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화
[B급 던전, <샹들리에의 반란>에 입장합니다.]
[던전 제한에 따라 헌터 채팅이 제한됩니다.]
뭐라고?
원래 던전 안에서는 헌터 채팅이 안 되는 게 맞았지만, 이 RP던전에선 예외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게이트 안의 게이트는 다른 던전과 똑같이 인식되는 모양이었다.
[세니아 드 포를랭(신유리) - D급(딜러)]
[아이반 엘레티아 폰 카르만(신재헌놈) - S급(딜러)]
[클로나 에이센(예리언님) - S급(보조)
- 버프 : 시야확장(A) 비행(A)]
[아리엔사 시안 데마르(주이안씨) - S급(힐러)]
하지만 다른 헌터들의 상태창은 보였다. 원래 다른 던전이라면 이것도 안 보여야 했다.
그나마 다행인가.
그렇게 생각하는 순간 주이안 씨와 신재헌의 상태창도 시끄러워졌다.
[아이반 엘레티아 폰 카르만(신재헌놈) - S급(딜러)
- 버프 :검의 수호자(A) 뜨거운 피(A) 화염검(SS)]
신재헌은 제대로 전투 모드인 모양이다.
반면 주이안 헌터는 다른 딜러들을 보조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아리엔사 시안 데마르(주이안씨) - S급(힐러)
- 버프 : 만독불침(SS) 회복의 발걸음(S) 안전지대(S)]
다들 무사한가 보다…… 하고 생각하던 난 머리를 긁적였다.
하긴, 여기서 지금 가장 생사가 걱정되는 건 나였다.
[던전 내 기여도(%)
세니아 드 에델바이스(0%)
레디드 드 바이야(0%)
…….]
던전답게 기여도%가 표시되는 창도 떴다. 정말 RP던전이 아니라 다른 던전으로 취급되는 모양이다.
그럼 내 S급 능력치도 돌려줘야 하는 거 아니냐? 너무한 거 아니냐?
“이게 무슨…….”
“환각 마법인가?”
귀족들은 다들 당황하고 있었다.
나도 당황한 척 주변을 두리번거려주는 걸 잊지 않았다.
하지만 난 이 상황이 누구보다도 익숙했다.
돌발 게이트.
이게 내가 아는 그 게이트가 맞는다면, 밖에서 이 게이트 안으로 접근할 수 있는 건 한 시간 이내다.
그리고 이 게이트를 장난감처럼 가지고 놀 수 있는 세 헌터는, 다른 던전에 있었다.
게다가 세 헌터의 버프창을 보면, 서로 상성이 맞는 스킬들이 아니었다.
헌터팀을 같이 한 게 몇 년인데, 이 정도야 척 보면 안다.
한마디로 세 명은 각자 다른 던전에 떨어진 것이다.
당연히, 한 시간 이내로 달려오는 건 불가능했다.
게이트 안에 게이트라니, 이게 무슨 마트료시카 같은 전개야?
“환각…… 같은 건 아닌 듯합니다. 너무나 생동감 있는 느낌입니다.”
한 귀족이 풀을 만져보며 말했다.
시스템창 같은 건 보이지 않는지, 허공에 시선을 놓는 자는 없었다.
“강력한 마력이 느껴지는군요.”
“어쨌든 이곳에서 나가려면 앞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는 것 같소.”
다행히 상태창이 없어도 다들 본능적으로 뭘 해야 하는지는 느끼는 듯했다.
“앞에서 강한 살기가 느껴집니다.”
귀족들이 다들 정신을 차리고 주변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그래도 꼴에 검사들이라고 정신 차리는 건 빠르군.
“대체 어떤 사악한 마법사가 이런 짓을!”
물론 분개하는 덜떨어진 놈도 있었다.
그러게, 어떤 사악한 마법사가 할 짓이 없어서 시골 촌구석 홀 한가운데에 게이트를 열겠니?
말도 안 되는 소리고, 이건 그냥…… 세계의 이변일 뿐이다.
우리가 있던 세계가 그랬듯이.
“일단 이 빛을 따라서 가봅시다.”
