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화
“오.”
난 짧게 감탄했다.
집사는 흥분한 얼굴이었다. 왜 저러나 하고 있는데 시스템창이 떠올랐다.
[정보 : 마탑의 전서구
마법사들은 본디 사교적인 자들이 아닙니다. 마법으로 만들어진 그들의 전서구를 받은 자는 마탑에서도 귀빈으로 대우받을 수 있습니다.]
집사가 왜 놀라나 했더니 그럴 만했다.
―탁!
창문을 열자 불새가 날아 들어와 새 책상 위에 편지를 툭 떨궜다.
그러고는 작은 불꽃이 되어 내 책상 위에 내려앉았다.
저거 불 안 붙나?
멈칫했지만 마법 불꽃이라 그런가, 그냥 책상 한쪽에서 곱게 빛나고 있을 따름이었다.
“마탑에서 전서구라니…….”
놀란 집사를 뒤로하고 편지를 열었다.
마탑 전서구라고 해 봐야 소예리 헌터님 편지일 텐데, 왜 굳이 헌터 채팅 두고 불새를 보냈대?
[에델바이스 백작님께.
에델바이스 영지에 새로운 주인이 생겼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진심을 다해 축하드립니다.
마탑에서는 지난 긴 시간 동안 에델바이스 영지의 마법적인 발전성에 주목해왔습니다.
그러나 이전 에델바이스 영지의 주인은 마탑과의 관계가 우호적이지 못해 관련한 연구를 진행할 수 없었으니, 이번에는 부디…….]
긴 내용을 읽으면서 난 고개를 기울였다.
신재헌이 준 에델바이스 영지의 지도에는 광산이나 돈 될 만한 것도 이것저것 표시되어 있었다.
하지만 마법 관련된 건 없었는데?
[세니아 드 에델바이스(신유리)>>> 소예리 헌터님 편지 보낸 거 내용 진짜예요?]
[클로나 에이센(예리언님)>>> 넹?]
[세니아 드 에델바이스(신유리)>>> 에델바이스 영지에 마법적 연구가치가 어쩌고 하는 거요]
내 질문에 소예리 헌터의 발랄한 답장이 돌아왔다.
[클로나 에이센(예리언님)>>> 앗 말하는 거 깜빡했당]
잠시 텀을 두고 채팅이 다시 울렸다.
[클로나 에이센(예리언님)>>> 구라예용~]
아니 그걸 그렇게 상큼하게 말할 일이야? 우리 집사는 불새에 감동까지 받았는데?
[클로나 에이센(예리언님)>>> 근데 마탑은 짓고 싶어서용~ 신전도 짓고 황가 사람도 들어가는데 마탑만 안 들어가면 허전하잖아]
[세니아 드 에델바이스(신유리)>>> 그건 그렇죠 ㅋㅋㅋㅋㅋ]
그렇게 내 땅에는 커다란 신전에 마탑까지 들어서게 되었다.
에델바이스 영지가 순식간에 핫플로 떠오르는 순간이었다.
***
에델바이스 가의 집사 헬렌은 요즘 아주 혼란스러운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그는 원래 황가의 사람이었다.
아니, 정확히는 황제를 위해서만 일하던 사람이었다.
오직 한 사람만을 위해 바칠 목숨이라고 생각했는데 그 대상이 바뀌어 버렸다.
그분, 폐하께서는 분명히 말씀하셨다.
‘지금부터 에델바이스 가에 가게 된다면, 나를 잊어라. 이건 내가 내리는 최후의 명령이 될 것이다.’
이 에델바이스 가에 오게 된 자들 모두가 그 명령을 들었다.
‘이후 그대들은 에델바이스 가의 심복이 된다. 나의 명령과 에델바이스 백작의 명령이 부딪친다면, 소속가문의 심복다운 선택을 해.’
한마디로 황제인 자신의 명령에 반하는 한이 있더라도 에델바이스 백작을 따르라는 뜻이었다.
