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화
일단 이 친구들이 이 세계에서 어느 정도 경험이 있는 딜러…… 아니, 암살자라는 건 알겠다.
하지만, 게이트는 처음이잖아? 그럼 어떻게 되는지는 자명하다.
“저를 잘 따라오십시오.”
하녀2가 말했다.
이 친구는 게이트 함정을 피하지 못해서 결국 내가 앞장서게 될 것이다.
“그럼 후방은 제가 맡겠습니다.”
하녀3의 무거운 목소리가 들렸다. 후방도 눈이 뒤에 달린 것처럼 내가 보게 될 것이다.
“그럼 측면의 몬스터는 제가 처리하도록 하죠.”
하녀1이 제 자리를 정했다. 왜 내 의견을 안 묻는지는 모르겠지만 물어봐도 소용없는 일이었다.
결국 내가 하게 될 것이다.
앞뒤측면 모두 다.
“그럼 출발하자.”
은은하게 보이는 미래를 무시하며 난 손짓했다.
“저희만 따라오십시오. 이런 미지의 공간을 탐험하는 것을 위주로 훈련받았으니, 안심하셔도 됩니다.”
하녀 원투쓰리가 입을 모아 말했다.
신재헌이 왜 C급을 붙였나 했더니 암살과 더불어 정보 수집에 탁월한 친구들인 모양이었다.
하지만 제발, 얘들아. 소원이 있단다.
“내가 앞장서도 돼.”
내가 앞장서게 해 주겠니?
“아닙니다. 어찌 귀하신 분을 앞장서게 하겠습니까?”
“저희를 믿어주십시오.”
이게 그 급조된 헌터팀 절망편인가 뭔가 하는 그거냐?
원래 처음 게이트 들어가는 헌터들은 가만히 있다가 ‘쳐라!’ 하면 포X몬처럼 튀어나가는 게 도와주는 길이라고!
물론 내가 여기서 와본 티를 냈다간 페널티가 신나서 쫓아올 테니 절망편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결국 난 비장의 카드를 꺼냈다.
“저번에 연회 갔다가 게이트에 빠진 적 있었잖아. 그때 경험이 도움이 될 것 같은데.”
그니까 내가 지휘하면 안 될까, 얘들아?
내 말에 하녀 원투쓰리가 심각한 얼굴로 서로를 마주 보다가 결론 내렸다.
“그럼 저희 가운데에서 지시해주시겠습니까?”
“주인님의 귀한 경험을 받들겠습니다.”
……그냥 가운데에 가만히 있으라는 말을 고급스럽게도 하는군.
[세니아 드 에델바이스 외 3인, C급 던전 <어두운 숲>에 입장합니다!]
[던전 목표 : 보스 클리어]
[던전 제한에 따라 헌터 채팅이 제한됩니다.]
***
이름대로 던전은 숲 던전이었다.
이런 던전은 그냥 신재헌이 불붙은 검 들고 싹 쓸어버리면 보스만 남을 텐데.
아쉽게도 나와 하녀 원투쓰리 중엔 그런 거국적인 불장난을 칠 수 있는 사람이 없었다.
그 말인즉슨?
숲에서 길 찾기를 해야 한다는 소리였다.
“길 알겠어?”
난 앞장서겠다는 하녀2에게 물었다.
물론 난생처음 보는 숲에서 길을 알 거라곤 기대하지 않았다.
하지만, 다행히 우리에겐! 튜토리얼 기간의 헌터들이 있다!
내 눈엔 안 보이지만 분명 하녀들에게는 빛이 보일 것이다.
길을 인도하는 친절한(척하는) 시스템의 빛이.
“……!”
아니나 다를까, 하녀들이 멈칫하는 게 보였다.
“이건…….”
“반짝이는 길이 있습니다.”
역시 보이는 거지?
그럼 일이 훨씬 쉬워진다!
그렇게 내가 방심할 때였다.
“함정인 것 같습니다.”
하녀 원투쓰리의 표정이 별안간 진지해졌다.
“이렇게 뻔히 길을 보여줄 리가 없습니다.”
아니야, 애들아! 한때는 시스템이 친절한 척할 때가 있었어요!
그때가 지금이야, 얘들아!
“이 게이트를 만든 자의 농간이 분명합니다.”
아니라니까? 세상을 믿어보라니까?
“빛나는 길이 있는 걸 보면 누군가 우릴 인도하고 있는 게 아닐까?”
가령 시스템이라든지? 난 슬쩍 말을 얹어 보았다.
