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 던전의 S급 시한부 영애 (16)화 (16/218)

16화

“그럼, 강해져서 돌아올게요!”

그날 오후, 난 마차에 탄 채 힘 있게 외쳤다.

강해져서 쳐 죽이러 돌아올게! 모가지 닦고 기다려!

물론 뒷말은 삼켰다.

그렇게 가문의 문장도 새기지 않은 마차를 타고 떠난 나는, 시장에서 소예리 헌터와 만나 그녀의 별장으로 향했다.

이제 내 위치를 아는 건 나와 소예리 헌터, 그리고 신재헌과 주이안 씨 네 사람뿐이었다.

***

[신의 상점 Coin +3]

[신의 상점 Coin +1]

[신의 상점 Coin +4]

……

쭉쭉 올라가는 시스템창이 시원했다.

소예리 헌터와의 수련은 과연 짜릿했다.

애초에 파티를 맺고 RP던전에 같이 들어온 헌터팀인 덕에, 근처에 같이 있는 것만으로도 소예리 헌터가 잡은 몬스터의 경험치가 들어왔다.

신의 상점 코인이 더해지는 건 물론이었다.

지금까지 퀘스트로 조금씩 받던 것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속도다.

이런 식으로 획득이 가능한 줄 알았다면 진작 와볼걸!

“생각보다 안 지치네, 신유리 헌터?”

소예리 헌터의 말에 난 목걸이를 들어 보였다. 신재헌이 준 거였다.

감정 스킬이 있는 소예리 헌터의 눈에 C급 아이템의 능력치쯤이야 훤히 보일 터였다.

“와, 체력 3만? C급에 이런 물건이 있었어?”

물론 그 아랫줄에 있는 신재헌의 애장품이란 설명도.

“C급에 애장품을 붙여????”

당연히 그 부분을 본 소예리 헌터도 뒤로 넘어갔다.

“L급 물건에나 박살 나지 말라고 붙이는 애장품을 C급에다가?”

애장품이 되면 그 물건은 무슨 일이 있어도 깨지지 않게 된다.

소예리 헌터는 목걸이를 보다가 어이없어했다.

“들고 있는 칼보다 목걸이로 몬스터 패는 게 더 세겠다.”

절대 깨지지 않는다는 건 다시 말해 쓰는 놈 힘만 강하다면 최강의 무기가 될 수 있다는 말이었다.

“어쨌든 이게 있어서 소예리 헌터님 쫓아다니는 건 어렵지 않아요.”

난 목걸이를 다시 옷 속으로 쏙 숨겨 버렸다. 신재헌 생각이 다시 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그때야 미친놈이냐고 하긴 했지만, 아니, 지금도 여전히 미친놈 같지만.

……선물 준 거, 이렇게 잘 간직하고 있는 걸 보면 누가 안 뿌듯하겠는가.

콧잔등이 괜히 시큰해지는 기분이다.

“그나저나 경험치 엄청 잘 쌓이네요.”

“그러게 내가 오랬잖아요.”

소예리 헌터가 팔짱을 낀 채 고개를 살짝 들었다.

난 신의 상점 코인 상태를 확인했다.

[Coin : 9339]

벌써 9천 개 넘게 모았다. 이대로면 신의 상점에서 쇼핑하는 것도 꿈은 아니겠다.

“난 기껏 해봐야 마물 몇십 마리 정도 있을 줄 알았죠.”

그건 소예리 헌터가 손 한 번 휙 휘두르면 없어질 숫자였다.

그래서 기대도 안 하고 왔는데 웬걸, 그녀가 있던 이 칼레아 숲은 몬스터가 퐁퐁 솟아나는 곳이었다.

“그런데 몬스터 많은 건 나야 고마운데, 이렇게 많이 나오는 것도 이상한 거 아니에요?”

한 마리 잡으면 1~4코인 정도 주니까, 대충 계산해 봐도 우린 몬스터를 몇천 마리쯤은 없앤 셈이었다.

“그렇죠. 이렇게 된 지는 얼마 안 됐대요. 나도 그거 조사하러 온 거고.”

얼마 안 됐다고?

난 새삼 숲을 쳐다보았다.

숲 안쪽에 있을 법한 벌레는 물론이고 새나 다람쥐, 토끼 같은 작은 들짐승들까지 죄다 마물화가 되어 우리를 가로막고 있었다.

“꼭 숲 던전 게이트 같네.”

대한민국에서 우리가 지겹도록 들락거린 게이트는, 생긴 곳 주변 환경에 맞추어 몬스터가 만들어진다.

그래서 용산 전자상가에 떴던 게이트는 몬스터가 죄다 기계였지.

