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 던전의 S급 시한부 영애 (37)화 (37/218)

37화

던전 공략엔 세 가지 방법이 있다.

하나. 무식하게 딜로 밀어버리는 것.

둘. 딜러, 힐러, 탱커, 보조 네 부류의 헌터가 역할 분담해서 몬스터를 처리하는 것.

셋. 던전의 스토리와 환경에 맞는 정공법을 찾아 클리어하는 것.

원래 튜토리얼 기간에는 세 번째 공략법이 많이 쓰였다.

그만큼 공략법이 눈에 띄게 잘 보였으니까.

하지만 상위 던전이 나올수록 세 번째 공략법은 거의 사용이 불가능하게 되어버렸다.

세 번째 방법은 A급 던전이라도 정공법만 안다면 C랭크 정도의 헌터들도 클리어할 수 있다는 게 장점이었다.

하지만 문제는 시간이 지날수록 정공법을 알아채기 힘든 던전만 나왔다는 게 문제였다.

결국 정착된 건 두 번째 방법, 모든 직군의 헌터들을 다 데리고 합을 맞춰 클리어하는 방식.

“근데 이 꼴에 그게 가능할 리가 없지.”

같이 온 귀족들은 검날이 상할까 걱정은 안 되는지 샹들리에를 신나게 후드려 패고 있었다.

정공법을 찾으려는 놈은 하나도 없었다.

“원래 저런 건 불로 녹여버려야 하는데.”

아쉬워서 중얼거리는 소리는 샹들리에와 검이 부딪히는 소리에 묻혀 버렸다.

여기엔 마법사도 없고, 하다못해 불속성으로 각성한 딜러도 없다.

신재헌이 있었으면 이미 이 던전의 샹들리에는 물론이고 던전 벽 자체가 녹아 버렸을 것이다.

그놈은 불속성 광역기가 있으니까. 아마 촛대도 안 남기고 녹였겠지.

하지만 여긴 튜토리얼 던전이다.

불속성 스킬을 못 쓰는 헌터들이 와도 클리어할 수 있도록, 눈에 띄게 힌트들이 널려 있을 것이다.

요컨대 어디엔가 불을 붙일 만한 게…….

“아하.”

역시 그건 눈을 돌리자마자 보였다. 한국에서 봤던 게이트도 처음 한 달은 이렇게나 친절했으니까.

―스릉! 쨍!

“흐아아압!”

여기저기서 기합 소리와 굉음이 울렸다.

귀족들이 무식하게 샹들리에를 패느라 정신없는 사이, 난 주변의 굵은 나무장작을 하나 인벤토리에 챙겨 넣었다.

D급이 돼서 무려 4칸으로 늘어난 태평양 같은 인벤토리였다.

아, 눈물 나네.

“이 정도 마물쯤이야!”

바이야 백작이 패기 있게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저 패기도 얼마 안 갈 거다.

보스는 저런 매가리 없는 날붙이에는 흠집 하나 안 날 테니까.

“카르만의 장정이라면 이 정도 몬스터는 숭덩숭덩 썰어버려야 하는 법!”

귀족답지 않게 외치는 바이야 백작은 정말 패기 그 자체였다.

검을 휘두르는 데에 기교가 전혀 없다시피 하는 걸 보면 말 그대로 높은 스탯으로 밀어붙이는 것 같은데, 보스도 저렇게 숭덩숭덩 썰릴 것 같다면 착각이다.

“하필 입장 인원이 너무 많단 말이지.”

내 귀에도 잘 안 들릴 정도의 목소리로 뇌까려 보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게 문제였다.

―쩡!

내 앞에 떨어져 내린 샹들리에를 거듭 베어 없애면서도 불안감은 사라지지 않았다.

아무리 높은 축이라지만 고작 D급에게 잡히는 B급 던전 몬스터라고?

그건 그만큼 보스에게 모든 힘이 집중되어 있다는 소리가 된다.

참 걱정이다, 얘들아.

잘하다 우리가 썰리게 생겼다.

게다가 여기 입장한 사람들의 평균 헌터랭크도 B 정도로 높은 데다, 인원이 많아서 보스가 더 강력하게 조정되었을 가능성이 높았다.

다시 말해 보스는 절대 이렇게 깡으로 패서 잡을 수 없다는 이야기다.

반드시 던전의 정공법으로 던전을 파훼해야 할 터였다.

―쨍!

내 검과 샹들리에의 기둥이 부딪쳤다.

나오는 몬스터가 죄다 샹들리에인 것하며, 던전의 이름이 ‘샹들리에의 반란’인 걸 보면 보스도 샹들리에일 것이다.