“그자가 저희의 아군일지는 알 수 없지 않습니까?”
“일단 이 근처를 모두 수색해보는 것이…….”
물론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C급 던전을 통째로 수색하겠다고? 혹시 한 한 달 동안 여기서 숙식할 셈?
그랬다간 우리 성질 급한 헌터팀이 복장이 터질지도 몰랐다.
“내가 보기엔…….”
결국 내가 입을 뗐다.
“저번에 내가 이런 데 빠졌을 때에는 빛을 따라가니까 나가는 길이 나왔거든. 이것도 같지 않을까?”
경험자의 말을 믿어보겠니?
내 말에 하녀 원투쓰리가 서로를 마주 보았다.
“길 끝엔 아주 커다란 몬스터가 있었는데, 그걸 처치해야만 나가는 길이 열리는 것 같더라고. 그래야 게이트가 없어지고.”
시스템창이 없는 사람들이 보스니 뭐니 알 리가 없으니 이렇게 설명해주는 게 나았다.
내 말에 결국 하녀들이 결연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셨다면…….”
“일단 길을 따라가 보겠습니다.”
아직 내 말을 완전히 믿는 투는 아니었다.
그게 답이라니까, 얘들아?
내 말을 믿어달라니까, 얘들아?
“유사시에는 저희는 신경 쓰지 마시고 주인님의 안전을 최우선시해주십시오.”
엄청나게 비장한 표정의 하녀들이 내 주변을 감싸고 전진하기 시작했다.
***
―스릉! 챙!
결론적으로 하녀 원투쓰리에게 내가 점수를 준다면 80점쯤 되시겠다.
그들은 생각보다 뜬금없이 튀어나오는 몬스터들도 잘 처리했다.
처음 게이트가 열렸을 때 한국 헌터들보다는 훨씬 나은 반응이었다.
대부분의 헌터들은 자신이 싸울 힘이 있다는 걸 알게 되는 데에만도 시간이 오래 걸렸기 때문이었다.
S급인 내가 A급 하위 던전을 간신히 깼던 것처럼.
지금은 술 마시면서 술병 들고도 깰 수 있을 거다.
하지만 그때는 몰랐다.
내가 어떤 힘을 가지게 됐는지.
그래서 힘을 가지고도 던전을 클리어하기가 힘들었다.
“하아!”
하녀2가 검을 들고 뛰쳐나갔다.
눈앞에 튀어나온 나무 모양의 몬스터가 그대로 반으로 갈라졌다.
내가 봤던 헌터들과 이들은 달랐다.
원래 몬스터를 상대하던 세계의 사람들이라 그런지, 자신이 어느 정도의 힘을 가지고 있는지 명확히 알고 있었다.
덕분에 게이트에 적응하는 것도 빨랐다.
그리고 빛의 인도를 받는 것이 정답이라는 것도, 빠르게 알게 되었다.
“……아무래도 어떤 마법적인 힘이 이끌고 있는 것 같습니다.”
보스방 직전까지 인도의 빛을 의심하던 하녀 원투쓰리가 결국 말했다.
“다른 사람들은 신시안의 가르침이라고 하…….”
말하던 난 곱게 입을 다물었다.
맞아, 얘네는 신재헌이 보냈지.
다시 말해 황가 사람들이란 의미였다. 신시안의 뜻이라고는 절대 안 할 거였다.
설마 그래서 안 믿은 거였냐!
소문도 들었을 테고, 금빛이 뻔히 있는데 의심한 이유가 교단이랑 사이가 안 좋아서였냐고!
이런 데에서는 그런 사적…… 아니, 공적인 감정은 접어둬!
“몬스터 무리가 다가옵니다!”
“전원 경계 태세!”
하녀1이 아무래도 셋 중 은연중에 지위가 높은 듯했다.
그녀가 명령하자 하녀 투쓰리가 일사불란하게 자세를 잡았다.
―스슥!
그리고 빠른 속도로 사라졌다.
같은 C급인 데다 잔상에 익숙한 내 눈에도 빠르게 보일 정도라면, 속도 관련 스킬은 거의 A급에 가까운 수준인 게 분명했다.
―챙! 챙! 챙!
세 명은 똑같이 튀어나가서 똑같은 자세로 검을 휘둘렀다.
“완전 똑같네.”
감탄이 나올 정도였다.
마치 복사 붙여넣기라도 한 것처럼 같은 자세로 검을 휘두르는 게.
