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 던전의 S급 시한부 영애 (23)화 (23/218)

23화

강화제를 써서 일시적으로 A급이 된다.

그게 불가능한 건 아니었다. 일단 강화제를 많이 먹으면 시스템상 랭크가 올라가기도 하니까.

물론 여기선 시스템창이 보이는 게 아니라 기세가 강해 보이는 게 전부였겠지만.

그런데 저놈은 내가 처음 봤을 때도 A급이라고 떴었는데?

그럼 얼마나 오랫동안 약을 처먹은 거야? 부작용도 있었을 거고 약효도 떨어졌을 텐데?

내가 얼이 빠진 사이 일은 척척 진행되었다.

“이로써 포를랭 가의 계승식이 끝났음을 선언합니다.”

에스나 경이 키칼과 내게로 다가와 섰다.

―챙강!

키칼 놈의 손에서 검이 떨어져 내렸다.

그는 허무한 얼굴이었다.

이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는 얼굴이기도 했다.

그야 당연하다.

잔상 스킬을 꿰뚫어 볼 실력도 없는 놈이, 그 짧은 순간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아챘을 리가 없으니까.

조금 전의 시합을 복기하며 제가 잘못한 점을 찾는 것도, 어느 정도 수준이 비슷해야 가능한 이야기였다.

이렇게 수준 차이가 나면 그냥 순식간에 졌다는 사실만이 남을 뿐, 이 경기에서 키칼 놈이 얻을 수 있는 건 하나도 없었다.

아, 강화제 처먹고도 못 이겼다는 자괴감 정도?

“이 시간부로 포를랭 가를 이을 후계자는 세니아 드 포를랭 영애로, 후계자에게는 이후 폐하께서 주최하시는 검술 대회에 참가할 권한이 주어집니다.”

에스나 경이 딱딱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녀의 말과 동시에 키칼의 후계자 자리는 사라진 것이나 다름없었다.

키칼은 허망한 얼굴로 입을 벌리고 있었다.

물론 내가 알 바는 아니었다.

“정식 후계자 임명은 오늘 저녁에 진행하겠습니다. 고생하셨습니다.”

에스나 경은 그렇게 말하고는 홱 돌아섰다. 기사들의 웅성거림이 더욱 커졌다.

“정말 세니아 영애께서?”

“어떤 수련을 하셨기에…….”

기사들의 시선이 내게 쏠렸다. 놀란 포를랭 자작 부부가 다가오는 것도 보였다. 그들은 나와 키칼을 번갈아 보고 있었다.

“축하한다, 세냐.”

사람들이 다가오자, 키칼은 뭐 씹은 표정을 애써 삼키고 말했다.

난 진심으로 빙그레 웃어 주었다.

“고마워요.”

부작용으로 몸은 안 아프고?

아마 아까 발악한 것 때문에 지금쯤 누가 건드리기만 해도 비명이 나올 지경일 터였다.

게다가 강화제로 만든 A급이라.

지금 그 사실을 불어 주면 키칼 놈 얼굴이 아주 볼만해지겠지만, 난 아쉽게도 할 일이 있었다.

이제 이 가문의 후계자는 나다.

키칼 놈의 독 수프에 대해 숨길 이유가 없다.

“그럼, 잠시 쉬러 들어갈게요. 오랜만에 좋은 승부였어요.”

난 키칼 놈에게 손을 내밀었다.

사실 일으켜주기도 싫었지만 이게 귀족가의 매너인데 어떻게 하란 말인가?

―탁!

“어,”

어쭈. 하필이면 입 밖으로 뱉을 뻔했다.

키칼 놈은 무려 어깨로 내 팔을 밀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괜찮다. 동정할 필요 없어.”

그러더니 꼴에 부축하겠다는 사람들 손을 다 물린 채 홱 돌아서 가 버렸다.

쪽팔리냐? 쪽팔려? 응?

그가 자리를 뜨자 웅성거림은 더욱 심해졌다.

“축하드립니다, 세니아 아가씨!”

“검 끝이 이전보다 더 눈이 부십니다!”

기사들은 환호하는 한편 사용인들은 혼란스러운 눈치였다.

특히 키칼 놈이 후계자가 될 줄 알고 그에게 들러붙어 있던 놈들 마음이 무척 편치 못한 모양이었다.

그들에게는 안됐지만, 그건 오늘 이 포를랭 가에 일 파란의 전조에 지나지 않았다.

***

그날 밤, 기사 에스나가 황제를 대리하여 후계자 임명식을 진행했다.

키칼 놈은 아프다고 나오지 않았지만 보나마나 뻔했다.

강화제 부작용으로 뻗었겠지, 뭐.

한심한 새X일세.

간단하게 진행된 임명식이 끝나고 난 방으로 올라왔다.

“저녁은 방에서 가볍게 먹을게.”

