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6화
폭음과 함께 시스템창이 우르르 떴다.
[수학선생님이 불량한 수업 태도에 분노합니다!]
[수학선생님이 ‘분노한 수학선생님(SS)’으로 진화합니다!]
[보스 ‘분노한 수학선생님(SS)’ 체력 40% 이하]
아마 한국의 누구도 검 한 방에 SS급 보스 몬스터 체력을 60% 이상 깎았다는 소리를 믿진 않을 것이다.
하지만 버프가 있으면 안 되는 게 없습니다.
컨트롤? 능력치? 물론 중요하다. 하지만 정상급끼리의 싸움이라면, 결정적인 요소는 따로 있었다.
뭣도 모르는 딜러들은 제가 딜을 잘하는 줄 알겠지만, 좀 한다 하는 딜러들은 다 알고 있었다.
데미지는, 버프가 만드는 것이다!
“신성한 수업시간에 이게 무슨 짓이야!”
교실 벽이 박살 나는 소리 사이로 수학선생님의 날카로운 목소리가 울렸다.
죄송합니다, 선생님!
시험지를 물리치는 것보다 수학선생님을 물리치는 게 더 빠를 것 같아서 그만!
신재헌이 검을 내리친 자리로 소예리 헌터의 얼음 감옥 같은 스킬이 쏟아져 들어갔다.
신재헌의 버프창도 다시 활발하게 움직였다.
이대로 끝장을 내려는 것이다.
전투를 시작할 때 폭발적으로 데미지를 내는 ‘오프닝 데미지’만큼은 아니겠지만, 버프가 아직 많이 남아 있는 지금 데미지를 더 넣어 보스를 끝내 버리는 게 나으니까.
―쿠콰쾅!
검으로 보스를 패는 건지 건물을 때려 부수는 건지 헷갈리는 굉음이 울리는 순간이었다.
[보스 ‘분노한 수학선생님(SS)’ 체력 30% 이하]
기쁜 시스템창 위로 새빨간 시스템창이 올라왔다.
[학교 건물이 무너졌습니다!]
[‘분노한 학생부장 선생님(SS+)’이 쫓아옵니다!]
“저건 또 뭐야!”
나와 소예리 헌터가 동시에 비명을 질렀다.
힐 스킬을 쓰던 주이안 헌터의 얼굴이 하얘지는 것도 보였다.
[분노한 학생부장 선생님(SS+)으로부터 ‘공포(S)’ 효과를 받습니다.]
[헌터 주이안(S)이 ‘안정(S)’ 스킬 효과를 부여합니다.]
[공포(S)가 해제됩니다.]
주이안 씨의 처리는 빨랐지만 상황은 좋지 못했다.
[분노한 학생부장 선생님(SS+) 현재 위치 : 1층]
[현재 파티 위치 : 전원 4층]
[‘분노한 학생부장 선생님(SS+)’과 같은 층에 위치할 시, ‘공포(SS+)’ 효과를 받습니다.]
“쓰플?”
욕 아니다. SS+ 말한 거다. 하지만 욕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같은 층으로 올라오면 제 스킬로는 해제가 안 될 겁니다.”
주이안 씨가 새하얘진 얼굴로 말했다.
―쾅! 쿠쾅쾅!
그 사이에도 신재헌의 체력 게이지 바는 떨어졌다가 차오르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수학선생님이 생각보다 엄청난 데미지를 내고 있는 게 분명했다.
그렇게 생각한 순간이었다.
“내가! 수업시간에! 딴짓하지! 말랬지!”
분노한 수학선생님의 목소리가 쩌렁쩌렁 울렸다.
―퍼억!
그와 동시에 신재헌이 우리 쪽으로 튕겨 날아왔다.
[아이반 엘레티아 폰 카르만(신재헌놈) - S급(딜러)
- 상태 이상 : 체력 부족(10% 이하)]
주이안 씨의 손에서 힐링 스킬이 쏟아져 들어갈 때였다.
―쿠쿠쿵……!
흙먼지가 가라앉은 곳에서 수학선생님의 실루엣이 드러났다.
“이놈들!”
