었잖아요.”
웃음기를 담은 온화한 목소리가 울렸다. 소예리가 눈을 깜빡였다.
“응?”
체육관 박살 난 게 왜……. 아!
그녀가 박수를 짝 쳤다.
“그렇네! 상황이 바뀌었네!”
소예리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할 말이 있으면 어디 해 봐!”
분노한 학생부장 선생님 앞에서 주이안이 입을 열었다.
“3층에서 소란을 피운 건 죄송합니다.”
그의 말에 학생부장 선생님이 멈칫했다.
고등학교 배경의 RP던전 룰답게, 잘못을 먼저 시인하는 학생 앞에서 화를 낼 수는 없는 모양이었다.
“앞으로는 주의하겠습니다.”
그러면서 주이안이 학생부장 선생님을 똑바로 올려다보았다.
“잘못을 인정하는 자세는 좋다.”
[학생부장 선생님 분노 수치 : 90/100]
“그래도 3층에서 소란피운 벌은 받아야지!”
학생부장 선생님이 주먹을 불끈 쥔 순간이었다.
주이안의 말이 이어졌다.
“근데 체육관과 학교의 담 일부, 그리고 운동장의 주요 시설과 강단을 부수신 건 학생부장 선생님이십니다.”
소예리는 왠지 뚱한 목소리로 말을 받아치는 신유리의 모습이 주이안에게서 겹쳐 보이는 것 같았다.
이런 말도 할 수 있는 사람이었나?
눈을 깜빡이는 사이 학생부장 선생님이 멈칫했다.
“그건―”
“근데 그걸 본 사람은, 저희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그 틈을 파고들어 주이안이 교섭을 시도했다.
소예리가 입을 떠억 벌렸다.
신유리 헌터가 빙의한 거 아니야!?
그녀가 경악할 때쯤, 주이안은 신유리와 처음 만났을 때를 떠올리고 있었다.
***
주이안은 헌터로 각성하기 전, 각성열이 심하게 온 헌터 중 하나였다.
그리고 그는 큰 병원에 갈 수 없었다.
‘더 큰 병원을 가보셔야 합니다.’
게이트 사태가 시작된 지 얼마 되지 않아, 대형 병원에는 모두 헌터들이 꽉꽉 들어찬 상태였다.
때문에 당시 일반인인 데다, 고아원 출신이라 돈도 없는 학생 하나를 치료하겠다는 대학병원은 없었다.
그리고 작은 병원들은 모두 원인을 알 수 없다며, 간신히 병원에 온 그를 돌려보냈다.
대체 왜 아픈지 알 수가 없다는 것이다.
‘수일째 열이 40도가 넘는데, 돌아다닐 수가 있다고?’
그에 관심을 가진 건 작은 병원 의사의 지인이었던 헌터협회 소속 의사였다.
‘걔 헌터협회로 와 보라고 해.’
그렇게 간신히 연결되어 간 헌터협회에서는 아주 간단한 진단을 내렸다.
“이건 헌터 각성열입니다.”
“각성열이요?”
당시만 해도 게이트에 들어가거나, 인생에 특별한 위기가 와야만 헌터로 각성할 수 있다고 알려졌을 때였다.
때문에 게이트 사태가 간신히 잡히기 시작하면서 공부를 재개한 주이안에게는 낯선 단어일 수밖에 없었다.
“원래 직업이 뭡니까?”
헌터협회 의사의 말에 주이안이 간단하게 답했다.
“학생입니다.”
“공부만 했다고? 그럼 각성해도 별 거 없을 텐데…….”
던전 안에서 각성열이 시작된 사람이 아니고서야 별 스킬 없는 헌터로 각성한다는 인식이 팽배할 때였으니, 의사의 반응도 당연했다.
“근데 왜 이렇게 각성열이 심하지?”
하나 이상한 점은 각성 등급이 높을수록 심한 각성열이, 주이안에게는 지나치게 심하게 나타났다는 것이다.
“어쨌든 좀 쉬고 나오십쇼. 헌터 각성만 하면 병원비는 나라에서 지원하니까 걱정하지 마시고.”
그리고 의사가 데려간 헌터협회의 각성열 관리실에서, 주이안은 뜻밖의 시스템창을 마주쳤다.
[주이안…… 헌터 각성.]
[각성 랭크…….]