“원래 이 동네도 이런 식으로 떠요? 게이트처럼?”

“아뇨. 원래 여긴 정해진 몬스터만 나와요. 고블린이나 가고일 같은 친구들은 몬스터 부락도 따로 있고.”

우리 둘만 있는 만큼 소예리 헌터는 편하게 말하고 있었다. 하지만 내용은 편치 못했다.

“메인 퀘스트랑 관련 있나?”

이 세계답지 않은 일이 일어나면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곧 난 검을 고쳐 쥐었다.

“패다 보면 알겠죠?”

원래 딜러는 복잡한 생각 하는 거 아니다!

난 어느새 좀 더 가벼워진 검을 휘둘렀다. 신재헌이 줬던 B급 검이었다.

이거 덕에 체력이 4.5만이나 뻥튀기돼서, F급 탱커라도 된 기분이었다.

요컨대 체력답지 않게 근력은 약하단 소리였다.

―탁!

길 가던 솔방울 몬스터가 내 검을 잡아챌 수 있을 정도로.

“아오!”

물론 데미지 주는 방법이 칼로 베기만 있는 건 아니었다.

난 내 검을 거세게 휘둘러, 올라탄 솔방울 자식을 내던져 버렸다.

―뀨우우우!

대체 솔방울 어디서 뀨 소리가 나는 거야?

궁금해할 틈도 없이 솔방울은 경험치로 산화했다.

[신의 상점 Coin +5]

코인 좋고!

나와 소예리 헌터는 다시 마물소탕에 집중했다.

티끌 모으면 대부분 티끌이지만, 가끔 태산이 될 때도 있는 법.

그게 바로 이럴 때였다.

[Coin : 17291]

코인이 나름 쌓였을 때쯤, 소예리 헌터와 나는 숲의 중간쯤에 있었다.

“근데 여기서 큰 스킬 써도 돼요? 사람들이 안 보나?”

난 소예리 헌터가 번개 스킬을 준비하는 걸 보며 물었다.

소예리 헌터는 어깨를 으쓱했다.

“유령 나오는 숲이라고 다 도망갔어요.”

“마물 나오는 숲이 아니고?”

웬 유령? 내 의문에 소예리 헌터가 내가 까먹은 걸 다시 짚어 주었다.

“이 동네 사람들은 이런 변이형 몬스터에는 익숙하지 않다니까요.”

“아, 그랬지.”

그러거나 말거나 지금은 내 경험치원일 뿐이었다.

내가 거대한 나뭇잎 몬스터에게 검을 휘두를 때였다.

“근데 특징은 확실하네요. 적어도 떨어진 나뭇잎 같은 데에서 몬스터가 발생하진 않으니까, 확실한 생명원을 가지고 있는 것들만 몬스터화가 돼요.”

오, 소예리 헌터의 연구원 기질이 발동했다.

“2022년에 서울 한국대학원의 이청명 헌터가 발표한 변이화 이론에 따르면―”

난 게이트 터지기 전에도 이과 아니었다. 머리 터질 이야기는 질색이다!

난 귀를 막으려다가 무심코 소예리 헌터 뒤를 쳐다보았다.

그리고 입을 떠억 벌렸다.

“생명력이 충만할수록 몬스터로 변이될 가능성이 크다는 거죠. 가령, 아!”

소예리 헌터는 자기 뒤로 나무를 쓰러뜨리며 맹렬히 뛰어오고 있는 멧돼지를 가리켰다.

“저런 애들?”

“지금 설명할 때냐고!”

난 소예리 헌터의 허리를 붙잡고 나무 위로 폴짝 뛰어올랐다.

S급일 때였으면 하늘 높이 도약했겠지만 지금 몸으로는 나무에 대롱대롱 매달리는 게 다였다.

―쿠콰콰쾃!

그리고 소예리 헌터와 내가 있던 자리를 몬스터화된 멧돼지가 쓸고 지나갔다.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하자 형체도 제대로 안 보이는 걸 보니, 지금까지 우리가 쓸어버리던 잔챙이와는 급이 다른 놈이었다.

“저거 몇 랭크예요?”

적어도 A급 이상인데?

내가 멧돼지가 지나간 길을 살필 때 소예리 헌터가 불쑥 말했다.

“모르겠어요.”

“네?”

못 봤나? 소예리 헌터를 돌아보니 그녀는 심각한 얼굴이었다. 얼굴에서 장난기는 지워진 채였다.

“안 보였거든요.”

“뭐라고요?”

헌터들은 상대의 랭크를 이미 알고 있거나, 본인과 동급 혹은 이하의 랭크를 가진 상대라면 랭크를 읽어낼 수 있었다.

