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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던전의 S급 시한부 영애 (40)화 (40/218)

40화

“네, 네?”

놀라서 헌터 채팅에서 시선을 떼고 보니, 나를 붙잡은 건 바이야 백작이었다.

“나중에 꼭 한 수 가르침을 받고 싶소!”

그는 감명받았다는 얼굴이었다.

“예?”

뭘 갑자기 한 수야? 바둑 둬?

“이번 사태에서 경의 실력에 크게 감탄했소이다. 내 지금까지 수련하면서 큰 벽을 만난 느낌이었는데 경을 보고 깨달음을 얻은 것 같소. 돌파구가 보이는 기분이오.”

그 말에 난 바이야 경의 머리 위를 흘끗 보았다.

나랑 잘 아는 사이도 아닌 데다 나보다 등급이 높은지 랭크는 보이지 않았지만, 시스템으로 따지자면 그는 ‘랭크업 퀘스트’를 못 받은 것이 분명했다.

요컨대 경험치는 충분하지만 각성할 계기는 찾지 못한 상태.

숱한 헌터들이 이 상태에서 벽을 돌파하지 못하고 멈춰 선다.

하지만 바이야 백작은 그 벽을 부술 방법을 내게서 찾았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눈에서 광채가 날 법도 했다.

이해는 하는데.

“그, 손 좀…….”

부담되그든요?

“아, 죄송하오!”

죄송합니다면 죄송합니다고 미안하오면 미안하오지 죄송하오는 뭐야?

“아무튼 꼭 나중에 나와 검으로 이야기를 나눠 봅시다! 지금은 바빠서 이만!”

그러더니 바이야 백작은 얼굴을 붉히며 내 앞에서 사라져 버렸다.

뭐야?

당황한 순간이었다.

[서브 퀘스트 ‘가주의 일’ 클리어!]

[보상 : 모든 능력치 +10%]

올라가는 능력치를 보니 바이야고 바가지고 신경도 쓰이지 않았다.

……이만하면 연회 또 할 만한 것 같은데, 또 퀘스트 안 주나?

[…….]

물론 싸가지 없는 시스템은 조용했다.

염병!

***

나를 포함한 귀족들이 각 영지에 돌아간 후.

영지들은 예상대로 개판이 나 있었다. 다행히 순찰 돌던 내 기사(라고 부르고 신재헌의 기사라고 읽는 이)들은 이상함을 느끼자 곧바로 대응했다.

A급 수준의 기사들이었기 때문에 게이트가 폭발하든 게이트 안으로 들어갔든 몬스터 처리에는 문제가 없었다.

그래서 피해는 적었다.

하지만 피해가 컸던 가문들도 있는 듯했다.

서제국이 마치 게이트가 열린 직후의 한국처럼 혼란스러워졌을 때였다.

신재헌의 황명이 내려왔다.

[전국 각지에 기이한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

이를 ‘게이트’라 명명하며, 각 영지는 이 게이트를 진화하는 데에 힘쓰도록 하라.]

그러면서 같이 배부된 것에는 게이트에 대한 기본적인 자료가 들어 있었다.

물론 우리가 아는 게이트에 대한 전부가 쓰인 건 아니었다.

게이트는 일종의 아공간 안으로 들어갈 수 있는 문이라는 점, 아무도 들어가지 않으면 폭발해 몬스터를 쏟아낸다는 점 정도가 쓰여 있을 뿐이었다.

그런데, 여기서도 게이트야?

[세니아 드 에델바이스(신유리)>>> 이거 우리 쪽 이름이랑 똑같이 하면 RP 페널티 먹는 거 아니에요?]

이유 없이 게이트란 단어를 붙일 수는 없지 않은가?

[클로나 에이센(예리언님)>>> 이쪽에서도 딴 동네 가는 문은 게이트라고 불러서 상관없는 것 같아요]

아, 그런 거였어?

하긴, 신재헌이 생각 없어 보이긴 해도 정말 생각 없이 움직이는 놈은 아니다.