얘네보다 훨씬 크고 강하다는 걸 제하면 비슷하게 생겼겠지.

[쿠오옷!]

샹들리에들은 발광을 하며 날뛰고 있었다.

그야 당연하다.

촛대에 불이 붙어 있는 이상, 저 촛농이 모두 녹아내리면 사망이니 그걸 알고 미친 듯이 날뛰는 것이다.

그대로 둬도 죽을 텐데, 괜히 힘 빼고 있는 거다.

하지만 그걸 알려줄 순 없었다.

내가 이런 상황, 즉 게이트에 떨어진 게 처음이 아니란 걸 들켰다간 그대로 RP던전 페널티로 끝장날 테니까.

그래도 보스전 전에 체력 비축은 시켜야 하는데. 이걸 어떻게 티 안 나게 말해주지?

그렇게 고민할 때였다.

―쿠르릉……

마지막 샹들리에 몬스터가 쓰러진 순간이었다. 던전 전체가 흔들렸다.

익숙한 느낌.

[보스 몬스터 : 빅 샹들리에의 방에 입장합니다.]

보스방의 문이 천천히 열리고, 그 틈으로 드러난 건 무지막지하게 많은 샹들리에의 숲이었다.

그 모습을 보자마자 귀족들이 멈칫했다.

그러기도 잠깐, 바이야 백작이 검을 높이 들어 올렸다.

“이게 마지막인 것 같소!”

“으랴!”

그러더니 신나서 앞으로 달려 나가기 시작했다.

“잠깐!”

잠깐 서 봐, 얘들아! 그거 다 죽이면 바로 보스라고!

하지만 내 말이 들릴 리 없는 진성 퓨어딜러 귀족들은 앞으로 뛰어나가 버렸다.

아주 감동스럽게도 그들은 적을 앞에 두고 물러나는 자들이 아니었다.

“위대한 카르만을 위하여!”

“황제 폐하 만세!”

그 폐하도 이 꼬라지를 보면 두통으로 쓰러질 텐데!

난 달려 나간 귀족들을 보다가 결국 인벤토리에서 장작을 꺼냈다.

나라도 정공법 써야겠다!

***

“마지막이오! 힘냅시다!”

자레트 후작이 외쳤다.

선두로 달려 나간 건 바이야 백작이었지만, 모두를 지휘하는 건 자레트 후작이었다.

“옳소! 이것들만 해치우면 끝이오!”

아닐걸? 끝 아닐걸?

하지만 여기에서 그 진실을 아는 건 나밖에 없었다.

그 사이 샹들리에가 정리되는 건 순식간이었다.

이때다!

난 마지막 샹들리에가 죽기 직전에, 장작에 불을 붙여 인벤토리에 던져 넣었다.

[불붙은 장작(D)]

무사히 인벤토리에 아이템이 들어간 것을 확인한 순간이었다.

―쿠쿠쿵……!

주변이 아까보다 더 거세게 뒤흔들렸다.

귀족들 중 일부의 얼굴이 환희로 물들었다.

“오, 이제 빠져나갈 수 있나 봅니다!”

행복회로 작작 돌려라! 그렇게 생각한 순간이었다.

―팟!

벽에 매달려 있던 불들마저 꺼져버렸다.

보스룸 안이 온통 어둠에 휩싸인 것이다.

당연히 나도 보이는 게 하나도 없었다.

아니, 내가 이 중에 제일 앞이 안 보일 것이다. D급 스탯으로 어둠 속에 적응하는 게 쉬울 리가―

[그림자 속의 무법자(S) 활성화됩니다.]

[암순응(S) 활성화됩니다.]

“오.”

이게 이렇게 쓸모 있을 줄은 몰랐지! 암순응이 켜지자마자 주변이 아주 선명하게 보였다.

귀족들은 아직 어둠에 덜 적응됐는지 주춤거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 너머로, 벽이 움직이고 있었다.

정확히는 벽 안에 있는 무언가가, 나오고 있었다.

―쿠쿠쿠쿵!

“조심해요!”

나도 모르게 외쳤다.

그와 비슷한 순간에 자레트 후작이 외쳤다.

“뭔가, 뭔가 오고 있소!”

앞도 제대로 안 보이는 것 같은데, 감 하나는 기가 막힌 양반이었다.

―콰드드득!

그러는 사이, 이내 벽을 뚫고 거대한 형체가 튀어나왔다.

“와.”

난 나도 모르게 입을 떠억 벌렸다.

와 씨, 생각보다 너무 큰데?

샹들리에의 촛대는 성인 한두 명이 기대 있어도 꿈쩍도 하지 않을 것처럼 거대하고 견고해 보였다.

