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화
“이게 어디, 헐.”
맞다!
난 재빨리 제복 주머니를 뒤졌다.
주머니 안에서 살아있는 게(?) 내 손가락을 덥석 안고 끌려 올라오는 게 보였다.
그건 당연히 신재헌이었다.
“아직 안 커졌어?”
훈련 도중에 커지면 그거대로 문제였겠지만, 그가 이렇게 천년만년 작아져 있는 것보단 나을지도 몰랐다.
내 검지를 기둥 끌어안듯 끌어안은 채 주머니에서 튀어나온 신재헌이 눈썹을 꿈틀거렸다.
“먹고 나서 뜨는 설명 보니까 지속 시간이 24시간이더라. 그렇다고 훈련 중간에 나갈 수도 없고.”
“그……건 그렇지.”
아깐 급해서 그만. 난 미안한 얼굴로 그를 테이블 위에 내려놓아 주었다.
머리를 매만지다가 팔짱을 끼는 그는 정말로 손바닥만 했다.
“와, 신재헌 미니어처네.”
난 그의 볼을 검지로 톡 건드려 보았다. 그는 눈살을 찌푸렸지만 일반인 힘에는 밀려나지도 않았다.
역시 작아져도 S급은 S급이었다.
“근데 뭘 먹인 거야?”
신재헌이 물었다.
“아.”
생각난 김에 하나 더 사야겠다. 어차피 공짜니까.
[신의 상점 - Coin : 3350C]
[쪼꼬미 물약 – 무료!]
난 신의 상점에서 쪼꼬미 물약을 하나 더 사서 신재헌 앞에 내려놓았다.
“이게 이렇게 쓸모 있을 줄은 몰랐네.”
쪼꼬미 물약은 작아진 신재헌보다 조금 더 컸다.
“처음 보는 물약인데.”
신재헌은 제 키만 한 물약을 툭 건드려 보았다.
―콰지직!
그러자 S급의 힘을 버티지 못한 물약병이 명을 달리했다.
난 그걸 치우고 다시 물약을 사서 꺼내주었다.
“쪼꼬미 물약이래. 말 그대로 작아지는 약. 근데 이거 진짜 초코맛이야?”
쪼꼬미 물약의 설명을 생각하던 내가 물었다. 신재헌이 그제야 아하,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 신의 상점인가에서 살 수 있는 게 이거야? 초코맛이긴 했는데…….”
답하던 그의 말꼬리가 흩어졌다. 그가 눈을 가늘게 뜬 건 작아졌는데도 잘 보였다.
“……그래서 검증도 안 된 약을 준 거야, 아까?”
“그게,”
미안하다, 신재헌!
“검증할 시간이 없었다! 미안하다!”
아니면 그 상황에 기사들하고 상견례라도 할 거야, 응?
내 뻔뻔한 말에 신재헌은 어이가 없다는 듯 입을 벌렸다.
“하지만 생각을 해 봐. 거기서 빠져나갈 방법은 이거밖에 없었다니까?”
“그건 그랬다 치고……”
신재헌은 황당한 듯 웃어 버렸다.
“그래서 이 약 효과, 해제하는 약은 없어?”
난 다시 한번 신의 상점을 열어보았다. 하지만 쪼꼬미 물약을 해제할 만한 물건은 보이지 않았다.
“……없어.”
물론 시스템이 24시간 후에 풀린다고 했으니 미니어처 버전으로 살 일은 없을 것이다.
문제는 당장이었다.
“이대로 황궁으로 돌아갈 순 없는데. 나 휴가야?”
신재헌이 손을 펴 보였다.
그러게? 난 창밖을 내다보았다. 벌써 저녁 시간이었다.
“휴가가 아니라…… 이 나라 황제 폐하 하루 실종이냐, 지금?”
신재헌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테이블을 둘러보다가, 테이블에 있는 메모용 펜을 하나 질질 끌고 와서 걸터앉아 버렸다.
다리까지 여유롭게 꼰 채 그가 말했다.
“아마도.”
“그러고 황성 가면 망하겠지?”
“아마도.”
신재헌은 다시 툭 뱉듯 답했다.
하긴 저 크기면 기사들 발에 밟혀 죽을 수도 있겠다……. 아니, 그러기엔 너무 단단한 S급이 아닌가?
“황성 기사들 발 조심 해야겠네.”
내가 작게 중얼거리자 신재헌이 눈썹을 치켜 올렸다.
그러곤 툭 뱉었다.
“내 걱정은?”
“너?”
사실 검증도 안 된 약을 먹인 건 미안했다.
하지만 RP던전에서 나오는 약이 독인 적은 지난 10년간의 게이트 역사에 없었을뿐더러, 무엇보다 상대는 신재헌이었다.
“설마 C급에서 S급도 찍은 신재헌이 작아진 거 하나 해결을 못 할까.”
이건 답 없이 하는 말이 아닌, 진짜 믿음이었다. 난 그의 볼을 톡 건드렸다.