축하한다는 말을 귀가 따갑게 쏟아내는 하이텐션 하녀에게, 난 짧게 말했다.

“앗, 주인님께서 임명식 기념으로 만찬을 함께하자고 하셨는데용!”

그 말에 난 손을 내저었다.

“감사하지만 피곤하다고 전해 드려.”

지금쯤 축하 자리 한가운데에서 홀로 축제가 아니라 장례식일 키칼을 생각하면 가고는 싶었다.

하지만 오늘은 할 일이 있었다.

내 말에 하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당! 오늘은 특식으로 특별히! 맛있게 준비해드리겠습니당!”

하녀는 신나서 깡충 튀어나갔다.

난 그녀가 문을 닫고 사라지는 걸 확인하고, 자리에서 조용히 일어났다.

이 가문에서 내 적이 키칼뿐일 리가 없다.

신재헌도 그랬지.

‘이건 희귀하고 교묘한 독이야. S급으로 랭크되기도 하고. 적어도 일개 가문의 후계자 자리에서 몰래 구할 수 있는 물건은 아니란 거지.’

‘분명 내부에서 도운 자가 있었을 거야. 키칼 드 포를랭보다 더 지위가 높은 자. 이를테면 가주나…… 그 부인 같은.’

분명 내부에서 도운 자가 있었을 거라고.

난 하이텐션 하녀를 몰래 따라갔다.

다행히 계승식 뒷정리를 하느라 주변이 북적북적해서 E급 스탯으로도 하녀를 쫓아가기 어렵지 않았다.

“오늘은 닭고기 수프에 샐러드 드레싱은~”

하이텐션 하녀는 식당으로 방방 뛰어 내려갔다.

누가 뒤쫓을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하는 듯했다.

―달칵.

그리고 식당으로 들어서자마자, 몸을 똑바로 폈다. 방방 뛰며 날뛰던 태도는 어디에도 없었다.

오.

난 소리 없이 감탄했다.

부엌으로 들어가는 하이텐션 하녀는 소름 돋을 정도로 다른 사람 같았다.

―보글보글.

그녀는 부엌에서 끓고 있는 수프를 몇 번 젓고는 그릇을 꺼내 담았다.

그 모습은 내가 알던 하녀의 모습이 아니었다.

그녀가 날카로운 표정으로 부엌을 홱 둘러보았다. 수상한 놈이 뭔가를 하기 직전엔 으레 주변을 둘러보기 마련이다.

그 사실을 알았기에 난 미리 쌀 포대 뒤에 몸을 숨기고 있었다.

그리고 몇 초 후 슬쩍 내다보니, 그녀는 메이드복 주머니에서 뭔가를 꺼내고 있었다.

접힌 종이였는데, 그 안에는 하얀 가루가 들어 있었다.

―스르르…….

그녀가 종이를 기울여 수프에 약을 집어넣을 때였다.

난 쌀 포대 뒤에서 몸을 일으켰다.

“거기까지.”

화들짝 놀라 몸을 피하려는 하녀 뒤로 잔상 스킬을 가했다.

[잔상(SS+)를 사용합니다.]

[적용 대상 : 수룡의 가시비늘(B)]

“악!”

제 목 뒤를 스치는 검의 잔상에 놀란 하녀가 굳어 버렸다.

난 그녀의 손에서 약이 담긴 종이를 빼앗았다.

“헉.”

내 얼굴을 확인한 하녀의 얼굴이 시퍼레졌다.

놀란 하녀는 숨조차 쉬지 못했다.

난 그녀의 목에 검을 들이댄 채로, 주머니를 뒤지는 척 던전 인벤토리에서 은빛 막대기를 꺼냈다.

E급 승급 기념으로 무려 세 칸으로 확장된 인벤토리에서 꺼낸 것이었다.

감동스럽다, 세 칸! 원래 50칸이었는데!

―콕.

수프를 찌르자 효과는 바로 올라왔다.

[은빛 막대(제작자: 헌터 소예리(S), 헌터 주이안(S) 스킬 - ‘독 감지(SS)’ 효과 발현 중)에 독이 감지됩니다!]

[독 분석 중…….]

[S급 독 : 리안디 뿌리]

그런 시스템창과 함께 은빛 막대가 새까맣게 변해 버렸다. 전에 만났을 때 소예리 헌터가 주이안 씨의 스킬을 담아준 막대였다.

“이름도 모르는 하녀가 나한테 붙어있는 게 이상하다 싶었지.”

난 막대를 수프 접시에 걸쳐놓은 채 하녀를 돌아보았다.

여전히 하녀의 머리 위엔 이름이 뜨지 않았다.

세니아를 보살피던 기존 하녀라면 세니아가 분명 이름을 알았을 것이다.

기사 밀리샤처럼 이름도 떴을 것이고.

그런데 이 하녀는 그런 게 없었다.

