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4화
아니, 인간적으로 헌터 기억에 기반해서 나오는 던전이면 물리는 나오면 안 되는 거 아니냐?
[신유리(신유리)>>> 기억나시는분?]
내 말에 헌터 채팅에 침묵이 휘몰아쳤다.
그때였다.
―파앗!
교실 배경이었던 주변의 풍경이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어?”
그러더니 배경은 야외로 바뀌었다.
[물리선생님]
그리고 머리 위에 물리선생님이라고 쓰여 있는 남자가 보였다.
그는 햇볕이 쨍하게 내리쬐는 운동장 한가운데에서 과녁을…… 바닥에 꽂고 있었다.
팔의 근육이 불끈거리는 게 보였다.
왠지 헬스를 하루 이틀 하진 않았을 것 같은 모습이었다.
[신재헌(신재헌놈)>>> 굉장히 물리적으로 보이는 분인데]
정말 ‘물리’를 가르쳐줄 것같이 힘이 장사인 사람이었다.
―콰직!
그가 과녁이 달린 막대기를 들고 흙바닥을 내리찍자, 날카로운 부분도 없는 과녁 막대는 그대로 바닥을 반쯤 뚫고 들어가 버렸다.
근데 과녁이 왜 있어?
게다가 우리 옆에 놓인 건.
“……창?”
창이 여기서 왜 나와?
그것도 날이 날카롭게 서 있는 창이었다.
설마?
[2교시는 ‘물리’ 시험입니다.]
[당신의 물리력을 보여주세요.]
물리가 이거였냐!
물론 우리 입장에서야 다행인 일이긴 했다.
[소예리(예리언님)>>> 우와, 그래도 진짜 물리학 시험 보는 건 아니라서 다행이네]
[주이안(주이안씨)>>> 그래도 방심할 순 없을 것 같습니다.]
침착하고 진지한 주이안 씨의 채팅과 함께, 시스템창이 반짝거렸다.
[창 투척 기회는 인당 2회씩 주어집니다.]
[과녁 중앙 적중 시 10점, 과녁 밖 적중 시 과녁에서 떨어진 거리에 따라 –1점부터 –10점으로 처리됩니다.]
[팀 총점 60점 이하 시 물리선생님이 ‘분노한 물리선생님(SS)’으로 변신합니다!]
시험 못 봤다고 빡치는 건 너무한 거 아니냐?
하지만 창 투척이면 괜찮았다.
설마 이거 SS급 던전이라고 창 무지막지하게 무거운 건 아니겠지?
―탁.
창을 쥐어보니 다행히 일반적인 창 무게 정도였다.
[낡은 연습용 창(B)]
SS급 던전이라고 낡은 연습용 창도 B였다.
[신유리(신유리)>>> 창도 가볍고 괜찮은 것 같은데?]
설마 바람 저항 있는 거 아냐? 그래서 창을 그냥 던져서는 안 된다든지…….
의심스러운 눈으로 디버프 창을 확인해 보았다.
[디버프 : ]
하지만 디버프는 없는 상태였다. 그냥 던지기만 하면 된다는 뜻이다.
[신유리(신유리)>>> 예스, 좋았어!]
아깐 신트롤이었지만 이번엔 다르다!
―짝!
들뜬 기분에 신재헌을 돌아본 난 하이파이브를 했다.
[신재헌(S)의 방어력이 너무 강합니다.]
[–21312]
손 안 부러진 게 다행이라고 생각해야 하는 거지?
[헌터 주이안(S)이 ‘손상 회복(A)’ 스킬 효과를 부여합니다.]
[체력 +21312]
벼락같이 주이안 씨의 힐이 올라왔다. 하이파이브하기가 이렇게 힘듭니다.
이번 시간은 긴장 안 해도 될 것 같고―
“…….”
내가 안심하고 있을 때였다. 주이안 씨의 심각한 얼굴이 보였다.
[주이안(주이안씨)>>> 음…….]
그는 주저하는 얼굴로 창 손잡이를 만지고 있었다.
설마 못 드는 거 아니죠? 주이안 씨 S급 스탯이 있는데?
―탁.