‘하오나, 폐하.’
집사 헬렌을 포함해 에델바이스 가에 온 자들은 그 명령에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그들은 전 황제가 아이반 엘레티아 폰 카르만이 어렸을 때부터 그를 위해 키워온 자들이었으니까.
‘저희들은 오직 폐하만을 따르기로 이 피에 맹세했습니다.’
헬렌이 그들을 대표해 말했다. 황제는 웃었다.
‘그래서 보내는 거야. 나는 그녀가―’
그렇게 말하던 황제는 잠시 눈을 가렸다. 그의 얼굴이 새하얘지는 것을 헬렌을 포함한 심복들은 분명히 보았다.
뭔가 문제가 생기신 것이리라.
‘폐하!’
당장 부축하려는 그들을 황제는 저지했다.
‘혹시 독에라도…….’
‘그런 거 아니니까 호들갑 떨 필요 없어.’
그의 안색은 곧 돌아왔다.
페널티.
알 수 없는 말을 중얼거린 그가 다소 거칠어진 숨을 가다듬으며 말했다.
‘나는 에델바이스 백작이 무사하기를 원해.’
그러니 내가 직접 그녀의 옆을 지키길 원하는 게 아니라면, 마음을 다해 그녀를 모시도록.
그게 그들의 주인, 아니, 주인이었던 자의 마지막 명령이었다.
‘대체 이분과 폐하께서 무슨 관련이 있으시기에.’
집사 헬렌은 알 수가 없었다.
그들의 새 주인은 확실히 이상한 사람이었다.
귀족답지 않은 소탈함이야 그렇다 쳐도, 묘하게 아군이 많았다.
분명 폐인이 되어 침대 위에서 죽기 직전까지 몰려 있었던 귀족가 영애라고 들었다.
그래서 현 황제 아이반 엘레티아 폰 카르만과는 이번 검술 대회에서 만난 게 처음이었다. 그런데도 폐하께서는 큰 관심을 보이셨다.
게다가 교단의 일도 교황이 직접 제3신전급 신전을 지어주는 데다 신전 건축비까지 부담한다고 한다.
그것도 모자라 이번에는 마탑주가 관심을 보이고 있었다.
대체 이 사람에게 무슨 비밀이 있기에?
헬렌의 곧은 시선이 제 주인, 세니아 드 에델바이스에게 향했다.
지금은 한낱 백작가이지만, 서로 적대하던 세 세력이 모두 관심을 보이시는 분이다.
헬렌은 에델바이스 영지가 곧 격동의 중심이 되리라는 것을 깨달았다.
“…….”
그녀의 주인은 편지를 보며 생각에 잠겨 있었다.
신전의 일이며 주변 가문의 견제도 몇 수 앞을 내다보고 움직이셨듯이, 이번에도 그러시리라.
그녀는 굳은 믿음을 담은 눈으로 세니아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 세니아는, 심각한 표정으로 헌터 채팅을 하고 있었다.
[세니아 드 에델바이스(신유리)>>> 와 부동산 투자 성공한다는 게 이런 건가? 에델바이스 영지 땅값 장난 아니게 오르는 거 아님?]
한마디로, 별생각 없었다.
***
에델바이스 영지에 제3신전급의 신전에 이어 마탑까지 세워진다는 소문이 돌았다.
귀족들은 당연히 놀랐다.
대립하던 세 세력이 에델바이스 백작에게 관심을 보이고 있었으니까.
논란과 화제의 중심.
그건 권력으로 향하는 길이기도 하지만, 한 걸음 뒤에는 나락이 있다는 뜻이기도 했다.
첨예하게 대립하는 세 세력 중 단 한 곳에라도 밉보인다면 나락으로 떨어지는 건 순식간이리라.
그래서 귀족들은 에델바이스 백작가에 대해 더 파고들자 했다.