그렇게 그를 향한 믿음을 1% 내보인 순간이었다.

[아이반 엘레티아 폰 카르만(신재헌놈)>>> 아 그래요? 다행이네]

몰랐냐!

[아이반 엘레티아 폰 카르만(신재헌놈)>>> 이름 괜히 다르게 지었다가 말실수할까봐 대충 지음]

……정말 딜러다운 선택이었다.

***

어느 세계든 게이트 초반은 다 비슷한가 보다.

한국에서도 그랬다.

[(속보) 강남 한복판 ‘기현상’ 관측…… 서울시, 대피 명령]

당시에는 게이트가 뭔지 몰랐다.

시스템창을 볼 수 있었던 초기 각성자인 나조차도 강남에 뜬 게 게이트인 줄은 몰랐다.

그래서 조심스럽게 접근한답시고 시간을 너무 끌었고, 결국 그 게이트는 폭주해 버렸다.

그리고 그건 이 세계 사람들도 마찬가지인 듯했다.

“영지 여러 구석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보고가 올라오고 있습니다.”

내가 저택에 도착하자마자 들은 건 다 게이트에 관한 보고였다.

“그래서 처리는?”

“일단 정해진 순찰 인력이 기현상이 일어난 곳 옆에서 대기하고 있었기 때문에 큰 문제는 없었습니다. 그런데…….”

내게 보고하던 집사 헬렌이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미처 처리되지 못한 ‘게이트’들에서 괴물들이 쏟아져 나왔다고 합니다.”

헬렌은 곤란한 얼굴이었지만 내게 낯선 일은 아니었다.

누가 자기 집 옆에 이상한 게 나왔다고 접근해 보려고 하겠는가?

강남 한복판의 게이트처럼 ‘전문가’가 오길 기다리고 있었을 것이다.

“파견할 병력은?”

“아직 여유롭습니다.”

헬렌은 내가 안 놀라는 것이 좀 신기한 듯했다.

이거 페널티 먹는 거 아니겠지? 놀란 척해야 돼? 놀란 척해야 하는 거면 지금 빨리 말해줘!

[…….]

다행히 시스템창은 조용했다.

음, 좋아. 난 그냥 무슨 일이 일어나든 침착한 에델바이스 백작으로 밀고 나가기로 결정했다.

“몬스터가 쏟아져 나온 곳 근처의 영지민들은 모두 대피시키고, 기사들을 투입해. 아마, 기사 세 명이 짝지어 간다면 두세 무리의 몬스터는 문제가 없을 거야.”

게이트 초기엔 그렇게 등급이 높은 게이트가 나오지 않으니까.

난 뱉었다간 빼도 박도 못하게 페널티인 뒷말은 당연히 삼켰다.

“알겠습니다.”

헬렌은 내 말에 곧바로 기사관으로 달려 나갔다.

하지만.

“가주님!”

“서쪽에 게이트가!”

“동남쪽에 게이트가 나타났다고 합니다!”

“산에 미처 발견하지 못한 게이트가……!”

곧 일거리가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눈이 돌아갈 것 같아!

“이쪽 게이트들엔 기사 두 명씩 투입하고 지친 기사들이 있으면 교대시켜.”

게이트에서 몬스터들이 쏟아져 나온 후에는 그 시체를 처리하는 것도 일이었다.

한국이었으면 길바닥에 널브러진 게이트 부산물을 보고 전문가들이 몰려와서 옥X싹싹 부산물제거 해갔겠지만 여긴 그런 사람이 없었다.

아니, 딱 한 명 있었다.

[세니아 드 에델바이스(신유리)>>> 소예리 헌터님, 바빠요?]

온갖 스킬을 다 갖고 있는 소예리 헌터라면 가능할 것이다.

물론 전문 해부관들보다는 못하겠지만, 적어도 B급 이하의 부산물이라면 얼마든지 채취 및 가공이 가능할 것이다.

[클로나 에이센(예리언님)>>> 넵 바빠용]

문제는 그런 사람이 이 세계에 소예리 헌터 한 명뿐이라는 것이다!

