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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던전의 S급 시한부 영애 (18)화 (18/218)

18화

둘이 찌릿거리는 사이 소예리 헌터가 두 사람의 어깨를 잡아 떼어놓았다.

“내 얘기 중이었어요, 헌터님들.”

“앗.”

주이안 씨는 그 말에 정신을 차렸는지 재빨리 뒤로 물러났다.

신재헌은 살짝 눈을 감았다 떴을 뿐이었다.

“황제 폐하랑 신성 예하께서 지원해주신다면 난 아주 좋아 죽겠지만, 문제는 이 동네에선 우리 셋 사이가 별로 안 좋다는 거예요.”

소예리 헌터의 말에 신재헌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생각이 있습니다.”

웬일로 딜러가 생각을? 이라고 하기엔 그는 생각해 보면 때때로 두뇌파였다.

그가 뻔뻔한 얼굴로 소예리 헌터를 돌아보았다.

“지원해주는 대신 연구 성과 공유하는 조건으로.”

“이야……. 도둑놈이네.”

난 그 뻔뻔함에 감탄했다. 그가 어깨를 으쓱했다.

“어차피 퀘스트 클리어하고 나가야 하잖아요. 사실 연구 성과 공유해도 난 뭔 말인지 몰라요.”

그건 그랬다. 주이안 씨가 옆에서 거들었다.

“그럼 교단도 같은 조건으로 지원하도록 하죠. 이 정도 조건이라면 RP던전 페널티에 걸리지는 않을 거예요.”

“알았네요, 알았어.”

소예리 헌터는 결국 두 손을 들었다.

“팀에 어떻게 도둑놈들밖에 없냐.”

투덜거리던 그녀가 내게 바싹 붙었다.

“내 편은 신유리 헌터밖에 없어요.”

그러자 장난기가 돋았다. 난 소예리 헌터에게 환하게 웃어 주었다.

“그럼 나도 연구 성과 공유해달라고 해야지.”

“……팀이 썩었어.”

소예리 헌터가 투덜거리며 내 옆에서 벗어났다.

그 모습에 픽 웃음이 돌았다. 셋도 마찬가지였는지 얼굴에 웃음기가 엿보였다.

그래, 이래야 우리 팀이지!

만나니까 훨씬 기분이 들뜨는 것 같았다.

“근데 신유리 헌터는 개인 퀘스트 조건이 뭐예요?”

소예리 헌터가 불쑥 물었다. 난 내 퀘스트창을 켜보다가 고개를 저었다.

“전 아직 안 나왔어요. 근데 시작 능력치 자체가 낮아서 어려운 건 안 뜰 것 같은데.”

“오! 좋겠다.”

소예리 헌터가 눈을 찡긋했다.

그러고는 신재헌의 어깨 위로 고개를 들이밀었다.

“신재헌 헌터는? 황권 강화가 끝?”

신재헌은 전방을 보면서 살짝 고개를 저었다.

“원하는 것을 완벽히 가져라? 그런 퀘스트 하나가 더 있어요.”

“뭐야, 황제 폐하 특화 퀘스트네. 나만 어렵지, 나만?”

소예리 헌터가 입을 비죽거렸다.

난 그때까지 조용한 주이안 씨를 돌아보았다.

“주이안 씨는요?”

“저는…….”

가볍게 답할 것 같았던 주이안 씨는 멈칫했다. 그러자 다른 두 사람까지 그를 돌아보았다.

그는 입술을 일자로 굳게 다물었다가, 다시 걸음을 옮기며 말했다.

“나중에 말씀드릴게요.”

곤란하면 그냥 곤란하다고 하지.

거짓말 잘 안 하는 주이안 씨다웠다. 못 밝히겠으면 그냥 그렇다고 하는 것도 방법인데.

RP던전 개인 퀘스트 클리어 조건 자체가 ‘팀에게 비밀로 할 것’인 경우도 있으니 이해할 수 없는 것도 아니었다.

내가 고개를 갸웃거릴 때였다.

“멈춰요.”

신재헌이 목소리를 낮췄다.

아, 뭔가 떴나 보다. 신재헌은 전방을 노려보고 있었다.

S급들에게는 뭔가 느껴지는지 소예리 헌터의 얼굴에도 긴장감이 떠올라 있었다.

우리 주변을 보호막으로 감싸는 주이안 씨도 마찬가지였다.

―쿠아아아……!

그때 괴성이 울렸다.

[강력한 몬스터의 괴성이 심신을 뒤흔듭니다.]