유망한 신흥 귀족까지는 흥미롭지만, 그 이상이 되어 현재의 세력 판도를 뒤흔들어서는 곤란하니까.
그리고 그 생각들의 결과는 곧, 에델바이스 백작가의 책상 위로 쏟아져 내렸다.
“이게 다 뭐야?”
에델바이스 정도면 쬐끄만 영지라고 했는데 할 일은 더럽게 많았다.
역시 땅따먹기로 날로 먹는 인생은 RP던전에서조차 불가능한 모양이다.
그렇게 생각하면서 집무실 책상에 앉았더니, 서류보다 더 많은 편지가 나를 반겼다.
“하넬 가, 동부 사교계…….”
대충 보낸 사람들을 보니 다 내게 연회 참석을 청하는 귀족들이었다.
이 편지들이 설마 한 번에 온 거냐고 묻고 싶었지만, 아쉽게도 내 집무실엔 사용인들이 없었다. 내가 쫓아내서.
하녀나 기사가 계속 보고 있으면 채팅하기 불편하그든요.
“무슨 연회 초대가 열네 개씩이나 와?”
대충 시간만 대조해 봐도 내가 몸이 여덟 개는 있어야 참석할 수 있는 일정이었다.
이 정도면 멕이는 거 아니냐?
“이건 내가 인싸였어도 안 갔겠는데.”
인상이 절로 구겨졌다.
S급 헌터들은 인맥이 중요하다 보니 파티 같은 자리가 자주 열리는 편이지만, 난 거기에도 잘 참가하지 않았다.
최근에는 소예리 헌터님이 끌고 가서 한두 번 갔나?
거기서 쓸데없이 가식 떨면서 하하호호하는 건 질색이었으니까.
그 시간에 게이트 들어가서 몬스터 한 마리나 더 때려잡지.
경험치도 안 되는 짓을 왜 해?
[세니아 드 에델바이스(신유리)>>> 이거 연회 같은 거 굳이 가야 할까요?]
채팅을 올리자마자 신재헌이 불쑥 답했다.
[아이반 엘레티아 폰 카르만(신재헌놈)>>> 아 그거 저 가봤는데요]
잠시 텀을 두고 그가 불쑥 물었다.
[아이반 엘레티아 폰 카르만(신재헌놈)>>> 혹시 신유리 헌터 춤출 줄 알아요?]
이 새X가? 여러 번 말하지만 난 이놈과 고등학교 동창이었다.
[세니아 드 에델바이스(신유리)>>> 알겠냐? 무용 시간에 빵점 받은 거 못 봤어?]
모르고 묻는 거 아니지? 나도 모르게 반말이 튀어나갔다.
[아이반 엘레티아 폰 카르만(신재헌놈)>>> 그럼 좀 큰일인데]
[세니아 드 에델바이스(신유리)>>> ?]
뭐야, 춤 안 추면 페널티라도 있나?
내가 눈썹을 치켜 올렸을 때였다.
신재헌이 청천벽력 같은 소리를 내뱉었다.
[아이반 엘레티아 폰 카르만(신재헌놈)>>> 그거 시스템창 뜨면서 춤 제대로 못 추면 피 깎이거든요]
[세니아 드 에델바이스(신유리)>>> 실화냐]
아니, 이게 무슨 김밥 옆구리에 헥토파스칼킥 갈기는 소리야?
―콰직!
[세니아 드 에델바이스(신유리)>>> 절대 안 가야지]
난 곧바로 연회 초대장을 구겨버렸다. 내가 방구석에 있는 화로에 편지를 집어던지려고 할 때였다.
띠링! 기다렸다는 듯이 서브퀘스트가 떴다.
[서브 퀘스트 : 가주의 일]
[연회에 최소 1번 이상 참여해 에델바이스 가의 이름을 사교계에 알리세요.]
[보상 : 모든 능력치 +10%]
“…….”
잠시 우뚝 굳었던 난 곱게 편지를 폈다.
……가볼 만한 연회를 찾아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