그리고 어지간히 빡쳤는지 사람만 한 거대한 컴퍼스를 꺼내 들었다.
침 길이가 사람 손바닥만 한데? 잘못 건드린 것 같은데?
우리 넷의 얼굴이 새하얘진 순간이었다.
[‘분노한 수학선생님(SS)’이 ‘네 성적으로는 크로플대학도 상향이다(S)’를 가합니다!]
뭐가 상향이요? 크로플맛집 거기?
놀랄 틈도 없이 데미지와 함께 시야가 새빨개졌다.
[보호막(S)가 깨졌습니다!]
[보호의 손길(A)이 해제됩니다!]
……
수많은 버프가 해제되면서 몸에서 힘이 빠져나갔다.
[잔여 체력이 5% 이하입니다!]
그와 동시에 우리가 딛고 있던 4층의 바닥이 푹 꺼져 내렸다.
“와악!”
비명을 지르는 내 주변을 주이안 씨의 힐링이 감쌌다. 체력은 찼지만 상황이 일촉즉발인 건 똑같았다.
[‘분노한 학생부장 선생님(SS+)’ 위치 : 2층]
[현재 위치 : 3층]
“부부부장온다! 튀어!”
[헌터 소예리(S)가 비행(A) 스킬을 걸어주었습니다.]
시스템창과 함께 우리의 몸이 동시에 떠올랐다.
[현재 위치 : 4층]
층만 4층으로 바뀌면 뭐 해!
밑에서 엄청난 굉음과 함께 벼락같은 학생부장 선생님의 목소리가 울렸다.
“학교에서 뭐 하는 짓들이야!”
[–21323]
[–22412]
[–24169]
한 어절마다 데미지가 들어왔다. 심상치 않았다.
“학생부장하고는 붙으면 안 될 것 같은데요.”
신재헌이 심각한 얼굴로 말했을 때였다.
[분노한 학생부장 선생님(SS+)이 ‘타깃’을 지정합니다!]
타깃은 뭐야?
우리가 눈을 크게 뜬 순간이었다.
“어머?”
소예리 헌터 위로 무슨 미사일 조준에나 쓸 법한 거대한 조준경 이펙트가 덧씌워졌다.
[10초 후 ‘분노한 학생부장 선생님(SS+)의 ‘징계’가 가해집니다!]
“미사일이야, 뭐야!”
소예리 헌터가 기겁했다.
“일단 멀리로 갈게요!”
우리를 4층의 적당한 복도에 내려준 그녀가 몸을 돌렸다. 창문으로 나갈 생각인 듯했다.
“같이 가겠습니다!”
주이안 헌터가 급히 그녀를 따라 나섰다.
징계 스킬이 무슨 효과인지 모르니 힐러가 같이 가는 게 맞았다.
SS급 던전에서 쪼개져 봐야 좋을 건 없지만, 수학선생님이 노리고 있는 신재헌이 합류해 봐야 소예리 헌터의 미래에 치명적이기만 할 게 분명했다.
“이노오오옴! 어디 갔어!”
[수학선생님 분노 수치 : 130/100]
―쿠콰쾅! 콰쾅!
분노한 수학선생님이 뛰어 올라왔기 때문이었다.
“!”
수학선생님은 수학 공부만 하신 건 아닌지 한 번의 도약만으로 4층까지 뛰어 올라왔다.
놀란 신재헌이 날 잡은 채 몸을 피했다.
“어딜 가!”
―쾅!
수학선생님의 거대한 컴퍼스가 복도의 사물함을 짜부라뜨렸다.
“저거 잡는 건 오버야.”
신재헌은 질린 얼굴로 말했다.
“그래도 체력 20% 이하니까 한 방만 제대로 갈기면 될 것 같은데.”
아무리 딜러끼리만 있다고 해도 딜을 못 박는 건 아니다.
그렇게 생각할 때였다.
[‘분노한 수학선생님(SS)’이 ‘사랑스러운 제자의 모의고사 만점 답안지’를 획득합니다!]
[‘분노한 수학선생님(SS)’이 체력을 회복합니다!]
“아니 어떤 새X가 만점을 받아서!”