[클로나 에이센(예리언님)>>> 오늘도 야근 내일도 야근 ㅠㅠ]

이 세계 사람들이 소예리 헌터의 감정 스킬을 알 리는 없으니 일단 마법과 관계된 것 같고, 뭔지 모르겠는 물건은 죄다 마탑주에게 가져가고 보는 모양이었다.

……사람이 너무 잘나도 문제인 법이다.

물론 바쁜 건 소예리 헌터뿐만이 아니었다.

게이트는 매너 있게 9 to 6을 지켜주며 나타나는 놈들이 아니었기 때문에, 새벽에도 벼락같이 보고가 올라왔다.

그러면 병력을 재배치하는 건 내 일이었다. 집사 헬렌이나 기사들 선에선 한계가 있었다.

어느 곳에 게이트가 떴느냐에 따라 게이트의 난이도가 달라지니까!

특히 아무리 게이트 등장 초기라 해도, 숲이나 산같이 생명체가 많은 곳에서 게이트가 나타나면 몬스터의 수부터 달랐다.

초기치고 수준이 높은 게이트가 등장할 가능성도 있으니 항상 주위 소식에 주의를 기울여야 했고.

“가주님!”

“급전입니다!”

덕분에 난 사흘을 밤낮없이 일해야 했다.

[세니아 드 에델바이스(신유리)>>> 하늘에서 일거리가 쏟아진다]

[아이반 엘레티아 폰 카르만(신재헌놈)>>> 야나두]

바쁜 건 주이안 씨도 마찬가지인 듯했다.

[아리엔사 시안 데마르(주이안씨)>>> 신전에도 부상자들이 많아졌어요. 성기사들과 함께 보낼 인력도 확보해두어야 하는데, 자신부터 치료해 달라는 자들이 많습니다.]

말이 길어진 걸 보니 왠지 주이안 씨가 좀…….

[아리엔사 시안 데마르(주이안씨)>>> 일에도 우선순위가 있는데, 그걸 이해해주지 않는 자들이 많군요.]

[아리엔사 시안 데마르(주이안씨)>>> 게다가 기도하겠다는 자들까지 신전으로 몰려와서…….]

귀찮게 하지 말고 죽어라! 하는 성격이 아니라서 그렇지 주이안 씨도 열 받을 대로 받은 것이 분명했다.

[클로나 에이센(예리언님)>>> 그래도 신시안 교 믿는 사람은 많아지겠네~]

[세니아 드 에델바이스(신유리)>>> 왜요?]

나 같으면 신이 제국을 버렸다고 욕할 것 같은데? 나만 부정적인 거야?

내 질문에 소예리 헌터는 가볍게 답했다.

[클로나 에이센(예리언님)>>> 게이트 클리어한 사람들마다 빛이 길을 인도해줬다고, 신시안 님의 도우심이 있었다고 하더라고요~ 이야 멋져~]

물론 그 신시안 님의 도우심을 전해야 할 교황님은 빡친 상태였다.

지금쯤 주이안 씨가 연갈색의 앞머리를 흐트러뜨린 채 이마를 짚고 있을 모습이 선명하게 그려지는 듯했다.

[세니아 드 에델바이스(신유리)>>> 교황님 지금 빡쳐서 신의 은총(물리) 하기 직전인데]

[아리엔사 시안 데마르(주이안씨)>>> 아직 그 정도는 아닙니다.]

주이안 씨는 바로 답했지만 곧 채팅창은 웃음으로 뒤덮였다.

[아이반 엘레티아 폰 카르만(신재헌놈)>>> 아직이면 빡치긴 빡치셨다는 거네ㅋㅋㅋㅋㅋㅋㅋ]

[클로나 에이센(예리언님)>>> 헉 무서워~]

하여간 다들 주이안 씨 놀리는 데에는 진심이었다.

[세니아 드 에델바이스(신유리)>>> 님들 그러다가 머리위에 신시안 님의 벼락이 내리는 수가 있어요]

물론 나도 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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