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 던전의 S급 시한부 영애 (33)화 (33/218)

33화

이 세계에서 신의 뜻은 교황이 전해주는 것이다.

저 말은 다시 말해서, 주이안 씨가 내 영지에 있는 신전을 철거하라고 했다는 말인데?

[세니아 드 에델바이스(신유리)>>> 주이안 씨 있어요?]

이른 아침부터 미안하지만 확실히 물어봐야지.

[아리엔사 시안 데마르(주이안씨)>>> 네, 신유리 헌터님.]

그의 단정한 목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칼답 감사합니다.

[세니아 드 에델바이스(신유리)>>> 혹시 에델바이스 영지에서 신전 철거하라고 했어요?]

이번에는 주이안 씨의 답이 조금 늦었다. 그도 어이가 없는 게 분명했다.

[아리엔사 시안 데마르(주이안씨)>>> 그럴 리가요.]

역시 구라였군.

[아리엔사 시안 데마르(주이안씨)>>> 그런 이야기가 들리나요?]

잠깐 텀을 두고 그의 채팅이 다시 올라왔다. 난 집사 앞에서 생각에 잠긴 척하며 답했다.

[세니아 드 에델바이스(신유리)>>> 방금 보고받았어요]

[아리엔사 시안 데마르(주이안씨)>>> 무슨 일인지 알아볼게요.]

주이안 씨의 이번 답은 엄청나게 빨랐다. 십중팔구 아랫놈들 조지러 가는 거다.

주이안 씨가 아니면 누가 신의 뜻이라고 거짓말하면서 신전을 없애라고 했다는 뜻이니까.

“신의 뜻이라…….”

내가 작게 중얼거렸다.

신의 뜻은 움직이러 갔으니 신전 건은 별 신경 안 써도 될 듯했다.

“어떻게 할까요? 신전이 없어지면 아무래도…….”

하지만 그걸 알 리 없는 집사는 얼굴에 천근만근 걱정이 올라와 있었다.

그럴 만도 했다. 이 나라는 신시안 교를 믿는 신자가 많은 곳이니까.

근데 신의 뜻으로 영지에서 신전이 철거된다?

그건 이 영지를 신이 버렸다는 뜻이 될 수도 있다.

그건 영지민들에게 불안으로 다가올 거고, 당연히 영지 분위기는 진창에 처박히겠지.

그쯤 생각하니 아무리 봐도 누구네들 짓인지 뻔했다. 문제는 심증만 있지 물증이 없다는 건데…….

난 집사를 바라보았다. 이건 아주 간단히 해결할 수 있는 문제였다.

“그럼 일단 그 고위사제들하고 최근에 접촉한 사람이 누군지 알아봐.”

내 말에 집사가 멈칫했다.

이게 일반적으로 갓 생겨난 백작가에서 내려진 명령이라면 이행이 불가능했을 것이다.

하지만 내 가문은 아니지.

“할 수 있겠지?”

내 확신에 찬 말에 집사가 묵례했다. 그가 고개를 숙인 사이 난 씩 웃었다.

이 사람들은 다름 아닌 신재헌이 직접 붙여준 사람들이다.

그리고 신재헌은 한국에서부터 정보 하나는 기가 막히게 빠른 놈이었다.

먹고살려면 정보가 생명이라나 뭐라나?

그런 것치고는 정보를 쓸데 있는 곳에 쓰는 것 같진 않았지만.

이러니저러니 해도 그는 머리 쓰기 싫어하는 딜러였던 것이다.

아무튼 정보의 중요성을 강조하던 그가, 현재는 황제의 자리에 있으니 정보에 관심을 더 가지면 더 가졌지 관심을 껐을 리는 없었다.

“물론입니다. 바로 알아보겠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집사가 굳은 목소리로 답했다. 역시, 가능할 줄 알았다.

집사가 그렇게 자리를 뜬 후, 사건의 윤곽이 잡히는 데에는 얼마 걸리지 않았다.

***

며칠 후.

[세니아 드 에델바이스(신유리 헌터님)>>> 혹시 에델바이스 영지에서 신전 철거하라고 했어요?]

주이안은 헌터 채팅을 위로 올려 보았다.

단안경 너머의 그의 눈이 살짝 가늘게 뜨였다.

새하얀 손끝으로 턱을 괸 그가 바깥으로 시선을 주었다.

에델바이스 가 기사들은 신유리 헌터님이 곧바로 움직이신 것 같고, 이쪽에서도 상황을 파악하자마자 움직인 덕에 상대의 정체는 금세 드러났다.

“귀족의 사주라…….”

그가 뇌까렸다.

교단 역시 황가에 반하려던 귀족들만큼이나 세력이 나뉜 채 썩어 있었던 셈이다.

원래 그가 빙의하기 전 아리엔사 시안 데마르는, 신전에서 신의 뜻에만 귀를 기울일 뿐 지방의 작은 신전에는 신경 쓰지 않던 사람이었다.

