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화
D급답지 않은 스탯에 그림자 속의 무법자(S) 스킬 보너스까지 붙으니, 속도는 상상 이상이었다.
숨을 죽인 내가 바닥을 박차고 도약했다. 검을 내지르는 건, 한순간이었다.
그리고 그 찰나 사이에, 난 성공했다는 걸 깨달았다.
[빅 샹들리에(A)의 약점을 공략하는 데에 성공하였습니다!]
[빅 샹들리에(A)의 약점을 공략하는 데에 성공하였습니다!]
[빅 샹들리에(A)의 약점을 공략하는 데에 성공하였습니다!]
[빅 샹들리에(A)의 약점을 공략하는 데에 성공하였습니다!]
……
시스템 메시지는 정확히 열여섯 번 떴다.
그러면서 커다란 보스 샹들리에의 양초에 불꽃이 들어오자, 보스룸 안이 순식간에 환해졌다.
[던전 내 기여도(%)
리언 드 자레트(11.03%)
레디드 드 바이야(9.83%)
세니아 드 에델바이스(8.89%) <(NEW!)
…….]
그와 동시에 내 기여도도 불붙은 듯이 올라가는 게 보였다.
[‘헌터 세니아 드 에델바이스(D) → 빅 샹들리에(A) 약점 공격 보너스 데미지가 적용되고 있습니다.]
다른 귀족들에게는 저 시스템 메시지가 보이진 않을 터다.
하지만 다들 괜히 B~C급으로 랭크된 건 아닌 듯했다.
그들은 샹들리에에게 불꽃이 효과가 있다는 걸 곧바로 알아차렸다.
“불에 약한 모양이오!”
“그런데 양초는 본디 불을 붙이는 물건이 아니오? 어째서…….”
“녹으니까요.”
내가 짧게 뱉은 말에 시선이 쏠렸다.
그들의 검날이 이가 좀 빠져 있는 모습을 불쌍하게 보지 않으려고 애쓰며, 난 설명을 덧붙였다.
“양초가 불에 녹으니까요. 저 샹들리에는 지금 굵은 양초가 붙은 촛대를 휘둘러 공격하고 있어요. 근데 그 양초가 없어지면?”
난 손을 펴 보였다.
“공격수단이 없어지지 않을까요?”
“아……!”
바이야 백작은 눈을 크게 떴다.
니네 그것도 생각 안 해 본 거야?
저렇게 수많은 샹들리에 무덤을 만들어 놓고?
그런 나약한 마음가짐으로 게이트에 빠진 거야?
―화르륵!
양초도 거대하고 심지도 거대한 만큼 불꽃도 커다랬다. 요컨대 거센 불꽃에 양초는 더 빨리 녹는다는 소리다.
[크오오오오!]
빅 샹들리에가 울부짖었다. 물론 이놈은 벌써 반쯤 녹았기 때문에 짱 세진 않았다.
“에델바이스 백작……!”
“오오……!”
정신을 차린 귀족들이 뒤늦게 나를 다시 보는 게 보였다.
그들은 분명히 보았을 것이다.
안 보고 싶어도 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새까만 어둠 속에서 정확히 샹들리에의 심지를 치고 지나간 열여섯 갈래의 잔상을.
그 불꽃을.
“괴물이 맥을 못 추고 있소!”
“지금 공격하세!”
검을 날카롭게 세운 귀족들이 순식간에 샹들리에의 중심으로 파고들었다.
아니, 저 막타충들이!
순간 빡쳤지만 기여도 창을 보고 그냥 가만히 있기로 했다.
[세니아 드 에델바이스(87.63%)
리언 드 자레트(3.03%)
레디드 드 바이야(2.87%)
…….]
보스에게 데미지를 지나치게 많이 준 탓인지, 내 기여도는 이미 하늘을 뚫고 있었다.
그만큼 보스 샹들리에가 체력도 훨씬 많고 공격력도 강한 보스몹이었다는 이야기였다.
그래, 막타 너희 가져라.
난 자비로운 미소로 다른 귀족들을 응원했다.
그렇게 샹들리에의 기둥에 귀족들의 검이 일제히 꽂히는 순간.
―쩡!
유리가 박살 나는 것 같은 소리와 함께, 샹들리에의 움직임이 우뚝 멈추었다.
클리어다.
그렇게 생각하자마자 커다란 샹들리에가 부서져 내렸다.
“!”
놀란 귀족들이 뒤로 물러났지만, 실체 없는 조각들은 그들의 몸에 닿자 빛을 뿌리며 흩어져 버렸다.
[돌발 게이트 던전 ‘샹들리에의 반란(B)’ 클리어!]
[헌터 ‘세니아 드 에델바이스(D)’ 기여도 88.71%]
[압도적인 기여도로 보너스 보상이 주어집니다.]
[적용 가능 보상 정산 중…….]
시스템창이 순식간에 우르르 떴다가 사라졌다. 그리고 이내 내 앞에 뜬 선택지는.
[선택 가능 보상 :
A) 전체 능력치 +20%
B) 헌터 랭크 D → C 승급]
C) A급 장비 아이템 랜덤 획득]
당연히 저 중에선 승급 아니냐?
능력치야 올릴 방법이 다양하지만 승급은 요원하던 참이었다.
실실 새어 나오려는 웃음을 참으며 B를 선택하는 사이, 귀족들이 한쪽을 가리켰다.
“나가는, 나가는 길이 보입니다!”
“오! 바깥이 보입니다!”
튜토리얼 덕에 빛이 그들을 게이트 바깥으로 이끌고 있을 터였다.
일단 C급 각성은 나중에 즐겨야겠다.
“대체 이게 무슨 일이었는지…….”