물론 드는 데에는 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창을 든 그의 자세는 어딘가 이상했다.
[주이안(주이안씨)>>> 맞힐 수 있을지 모르겠군요.]
[신유리(신유리)>>> 아…….]
하긴, 힐을 물건 던져서 하는 것도 아니고 이런 일을 할 일이 있었을 리가 없었다.
그건 보조계인 소예리 헌터도 마찬가지였다.
[소예리(예리언님)>>> 이거 스킬 써서 보정하면 안 되겠죵?]
물리선생님의 희번덕거리는 눈을 보니 잘못했다간 그대로 분노엔딩 날 것 같았다.
[신유리(신유리)>>> 그래도 저랑 신재헌 헌터가 만점 받으면 해볼 만하지 않을까요?]
[신재헌(신재헌놈)>>> 노래보단 해볼 만하지]
그 생각엔 모두가 동의하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잠깐, 너무 빠르게 동의하는 거 아니냐?
내가 눈썹을 치켜올릴 때였다.
“소예리, 시작!”
물리선생님이 우렁찬 목소리로 외쳤다.
역시 이쪽도 시험 순서는 이름 가나다순인 듯했다.
“으음.”
소예리 헌터는 창과 내외하는 자세로 서 있다가 슬그머니 창을 들었다.
물론 이쪽도 드는 것 자체는 문제가 되지 않았다. 과녁을 맞히는 게 문제지.
하지만 안 던질 수는 없었다.
“!”
소예리 헌터가 있는 힘껏 창을 집어 던졌다. 우리의 시선이 나란히 창을 따라갔다.
―팍!
과녁에 맞긴 맞았다!
“소예리, 2점!”
근데 아슬아슬하게 맞은 것이었다. 소예리 헌터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좀 더 위로 던지면 될 것 같은데?”
그러고는 다시 창을 집어 던졌다.
확실히 아까보다는 안정적인 자세로 날린 창이 6점 자리를 꿰뚫었다.
“소예리, 총점 8점!”
[현재 팀 총점 : 8/60]
“더 연습해 오도록!”
물리선생님이 엄격한 표정으로 외쳤다.
[소예리(예리언님)>>> 두 번은 연습으로 쳐 주지, 너무해~]
확실히 연습으로 쳐 줬으면 점수가 훨씬 높아졌을 듯했다.
그래도 그녀는 안심한 분위기였다.
왜냐고?
딜러들은 만점 확정이잖아?
이 정도 거리에서 창으로 과녁도 못 맞히는 S급 딜러면 그냥 세상 하직하는 게 더 헌터계에 도움 된다.
나랑 신재헌이 40점 내면……
“…….”
잠깐, 주이안 씨가 12점 내야 하는 거?
[신유리(신유리)>>> 주이안 씨, 가능하겠어요?]
그러자 주이안 씨의 심각한 얼굴이 물리선생님을 살피기 시작했다.
아무리 봐도 저 표정은……!
[신유리(신유리)>>> 저기 물리선생님 공격 패턴 파악하지 마시고요]
이미 물리선생님 보스몹으로 보고 있잖아!
아무래도 주이안 씨는 심각하게 자신이 없는 듯했다.
[신유리(신유리)>>> 이건 자세만 잘 잡으면 돼요. 가르쳐 줄게요. 할 수 있다!]
일찍 포기하지 마!
내가 응원해주는 사이 내 차례는 금세 왔다.
“다음, 신유리!”
투척은 오랜만인데? 그러나 딜러는 딜러였다.
아무리 내가 지금 C급이라고 해도, S급 딜러였던 기억이 어디로 가는 건 아니었다.
난 창을 잡자마자 집어 던졌다.
[소예리(예리언님)>>> 조준도 안 하고 던지면 어떡해!]
소예리 헌터가 기겁했지만 난 어깨를 으쓱했다.
―팍!
힘 있게 던진 창은 정확히 과녁 한가운데를 꿰뚫었다.
[신유리(신유리)>>> 조준 안 해도 맞혀서 괜찮아요]
난 신유리니까. 그게 나니까.
난 어깨를 으쓱했다.
“오, 10점!”
