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화
“폐하, 혹시 문이 저쪽인 걸 까먹으셨습니까?”
방엔 우리 둘밖에 없었지만 난 나름 정중하게 물어봐 주었다.
이게 말로만 듣던 청년치매?
내 말에 신재헌이 눈살을 찌푸렸다.
“공식적으로 들르려면 귀찮아.”
그건 그렇지.
“얼른 이놈의 던전 나가든가 해야지.”
내가 말하는 사이, 신재헌의 채팅이 올라왔다.
[아이반 엘레티아 폰 카르만(신재헌놈)>>> 제가 도와주러 왔어요]
그 말에 주이안 씨는 잠시 말이 없었다. 그러다가 잠시 후 채팅이 올라왔다.
[아리엔사 시안 데마르(주이안씨)>>> 저도 갈까요?]
난 그 말에 어안이 벙벙해졌다.
[세니아 드 에델바이스(신유리)>>> 매뉴얼 만드는데 S급 딜러힐러가 왜 붙어요?]
[아리엔사 시안 데마르(주이안씨)>>> 머리가 모이면 빨리 만들 수 있을 테니까요.]
그야 맞는 소리지만.
[세니아 드 에델바이스(신유리)>>> 페널티는요?]
내 질문에 고민도 없이 미친 소리가 올라왔다.
[아리엔사 시안 데마르(주이안씨)>>> 감수해야겠지요.]
[세니아 드 에델바이스(신유리)>>> 안되거든요]
매뉴얼이 뭐라고 스킬랭크를 걸어! 내가 손을 내저을 때였다.
“수호기사단장님!”
바깥에서 누군가 문을 격렬하게 두드렸다.
“!”
나와 신재헌의 눈이 마주쳤다. 왜 꼭 이놈 올 때만 사람이 오지?
―벌컥!
난 다시 창문을 열었다.
“온 길로 나가시기 바랍니다. 그럼 이만.”
빨리 나가! 페널티 먹고 싶지 않으면!
“어떤 놈인지 진짜…….”
“단장님!”
그 사이에도 날 격하게 부르는 기사의 목소리는 커져만 가고 있었다.
눈치가 없다는 둥 뭐라고 투덜거린 이 나라의 황제는 다시 창문으로 주섬주섬 사라졌다.
저기, 창턱에 손 걸친 거 다 보이거든?
난 대충 창문 근처에 커피잔을 올려 손을 감추었다. 그리고 시계를 올려다보았다.
벌써 밤 11시였다.
“이 시간에 무슨 일―”
내가 문을 열면서 입을 연 순간이었다.
날 격하게 부른 기사는 얼굴이 새하얘진 채였다.
“검, 검은 게이트가 나타났다고 합니다! 지금껏 본 적이 없는 게이트입니다!”
“뭐라고?”
난 입을 떠억 벌렸다.
색에 따라 게이트의 난이도가 달라진다는 건 상식이다.
연두색인 F급에서 노란색을 거쳐 빨간색에 가까워진 게 A급 게이트.
그리고 난도가 궤를 달리한다는 걸 나타내는 것처럼 S급 게이트부터는 아예 색 자체가 달라졌다.
우리가 들어왔던 이 L급 게이트가 먹물 같은 진한 검은색이었던 것처럼.
그런데 적어도 검은색이란 말이 나올 정도의 난도라면?
SS급? SS+급?
머릿속이 노래지는 기분이었다.
한국은 5년이나 지나서야 나왔는데?
“게이트 진행도는 어떻지?”
이걸 물어볼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마탑의 연구 성과(라고 쓰고 소예리 헌터의 기본 상식)로, 게이트 입구의 크기가 작아질수록 게이트에서 몬스터가 쏟아져 나올 시기가 가까워진다는 사실을 이 세계 사람들도 알게 되었으니까.
다시 말해, 폭주까지 얼마 남았는지 알 수 있게 되었다는 뜻이었다.
“그, 그게, 산중에 있는 걸 뒤늦게 발견한 터라…… 두 뼘 정도 크기라고 합니다.”
“오.”
난 순간 눈앞이 아찔해졌다. 그 정도 크기면…….
[아이반 엘레티아 폰 카르만(신재헌놈)>>> 보고하러 달려온 시간까지 생각하면, 사흘도 안 남았겠는데?]
……X됐다.
***
적어도 SS급 게이트.
발견한 기사와 근처의 마법사들이 급히 조사해 본 결과 이 게이트는 기이한 특징이 있었다.
