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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던전의 S급 시한부 영애 (19)화 (19/218)

19화

[마력이 부족합니다.]

[잔여 마력량 10% 이하, 시야가 좁아집니다.]

“됐다!”

그래도 검까지는 잔상 사용이 가능한 모양이었다. 이를 악문 내가 잔상을 움직였다.

신재헌의 말레티아의 검 위로 반투명한 검 모양이 겹쳐진다.

그건 신재헌의 검과 똑같이 생겼지만 다소 흐릿한, 말 그대로 잔상이었다.

그리고 그건 내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는 나의 무기이기도 했다.

[잔상(SS+) 효과로 ‘말레티아의 검(SS+)’의 잔상이 상대에게 데미지를 줄 수 있습니다.]

난 곧바로 손을 앞으로 뻗었다.

일단 잔상이 생긴 이상 멧돼지를 썰어버리는 건 시간 문제였다.

정말로, 시간 문제였다. 내 마력이 없어지기 전에.

[어둠에 물든 숲의 마물(??)의 눈이 어지러워집니다!]

잔상 효과는 제대로 먹혀들고 있었다.

“확실히 수월해졌어요!”

소예리 헌터가 방어막 마법을 두 개로 줄이고, 다른 보조 스킬을 사용했다.

신재헌 쪽으로 우다다다 달려오던 멧돼지의 발밑으로 얼음 바닥이 쫙 깔렸다.

그 사이사이 날카로운 강철 가시가 생기는 건 물론이었다.

―크르르!

달려오던 멧돼지의 속도가 줄자, 신재헌의 검이 방어 태세에서 공격 태세로 바뀌었다.

“그럼 실례!”

―부웅!

신재헌이 멧돼지와 제대로 맞붙는 사이, 소예리 헌터가 나와 주이안 씨를 하늘로 띄워 버렸다.

물론 본인도 함께였다.

―콰지직!

공격을 제대로 맞은 멧돼지의 몸에서 무슨 벽돌 갈라지는 소리가 났다.

유효타였다.

―크르르……!

하지만 멧돼지는 좀 비틀거렸을 뿐, 다시 신재헌이 있는 쪽으로 몸을 낮추었다.

“저거 끄떡도 안 하는데?”

생긴 게 구려도 SS급 이상의 몬스터는 맞는 모양이었다.

신재헌이 멧돼지를 다시 한번 찌르며 외쳤다.

“이거 토막 내기 전엔 안 끝나!”

원래 저럴 때 옆에서 딜을 박아 넣는 역할이 나였다. 하지만 난 지금 S급이 아니었다.

―쩌저정!

멧돼지 앞에 소예리 헌터의 보조 마법이 다시 깔렸다.

신재헌에게 달려들려던 멧돼지가 멈칫했다.

그리고.

“어머, X발.”

소예리 헌터의 아름다운 목소리와 함께 멧돼지가 순식간에 가까워졌다.

멧돼지가 우릴 향해 도약한 거였다.

지금 날아올라 봐야 늦었다. 난 이를 악물었다.

분명 주이안 헌터가 소생 스킬로 한 번 살릴 수 있댔으니까, 주이안 헌터만 살면 된다.

어차피 난 스쳐도 사망이니 고민할 틈도 없었다.

“비켜요!”

난 내 옆에 떠 있던 주이안 씨를 밀쳤다.

체력이 그래도 든든한 데다 주이안 헌터가 힐러계인 탓에, S급 헌터를 밀쳤다고 손모가지가 나가는 일은 없었다.

아니, 손목이 나가도 상관없었다.

죽기 전에 이 멧돼지 앞에서 주이안 헌터를 어떻게든 치워야 했다.

내가 만든 말레티아의 검의 잔상이 멧돼지를 꿰뚫었다.

―푸욱!

“!”

그리고 주이안 씨의 놀란 얼굴을 마지막으로 내 시야에서 빛이 사라졌다.

아니, 사라졌다고 생각한 순간이었다.

―콰드득!