“돌아가면 신전에 보고해야겠습니다.”
“신전에만 보고하실 참이오?”
“물론 황궁에도 당연히…….”
귀족들이 웅성거리며 걸음을 옮길 때였다.
자레트 후작이 내게 시선을 주었다.
“에델바이스 백작의 활약이 정말 대단했습니다.”
“나도 인정하는 바요!”
열혈 검사 바이야 백작도 목소리를 높이고 있었다.
“검은 그 역사보다 실전에서의 효용이 더 중요하다……. 또 하나를 배웠소이다.”
그는 뭔가 깨달은 것처럼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그걸 이제 알다니 심각하게 진도가 느린 친구였다.
“어서 밖으로 나가죠.”
난 게이트 바깥을 가리켰다. 익숙한 홀의 모습이 보였다.
후, 일단 나가면 헌터 채팅부터 해야겠다.
공포 디버프가 뜬 걸 분명히 세 헌터도 봤을 것이다.
나 말고 다른 헌터가 D급 상태로 B급 공포에 걸려 있으면 나라도 걱정돼서 발을 동동 굴렀을 터였다.
빨리 나가서 멀쩡하다고 알려줘야지!
[던전 ‘샹들리에의 반란(B)’에서 나가시겠습니까?]
[던전을 나가면 다시 들어오실 수 없습니다.]
[던전에 남은 던전 부산물 및 기타 물품은 사라집니다.]
익숙한 시스템창을 무시하며 난 그대로 걸음을 옮겼다.
―파앗!
그리고 빛이 번쩍이고, 이내 홀의 모습이 보였다.
[아이반 엘레티아 폰 카르만(신재헌놈)>>> 지금 게이트 뜨는 것 같은데]
[아리엔사 시안 데마르(주이안씨)>>> 신유리 헌터님, 계시는 자리에서 속히 벗어나세요.]
조금 간격을 두고 헌터 채팅이 우르르 올라오기 시작했다.
내가 던전 안에 있는 동안 주고받았을 대화였다. 눌러서 시간을 확인해 보니 8시 33분이었다.
난 아예 헌터 채팅 설정을 시간이 보이게 바꿔 버렸다.
[[21:01] 클로나 에이센(예리언님)>>> 이게 무슨 일이야~]
[[21:01] 아이반 엘레티아 폰 카르만(신재헌놈)>>> 이쪽은 클리어]
[[21:02] 클로나 에이센(예리언님)>>> 나도나도]
[[21:02] 아리엔사 시안 데마르(주이안씨)>>> 저도 나왔습니다.]
[[21:02] 아이반 엘레티아 폰 카르만(신재헌놈)>>> 신유리는?]
그 뒤로 채팅이 좀 안 올라오다가 다시 올라왔다.
[[21:04] 아리엔사 시안 데마르(주이안씨)>>> 아직 전투중이신 것 같습니다.]
[[21:04] 아이반 엘레티아 폰 카르만(신재헌놈)>>> 무슨 던전에 빠졌길래 암순응이야?]
[[21:04] 아리엔사 시안 데마르(주이안씨)>>> B급 공포…….]
[[21:05] 클로나 에이센(예리언님)>>> B급이면 너무 높은 거 아니에요?]
내 걱정으로 가득 찬 헌터 채팅을 보니 마음이 좀 아렸다.
무의식중에 벽의 시계를 보니 벌써 11시였다.
“벌써 두 시간―”
내가 입을 열었을 때였다.
“크흠.”
옆에서 자레트 후작이 재빨리 헛기침했다.
왜요? 뭔데 입 막아? 그를 무심코 돌아본 순간이었다.
“?”
난 입을 떠억 벌렸다.
황가의 문장이 선명하게 새겨진 깃발이 보였다.
그리고 그 옆에서, 신재헌이 거대한 대검을 바닥에 꽂아 넣은 채 이쪽을 보고 있었다.
이미 나와 함께 게이트에 들어갔던 귀족들은 한쪽 무릎을 꿇은 채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네가 여기서 왜 나와?
“모두 나온 건가?”
신재헌이 우리를 보다가 물었다. 물론 헌터 채팅 내용은 달랐다.
[[23:46] 아이반 엘레티아 폰 카르만(신재헌놈)>>> 클리어한 거지? 다친 데는?]
[[23:46] 세니아 드 에델바이스(신유리)>>> 없어]
설마 두 시간 반이나 여기서 기다린 거야?
난 채팅창을 올려 보았다.
“예, 그렇사옵니다.”
그 사이 자레트 후작이 대표가 되어 답했다. 신재헌의 눈이 가늘어졌다.
“이, 이게 무슨 상황인지는 저희도 자세히 아는 바가 없사옵니다, 폐하.”
그러자 자레트 후작이 제 발이 저렸는지 바로 말했다.
신재헌이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
“알고 있다.”
“그런데 저쪽에 계신 분들은……?”
그때 다른 귀족이 조심스럽게 반대쪽을 흘끔 쳐다보았다.
저기 또 뭐 있어?
돌아보니 가관이었다.
“?”
신재헌의 기사들과 대립하듯 서 있는 건 신시안 교단의 성기사들이었다.
난 당황해서 헌터 채팅의 시간표시를 다시 꺼 버렸다.
[세니아 드 에델바이스(신유리)>>> 님들 여기서 싸움?]
어이가 없어서 음슴체가 튀어나와 버렸다.
[아이반 엘레티아 폰 카르만(신재헌놈)>>> 아니야]
[아리엔사 시안 데마르(주이안씨)>>> 아닙니다.]
답은 바로 튀어나왔다.
하지만 둘은 날카로운 시선을 주고받고 있었다.
이건 명백한 대치 상태였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