그리고 그 촛대는 자그마치 열여섯 개.

그 중앙에 있는 기둥은 거대한 신전의 기둥처럼 굵기만 했다.

그 모습을 보는 시야 한쪽으로 던전 내 기여도 창이 반짝거렸다.

보스가 나타났으니 시스템에서 한 번 더 강조해주는 것이다.

[던전 내 기여도(%)

리언 드 자레트(13%)

레디드 드 바이야(10.4%)

……

세니아 드 에델바이스(0.93%)]

나야 보스전에 대비해 이것저것 준비하느라 기여도가 낮은 게 당연하다.

물론 한국이었으면 트롤로 신문 1면행이었다.

‘잔상’ S급 딜러 신유리, 던전에서 1%도 기여 안 해……. 신 모 헌터 “라면 먹으면서 딜했냐” 파문…….

“뭔, 뭔가 느낌이 안 좋소!”

그때 어떤 귀족이 다시 외쳤다.

―쿠르릉!

다시 한번 던전을 뒤흔들며 보스 몬스터가 완전히 모습을 드러냈다.

[보스 : 빅 샹들리에(A)가 출현하였습니다!]

뭐? A?

B급 던전에 A급 보스라고?

“이 소리는 대체……!”

“심상치 않소!”

귀족들이 두리번거렸다.

그러는 사이, 어둠에 적응한 자레트 후작이 외쳤다.

“조심하시게!”

그리고 그렇게 외친 후작에게로 먼저 샹들리에의 거대한 팔, 아니, 거대한 촛대가 떨어져 내렸다.

굵직한 양초가 꽂혀 있는 물건이었다.

“허억!”

어둠 속이지만 자레트 후작은 간신히 피해냈다.

그 옆에 있던 이름 모를 귀족이 여파에 날아가 처박히는 게 보였다.

“으아악!”

“뭔, 뭔가 있소!”

아직 눈이 어둠에 익숙하지 않은 자들은 비명을 지르며 되레 양초 쪽으로 달려가기도 했다.

빅 샹들리에는 그런 자들에게도 자비 없이 촛대를 휘둘렀다.

―퍼억!

살벌한 소리가 났지만 다행히 한 방에 죽는 사람은 없어 보였다.

뿐만 아니라 빅 샹들리에는 내 주변으로 올 생각은 하지도 않았다.

그림자 속의 무법자 스킬 때문인 듯했다.

“불, 불을 켜야 해!”

사람들은 부지런히 뛰어다녔지만 아까 다 없애버린 샹들리에 몬스터와, 보스몹이 나타나면서 꺼진 횃불 말고는 불이 있을 리가 없었다.

내 인벤토리에, 딱 하나 남은 것 말고는.

초는 열여섯 개.

나는 사람들이 쫓기는 사이로 샹들리에의 모습에 집중했다.

불을 붙이는 순간 그 근처로 시선이 쏠리는 건 당연한 일이다.

그럼 어설프게 불붙은 장작 들고 설쳤다간 나 때려 달라고 광고하는 꼴이나 마찬가지다.

이 어둠 속에선 나만 보일 테니까.

그때는 그림자 속의 무법자(S) 스킬도 효과 끝이다.

―쿠콰쾅!

문제는 문어발처럼 움직이는 양초의 심지에 하나하나 불을 붙이는 건 거의 불가능하다는 것이었다.

그럼 한 번에 어떻게…….

“……아.”

난 눈을 크게 떴다.

신재헌을 제외하면, 이 세계에서 저 열여섯 개의 양초에 불을 동시에 붙일 수 있는 사람은 나뿐일 것이다.

난 인벤토리에 손을 집어넣으며 저도 모르게 웃었다.

기회는 한 번뿐.

하지만 자신 있었다. 수도 없이 해왔던 것이니까.

“간다.”

[잔상(SS+) 스킬을 사용합니다.]

[적용 대상 : 불붙은 장작(D)]

[잔상 효과 : ‘불붙은 장작(D)’ 유지 중]

숨을 크게 들이마신 난 연달아 스킬을 사용했다.

[잔상(SS+) 스킬을 중복 사용합니다.]

[적용 대상 : ‘불붙은 장작(D)의 잔상’]

마지막으로 검을 내지르기 전, 내 눈이 버프창을 확인했다.

[세니아 드 에델바이스(신유리) - D급(딜러)

- 디버프 : 공포(B)

- 버프 : 그림자 속의 무법자(S) 암순응(S) 잔상(SS+) 잔상(SS+)]

―파파파팟!

어둠 속에서, 순식간에 불꽃 수십 갈래가 양초 사이를 파고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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