정확히는 햇빛을 나보다 큰 그림자가 가로막았다.

난 살이 뜯어져 나가고 뼈가 부러지는 생경한 소리에 눈을 크게 떴다.

고통은 없었다. 내…… 것이 아니었다.

“하아!”

익숙한 기합소리와 함께 검은 그림자가 멧돼지를 가로막았다.

그의 손에 들려 있던 대검은 단검 모양으로 축소되어 멧돼지의 입 안을 꿰뚫고 있었다.

그리고 그의 팔은 멧돼지의 입 안에 반쯤 들어가 있었다.

그의 검과 맞닿은 내 말레티아의 검 잔상이 흩어졌다.

“신재헌!”

놀란 내가 그를 붙들었다.

―끼에에에엑!

급소에 데미지를 받은 멧돼지가 그대로 검은 가루가 되어 흩어져 버렸다.

눈앞에 몬스터 퇴치 완료 시스템창이 우르르 떠올랐지만 그런 걸 볼 틈은 없었다.

[세니아 드 포를랭(신유리) - 일반인

- 상태이상 : 마력부족]

나로 시작되어 있는 파티창에서 신재헌의 이름이 새빨갛게 변했다.

[아이반 엘레티아 폰 카르만(신재헌놈) - S급(딜러)

- 상태이상 : 체력 부족(5% 이하), 다발성 골절, 과다출혈]

그가 힘없이 바닥으로 떨어져 내렸다.

“신재헌 헌터!”

소예리 헌터의 마법이 신재헌을 곧바로 받쳤다.

그 아래로 주이안 씨의 던전 인벤토리에서 거대한 침대가 튀어나왔다.

그가 급한 환자를 볼 때 쓰는 침대였다.

신재헌이 침대 위에 놓이자마자 소예리 헌터가 우리를 바닥으로 내렸다.

난 곧바로 신재헌에게 달려갔다.

“신재헌!”

아직 의식이 없진 않은 듯했다.

주이안 헌터가 진단 스킬과 치료 스킬을 쓰는 동안 신재헌과 내 눈이 마주쳤다.

“정신 안 차려? RP던전에서 부상당하면 나가서도 적용되는 거 몰라?”

미쳐도 제대로 미친 게 분명했다.

말레티아의 검을 쥐고 있던 그의 오른팔은 이미 멧돼지의 이빨에 반쯤 걸레짝이 된 상태였다.

게다가 멧돼지의 입 속에 산성액이라도 있었는지, 손끝은 새까맣게 탄 채였다.

만일 주이안 헌터의 진단 스킬로 ‘치료 불가’ 판정이 떠버리면 저대로 살아야 한다는 소리다.

한마디로 제 헌터로서의 인생을 걸고 팔을 내준 셈이었다.

그것도 고민 하나 없이.

내 말에 신재헌이 웃다 말고 눈살을 찌푸렸다.

통증이 심한 듯했다.

“여기서 죽어도 끝이잖아.”

“너…….”

주이안 씨한테 소생 스킬 있는 거 알고 있을 텐데.

내가 죽어도 한 번은 살릴 수 있다는 거고.

그걸 계산해서 난 주이안 씨를 밀친 거였다.

죽을 정도의 데미지라면 아파도 상상도 못 하게 아프겠지만, 그래도 누군가 영영 사망하는 것보단 낫다.

그런데 이놈 생각은 달랐던 모양이다.

“치료는 가능하겠어요?”

신재헌이 주이안 씨에게 물었다.

주이안 씨는 아직 진단 스킬에 집중하고 있었다.

“안 되면?”

난 그의 오른팔을 바라보았다.

침대를 벌써 절반 가까이 피로 물들이고 있는 그의 팔은 반쯤 형체를 알아보기 힘든 상태였다.

지금 이 순간도 멧돼지의 산성액이 그의 손을 좀먹고 있었으니까.

“나 왼손도 쓸 수 있어.”

신재헌이 간단하게 대꾸했다.

그걸로 해결될 문제냐, 그게!