“안 커지면 내가 신의 상점 거꾸로 털어서라도 원상회복 시켜줄게.”
이것도 진심이었다.
S급이라지만 작아진 걸 보니 지켜줘야 할 것 같았다.
언젠가 그랬던 것처럼.
10년 전에 그랬던 것처럼.
신재헌은 내 말에 눈썹을 치켜올렸다. 금방이라도 틱틱거릴 것 같던 그는 고개를 돌려 버렸다.
“제깟 게 내일이면 풀리겠지.”
“맞아, 풀리겠지.”
답도 없는 걱정 해서 뭐 하냐?
우리 헌터팀에서 신재헌과 나는 태평하기로 1위를 다투는 사람들이었다.
걱정은 주이안 씨와 소예리 헌터가 다 해줬다. 미안. 죄송.
하지만 헌터들 중에 딜러로 각성하는 사람들 기질이 대부분 이랬다.
진짜 큰일이 아닌 이상, 복잡한 일 생각하기 싫어하는 직진파 스타일.
“근데 너 진짜 귀여워졌다.”
손가락 두 개면 덮이는 그의 머리를 꾹꾹 눌러주다가, 손뼉을 짝 쳤다. 이왕 작은 채로 있을 거라면 편한 게 낫겠지?
오늘 하루 신유리 호텔이 모십니다.
“잠깐 앉아 있어 봐.”
난 차가운 테이블 바닥(?)에 있는 그를 보다가 몸을 돌렸다.
“?”
난 일단 그의 앞에 손수건을 깔아 주었다. 주름 없는 재질로 만들어진 손수건은 그의 앞에 놓이니 무슨 새하얀 카펫 같았다.
대한민국에서 미니어처 가지고 놀던 솜씨가 여기서 빛날 줄이야.
난 곧 그의 옆에 자그마한 종이 베개와 이불, 곰인형까지 만들어주었다.
“너 지금 즐기는 거지.”
베개는 또 착실하게 받아들면서 신재헌이 물었다. 난 굳이 부인하지 않았다.
“기회가 왔을 때 즐겨야지.”
“내가 장난감이 되려고 여기까지 온 게 아닌데.”
어쩌다 내가 이런……. 그렇게 투덜거리면서도 그는, 기꺼이 내 손수건 위에 대자로 뻗어 버렸다.
“그래, 마음대로 가지고 놀아라.”
그래, 신재헌은 늘 이런 사람이었다. 내 장난에 기꺼이 당해주는 사람.
킥킥 웃은 내가 그의 복부를 손끝으로 콕 찔러 주었다.
“기다려봐.”
난 그에게 몇 가지 작은 장난감을 더 만들어주었다.
RP던전 빙의했어도 손재주는 어디 안 가는 모양이다.
몇십 분 후, 신재헌은 내가 만들어준 종이 칼을 휘둘러보다가 손수건 곰인형 옆에 세워 두었다.
“아,”
그러고는 아차 하더니, 던전 인벤토리로 손을 집어넣었다.
“주려던 게 하나 더 있어.”
“응?”
그가 인벤토리에서 꺼낸 건 제 몸보다 몇 배는 큰 검이었다.
[수룡의 가시비늘(B)]
“이건 또 어디서 났어?”
신재헌하고 같은 던전을 다니는 내가 그의 인벤토리 상태를 모를 리가 없었다.
이건 원래 그가 갖고 있던 물건이 아니었다.
여기 와서 얻었나 본데?
“그냥 황성에 굴러다니는 거 주웠어. 목걸이랑 비슷한 능력치라 쓸 만할 거야.”
그는 제 몸에 비하면 거대한 검을 내게로 밀어주었다.
물론 내 기준으로는 한 손으로 휘두를 수도 있는 검이었다.
“오.”
[수룡의 가시비늘(B) : 체력+15000, 지구력+200, 마력+200]
마침 지구력 보정이 필요했던 참이었다.
“땡큐.”
난 습관적으로 그에게 하이파이브를 하자고 손을 내밀었다. 그리고 그가 내 손바닥만 하다는 사실을 상기했다.
―톡.
하지만 그렇다고 하이파이브 못 하는 건 아니었다.
그의 아주 자그마한 손바닥이 내 손 중앙에 닿았다 떨어졌다.
윽, 심장에 해롭게 귀엽다…….
그때였다.
“아가씨, 저녁식사 시간이십니다.”
밖에서 하이텐션 하녀의 목소리가 들렸다.
“자자자잠시만실례.”
난 재빨리 신재헌을 손수건째로 주머니에 집어넣어 버렸다.
그리고 바깥에 외쳤다.
“간단히 방으로 가져다줄래?”
“그러실 줄 알고 가져왔죠!”
하필 가져왔냐!
내가 머리를 싸매는 사이 하이텐션 하녀가 방 안으로 들어섰다.
난 그녀가 들어오기 직전에 신재헌이 준 검을 던전 인벤토리에 숨기는 데에 성공했다.