물리선생님이 흥분하며 외쳤다. 난 다음 창을 곧바로 잡아 던졌다.
―후웅!
이 정도 거리면 눈 감고도 맞힐 수 있었다.
―콰지직! 쿵!
그리고 내가 던진 창은 전에 던진 창을 가르고 다시 한번 같은 자리에 꽂혔다.
“엇.”
난 순간 멈칫했다. 너무 신나서 던졌나?
이거 설마 마이너스 요소는 아니지?
난 물리선생님 얼굴을 흘끗 돌아보았다.
“!”
그리고 눈으로 불도 낼 수 있을 것 같은 뜨거운 시선과 마주쳤다.
빡, 빡쳤나?
[신재헌(신재헌놈)>>> 딜 준비할까요?]
나 또 신트롤임? 또? 아니지?
그때 주먹을 꽉 쥐었던 물리선생님이 별안간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짝짝짝짝!
“이거지! 바로 이거야!”
그러더니 감동의 물결에 휩쓸린 얼굴로 외쳤다.
아까 음악선생님과는 정반대되는 반응이었다.
[‘물리선생님의 기쁨(S)’ 버프를 획득합니다(모든 능력치+20%)]
아싸! 고맙습니다!
이쪽은 음악선생님과는 달리 사제 간의 정이 좀 느껴지는 것 같았다.
[현재 팀 총점 : 28/60]
“다음, 신재헌!”
물리선생님이 신난 목소리로 외쳤다.
신재헌은 그쯤엔 이미 한 손으로 창을 돌리면서 갖고 놀고 있었다.
“시작!”
―콱!
그리고 시작 소리가 들리자마자 창을 집어 던졌다. 당연히 10점이었다.
가볍게 던졌는지 과녁이 부서질 일은 없었다.
하긴 C급 힘에도 오락가락하는 연약한(?) 과녁이 S급 힘에 버틸 수 있을 리가 없었다.
“다음!”
그가 다시 한번 창을 집어 던졌다. 이번에도 무난하게 10점.
[현재 팀 총점 : 48/60]
이제 주이안 헌터가 12점만 내면 된다!
“다음, 주이안!”
물리선생님은 물 만난 고기처럼 신난 상태였다.
그리고 그렇게 들뜬 물리선생님 앞에 창을 무슨 검 잡듯 어색한 자세로 잡은 주이안 헌터가 섰다.
“……!”
물리선생님이 그를 보고 멈칫했다.
저쪽도 이쪽의 심상치 않은(?) 스펙(?)을 알아챈 것이 분명했다.
무려…… 순수 퓨어힐러.
얼마나 사람이 순수하면 힐러 중에서도 딜링 스킬이 단 하나도 없는 힐러 중의 힐러.
그런 그가 창을 던져봤을 리가 없었다.
“시작.”
비장한 얼굴의 물리선생님이 과녁을 가리켰다.
주이안 헌터가 어색한 자세로 창을 들었다.
[신유리(신유리)>>> 도와줄게요 할 수 있다!]
직접 자세를 잡아주고 싶었지만, 그랬다간 물리선생님의 물리 교육을 받을 것 같았다.
그랬기에 헌터 채팅만 불이 났다.
[신재헌(신재헌놈)>>> 던질 방향으로 손 뻗고]
그의 말에 주이안 씨의 손이 슬그머니 올라갔다.
기계라도 움직이는 것 같았다.
[신재헌(신재헌놈)>>> 그 좀 더 역동적으로 해보세요]
[신유리(신유리)>>> 과녁이 헌터협회장 대가리라고 생각해보세요]
부수고 싶지 않습니까?
아니, 이건 주이안 씨한테는 별 효과가 없는 주문인가?
그렇게 생각한 순간이었다.
“오.”
주이안 씨의 자세가 놀랍게도 자연스럽게 바뀌었다!
아무래도 주이안 씨도 우리를 마음대로 L급 던전에 던져 넣은 헌터협회에 쌓인 게 많은 모양이었다.
겉은 화가 없는 잔잔한 바다처럼 보여도, 그 내면에는 뜨거운 물을 뿜는 열수분출공이 있는 게 분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