“누가 답안지를 길바닥에 흘려놔!”
동시에 쌍욕이 터져 나왔다.
―쾅! 콰쾅! 쾅!
그리고 한편 창문 너머 운동장으로, 소예리 헌터가 지나간 자리에 거대한 망치가 떨어져 내리는 게 보였다.
학생부장 선생님의 스킬이 분명했다.
“학교 부숴서 나온 거라며!”
학생부장이랑 수학선생님이 더 부수고 있잖아!
[‘분노한 수학선생님(SS)’의 분노를 잠재우십시오!]
[수학선생님 분노 수치 : 140/100]
분노 수치가 100을 넘었잖아!
―쾅!
난 신재헌이 날 들고 다시 몸을 피하는 사이 머리를 싸맸다.
“우린 백점 시험지 같은 거 없어!”
그럼 저놈, 아니 저분이 진정하길 기다리기만 해야 한단 말인가?
다시 거대한 컴퍼스가 바닥을 가를 때였다.
난 박살 나는 복도를 보면서 문득 십 년 전을 떠올렸다.
그땐 정말 학교 박살 내고 싶었는데……가 아니고.
“잠깐, 이거 4교시 되면 자동으로 4교시 장소로 이동되지 않을까?”
“왜?”
신재헌이 의아한 듯 되물었다.
“여기 우리 학교잖아.”
RP던전이라면 당연히 장소 특성이 우선된다. 내 말에 신재헌의 표정이 바뀌었다.
그가 날 돌아보았다.
“하긴, 수업시간에 튀었다가 잡히면 수업시간 3분 남았어도 교실에 집어넣었었지.”
물론 어떤 페널티를 받거나 어떤 NPC한테 혼날지는 몰라도 수학선생님을 잡는 것보단 나을지도 몰랐다.
“그럼 4교시까지 버티자고?”
신재헌이 되물었다.
공격을 피하는 것 자체는 어렵지 않아서 주이안 씨 없이도 체력 게이지 바는 거의 다 차 있었다.
“그럼 저놈 잡을 거야?”
난 그의 말에 반문했다. 저분 완전 맛이 갔는데?
난 시뻘건 안광을 번뜩이며 쫓아오는 수학선생님을 가리켰다.
“아니면 모의고사 100점 받아 올래?”
내 말에 신재헌이 심각한 얼굴로 고민했다.
“S급 시력이면 커닝은 가능하지 않을까?”
“그럼 아까 커닝했어야지!”
그때 우리 사이를 거대 컴퍼스가 내리찍었다.
―쾅!
“!”
순간 놀라 피한 쪽이 신재헌과 정확히 반대 방향이었다.
[분노한 수학선생님(SS)이 ‘원형 영역(S)’을 가합니다!]
저건 또 뭐야! 내가 신재헌 쪽으로 몸을 틀려는 때였다.
[S급 미만은 들어갈 수 없습니다(원형 영역 효과).]
“야이!”
나도 원래 S급이었거든! 내가 인상을 구길 때였다.
[신재헌(신재헌놈)>>> 일단 반대로 튀고 이따 합ㄹ]
그의 채팅은 올라오다 말고 사라졌다.
“수업시간에 떠들지 마라!”
극대노한 수학선생님의 목소리가 울린 직후였다.
[디버프 : 헌터 채팅 사용 불가]
헌터 채팅도 들리셨습니까?
기겁한 난 일단 신재헌의 말대로 반대로 튀기로 결정했다.
[현재 학생부장 선생님 위치 : 1층 운동장]
어차피 내가 수학 100점 맞을 것도 아니고, 신재헌 옆에 있어 봐야 맞아 죽기 딱 좋았다.
물론 그냥 튈 생각은 없었다.
“100점 맞을 수 없으면 100점 맞을 놈 데려오면 되지!”
근데 어떻게 데려오지?
수학선생님이 빡쳤으니 너와의 학술적 대화로 풀 수 있게 해 주련?
[신의 상점 : Lv.2]
다른 방법은 없나 싶어 켠 신의 상점 한구석.
정답이 눈에 띄었다.
“이거다!”
난 주먹을 꽉 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