어떻게 저렇게…… 아.
“혹시 저것도 검식인가?”
근데 아무리 검식을 익혔어도 저렇게까지 동시에, 똑같이 검을 휘두를 수가 있나?
게다가 내 눈에는 그들의 동작이 동시에 끝날 때마다 푸른빛의 빛이 튀는 것이 분명히 보였다.
저건 뭔가 보너스 데미지가 들어갈 때의 스킬 이펙트였다.
혹시 셋이 동시에 공격하면 뭔가 보너스 데미지라도 붙는 패시브 스킬이 있나?
물론 그걸 하녀 원투쓰리한테 물어봐도 시스템창이 없으니 본인들도 모를 터다.
―써걱!
시원하게 나무를 가르는 검을 보다가, 난 문득 눈을 가늘게 떴다.
“오…….”
휘두르는 검은 일사불란하게 똑같은 것도 모자라서, 일종의 마력까지 느껴졌다.
내가 검에 마력을 싣는 사람이기에 더 자세히 볼 수 있었다.
확실히 저건 포를랭 1검식 같은 스킬처럼 일종의 검로를 스킬화한 무언가에 가까웠다.
다른 방향으로 검을 휘두를 수도 있지만, 잡스러운 몬스터를 처리할 때에는 똑같은 자세로 검이 먼저 나가는 게 그 이유인 듯했다.
“매크로 같은 건가?”
컴퓨터로 반복동작을 수행하게 하는 매크로처럼, 아예 동작 자체를 스킬화한 것이다.
“오…….”
저게 나도 되나?
만일 된다면 잔상 스킬을 여러 번 덧입힐 때도 스킬을 일일이 쓸 필요가 없을 것이다.
저번에 검술 대회에서, 루릴 영애와 싸울 때에도 다발로 뜨는 시스템창에 신경 쓰랴, 영애의 검을 피하랴 정신없었던 게 생각났다.
시스템창이 뜨는 걸 단축할 수 있다면 그야말로 대박인데?
그렇게 생각한 순간이었다.
“주인님! 조심하십시오!”
―슈우우웅!
그림자가 지기에 본능적으로 하늘을 쳐다보니, 웬 거대한 밤톨이 내게 떨어져 내리고 있었다.
물론 그 밤톨은 일반적인 크기가 아니었다.
사람 하나는 물론이고 건물도 무너뜨릴 것 같은 거대한 공성추 크기의 밤톨이었다.
고민할 시간이 없었다.
[잔상(SS+) 스킬을 사용합니다.]
난 뒤이은 시스템창이 뜨기도 전에 잔상 스킬을 한 번 더 사용했다.
[잔상(SS+) 스킬을 사용합니다.]
[적용 대상 : 수룡의 가시비늘(B)]
[적용 대상 : 수룡의 가시비늘(B)의 잔상]
시스템창 순서가 꼬이면서 검 끝에 푸른 마력이 흘렀다.
스킬 여러 개를 묶는 건 안 되나?
그렇게 생각한 순간.
[스킬 매크로가 생성되었습니다.]
[‘매크로1(가제)’의 이름을 지정해주십시오.]
지금 몬스터 날아오는데 그게 문제냐!
[‘지금몬스터날아오는데그게문제냐’ 지정되었습니다.]
예?
[매크로 ‘지금몬스터날아오는데그게문제냐(C)’를 사용합니다.]
[잔상(SS+) - 잔상(SS+) 스킬을 사용합니다.]
[적용 대상 : ‘수룡의 가시비늘(B)의 잔상’의 잔상]
뭐뭐뭐라고?
정신을 차리기도 전에 새파란 잔상 수십 개가 하늘을 뒤덮었다.
내 눈으로도 쫓기에도 바쁜 속도의 잔상이었다.
시스템창이 뒤늦게 떴다.
[빠른 스킬 중첩으로 속도 보너스 적용(10%, 헌터랭크 상한)]
[빠른 스킬 중첩으로 데미지 보너스 적용(10%, 헌터랭크 상한)]
요컨대 랭크업하면 보너스 데미지랑 속도가 더 붙는다는 소리?
그 사실에 감동받은 것과는 별개로.
―파바바바바박!
SS+급 스킬을 중첩으로 몇 개나 맞은 불쌍한 밤톨이 가루가 되어 떨어져 내리는 걸 보면서 난 심각해졌다.
[스킬 매크로 :
- 지금몬스터날아오는데그게문제냐(C)]
……이거 이름 바꿀 수 있는 거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