“네 명 이상이 접근하려고 하면 강력한 마력장이 생성된다고 합니다.”
그건 시스템상 3인 던전이라는 소리였다.
심지어 인원 제한까지 있는 SS급 이상 던전?
[클로나 에이센(예리언님)>>> 그거 터지면 답 없어요. 메인 퀘스트도 실패할 것 같아]
상황을 알려주자 소예리 헌터마저 진지해져 버렸다.
[아리엔사 시안 데마르(주이안씨)>>> 그렇게 되기 전에 막아야죠.]
[아이반 엘레티아 폰 카르만(신재헌놈)>>> 그래야죠…… 근데 SS급 이상이면 딜이 부족한데]
그게 문제였다.
내가 원래 능력치로 들어왔으면 SS급이고 뭐고 이렇게까지 심각해지지 않았을 것이다.
압도적인 딜량으로 쓸어버리면 되니까.
문제는 내가 지금 C급이라는 거였다.
[아이반 엘레티아 폰 카르만(신재헌놈)>>> 입던하면서 황제 스킬 보너스로 20%가 붙긴 했거든요? 그래도 SS급 던전에서 혼자 딜링하긴 좀 부족해요]
[클로나 에이센(예리언님)>>> 나도 데미지 20% 증가 버프 있는데 이걸로도 안 될 것 같아요]
암울한 상황 가운데에 난 문득 내 스킬창을 켜 보았다.
[스킬 목록
- 패시브 스킬
- 액티브 스킬]
액티브 스킬이야 볼 것도 없고.
내가 보려는 건 패시브 스킬이었다.
내 기억에 분명 얼마 전 사용했던 은하 서버 스킬 열쇠에서 쓸모 있는 스킬이 나왔던 것 같거든?
[패시브 스킬 목록
……
- 시너지(A)]
그리고 그 기억은 잘못되지 않았던 듯했다.
나도 모르게 입꼬리가 올라갔다.
[세니아 드 에델바이스(신유리)>>> 딜 부족하면 나도 데려가요]
[아이반 엘레티아 폰 카르만(신재헌놈)>>> 그건]
SS급 던전에 C급이 기어들어간다고 하면 모두가 미쳤다고 말할 것이다.
[아리엔사 시안 데마르(주이안씨)>>> ……마음만은 정말 감사합니다만, 신유리 헌터님. SS급 던전에서는 헌터님의 안전을 보장할 수가 없어요.]
주이안 씨가 그 말을 곱게 돌려 했다. 걸리적거린다는 말을 저렇게 예쁘게 할 수 있는 것도 능력이었다.
일반적인 C급이면 그랬겠지!
하지만 난 아니다!
[세니아 드 에델바이스(신유리)>>> 물론 내가 가서 설칠 생각은 없어요]
미쳤다고 SS급 던전 가서 딜링하겠습니까?
[클로나 에이센(예리언님)>>> 그럼?]
내 채팅에 곧바로 소예리 헌터가 반문했다. 난 자신 있게 답했다.
[세니아 드 에델바이스(신유리)>>> 저 시너지 스킬 생김]
그 말에 곧바로 헌터 채팅의 분위기가 바뀌었다.
[클로나 에이센(예리언님)>>> 아 그럼 가야지]
[아이반 엘레티아 폰 카르만(신재헌놈)>>> 그럼 데려가야지]
[아리엔사 시안 데마르(주이안씨)>>> ……제가 최대한 보호해드리겠습니다.]
세 사람이 태세전환이 빠른 이유는 간단했다.
[시너지(A) / 패시브
- 3년 이상 헌터 채팅에서 함께했던 헌터와 게이트 입장 시, 파티 전원 데미지 보너스 +15%(2명 이상 시, 1명당 +5% 증가)]
걸어 다니는 데미지 25% 버프를 두고 갈 S급 헌터들은 없었다.
근데 문제가 하나 있었다.
[클로나 에이센(예리언님)>>> 근데 3인던전이라면서요?]
[세니아 드 에델바이스(신유리)>>> 그것도 내가 방법을 다 생각해둠]
신의 상점에 쓰레기만 있는 줄 알았거든요? 근데 쓸 만한 게 있더라고?
난 어깨를 으쓱했다.
***
[신의 상점(Lv. 2)]
신의 상점이 빛을 볼 때였다. 비싼 가격이 드는 것도 아니었다.
내가 구매한 건 두 가지였다.