처음에는 세니아가 기사들이 아닌 사용인들에겐 관심이 없어서 그런가 했는데, 하녀 중 일부는 또 이름이 떠서 그건 아니라는 게 판명되었다.

아끼는 딸에게 굳이 낯선 하녀를 붙여준 이유가 뭘까? 누군가의 입김이 들어간 건 아닐까?

난 지금부터 그걸 파헤쳐 볼 생각이었다.

“네가 수프에 약을 넣는다는 건 진작 알고 있었어.”

난 그녀의 손에서 약 종이를 뺏어, 주머니에 넣는 척 던전 인벤토리에 넣어 버렸다.

그 사이 눈을 굴리던 하녀가 재빨리 내빼려고 했다.

으딜 가?

“도망칠 생각은 말고.”

탁! 난 하녀의 손목을 재빨리 잡아챘다.

“으…….”

하녀가 어쩔 줄 몰라 했다. 뒷배를 불 수 없다는 거겠지.

당연하다. 불면 사망인데 나불나불 불 리가.

하지만 이제 집안의 분위기가 바뀌었다. 난 하녀를 슬슬 구슬렸다.

“누가 약을 줬는지 말해. 이제 이 가문의 후계자가 누구인지도 잘 생각해 보고.”

“……!”

하녀의 눈이 크게 뜨였다. 정보 업데이트가 느린 친구구나, 너.

집안의 실세가 누구인지 재빠르게 상기한 하녀가 넙죽 엎드렸다.

“키, 키칼 도련님께서 시키셨습니다. 약도 그분께서 주셨어요.”

“그랬구나.”

그럼 그렇지. 난 하녀에게 손짓했다.

“그 말, 한 번 더 해줄 데가 있거든.”

하녀는 내가 손목을 놔도 감히 도망가지 못했다.

난 그대로 하녀를 끌고 포를랭 자작 부부의 방으로 향했다.

누군가가 치졸한 수를 써서 계승식을 더럽혔다는 사실을 알려줄 셈이었다.

그와 동시에, 자작 부부가 한통속인지도 알아볼 셈이었다.

***

“계신가요?”

“세냐?”

자작 부부의 방 안에서는 놀란 목소리가 들려왔다.

자작부인은 손수 문을 열어 주었다.

“쉰다고 하더니 여기까지는 무슨 일이야. 어서 들어오렴.”

포를랭 자작부인이 포근하게 웃었다.

그러다가 내가 들어오면서 내 뒤에 서 있는 하녀가 보이자, 눈을 크게 떴다.

아주 잠깐의 변화였지만 난 분명히 보았다. 저건 일개 사용인을 보는 눈이 아니다.

음, 역시 뭔가 구리구리한 구석이 있다는 거지?

“이 아이는?”

“저를 시중들어주는 하녀예요.”

데리고 들어오는 게 이상해? 응? 난 빙그레 웃어 주었다.

아, 혹시 얘가 하이텐션으로 날뛰지 않아서 그래?

“그, 그랬지, 참.”

자작부인이 나와 하녀를 안으로 이끌었다.

―달칵.

방문이 닫혔다.

포를랭 자작은 자작부인과 다과를 들고 있었는지 테이블 앞에 앉아 있었다.

“어서 오거라. 무슨 일로…….”

그 역시 하녀를 보고 놀라는 눈치였다.

오, 구리구리함이 방 안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난 자작 부부를 보다가 입을 열었다.

“제가 다시 일어난 후로부터, 키칼 오라버니가 저한테 신경을 많이 써 주셨어요.”

고호맙다, 키칼! 난 감사함을 담아 미소 지으며 말을 이었다.

“그래서 저도 오라버니를 신경 쓰고 있었는데.”

내 말에 자작 부부가 서로를 마주 보았다. 난 하녀를 가리켰다.

“이 하녀가 조금 전, 제 저녁에 이걸 넣는 걸 분명히 목격했어요.”

그러면서 약이 담긴 종이를 꺼내 보였다.

하얀 가루.

자작 부부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놀라는 것도 아니고 저렇게 가라앉는 표정인 걸 보니 이미 알고 있었던 게 분명했다.

“그건…….”

아니나 다를까, 자작 부부는 말을 잇지 못했다. 저게 뭐냐고 묻지도 않았다.

오, 정말 집안 꼬라지 끝내준다!

“이게 뭔지 이미 알고 계셨나 보네요.”

키칼이 내 식사에 뭘 넣는지 이미 알고 있었단 말이지?

서서히 자작의 표정이 변했다.

나를 반기던 표정은 어느새 싹 사라졌다. 마치 다른 사람이 된 것 같은 얼굴.

결국 포를랭 자작이 입을 열었다.

“……생명에는 지장이 없는 독이다.”

“네?”

그러니까 마음 놓고 드링킹하란 말씀?

난 순간 어이가 없어서 페널티를 받을 뻔했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