“오늘 훈련 열심히 하셨다고 하셔서 스테이크로 준비했습니다!”
하녀가 기쁘게 외쳤다.
고기는 늘 옳다! 하지만 이 상황에서 하이텐션 하녀는 좀 옳지 않다!
난 주머니에 무슨 모양으로 구겨 넣어졌을지 모르는 신재헌을 생각하며 손짓했다.
“잘 먹을게. 쉬러 가도 돼.”
“넵!”
―달칵.
테이블 위에 있는 손수건 곰돌이를 보고 고개를 갸웃거리던 하녀는, 곧 음식을 테이블 위에 늘어놓고 방을 뛰쳐나가 버렸다.
“휴.”
난 그녀가 나간 걸 재차 확인하고서야 주머니에 손을 집어넣었다.
“사람을 험하게 다루네, 신유리.”
내가 험하게 다뤄도 흠집 하나 안 날 S급이 내 손에 끌려 나왔다.
그를 스테이크 옆에 내려놓으니 그가 작은 게 확실히 티가 났다.
“던전 페널티 받을 순 없잖아.”
그래서 손수건에 곱게 싸 줬잖니. 미안하다. 난 신재헌의 작은 뒤통수를 쓸어 주었다.
“밥은 따로 먹어?”
날 흘끗 본 신재헌은 내 앞에 늘어놓아진 식사를 보며 물었다.
“키칼 놈이 주는 걸 계속 먹을 순 없으니까.”
그래도 독이 들었는지 확인은 해야 한다.
“여기 어디 남는 은수저를 내가 짱 박아 놨었는데.”
내가 서랍으로 돌아서려는데, 신재헌이 날 붙들었다.
“은수저로 확인 안 되는 것도 있잖아.”
그야 그렇지만, 저쪽이 독을 쓰는 걸 이쪽이 알아챘다는 사실을 노출할 수 없는 지금은 이게 최선이었다.
이거라도 확인 안 해보는 것보단 낫다. 그렇게 생각한 순간이었다.
신재헌이 요리 사이를 누비기 시작했다.
그러고는 자신에겐 아직 거대한 칼을 두 팔로 번쩍 들어 고기를 잘도 썰어냈다.
역시 S급 힘이면 못하는 게 없군.
“왜, 썰어주게?”
일반인도 고기는 썰 수 있단다.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조금 감동받은 순간이었다.
신재헌은 아주 작게 썬 고기 조각을 날름 제 입으로 가져가 버렸다.
“이보쇼.”
내가 눈을 가늘게 뜬 순간이었다.
“……!”
신재헌의 고운 미간에 금이 갔다.
시선이 살짝 앞으로 가는 걸 보니 시스템창에 뭔가 뜬 모양이었다.
“설마,”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신재헌이 내게 손을 펴 보였다.
입가를 닦는 하얀 셔츠 자락에 묻어나는 건 분명히, 피였다.
“……먹지 마, 이거.”
S급에게도 반응하는 독이라고? 난 눈을 크게 떴다.
“신재헌?”
난 나도 모르게 양손으로 그의 몸을 붙들었다.
“괜찮아? 주이안 씨 불러?”
“아니.”
내 움직임에 흔들리던 신재헌이 손을 내저었다.
아차. 내가 놀라 손을 떼자 신재헌이 재차 고개를 흔들었다.
“데미지만 좀 들어왔을 뿐이야.”
S급에게 데미지가 박힐 정도라니. 어지간히 강한 독임이 분명했다.
그리고 그 독을 넣을 놈은 한 명밖에 없었다.
“분명 식사 따로 준비하라고 했는데. 결국 키칼이 알아챈 모양이네.”
하이텐션 하녀한테는 분명 혼자 준비하라고 했을 텐데, 어쩌다가 독이 섞여 들어간 건지 모르겠다.
“아니면 저 하녀도 키칼한테 붙었나?”
하여간 집구석에 믿을 만한 사람이 없다니까.
난 신재헌을 살피다가 한숨을 내쉬었다.
안색도 변하지 않은 걸 보니 그의 말대로 데미지만 잠깐 들어온 모양이었다.
S급은 독 내성도 강할 테니까.
“진짜 괜찮은 거지?”
그래도 몸이 작아졌으니 독이 어떻게 반응할지 몰랐다. 약도 몸에 따라 적정량이나 치사량이 다르지 않은가.
만일 방금 먹은 게, 작아진 몸에 들어가기엔 너무 많은 독이었다면?
걱정스러운 내 시선을 느꼈는지 신재헌이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평소같이 가벼운 표정이었다.
“괜찮다니까, 근데.”
그가 인형처럼 작아졌기 때문일까, 난 순식간에 서늘해지는 그의 표정 변화가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재미있는 장난을 치네.”
차가운 시선이 문밖으로 향했다. 난 그 시선에서 익숙한 것을 느꼈다.
헌터팀은 물론 인간에게는 향할 일이 없었던 것. 하지만 게이트 안에서는 늘 느꼈던 것.
그의 살기였다.