잠시 로딩이 지나간 시스템창에 간단한 글자 하나가 떠올랐다.
[S]
주이안이 눈을 크게 뜬 순간 시스템창이 우르르 떴다.
[‘힐러’ 클래스로 각성합니다.]
[‘일반인 → S급’ 각성에 따라 신체 일부가 변화합니다.]
[‘힐러’ 클래스에 맞게 상태창이 재정렬됩니다.]
[‘변화 적응 기간’ 버프가 부여됩니다(71:59:58)…….]
그의 각성 상태는 본인에게만 알려진 게 아니었다.
각성열 관리실에 있는 헌터 인식 시스템은 곧바로 이 소식을 헌터협회 내부 관리자에게 전달했다.
덕분에 S급 힐러가 나타났다는 소식이 곧 헌터협회 내부를 휩쓸었다.
[주이안 : S급(힐러) 각성]
그 소식이 들리자마자 그가 있던 각성열 관리실에는 의사를 포함한 헌터협회 사람들이 들이닥쳤다.
“힐러?”
“진짜 S급 힐러입니까?”
“시스템창에 S라고 떴어요?”
그들은 씻은 듯이 몸 상태가 괜찮아져 떨떠름한 기분인 주이안에게 질문을 쏟아냈다.
“드디어 국내에 S급 힐러가!”
뒤에선 감동하는 자도 있었다.
“조용!”
그런 자들 사이에서 헌터협회장으로 보이는 남자가 나왔다.
“주이안 씨, 아니, 주이안 헌터님. 정말 S급이십니까? 여기 손을 한 번만 올려봐 주시겠습니까?”
그는 흥분이 가시지 않은 얼굴로 각성자 판별 시스템이 장착된 기계를 들이밀었다.
S급 각성자의 등장은 중대한 사안인 만큼 보다 확실히 확인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주이안이 손을 올린 순간.
[S / 힐러]
그의 힘을 인식한 기계가 선명한 글자를 나타냈다.
그리고 그 소식은 흥분한 헌터협회 사람들에 의해 새어나가, 온갖 매체를 뒤흔들었다.
[(속보) 국내 최초 S급 힐러 탄생…… S대 대학생 출신]
[S급 힐러 헌터에 국내 헌터계 주목]
기존 헌터계 인맥이 있는 사람도 아니고, 평범한 대학생이다.
게다가 그가 헌터계 인맥은커녕 그냥 보호자도 없다시피 한 고아원 출신임이 알려지면서 한국은 한바탕 뒤집어졌다.
“어떻게든 그 학생 잡아둬!”
“S급 힐러잖아! 종신계약 도장만 받아내면 돼!”
S급 헌터도 시스템을 통한 계약에는 강제당한다.
[헌터협회 앞 인산인해…… 국내 정상 길드 인사진 총집합]
즉, 아무것도 모르는 S급 힐러가 승냥이들 사이에 똑 떨어져 내린 셈이었다.
***
자신에 대한 속보가 뉴스와 인터넷을 도배하는 사이, 주이안은 정신없이 헌터에 관한 정보를 접하고 있었다.
국내의 유명한 헌터들은 어떤 사람들이 있고, S급 헌터들이 주로 무슨 일을 하는지 등.
그리고 헌터 중에서도 최상위 헌터인 S급 헌터들에게는 어떤 혜택이 주어지는지 등등.
“헌터협회로 오시는 것도 괜찮아요.”
은근히 헌터협회 소속을 권하는 헌터협회 인사팀장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생각해보겠습니다.”
주이안은 간단하게 답했지만 헌터협회 인사팀장은 끈질겼다.
“일단 반 공무원 신분인데, S급 헌터면 건드릴 수 있는 사람이 없거든요. 그럼 이게…….”
그러면서 은근슬쩍 불법적인 이야기까지 흘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주이안은 협회에 들어갈 생각은 없었다. 애초에 너무 혼란스러웠다.
몸이 아파서 의사 찾아 흘러흘러 헌터협회로 왔을 뿐인데, S급 헌터라고?
“일단 돌아가서 생각―”
“이런 기회가 쉽게 오는 줄 아십니까. 제가 인사팀장이라 가능한 거예요. 예?”
하지만 인사팀장은 유들유들하게 말을 계속 이어갔다.