[-19937]

“아니, 소리 지르는 거에 피 깎이는 게 어디 있어?”

어이가 없어서 투덜거리는데 바로 힐이 올라왔다.

[헌터 주이안(S)가 ‘치료(S)’ 스킬 효과를 부여합니다(교황 치유 스킬 보너스+50%).]

[헌터 주이안(S)가 ‘안정(S)’ 스킬 효과를 부여합니다(교황 치유 스킬 보너스+50%).]

[‘안정(S)’ 스킬 효과 : 몬스터의 ‘공포’ 상태이상에 노출되지 않습니다. (유효시간 : 01:29:58……)]

“땡큐.”

역시 주이안 씨. 내가 엄지척을 할 때였다.

―쿠쿠쿵! 쿠쿠쿵!!

무지막지한 멧돼지의 소리가 빠르게 다가왔다.

멀리 흙먼지와 함께 아직 멀쩡했던 나무들이 쓰러지는 게 보였다.

S급 눈에는 슬슬 형체가 보일 텐데.

“……저거 진짜 SS급은 되어 보이는데요?”

신재헌이 몸을 낮춘 채 말했다.

일반인 스탯으로 살기를 정면에 받으니 뒷목에 식은땀이 찼다.

[안정(S) 스킬 효과를 받습니다.]

[상태이상 ‘공포’ 제거]

[안정(S) 스킬 효과를 받습니다.]

[상태이상 ‘공포’ 제거]

[안정(S) 스킬 효과를 받습니다.]

[상태이상 ‘공포’ 제거]

……

연달아 상태창이 떴다. 엄청난 위압감이라는 소리였다.

주이안 씨 스킬 덕에 떨리진 않았지만 그건 그거대로 문제였다.

“SS급 상위면 딜러 하나론 힘들 텐데.”

신재헌이 아무리 대검 들고 날고 기어도 딜러는 딜러였다.

탱킹에 한계가 존재한다는 소리였다. 제대로 맞으면 위험할 터다.

그렇게 생각한 순간 멧돼지가 지척에 다다랐다.

―쩌엉!

분명 동물과 검이 부딪힌 건데 엄청난 금속음이 울렸다.

“!”

검을 들어 정면 공격을 막아낸 신재헌의 체력이 쭉 빠지는 게 보였다.

같은 S급이 아니라 정확한 수치가 보이진 않았지만 한 번에 게이지바 절반 이상이 빠져나간 게 보였다.

“미친 거 아냐?”

어지간한 SS급 던전 보스도 버프로 둘둘 감싼 신재헌에게 저 정도 데미지를 갖다 박진 못했다.

그의 머리 위로 주이안 씨의 힐 스킬이 번쩍였다.

“이거 막으면서 반격하긴 힘들겠는데요.”

신재헌이 눈살을 찌푸렸다. 보통 이럴 때 내가 옆에서 딜하는 게 우리 파티 굴러가는 방식이었다.

화나네?

인상을 찌푸린 난 습관적으로 신의 상점을 켰다.

하다못해 체력 강화 물약이나 근력 뿜뿜 물약, 이런 건 없나?

그런데 그런 내 앞에 은하 서버 스킬 열쇠가 떠올랐다.

[지금 이 순간! 구매한다면 20000C!]

특별세일도 하는 거였냐!

안 살 이유가 없었다. 난 고민 없이 은하 서버 스킬 열쇠를 선택했다.

[은하 서버 스킬 열쇠를 사용합니다.]

[잔여 Coin : 10213C]

[은하 서버에서 ‘헌터 신유리(S)’의 스킬 목록을 불러옵니다…….]

시스템창이 순식간에 몇 개가 후루룩 지나갔다.

퍼렇게 번쩍이는 시스템창 너머로 신재헌이 고군분투하는 게 보였다.

아슬아슬하게 깎여 나가는 그의 체력 게이지바도.

제발, 쓸모 있는 거, 제발!

내가 주먹을 꽉 쥔 순간, 시스템창 한가운데에 스킬이 떠올랐다.

[스킬 획득 : 잔상(SS+)]

됐다!

***

신유리. 내 이름 앞에는 늘 ‘잔상’이 따라다녔다.

뉴스에 나올 때도 신유리라는 이름 대신 ‘잔상 딜러’라는 이름이 더 많이 나오곤 했다.

헌터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떠들기 좋아하는 지식나무의 [헌터/헌터(국내)/S급/신유리(딜러)] 문서의 하위항목에도 잔상 스킬이 따로 언급될 정도였다.

한마디로 내 주요 스킬이란 말이다.

“나이스!”