하지만 주이안은 그런 ‘아리엔사 시안 데마르’의 캐릭터성을 자연스럽게 바꾸어 버렸다.

‘황가에서 새로운 움직임을 보이는 만큼, 우리도 새롭게 움직이고자 해요.’

주이안이 이곳에 빙의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성기사들과 고위사제들에게 내린 명령이었다.

다시 말해, 교황인 자신도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움직이겠다는 말이었다.

그렇게 말을 해둔 덕인지, 그는 지금까지의 아리엔사 시안 데마르와 달리 활동적으로 움직여도 페널티 위험에 빠진 적이 없었다.

“어떻게 할까요, 신성 예하.”

에델바이스 영지의 신전에 관해 조사를 마친 성기사가 물었다.

주이안은 살짝 시선을 내려 문제가 된 고위사제들의 이름을 내려다보았다.

“……신시안 님이 아니라 다른 무엇의 목소리를 들은 것인지, 심문하도록 하세요.”

성기사는 눈을 크게 떴다.

지금껏 아리엔사 시안 데마르가 교황이 된 이래, 이단심문관실은 잠들어 있다시피 했다.

그가 외부에서 적극적으로 움직이지 않는 만큼, 이단자들에 대한 조사나 추적도 많이 줄어들었기 때문에.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성기사는 좀처럼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것 같던 신성 예하께서 오늘은 유달리 날카로우신 것 같다고 생각했다.

특히 이단심문관실이 움직인다는 건, 교단 전체의 분위기가 날이 서게 되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알겠습니다.”

하지만 교황의 뜻은 곧 신의 뜻. 성기사는 더 묻지 않고 묵례했다.

“그럼 에델바이스 가에는 무어라 전할까요?”

이단자들에 의해 신전이 없어질 위기에 처했었으니 에델바이스 백작에게도 사실관계를 밝혀야 할 터였다.

그 말에 주이안의 입가에 옅은 미소가 떠올랐다. 물론 아주 잠깐이었다.

미소가 사라진 얼굴로 그가 담담하게 말했다.

“신께 반하는 자들이 그곳에서 신전을 지워버리려고 했던 이유가 있겠지요.”

물론 그 이유를 주이안은 뻔히 알고 있었다.

그냥 귀족들 간의 알력에 불과하다.

하지만 이런 위기를 기회로 바꾸는 것도, 전략이리라.

그가 손짓했다.

“그곳에, 그 근방에서 가장 크고 화려한 신전을 지으세요.”

“크고 화려한 신전이라면…….”

성기사가 조심스럽게 되물었다. 주이안은 조금 고민하다가 말했다.

“제3신전급의 규모가 좋겠군요.”

“……!”

성기사가 놀라 멈칫했다.

제3신전급이라면 신전 본관과 황가에 있는 제2신전 다음으로 큰 규모였다.

그만큼 많은 신자들을 수용할 수 있고, 영지의 위상도 올라간다.

강력한 신의 힘이 에델바이스 영지와 함께하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곳에 제3신전급의 신전을 말씀이십니까?”

아무리 이번 일이 있었어도, 성기사가 보기에 제3신전급의 신전은 에델바이스 영지 규모에 비해 너무 과했다.

게다가 에델바이스 가는 이번 검술 대회에서 발탁된, 확실한 친황제파 가문이었다.

그런 가문에게 힘을 실어줘 봐야 교단 입장에서 좋을 게 없었다.

“감히 이유를 여쭤보아도 되겠습니까?”

결국 성기사가 한쪽 무릎을 꿇은 채 물었다.

주이안은 단안경 너머로 그런 기사를 바라보았다.

황제.

소리 없이 중얼거린 그가 신재헌을 생각했다.

이런 질문을 받으면 황제 신재헌은 이유를 만들거나, 이유를 묻는 자의 목을 베어버릴 것이었다.

그게 이번 RP던전에서 그가 잡은 폭군의 이미지이니까.

하지만 교황은 달랐다. 주이안이 미소 지었다.

“꿈에서 그곳을 보았거든요.”

이 한마디로 충분했다. 신과 연결된 교황이 신의 계시를 받는 건 대부분 꿈에서였으니까.

그리고 꿈에서 받는 계시는 보통 경고의 의미다.

다시 말해, 곧 에델바이스 영지에 마물이 들끓을 수도 있다는 소리.

“에델바이스 영지의 신전을 제3신전급으로 승격하고, 1급 성기사들을 파견하여 신전 주변을 수호하라 이르세요.”

그녀의 땅에, 신재헌의 사람들만 있다는 게 묘하게 거슬렸다.

눈을 가늘게 뜬 그가 명령했다.

“에델바이스 가에서 따를까요?”

성기사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친황제파 가문에서 교단의 병력이 가는 걸 좋아할 리가 없다.

무엇보다 황제가 눈을 시퍼렇게 뜨고 지켜보고 있지 않겠나.

하지만 그의 주인은 확신 어린 목소리로 말했다.

“네, 허락할 겁니다.”

신유리, 그녀가 거절할 리 없으니까.