주이안이 말 끊기 힘들어하는 성격이라는 걸 알아챈 것이다.
“한번 생각해볼게요.”
주이안은 온화하게 말했지만 인사팀장은 손을 내저었다.
“그러지 말고 일단 차 한잔하면서…….”
“정말, 괜찮습니다.”
결국 주이안은 그답지 않게 단호하게 이야기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으으음.”
인사팀장은 그의 뒷모습을 보면서 아쉬움에 입맛을 다셨다.
주이안은 그가 더 따라오지 않자,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애초에 거절을 잘 못 하는 사람이었다. 남의 말을 끊는 건 더더욱.
하지만 일단 이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섣불리 선택을 하면 안 된다는 것 정도는 알았다.
그는 싸움을 싫어할 뿐, 호구는 아니었으니까.
“일단 돌아가야지…….”
헌터협회 복도를 가로지른 그는 아무 생각 없이 헌터협회 본관의 자동문이 열리기를 기다렸다.
―지이잉.
그리고 문이 열린 순간.
그는 수많은 인파와 마주했다.
―찰칵! 찰칵찰칵!
“주이안 헌터님!”
“길드 가입 의향이 있으십니까!”
“혹시 가입이 내정된 길드가 있으십니까!”
“저희 길드 ‘진’에서는 힐러계 헌터에 대한 최대한의 예우를―”
“어딜 중소길드가 끼어들어! 입 안 다물어!? 저희 길드 ‘희’에서는……”
“헌터님!”
주이안은 순간 멍해져 버렸다.
이게 무슨 상황이지?
그에게 몰려든 기자 때문에 그는 함부로 움직이지도 못할 지경이었다. 사람들을 헤치고 나가고 싶어도 문제가 있었다.
‘S급으로 각성한 지 얼마 안 됐을 때에는 사람과 접촉하시면 안 됩니다.’
‘S급의 근력을 못 버티고 상대방이 으스러질 수도 있거든요.’
헌터협회 안내 직원의 말 때문이었다.
덕분에 주이안은 사람들을 헤치려 손을 뻗었다가 다시 내려 버렸다.
수많은 치료계 스킬들이 생겼지만 제가 으스러뜨린 사람을 상대로 처음 그 스킬들을 써보고 싶지는 않았다.
“헌터님! 소감이 어떻습니까!”
그래서 결국 그렇게 외치며 들이대는 사람들에게, 주이안은 손을 들어 보였다. 잠시 조용히 해보라는 뜻이었다.
사람들의 소란이 웅성거림 정도로 잦아들자, 그가 입을 열었다.
“……좀 비켜주시겠습니까?”
그 말에 잠시 조용했던 사람들이 더 난리가 났다.
“목소리 장난 아니신데!”
“S급이라 그런가?”
“S급 각성하실 때 기분이 어떠셨습니까!”
“S급은 일반인 몸과 어떻게 다른 것 같으십니까!”
“각성열이 심하셨다던데 어느 정도였습니까!”
아까보다 더 시끄러워져 버렸다.
게다가 헌터계 너튜버들까지 몰려와서 셀카봉을 길게 늘여 그의 얼굴에 들이댔다.
주이안은 난감한 얼굴로 그들을 둘러보았다. 카메라나 휴대폰도 밀쳤다간 박살 날 게 분명했으니까.
그 모습이 지식나무의 문서에 올라갈 줄 알았다면 차라리 입을 다물었을 것이다.
[헌터/헌터(국내)/S급/주이안(힐러)]
주이안 / JU IAN
(사진 : 주이안.jpg)
출생 : ?
국적 : 대한민국…….]
그는 몰랐지만 그의 지식나무 문서는 실시간으로 수정되고 있었다.
[“……좀 비켜주시겠습니까?”
- 헌터 각성 직후 헌터협회 앞 인터뷰 중]
“주이안 헌터님! 한 말씀 해주시죠!”
하지만 정말 정신이 없었다. 사방팔방에서 그를 잡아당기려고 했고, 그는 S급답게 끌려가진 않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에게 비상탈출이나 비행 같은 스킬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비켜달란 말에도 비켜나지 않는 수많은 사람들을 보며 그의 표정이 난감해졌다.
그때 누군가가 불쑥 물었다.
“정말 원장님께 모든 것을 일임하신다는 게 사실입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