환자를 칠 수도 없어서 난 주먹만 꽉 말아 쥐고 있었다.

“다행히 치료는 가능할 것 같습니다.”

그때 주이안 씨가 진단 스킬을 거두고 말했다. 나도 모르게 한숨이 터졌다.

주이안 씨는 신재헌의 팔에 손끝을 얹었다.

그곳으로 그의 회복계열 스킬이 쏟아져 들어가는 게 보였다.

“신재헌 헌터, 탱커도 아닌데 그렇게 들이대면 아작나는 수가 있어요.”

소예리 헌터가 심각한 얼굴로 말을 보탰다.

얼굴에서 웃음기가 가신 걸 보니 감정 관련 스킬을 가진 그녀가 보기에도 신재헌의 상태는 심각한 모양이었다.

“그래도 안 아작났으면 됐죠.”

신재헌이 어깨를 으쓱하다 말고 눈살을 찌푸렸다.

주이안 씨의 스킬에 ‘통증 경감’이 있었을 텐데도 통증이 심한 모양이었다.

어휴, 이 대책 없는 놈.

그래도 입이 산 모습을 보니 어깨에 힘이 풀렸다.

아까 그가 힘없이 바닥으로 추락할 때는 정말 아찔했다.

그래도 할 말은 해야지.

“고맙다.”

신재헌 아니었으면 죽음의 고통을 맛봤을 건 나였다.

신재헌이 나를 돌아보았다. 싱글벙글 처웃는 얼굴을 보니 열이 올랐다.

“그래도 두 번 다시 이런 짓은 하지 마.”

소생 스킬은 아예 죽은 상태를 되돌리는 거라서 차라리 깔끔하다.

이렇게 독에 부식된 팔을 재생시키는 게 더 어려웠다.

특히 S급 헌터인 신재헌의 능력을 완전히 쓸 수 있을 정도로 회복시키는 건 주이안 씨가 아니었으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왜?”

그때 신재헌이 불쑥 물었다. 몸을 돌리려다가 다시 돌아보니, 그의 새까말 정도로 짙은 벽안이 나를 주시하고 있었다.

난 그 시선에서 그의 생각을 읽어냈다.

그는 같은 상황이 다시 오면 고민 없이 이번과 같은 선택을 할 것이다.

“그럼, 그냥 죽게 둬?”

그가 다시 물었다. 사실 그게 정답이었다.

하지만 구해준 사람한테 할 말은 아니지.

“그건 아니고.”

그때까지도 신재헌은 답하라는 듯이 새까만 눈으로 날 올려다보고 있었다.

난 신재헌의 이마를 툭 쳤다.

[헌터 신재헌(S)의 방어력이 너무 강합니다.]

[체력 -17793]

“어우.”

손가락이 부러질 것 같은 걸 참으면서 난 대충 답했다.

“다음엔 이러지 말고 한 방에 끝내라고. 그럼 다칠 일도 없잖아.”

내 말에 신재헌이 눈썹을 치켜올렸다.

그러다가 조금 멀쩡해진 비주얼의 팔을 돌려 보면서 대꾸했다.

“그래야겠네.”

그때 주이안 씨가 그에게 말했다.

“한동안은 무리하지 마세요. 일상생활은 가능할지 몰라도, 검을 잡는 건 안 돼요.”

그의 스킬로도 완전히 회복되지 않은 모양이었다.

확실히 부상이 심하긴 했지.

“얼마 정도?”

“한 2주?”

주이안 씨의 말에 신재헌이 미간을 좁혔다.

“10일.”

“안 돼요. 최소 13일.”

“11일.”

시장바닥 흥정만도 못한 대화가 오갈 때였다.

갑자기 먼 곳에서 우렁찬 목소리가 들려왔다.

“신 성 예 하!!!!!!!!!!!!”

멍청한 대화를 하던 두 남자와 소예리 헌터, 그리고 나까지 숲 반대쪽을 돌아보았다.

이게 뜬금없이 무슨 상황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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