[마법의 신분 증명패 – 2000C]
[쪼꼬미 물약 – 0C]
3인 던전 제한. 그건 마법의 신분 증명패로 입장제한을 없애면 그만이다.
[어느 곳이든 입장할 수 있게 된다. (1회 제한)]
어느 곳이든 된다는 말은 던전 입장도 상관없다는 소리거든.
물론 작은 문제가 있긴 했다.
[황제 아이반 엘레티아 폰 카르만의 이름으로, 수호기사단장 세니아 드 에델바이스에게 남부 잠행을 명한다.]
일단 실종처리되기 전에 내 거취를 분명히 해 둬야 한다는 것.
그리고.
“세 명만 들어갈 수 있는 게이트입니다. 그런데 그곳에…….”
기사들도, 사제들도, 마법사들도 차마 말을 잇지 못하고 있었다.
물론 각 집단에서 가장 강한 힘을 가진 것이 황제와 교황, 마탑주이긴 했다.
하지만.
“이렇게 세 분께서 한 번에 움직이신다면, 우려되는 부분이 너무나도 많습니다.”
그야 국가의 중추 셋이 가장 위험한 곳에 뛰어들겠다고 하니 그럴 수밖에 없겠지.
황성 의전관의 말도 일리가 있는 소리였다. 뿐만 아니라 서제국에선 흔치 않게도 마탑과 신전 사람들도 반대하고 나섰다.
“마탑주님의 실력을 의심하는 건 아닙니다. 하지만 이런 위험한 곳일수록 저희를 보내주심이 어떻겠습니까?”
그렇게 말하는 건 A급 상위의 마탑 2인자였다.
“예하, 신시안 님께서도 보다 많은 자들이 예하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게이트라는 작은 곳에 예하를 가두지 마시옵소서.”
이건 교황 바로 아래라는 대사제가 한 말이었다. 요컨대 게이트에 가지 말란 소리였다.
하지만 너희가 그래도 갈 수밖에 없단다.
그렇게 세 헌터를 말리는 사람들이 모두 꼴랑(?) A급 상위밖에 되지 않으니 어쩔 수 없었다.
쟤들을 SS급 던전에 욱여넣는다?
그건 그냥 죽으라고 밀어 넣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우물쭈물하면서도 게이트 앞까지 쫓아와서 우리를 말리고 있었다.
“예하…….”
“탑주님…….”
“폐하…….”
아주 간절해 보였다.
―탁!
결국 신재헌은 대검을 바닥에 내리꽂으며 좌중을 둘러보았다.
“경들이 무엇을 우려하는지는 알고 있다.”
이대로 안에서 세 사람이 나란히 죽으면 곤란하다. 그건 우리도 곤란하고 세계관 사람들에게도 곤란했다.
일반적인 나라라면 애초에 세 사람이 같이 던전에 들어간다고 했을 때 RP던전 페널티 위기가 들어왔을 것이다.
하지만 이 던전은 달랐다.
왜?
여긴…… 검생검사 딜생딜사 카르만이니까!
“하지만 이번 게이트 사태로 자신의 능력에 한계를 느낀 기사들이 많다고 들었다.”
―쿵!
신재헌이 다시 대검을 검집째 바닥에 내리치며 말했다.
근엄한 목소리에 황가 사람들은 물론 교단 사람들과 마탑 사람들까지 조용해졌다.
“나는 이번 위기를 기회로 삼고자 한다. 황제이자 이 나라의 상징으로서 본보기를 보여, 경들에게도 한계가 없다는 걸 보여줄 것이다.”
그 말에 조용해져 있던 기사들이 주먹을 꽉 쥐었다.
그러더니 일제히 환호했다.
“와아아아아!”
딜생딜사하는 나라다웠다.
그러니까 요컨대 주요구성원의 대부분이 딜러답게 별 생각이 없다는 소리였다.
[세니아 드 에델바이스(신유리)>>> 와 진짜 딴사람같다]
그리고 난 그 꼴을 신재헌의 주머니 속에서 듣고 있었다.
[버프 유지 중 : 방구석 1열(A)]
물론 소예리 헌터의 방구석 1열 효과로 지켜보면서.
어떻게 신재헌의 주머니에 있냐고? 그야.
[버프 유지 중 : 쪼꼬미 물약(00:07:08……)]
근데 버프가 7분 남았거든?
주머니 터져나가는 꼴 보고 싶지 않으면 빨리 게이트 들어가 줄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