그런데 S급 헌터의 눈에 랭크가 보이지 않는 몬스터라면?

다시 말해 S급 초과, 적어도 SS급 몬스터라는 의미였다. 이건 비상이었다.

[세니아 드 포를랭(신유리)>>> 아아ㅏ아안ㄴ바쁜신재헌주이안씨구함]

물론 안 바쁠 수가 없는 두 사람이었다.

―쿠쿠쿠쿵!

제 속도에 못 이겨 우리를 한참 지나갔던 멧돼지의 소리가 가까워지기 시작했다.

소예리 헌터가 날 들고 날아올랐다.

―쾅!

다행히 멧돼지 놈은 날개가 달리진 않아서, 우리가 있던 자리에 크레이터를 파는 게 고작이었다.

[세니아 드 포를랭(신유리)>>> 적어도 SS급인 몬스터가 있어요 이거 우리 둘이 못 잡]

“와악!”

헌터 채팅을 보던 난 기겁할 수밖에 없었다.

못 날 줄 알았더니 멧돼지 놈이 우리 바로 아래까지 도약한 탓이었다.

“고놈 뒷다리살 튼실하기도 하지!”

그렇게 외친 소예리 헌터가 더 높이 날아오르지 않았으면 내 허리 아래는 이미 멧돼지의 밥이 됐을 터였다.

그리고 급하게 끊긴 내 채팅이 급해 보이긴 급해 보였는지, 곧바로 채팅이 올라왔다.

[아이반 엘레티아 폰 카르만(신재헌놈)>>> 어디야?]

[아리엔사 시안 데마르(주이안씨)>>> 어디예요?]

며칠 동안 말 없던 주이안 씨까지 칼답이었다.

[클로나 에이센(예리언님)>>> 우리 수련한다던 숲. 늦으면 신유리 헌터 돼지밥 돼용~]

“지금 농담―”

―이 나오냐고 따지려던 난 혀를 깨물 뻔했다.

아래에서 맹렬한 도움닫기를 시도하는 멧돼지를 피해 소예리 헌터가 더 높이 하늘로 날아오른 탓이었다.

그리고 우리 팀의 딜러와 힐러는 말이 없었다.

설마 바쁘다고 씹는 거 아니지?

***

소예리 헌터는 몬스터의 눈에 띄지 않도록 하늘 높이 날아올랐다가 집으로 돌아왔다.

우리가 사냥하는 동안 집으로 썼던 작은 통나무집이었다.

다행히 멧돼지 몬스터는 제 영역을 벗어나지 않았다.

대신 우리가 없앤 몬스터를 다시 퐁퐁 만들어 숲을 마물 굴로 만들어 놓았다.

“다시 생긴 몬스터야 쓸어버리면 그만인데…….”

어차피 신재헌은 광역기가 많은 S급 딜러였다.

적당히 소예리 헌터와 함께 쓸어버리면 문제 될 수준은 아니었다.

정말 문제는 소예리 헌터의 눈에도 랭크가 안 보이는 그 괴물 멧돼지다.

“저기 오네.”

그때 소예리 헌터가 통나무집 문을 벌컥 열었다.

곧 그 앞에 익숙하고 반가운 얼굴들이 나타났다.

“신재헌! 주이안 씨!”

내가 손을 흔들자 두 사람이 살짝 몸을 숙이며 통나무집 안으로 들어왔다.

키 180cm이 넘는 장신 둘이 들어오기엔 자그마한 통나무집인 탓이었다.

“다친 데는?”

신재헌은 내 인사를 받으면서 불쑥 물었다.

저번에 봤던 옷차림과는 달리, 목의 칼라 부분까지 금빛 자수가 올라와 있는 화려한 복장이었다.

아니, 저놈은 왜 저렇게 화려한 옷을 입고 와?

그것도 얼마나 빠르게 날아왔는지 옷매무새며 머리는 제대로 정리도 되지 않은 상태였다.

“그놈한테 맞았으면 나 이미 세상 하직했어.”

내가 손을 내저어도 나를 살피는 눈길은 변하지 않았다.

그 뒤에서 주이안 씨는 이미 진단 스킬을 쓰고 있었다.

그가 쓴 단안경의 금빛 줄이 옅은 조명을 반사했다.

[헌터 주이안(S)이 ‘진단(S)’ 스킬을 사용합니다…….]

[진단 완료.]

[헌터 주이안(S)이 진단 결과를 공유합니다 : 이상 없음.]

“괜찮아요. 아무 이상 없어요.”

주이안 헌터가 스킬을 끝낸 후에야 신재헌은 걱정하는 눈길을 거두었다.

게이트 열린 이래 이렇게 과보호 받아본 건 처음이다.

기묘한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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