주이안은 헌터 채팅창의 신유리라는 이름에 시선을 주었다.

자연스럽게 미소가 피어났다.

***

“원래 세상일은 원하는 대로 굴러가는 게 없는 법이지.”

난 에델바이스 백작이 된 이래 일어난 일들을 보면서 결론 내렸다.

난 S급이었으니, 대체로 일이 어긋나면 돌려놓을 힘이 있었다. 그러나 그게 안 되는 놈들도 있는 법이었다.

가령 나를 혼내주려다가 역으로 털린 친구들이 그러했다.

[아리엔사 시안 데마르(주이안씨)>>> 엘시아, 리파르토, 하시엘, 텔렛, 익시엘 가의 영지에서는 신전이 사라질 거예요.]

바로 저 친구들 말이다.

내게 신전 없는 설움을 주려던 그들은 오히려 그 설움을 가지게 되어버렸다.

[아이반 엘레티아 폰 카르만(신재헌놈)>>> 더해서 비리 조사까지 들어갈 거야]

게다가 없는 먼지도 털어서 만들어 드리는 서비스도 받게 되었다.

[클로나 에이센(예리언님)>>> 그러게 까불지 말지]

깔깔 웃는 소예리 헌터의 웃음소리가 귓가에 들리는 듯했다.

[아리엔사 시안 데마르(주이안씨)>>> 그리고 곧 교단 자금으로 에델바이스 영지에 제3신전 건축을 시작할 거예요.]

[아이반 엘레티아 폰 카르만(신재헌놈)>>> 오…… 제3신전급이면 사람도 많이 모이겠다]

사람이 많이 모인다? 이건 내가 영지 경영을 안 해 봤어도 알 수 있는 호재다.

그만큼 영지가 발전할 가능성이 커진다는 소리였다.

[세니아 드 에델바이스(신유리)>>> 나이스! 영지 몬스터나 정리해야지^^]

이름이 뭐였더라? 하여튼 귀족 여러분, 땡큐!

그들과 손을 잡아 속세의 금을 받아 처먹고 내 영지에서 신전을 삭제하려던 사제들은, ‘고위 사제가 악마의 목소리를 들어 사특한 일을 꾸몄다’는 명목으로 이단심문실에 끌려 들어갔다고 했다.

그러게 줄 좀 잘 타지 그랬어. 쯧쯧.

“확실히 종교의 영향력이 있는 곳은 다르긴 하네.”

한국에선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을 텐데.

난 주이안 헌터를 생각했다.

그가 온화한 얼굴로 사제들을 이단심문실에 처박았을 것을 생각하니까 잘 상상이 가질 않았다.

“오죽하면 스킬도 힐밖에 없는 양반이.”

집에 들어온 파리도 죽이는 대신 쫓아내는 게 주이안 씨였다.

그 성정 때문인지 딜을 넣을 수 있는 스킬도 하나도 없었다.

그런데 그가 이단심문실에 사람을 넣는다?

게다가 종교도 없는 양반이 악마의 목소리라는 단어는 어디서 꾸며내서 가져온 거야?

[세니아 드 에델바이스(신유리)>>> 그런데 진짜 악마의 목소리가 있어요?]

있겠냐? 난 묻고도 픽 웃어 버렸다.

그런데 주이안 씨는 의외로 고민하다가 답했다.

[아리엔사 시안 데마르(주이안씨)>>> 음, 몇 번은 들어본 것 같아요]

“?”

리얼? 진짜 있다고?

난 책상에서 반쯤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내가 보던 에델바이스 영지에 관한 서류가 바닥으로 팔랑팔랑 떨어져 내렸다.

[세니아 드 에델바이스(신유리)>>> 이 세계에 와서요?]

원래 주이안 씨는 유령이나 악마 같은 것도 믿지 않았다.

혹시 이 세계에만 있는 건가? 몬스터처럼?

[아리엔사 시안 데마르(주이안씨)>>> 이 세계에서도 들어본 것 같고요.]

“그럼 한국에서도 들어봤다는 거야?”

난 눈을 깜빡였다. 그때 문득 창밖으로 노을이 졌다.

참고로 지금은 밤 11시였다.

“?”

이 시간에 노을이? 어이가 없어서 창을 돌아보니, 창문에 웬…… 불새가 달라붙어 있는 게 보였다.

“저건 또 뭐냐.”

악마의 목소리에 이어서 이번엔 피닉스야? 사실 나만 판타지 세계 적응 덜 된 거지? 응?

―끼에에!

불새는 생긴 건 근사한 주제에 없어 보이는 소리를 내질렀다.

내가 눈살을 찌푸렸을 때였다.

“가주님!”

밖에서 급하게 날 부르는 목소리가 들렸다. 요 며칠 익숙해진 집사의 목소리였다.

들어오라고 하자마자 그가 놀란 얼굴로 집무실에 들이닥쳤다.

“마, 마탑의 연락입니다!”

그가 들이닥치자마자 창문을 가리켰다. 저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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