“그럽시다!”
가장 작위가 높은 자레트 후작이 자리를 정리했다.
빛?
난 사람들이 쳐다보는 방향을 쳐다보았지만 보이는 건 없었다.
“아.”
혹시 튜토리얼 때 그건가?
처음 게이트가 열린 후 첫 달 동안은 길을 안내해주는 금색 빛이 생겼었다.
그러다가 한 달이 지나자마자 번개같이 사라졌지만.
나는 이미 유경험자라 다른 세계의 던전이라 해도 보이지 않는 모양이었다.
정말, 게이트네.
난 눈살을 찌푸렸다.
“가보죠.”
스릉! 하나둘씩 검을 뽑는 소리가 생경했다.
아까는 혈기왕성해서 사람이 아니라 멧돼지가 달려와도 덤빌 것 같았던 바이야 백작도, 지금은 조용해진 상태였다.
―또각.
전투가 있을 거라곤 생각지도 못했기에, 구둣발 소리가 던전을 메웠다.
이런 신발 신고 제대로 싸우는 건 처음인데.
심지어 고등학생 때 처음 게이트 터졌을 때도 적어도 운동화에 체육복 차림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화려한 자수가 수놓인 예복에 신발은 굽이 좀 있는 구두였다.
물론 무가들의 모임인 만큼 나를 포함해 치렁치렁한 드레스를 입은 자는 없었다.
그건 좋은데…….
점점 일행은 던전 안으로 깊이 들어가고 있었다.
난 눈을 가늘게 떴다.
[강력한 기운이 느껴집니다. (현재 헌터 랭크 : D)]
[몸이 본능적인 공포에 짓눌립니다. (던전 랭크 : B)]
아니, B급 따위에 공포 디버프 걸리는 건 너무한 거 아니냐?
S급 자존심에 금 가는 소리가 선명했다.
물론 아무리 내 스탯이 D급치곤 높다고 해도, B급은 기본 스탯부터가 차원이 달랐으니 몬스터들을 때려잡는 데에는 시간이 오래 걸릴 터였다.
그래도 공포는 아니지, 좀!
[세니아 드 에델바이스(신유리)>>> B급 던전에서 공포 디버프 걸린 썰 푼다]
[현재는 헌터 채팅이 불가능합니다(던전 제한).]
맞다, 헌터 채팅도 안 됐지. 난 얼굴을 구겼다.
내가 파악한 바로는 이 파티(?)의 랭크는 평균 C 이상이었다. 가장 높아 봐야 B랭크나 A랭크에 근접한 사람 정도?
쉽게 이 던전을 깰 수 있는 인원은 아니다.
[신의 상점]
난 상점을 열었다.
남은 코인은 8만가량. 스킬 열쇠는 두 개 정도 살 수 있었다.
“원래 뽑기는 터 잡고 하는 건데.”
난 작게 중얼거렸다. 하지만 지금은 터 잡고 뽑을 틈이 없었다.
부정 타서 이상한 스킬 나오는 거 아니겠지?
난 내 기존 스킬트리를 생각하면서 열쇠 두 개를 구매했다.
[은하 서버 스킬 열쇠를 사용합니다.]
[은하 서버에서 ‘헌터 신유리(S)’의 스킬 목록을 불러옵니다…….]
제발, 쓸모 있는 거! 잔상은 이미 있지만 아무튼 쓸모 있는 거! 딜 나오는 거!
[스킬 획득 : 그림자 속의 무법자(S)]
“오.”
그림자 속의 무법자.
어둠 속에서 인기척을 내지 않는 스킬.
그리고 몬스터들의 주의를 다른 곳으로 돌릴 수 있는 스킬.
그와 동시에 어둠 속에서는 보너스 데미지 보정이 3배가 들어가는데…….
……여긴 공교롭게도 샹들리에 던전이었다. 그림자라곤 코빼기도 없다는 뜻이었다.
와! 정말 좋은 거 나왔다!
기뻐서 미쳐버릴 것 같네!
[은하 서버 스킬 열쇠를 사용합니다.]
[은하 서버에서 ‘헌터 신유리(S)’의 스킬 목록을 불러옵니다…….]