이거지!

전부터 뽑기 운은 좋았다.

난 스킬창에서 곧바로 잔상 스킬을 사용했다.

우리 파티에 탱커가 없었던 이유 중 하나가 이 잔상 스킬 때문이었다.

내 잔상이 몬스터들의 이목을 흐트러뜨렸으니까.

그런데 문제가 있었다.

[스킬을 사용하기에는 마력이 부족합니다.]

“아, 씨!”

물론 SS+급 스킬을 일반인 스탯으로 제대로 사용할 수 있을 거라곤 기대 안 했다.

“신유리 헌터님?”

그때 주이안 씨가 나를 돌아보았다. 무슨 일 있느냐는 듯 다급한 목소리였다.

―쿠쿠쿵!

그 사이 다시 멧돼지가 우릴 향해 돌진해 왔다.

멧돼지는 소예리 헌터가 친 3겹의 보호막을 뚫고 신재헌의 검과 부딪혔다.

―치이익!

그가 1미터쯤 밀려 나가는 게 보였다. 그의 손에 힘이 잔뜩 들어가 있는 것도 보였다.

한계까지 힘을 끌어올린 거다.

내가 제대로 딜만 할 수 있었어도 신재헌이 혼자 공격받을 일은 없었을 거다.

아니면 다른 딜러 하나만 더 있었어도!

다시 말해, 딜만 할 수 있다면.

내 잔상 스킬은 원래 내 형상에 잔상을 만들어 여러 번의 공격을 가하는 스킬이었다.

대신 마력을 무지막지하게 잡아먹는.

이대로면 쓸 수 없다.

하지만.

난 신재헌의 검을 바라보았다.

공격만…… 여러 번 할 수 있으면 되는 거 아닌가?

그렇게 생각한 순간이었다.

[잔상(SS+) 스킬을 국소 범위에 적용합니다.]

된다!

내가 전부터 실험해보고 싶었던 게 이거였다.

[적용 범위 : 헌터 신재헌의 ‘말레티아의 검(SS+)’]

사람까지 잔상화할 필요는 없다.

내 잔상 스킬이 등급이 높은 건 잔상들도 데미지를 줄 수 있어서였다.

다시 말해 검만 복사하면 된다.

[‘말레티아의 검(SS+)’의 주인이 스킬 효과 부여를 거절했습니다.]

그때 불쑥 시스템창이 솟아올랐다. 신재헌이 당황한 얼굴로 이쪽을 돌아보았다.

“너 마력 빨려 죽어, 그러다가!”

일반인 마력으로 SS+급 스킬을 쓰면 어떻게 되는지는, 스킬이 담긴 아티팩트를 욕심부려 쓰던 일반인들의 말로만 봐도 알 수 있었다.

헌터들만 사용하도록 규제되어 있는데도, 어떻게 불법 경로로 구한 그 아티팩트들을 사용한 일반인들은, 영화에 나오는 미라처럼 바짝 말라비틀어진 채 발견됐다.

그 현상을 헌터들은 속된 말로 마력이 빨린다고 했다.

“마력이 빨려도 죽는 거고, 멧돼지에 받혀 죽어도 죽는 거지!”

하지만 이판사판이었다. 그거 말곤 방법이 없었다.

“거절하면 멧돼지한테 돌진해 버린다!”

내 협박 아닌 협박에 신재헌이 당황했다.

지금 네가 나 걱정할 때야?

멧돼지는 SS급은 되어 보이는 놈답게 머리가 비상했다.

우리 중에 탱킹이 되는 게 신재헌뿐임을 알았는지 그에게 공격을 집중하고 있었다.

덕분에 저 녀석은 몇 번만 더 멧돼지 공격을 받았다간 먼저 뻗어버릴 게 분명했다.

“너―”

[잔상(SS+) 스킬을 국소 범위에 적용합니다.]

[적용 범위 : 헌터 신재헌의 ‘말레티아의 검(SS+)’]

이번에는 아까와 달리 칼 같은 거절 창이 뜨지 않았다.

신재헌이 이를 악문 채 나를 보는 게 보였다.

“안 죽으니까, 빨리!”

멧돼지 놈은 다시 달려오고 있었다.

주이안 씨의 이마에 땀이 맺히는 것이 보였다.

이대로면 주이안 씨 뻗고 신재헌 뻗은 다음 사이좋은 멧돼지밥 엔딩이다.

[헌터 신재헌, 잔상(SS+)효과 승인.]

결국 그가 고개를 끄덕이자마자, 내 마력이 훅 빠져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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