제발, 이번에는……!
[스킬 획득 : 암순응(S)]
입가에 인자한 미소가 지어졌다.
어둠 속에서 상대를 더 명확히 볼 수 있는 스킬.
당연히…… 스킬 이름답게 ‘어둠 속에서’ 크리티컬 데미지가 증가한다.
그림자 속의 무법자(S)와 같이 생겼던 스킬이었다.
와! 잘도 나온다!
이제 우리 집 딜은 누가 해주냐?
난 잠시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그림자고 암순응이고 개뿔, 눈부셔 죽을 것 같았다.
***
―쩡!
검이 샹들리에 금속과 부딪히는 소리가 주변을 요란하게 울렸다.
“하아!”
던전이 B급이라고 해도 딜러가 많아서일까, 잡스러운 몬스터 처리는 어렵지 않았다.
처음에는 낯선 환경에 몸을 사리던 귀족들은 곧 딜러답게 날뛰기 시작했다.
음, 이 세계고 저 세계고 딜러들이 앞뒤 없이 뛰쳐나가는 건 똑같군.
[크아아! 우리는 분노한다!]
샹들리에 주제에 말도 한다며 놀란 건 십여 분 전이었다. 귀족들은 이제 샹들리에가 뭐라고 하든 신경도 안 쓰고 공격해 버렸다.
“말까지 한다니, 아주 강력한 마력이 깃든 것 같습니다!”
“마물들을 처단하라!”
……아무튼 좋은 쪽(?)으로 해석하고 있으니 다행이었다.
던전 내용은 요컨대 샹들리에가…… 몸에 너무 많은 금을 둘러서, 몸이 무거워진 나머지 빡쳤다는 내용이었다.
대부분의 귀족들은 샹들리에들의 목소리가 안 들리는 것처럼 그들을 처치하기 바빴지만, 후방을 맡고 있던 알렌타 자작은 작게 중얼거렸다.
“……이곳을 만든 마법사가 창작 센스가 없는 모양이오.”
아주 심각한 얼굴이었다. 그의 말에 내 표정도 덩달아 심각해졌다.
아니, 그건 시스템이 센스가 없는 거야…….
하지만 돌발 게이트 스토리는 원래 구리다는 게 정설이었다.
―스릉!
―쨍!
다들 무식하게 샹들리에를 자르는 모습이, 꼭 십 년 전 게이트 열린 날 같았다.
그때 갑자기 각성한 나도 저랬던 것 같다.
[S급]
당시에는 A급과 S급의 차이를 이해하지 못했다.
그래서 S급 주제에 A급 던전에서 벌벌 떨고 있었다.
그리고 그때, 신재헌은 C급인 바람에 내가 지켜줘야 했다.
난 다치기도 많이 다쳤다.
아무리 내가 들고 있는 막대기에 몬스터가 두 동강 났다고 해도, 싸우는 데에는 익숙하지 않았으니까.
‘…….’
그때 문득 돌아보았던 신재헌의 표정이 떠올랐다.
막대기를 든 그의 손에는 피가 나고 있었다. 어떻게든 내게 도움이 되려고 했던 흔적이었다.
그렇게 몬스터 존을 지나서, 던전의 보스가 있는 곳에 다다랐을 때. 그때의 나는 만신창이였고 신재헌은 나를 부축하고 있었다.
―쿵.
그리고 거대한 몬스터와 눈이 마주쳤던 그 순간, 그냥 죽는 게 낫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절망스러웠던 그 순간에 그가 내 뒤에 서서 했던 말도 기억했다.
‘고맙다, 신유리.’
근데 괜찮아.
나, 죽을 준비 됐다.
그러니까 억지로 버티지 마.
그는 그렇게 말했다.
그 말에 나는 삶을 포기할 수가 없었다.
“마물들이 끝도 없이 나오는군!”
그때, 내 상념을 깬 건 자레스 후작의 목소리였다. 문득 쳐다본 앞은 장관이었다.
높은 천장에서 샹들리에가 비처럼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
젠장, 어쩐지 B급치고 쉽다 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